소설리스트

검신검귀-136화 (136/328)

136화 갓쉰동 연개소문 (2)

개소문이는 진심으로 온달을 따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 다녔다.

사람 좋은 온달은 개소문이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험한 곳으로 와, 정붙일 사람이 없어 자신을 따른다 생각해 항상 자상히 대하였다.

온달과 개소문이는 군사를 훈련시킬 때도 함께 했고, 카사르와 사냥을 나갈 때도 함께 했으며, 온달이 파산귀검을 수련할 때도 함께 했다.

온달은 자신이 아직 파산귀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여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평강이 파산귀검을 암기해 적은 책을 지닌 채 온달의 곁에서 수련을 도왔다.

개소문이는 조의선인에 들어간 뒤로, 수많은 장수들의 수련을 지켜보았지만, 온달이 펼치는 이런 절정의 무예는 본 적 없었기에, 늘 감탄하며 온달을 진심으로 공경하였다.

그러나 온달은 자신의 수련에 진심을 다 할 뿐, 개소문이에게 그 어떤 가르침도 내리지 않았다.

하루는 수련하고 있던 온달의 곁에 마냥 서 있는 개소문이가 안쓰러운 막바우가 슬그머니 온달에게 말을 건넸다.

“장군, 멀뚱멀뚱 서 있는 저 개소문이게도 뭐 좀 가르치지 그러십니까?”

뜬금없는 막바우의 말에 온달이 운철대검을 땅에 박아 세우고 개소문이를 바라보았다.

지나치도록 빛나 매서운 기운마저 담은 개소문이의 눈이 갈망하듯 온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소.”

온달이 개소문이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막바우에게 짧게 답했다.

“괜찮아요? 뭐가요?”

온달의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막바우가 다그쳐 되물었다.

“그게 말이오. 보잘것없는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라오.”

온달이 다시 운철대검을 뽑아들고 파산귀검의 초식을 펼치며 수련을 재개했다.

“아니, 장군. 저 아이가 배우고 싶어서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있는 거 안 보이시오?”

막바우가 답답한지 온달에게 바짝 다가가 소리 죽여 말했다.

그제서야 온달이 파산귀검의 초식을 멈추고 땅에 운철대검을 다시 박아 놓고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가르칠 재주가 없고, 지닌 재주도 보잘 것 없어서… 나보다 더 좋은 스승을 찾아 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시오.”

“아니, 검신이라 칭송받는 온달 장군님보다 월등한 인물이 어디 있다고… 도대체 그게 누군데요?”

그늘에 앉은 평강에게 다가가는 온달의 뒤를 쫓으며 막바우가 계속 물었다.

“…….”

“아니, 장군. 속 시원히 대답 좀 해주시오.”

온달은 대답대신 평강이 펼친 책자 속 그림을 들여다보며 자신 펼친 자세와 비교하였고,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 된 막바우가 그 뒤에 씩씩거리고 섰다.

“팽 장주이옵니다.”

하염없이 책을 들여다보는 온달을 대신하여 평강이 막바우에게 나지막이 말하였다.

“아, 팽 장주…….”

그제야 막바우도 온달의 마음을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온달님은 사람 패는 기술은 좋아도 사람 가르치는 재주는 없지. 온동이와 독고영이도 해진님과 독고선님이 가르쳤으니 말이야. 팽 장주면 훌륭하군. 저놈 복 터졌네.”

막바우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서 있는 개소문이를 돌아보며 중얼거리는 사이, 온달은 다시 운철대검을 박아 놓은 자리로 돌아가 수련을 재개하였다.

개소문이는 온달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도록 미동도 없이 서서 그저 눈으로 초식을 담고 머릿속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평강과 온동처럼 천하에 비할 바 없는 영특함을 지니지 못하였기에, 그저 눈으로 온달의 동작만 쫓는 것이 고작이었다.

‘스승님이 펼치신 저 무공은 파산귀검이 분명하다. 북주 잔당들을 상대로 배찰산에서 펼치시어 선대 태왕께서 검신이란 칭호마저 내리신 바로 그 무공이다.’

개소문이는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온달의 파산귀검을 매일같이 직접 눈으로 접하며 항상 감격하고 있었다.

