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갓쉰동 연개소문 (1)
고구려의 막리지 연태조에겐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맏이는 사내아이로 개소문이란 특이한 이름을 지녔고, 둘째 역시 사내아이로 정토란 이름을 지녔다.
그리고 셋째는 여자아이로 수영이란 이름을 지녔다.
개소문이는 모용설이 말하길.
본래 태조의 나이 쉰에 태어나야 할 운명을 지녔으나, 세상에 십 년이나 일찍 나와 귀기를 지녔다고 했다.
모용설이 연태조에게만 한 말은, 발이 달리고 꼬리가 생겨 널리 퍼졌고, 세월이 흐르자 자신에 대한 풍문을 개소문이조차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귀기를 지니고 태어난 대살성.
고구려의 재앙이 될 아이.
피로 역사를 쓸 귀태.
소문은 공포를 불러왔고, 개소문이가 성장할수록 더해만 갔다.
개소문이 나이 다섯에 벌써 조의선인에 들어가 무예를 익히기 시작해.
일곱 살이 되는 해엔 마상 재주가 어른 장수 못지않다는 칭찬을 듣기도 하였다.
열 살이 되는 올해 봄엔 나이가 어려 낙랑 사냥대회를 참가하지 못한 개소문이는 홀로 사냥을 떠나 표범을 잡았는데, 이를 알게 된 오부 귀족들은 모두 놀라 개소문이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였다.
막리지가 된 연태조를 시기하던 오부 귀족들은 이제 개소문이마저 극도로 경계해 온갖 말들을 쏟아 내기 바빴다.
“어린아이가 공명심만 높아, 사냥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불만을 참지 못하고 홀로 표범을 사냥하다니,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하였소.”
“그렇소이다. 고작 열 살 아이가 벌써부터 살생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니, 그 심성이 어찌 이리 포악할 수가 있겠소이까?”
“본래, 연 씨 일가는 정치력이 높은 가문이었지, 무용이 뛰어난 가문은 아니었소. 권력욕이 강한 연 씨 일족인 이 아이가 이대로 자란다면 장차 고구려의 해악만 될 뿐이오.”
“그 아비가 막리지에 올랐으니, 향후 개소문이에게도 권력이 쥐어지게 될 것이오. 그때는 우리가 나눈 이런 대화를 개소문이가 좌시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오. 뭔가 수를 내야 하오.”
개소문이를 경계하기 시작한 오부 귀족들의 이런 기운을 영민한 연태조가 모를 리 없었다.
“질시와 경계는 개금이가 성장할수록 더욱 깊어져 결국, 두려움으로 변할 것이다. 두려움은 상대를 적대시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 피를 부를 수밖에 없다.”
깊은 밤 모용설, 모용상, 단 사부를 처소에 부른 연태조가 담담하면서도 묵직이 말하였다.
모용설을 비롯한 이미 모두가 막리지 연태조 뿐만 아니라 개소문이에 대한 오부 귀족들의 경계를 알고 있기에 분위기가 무거웠다.
“공을 세우면 세울수록, 능력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저들의 경계는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모용설이 차분히 말하였다.
“지금 쓸어버려야 합니다. 수와 큰 전쟁을 앞둔 이 시기에 화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기와 경계만 하는 저 따위 귀족 무리는 백만의 적보다 해만 될 뿐이옵니다.”
모용상이 단호히 의견을 내자, 연태조가 눈살을 찌푸렸다.
“상이는 그 급한 성정을 눌러야 할 것이다.”
연태조가 묵직이 나무라자, 모용상이 머리 숙여 뜻을 받았다.
“송구하옵니다. 합하.”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반가지 않던 이들 남매를 받아준 연태조였기에, 모용설, 모용상 남매는 그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그러나 급한 성정은 쉽게 고치지 못하는 법.
모용상의 성정을 잘 아는 연태조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말을 대신했다.