‘스승님께선 이미 신기에 달하셨음에도 이토록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으시는 것은 이 못난 내게 가르침을 내리심이 분명하다. 내가 못나, 수 없이 보고도 동작 하나 제대로 흉내 내지 못하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개소문이는 아이답지 않은 날카로운 눈빛과 강인한 턱을 지니고 말수도 많지 않았지만, 그 심성은 여느 아이 못지않게 순수했다.

어른들처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혹은 보다 나은 이익이나 방법을 찾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온달에게 무예를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온달이 그 뜻을 받아 무예를 가르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순수하면서도 강직한 개소문이의 이 성품 탓에 온달은 조금의 불평도 듣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온달은 개소문이가 그저 외로워 자신의 뒤를 따른다 생각하며, 수의 침공을 막아낸 후 개소문이를 팽가장에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총명한 평강과 눈치 빠른 경우는 개소문이의 눈빛에서 온달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은 열망을 읽었지만, 온달에게 무예를 가르치라 권하지 않았다.

평강도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소문이에 대한 소문을 듣었기에, 개소문이의 눈빛에서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대살성의 귀기를 띠고 태어난 아이라 들었다. 개소문이는 스스로도 갓쉰동이라 말할 정도로 자신이 십 년 일찍 태어난 것을 알고 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태어난 저 아이가 향후 고구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비록 아이라 할지라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평강의 이런 우려는 개소문이가 막리지 연태조의 장자이기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연 씨 일족은 권력을 탐하고 태왕을 업신여겼다. 저 아이도 연태조의 뒤를 이어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평강은 자상한 눈빛과 부드러운 말투로 개소문이를 대하였지만, 심중에선 이 어린아이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개호지 사냥을 할 정도로 대담하고 거침없다. 개호지를 사냥하여 이름을 알리고 싶은 공명심도 강한 듯하니, 장차 권세욕과 야망은 더 할 것이다.’

평강이 우려한 것처럼 개소문이는 공명심 때문에 범을 사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인가에 내려와 사람과 가축을 해친 해수를 벌하여 곤경에 처한 마을을 구하고자 했음일 뿐이었다.

개소문이에 대한 모든 소문과 오해는 그저, 개소문이가 연 씨 일족이었고, 아이답지 않게 매서운 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소문이의 담대하면서도 말수가 적은 성품 탓도 컸다.

개소문이 역시, 자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기 위해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마디 항변조차 하지 않았으니, 오해는 더욱 깊어짐이 당연했다.

어린 나이였기에 어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억울할 만도 했지만, 홀로 견뎌낼 뿐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곳 적봉진에서는 그나마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에게 호의적이었기에, 매우 만족해했다.

해가 저물어 가자, 온달의 수련이 마무리 되었고, 온달의 동작을 쫓던 개소문이의 눈도 쉴 수 있었다.

“내일은 계곡 본진의 훈련 상태를 점검하러 갈 생각이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온달이 평강에게 말하였다.

“우랑 장군께서 잘 다듬어 놓으셨을 것입니다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셔야 만족하시겠지요?”

평강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허허, 그렇소이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평강이 함께 가겠다고 말하자, 온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물자도 점검해야 하니, 공주도 함께 하는 것이 좋겠구려.”

영리한 평강이 함께 살펴준다면 일의 부담이 줄기에 온달도 선선히 승낙했다.

“내일, 개소문이는 두고 가시옵소서.”

평강이 소리 죽여 말하자, 온달이 의아해 물었다.

“먼 길이라 그렇소?”

“아니옵니다. 본진 위치는 아직 모르는 것이 저 아이에게 좋을 듯하여 말씀 드리는 것이옵니다.”

평강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온달은 더 묻지 않고 답하였다.

“알겠소. 그리 합시다.”

이튿날, 아침 일찍 온달과 평강은 홍산을 내려갔다.

개소문이는 따라가지 못해 그저 서서 멀어져가는 온달의 뒷모습을 배웅하였다.

“금방 오실 거야. 오늘은 너도 편히 하고 싶은 거 하며 쉬어라.”

막바우가 개소문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좋은 말로 달랬다.

경우가 사람 좋은 표정으로 개소문이를 달래는 막바우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나는 오늘 카사르와 사냥을 떠날 것인데, 막바우 그대는 어쩔 생각이오? 그 아이와 놀 거요?”