그때 문 밖에서 어린 사내아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합하, 소자 갓쉰동이가 왔사옵니다.”
개소문이는 스스로를 갓쉰동이라 불렀는데, 이는 부친 연태조의 명을 따른 것이었다.
“들어오라.”
연태조가 낮으면서도 중후히 말하자, 문이 열리고 머리를 박박 밀은 사내아이가 들어왔다.
온통 검은색 일색의 조복을 입었고, 어리지만 다부진 턱과 매서운 눈을 지녔다.
등에는 어린아이가 사용하기에 긴 장검 한 자루가 매어져 있었고, 허리엔 두 자루의 도끼가 꼽혀 있었다.
오른손엔 단궁을 쥐고, 왼손엔 제 키만 한 봉을 쥐었는데, 봉 끝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또 사냥을 다녀 온 것이더냐?”
연태조가 어린 아들의 행색을 훑어보며 물었다.
“인근 마을에 개호지가 내려와 아이를 습격한다는 말을 들었사옵니다. 하여.”
“하여, 잡았느냐?”
“크지 않은 놈이라 어렵지 않았사옵니다.”
고작 열 살의 아들이 어린 범을 사냥했다는 말에 연태조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도왔지만, 세인들은 오히려 개소문이를 더욱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개금아, 너도 아이란다.”
연태조의 이 말 속엔 아비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으니, 개소문이도 이를 느껴 머리를 숙였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겠사옵니다.”
개소문이의 말에 연태조가 잠시 침묵을 유지한 후 엄히 말하기 시작했다.
“개금이 너는 내일 홀로 신성으로 떠나야 하느니라.”
“신성이라 하셨습니까?”
말로만 들었던 신성이었지만, 대담한 개소문이에겐 어려운 명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 없이 신성에 갈 리 없으니, 그 연유를 물음은 당연했다.
아이답지 않은 아들의 눈을 응시하며 연태조가 답했다.
“그곳에서 너는 위장군 온달을 따라가야 하며, 이 고구려엔 다시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소문이는 크게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영영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하옵니까?”
“그건 아니다.”
“하오면?”
“네가 힘을 길러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을 때 돌아오거라.”
막연한 답이었지만, 개소문이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숙여 아비의 뜻을 받들었다.
“조용하고 신속히… 그리고 신분을 알리지 않아야 하옵니다.”
모용설이 다정한 눈빛으로 덧붙여 말하자, 개소문이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 채비를 꾸리겠사옵니다.”
개소문이가 나가자, 모용상이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어리디 어린 공자를 어찌 홀로… 정녕 이 길밖에 없사옵니까?”
“나 역시, 어려서 고구려를 떠나 주유천하한 후 돌아왔느니라. 오부 귀족의 견제를 받는 우리 연 씨 일족의 숙명이니라.”
다음 날 아침, 개소문이는 해가 뜨기 무섭게 짐을 꾸렸다.
어린 동생 정토와 수영이 눈물을 훔치며 개소문이를 배웅할 뿐, 연태조를 비롯한 그 누구도 밖으로 나와 개소문이를 배웅하지 않았다.
개소문이가 비록 무예가 뛰어나고 담이 크다 할지라도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어린 동생들의 배웅에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애써 눌러 참아야 했다.
“오라버니, 빨리 돌아오셔야 하셔요!”
연수영이 멀어져 가는 오라버니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형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개소문이의 남동생 정토는 올해 일곱 살, 여동생 수영이는 올해 다섯 살이었지만, 꽤나 조숙한 티를 내며 개소문이를 배웅했다.
말 위에 오른 개소문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묵묵히 정면만 응시한 채 길만 서둘렀다.
아주 조그맣게라도 동생들의 인사에 답을 할 경우,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에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개소문이가 떠난 뒤, 모용설은 사람들을 시켜, 연개소문이 사냥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는 곧 오부 귀족들의 귀에도 전해졌고, 어린아이가 홀로 말을 몰아 북으로 향한 모습을 목격한 이들도 소문에 말을 더했다.
“들으셨소? 대호를 잡으러 떠났다 하더이다.”
“어린놈이 명성에 집착하는구려. 범 아가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으로 느꼈으면 좋겠소이다.”
오부 귀족들은 자신들의 악담 덕인지, 개소문이가 시일이 흘러도 돌아오지 못하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연 대가의 집에 수심이 가득하더이다.”
“장자의 행방이 묘연하니 어찌 안 그렇겠소이까? 안타까운 일이외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 달리 개소문이는 범 아가리를 몸으로 느끼지 않고, 무사히 신성에 도착해 온달을 만나고 있었다.
“네가 막리지의 장자 연개소문인가?”
어리지만, 다부진 턱을 지닌 개소문이와 마주 앉은 온달이 물었다.
“장군, 소인 갓쉰동이라 하옵니다.”
아이답지 않은 말투라 온달은 그저 허허 웃었다.
“허허… 그러하냐? 허허허.”
“소인, 장군의 위명을 들은 지 오래였고, 항상 흠모하여 스승으로 모시고 싶었사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 한 없이 기쁘고 감격스러울 따름이옵니다. 이 몸, 장군님을 스승으로, 아버지처럼… 모시고, 배우며 따르겠사옵니다.”
개소문이의 이 말은 진심으로, 온달을 스승으로 모시며 성심을 다해 그의 무예를 배우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말 속에 담긴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한 온달은 그저 허허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허허허. 너무 애쓰지 말거라. 나 역시 너를 일가처럼 보살필 것이니, 힘든 길이겠지만 잘 지내보도록 하자.”
온달의 이 부드러운 대답에 개소문이는 무척 기뻐 벌떡 일어나 넙죽 절하며 스승으로 섬기는 예를 올렸다.
때마침, 안으로 들어온 평강이 이 광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장군께서 이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이셨으니, 무예를 전수하셔야 할 터인데…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로다.’
평강의 생각처럼 무예를 가르치는 일은 온달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 온달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개소문이를 일으켜 세울 뿐이었다.
개소문이가 인사를 올린 후 방을 나가자, 평강이 온달에게 개소문이가 올린 예의 의미를 설명했다.
평강의 말을 가만히 듣던 온달은 이내 곧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큰일이구려. 허허… 이런… 아이를 실망시켜선 안 될 터인데… 나의 재주가 부족해 가르칠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소?”
몸에 익힌 무예를 펼쳐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이를 설명하는 것은 온달에세 불가한 일이었다.
그러나 몰랐다고 할지라도 이미 사제의 연을 맺은 이상, 책임을 지고 싶은 온달이었다.
“부인, 어찌하면 좋겠소?”
온달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묻자, 평강은 그저 우스워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은 차근차근 생각해 보시지요.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다시 적봉진으로 향하는 것이오며, 두 번째는 수와의 전쟁 준비이옵니다. 저 아이는 연태조의 부탁대로 팽가장의 팽무성 장주에게 맡기시오면 되실 듯하옵니다.”
평강의 말에 온달이 무릎을 탁치며 환하게 웃었다.
“공주의 말이 옳소! 나보다야 팽 장주의 무공이 월등하니 그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저 아이에게 더욱 좋을 듯하오. 역시 공주요.”
온달은 근심을 덜어내었으나, 부친 연태조가 온달에게 부탁해 자신을 팽가장에 맡기려는 것을 알리가 없는 개소문이었다.
다음날, 온달을 따라 개소문이는 적봉진으로 향했고 성심으로 온달을 따랐다.
온달 역시 개소문이가 불편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그러나 무예를 전수 받고자 했던 개소문이의 마음과 달리 온달은 무예에 대해선 일체 언급조차 없었다.