사냥이란 말에 개소문이의 눈도 빛을 띠었지만, 경우는 피식 웃으며 개소문이의 눈을 외면하였다.

“사냥? 그럼 나도 가야지. 마유주도 좀 마시고… 흐흐흐.”

막바우가 입이 귀에 걸려 웃으며 좋아하자, 개소문이의 눈이 막바우에게로 향했다.

쌀쌀맞은 경우는 자신을 사냥에 데려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막바우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을 알 수 없는 법.

눈빛만으로는 생각이 전달되지 않기에, 막바우는 개소문이의 마음을 알 리 만무했다.

“개소문이 넌 우리 없는 동안 이 홍산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으렴. 아저씨 금방 다녀오마. 흐흐흐.”

신바람을 내며 막바우가 사냥 채비를 하기 위해 자신의 게르 안으로 쑥 들어가자, 경우와 개소문이만 남았다.

“나도 채비를 해야 하니, 넌 볼 일 보거라.”

경우가 쌀쌀맞은 말투로 거리를 두자, 개소문이도 더는 조를 수 없어 온달이 떠난 게르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스승님이 자리를 비운 이 게르가 홍산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사냥 놀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야. 내가 스승님의 게르를 지키고 있어야 해.’

홍산 아래는 카사르 부족이 지키고 홍산 위는 고구려 군사들로 가득해 온달의 게르는 따로 경계를 서는 군사를 두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 적도 없을 뿐더러, 의심스런 내부의 적도 없어 온달이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곁에 막바우와 경우의 게르도 있었기에, 평강도 평소 게르 경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온달의 게르 앞에 앉은 개소문이의 시야에 경우와 막바우가 홍산을 내려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서운함은 늘 겪어왔던 일이었기에,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눈을 감아 온달이 펼치던 파산귀검 초식을 떠올려 보았다.

매일같이 지켜보고 또 지켜보며 눈에 담아 머리에 새기려 했건만, 눈을 감으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정말 둔재로구나. 그토록 보고 또 봐왔건만, 아무것도 머릿속에 새기지 못했다니… 정말 한심하구나.’

아무리 떠올려도 온달이 펼치던 동작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자, 맥이 풀린 개소문이가 힘없이 눈을 떴다.

그때, 개소문이의 눈앞을 무엇인가가 빠르고 조용히 쓱 스쳐 지나며 온달의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뭐지? 방금 누가 지나갔는데… 내가 이렇게 앉아 있었건만… 내가 졸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도적일까?’

누군가 들어간 온달의 게르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개소문이는 숨마저 참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게르 안을 들여다보았다.

게르 안에는 가죽옷을 입은 사내가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팔다리는 짧은데다가, 둥글고 큰 머리가 북처럼 두터운 몸통에 딱 붙어 있어 마치 거북이처럼 보였다.

키는 개소문이보다 작았지만, 어린아이는 분명 아니었다.

게르 안을 이 잡듯이 뒤지면서도 사내는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았고, 몸놀림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재빨랐다.

‘무예를 익힌 자다. 단순한 도적은 아니다.’

개소문이는 자신이 무기를 지니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무기를 가지러 갈 수도 없다 생각하여 마음을 굳혔다.

‘무척 날랜 자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분명 그 사이 도주할 것이다. 잡아두고 사람을 불러야 한다.’

마음을 굳힌 개소문이가 게르 안으로 뛰어들며 용감히 소리쳤다.

“누가 감히 온달 장군의 게르에 침입한 것이냐!”

개소문이의 우렁찬 호통에 게르 안을 뒤지던 사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등을 돌려 개소문이를 바라보았다.

“아이?”

고작 아이 하나가 자신에게 호통을 쳤다는 사실에 거북이처럼 생긴 사내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너는 누군데 감히 온달 장군의 게르를 뒤지는 것이더냐? 당장 무릎 꿇고 포박을 받거라.”

개소문이의 엄한 호통에도 거북이처럼 생긴 사내는 그저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을 뿐이었다.

“나 원 참. 살다 살다 이 팽무일이 이런 꼬마에게 호통을 다 듣는구나.”

거북이처럼 생긴 사내는 온달과 오랜 악연인 팽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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