‘갈 길이 바빠 스승님께서 시간을 내지 못하시는구나. 적봉진에 도착하면 무예를 배울 수 있을 것이야.’
개소문이는 서운한 마음을 참으며 온달에게 무예를 배울 때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적봉진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경우와 막바우가 이들을 맞이했다.
“우랑이 기 씨 사형제와 함께 본진을 잘 지키고 있구먼요. 카사르의 부족은 그새 더 커졌고요.”
막바우가 홍산 아래 카사르 부족을 가리키며 말했다.
개소문이도 막바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 초원을 뒤덮은 게르와 양 떼를 바라보았다.
‘이들이 지난 북주와의 전쟁에서 우리 고구려를 도왔구나.’
개소문이가 카사르의 부족을 둘러보는 사이, 경우가 온달에게 살며시 말을 건네 왔다.
“장군, 하온데… 이 아이는?”
“막리지 연태조 합하의 장자입니다.”
온달이 이미 장군 반열에 오른 경우에게 존대를 하며 답하였다.
“막리지의 장자요? 아니 그런데 여기는 어찌?”
경우가 더욱 의아해 묻자, 개소문이가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아이답지 않게 날카로운 눈빛에 경우는 섬뜩함을 느꼈다.
‘매의 눈이로다. 아이가 어찌 이런 눈빛을 지닌단 말인가?’
연태조의 아들이 대살성을 띠고 태어났다는 소문을 얼핏 들은 바 있는 경우였기에, 개소문이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무심코 보내고 말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경우의 눈빛에서 냉기를 느낀 개소문이는 그녀를 쏘아보고는 무심히 시선을 초원으로 돌렸다.
‘이 아이, 방금 내게 적의를 보였다.’
경우가 개소문이의 조그만 뒤통수를 뚫어져라 응시하자, 온달이 오히려 불편해하며 답하였다.
“막리지께서 부탁이 있으셨소. 아무튼 당분간 이곳에서 함께 지낼 것이니, 다들 잘 보살피도록 하시구려.”
“장군의 하명이온데 당연히 잘 보살펴야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온달의 당부에 막바우는 아무런 이견 없이 냉큼 답하였지만, 경우는 여전히 개소문이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무심한 듯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내 시선 때문에 일부러 이런 행동을 취하는 모양이다. 이 아이… 전혀 아이답지가 않다.’
온달은 경우와 개소문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괜히 허허 웃으며 개소문이를 불렀다.
“개소문아, 이리와 경우 장군과 막바우 장군께 인사를 올리거라. 우리에겐 일가와도 같은 분들이시란다.”
온달의 다정한 부름에야 개소문이가 고개를 돌렸다.
“소인, 갓쉰동이라 하옵니다. 명궁 경우 장군님과 산을 무너뜨리신 막바우 장군님을 뵈어 감개무량하옵나이다.”
개소문이의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했지만, 태도는 무척이나 공손해 오히려 더 어색했다.
경우와 달리 막바우는 개소문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하, 갓쉰동이? 묘한 이름이로구나. 좋아! 내 위명이 그리도 대단하더냐? 하하하.”
막바우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머리를 거침없이 쓰다듬자, 순간 개소문이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개소문이의 눈에서 섬광이 이는 것을 느낀 경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실로 묘한 아이다. 방금 눈에 담겼던 것은 맹수의 살의였다. 이 아이 도대체… 아이답지가 않구나.’
개소문이에게 조금도 정을 줄 수 없는 경우였고, 이미 그녀의 마음을 읽은 개소문이었다.
다만, 개소문이는 조의선인에 들어가 수련을 하며 자신을 향한 어른들의 곱지 않은 수많은 시선을 느껴왔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경우 장군님도 나를 경계하시는구나. 내가 좀 더 열심히 수련하여 기대에 부응한다면 반드시 나를 알아주실 것이다.’
개소문이는 이렇듯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변할 것이라 믿는 그저 아직 어린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