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31화 (131/328)

131화 팽가장의 비극 (10)

“내 손님에게 무례하구나. 조피골, 그대가 내 처의 길을 되돌린 것인가?”

팽무성의 물음에 노여움이 가득 배어 있어 하오문의 졸개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팽가사협의 앞길을 막겠습니까? 하하하.”

팽무성이 팽가사협의 손을 바라보니, 하나같이 독에 중독되어 시커멓게 변해 있는 것이 조피골의 수법이 분명했다.

“저놈이 앞길을 막기에 몸에 손을 대었더니, 이리 되었습니다.”

한대웅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며 말하니, 팽무성이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팽가장 인물들이 도검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조피골을 대적함은 극독에 중독됨을 의미하였다.

“당장 죽지는 않을 게요. 내력이 약한 자는 즉사하거나 기절하기도 하지만, 팽가사협처럼 고강한 인물들은 장기가 손상되며 그 피해가 누적될 뿐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오. 하하하.”

조피골도 자신이 독을 사용하여 팽가사협을 중독 시켰음을 인정하니, 팽무성의 눈썹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우리 하오문은 무예 수련이 약하여 독을 사용하는 것이라 이해 좀 해주시구려.”

팽무성의 분노한 표정에도 조피골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하니, 해진이 나서며 물었다.

“나를 원하는가?”

비쩍 마르고 늙은 해진이 고작 세 치가량 되는 얇은 나뭇가지를 쥐고 나서며 물으니, 하오문의 졸개들이 비아냥거렸다.

“네놈이 고구려의 조의선인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네놈을 잡아 한왕 전하께 바치고 두둑이 챙겨야겠구나. 어서 오너라.”

“우리 하오문의 정보력은 중원 제일이다. 네놈 정체를 속이지 못할 게야. 하하하.”

해진은 하오문의 졸개들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조피골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채 부인은 갈 곳이 계시니 길을 열거라. 나를 원하면 나만 공격하면 되지 않느냐?”

“노인장, 그대만 원하는 것은 아니라 아이들과 저 사내도 원하는데 들어주겠소? 하하하.”

조피골이 비웃으니, 더는 말로 상대할 수 없다 여긴 해진이 나뭇가지를 가볍게 땅에 후려치며 달려들었다.

파산귀검의 초식이 펼쳐지며 나뭇가지가 만든 검기가 땅을 가르고 흙을 날리며 시야를 가리고는 그 사이를 해진이 날아들며 조피골의 목을 노렸다.

“고구려놈이 어디서!”

그때, 제갈여가 천기신행(天機神行)을 펼치며 날아들더니, 소리비도(小莉飛刀)를 펼쳤다.

소리비도는 조의선인의 비검술 못지않은 비도술로 소리(小莉)라는 별호를 가졌던 제갈세가의 선조가 창안한 가전비기였다.

다섯 자루의 단도가 근거리에서 날아드니, 해진이 백두검법의 보법을 펼치며 피해보지만, 이미 두 자루의 비도가 그의 어깨와 흉곽에 꽂히며 발을 느리게 하였다.

“고구려의 비도술이 유명하다던데, 우리 제갈세가의 비도술은 어떠한가? 더 낫지 않은가?”

급습을 하고도 뻔뻔스레 제갈여가 해진을 비웃으니, 독고선이 맨손으로 권법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비열한 놈! 어디 내게도 암수를 써 보거라!”

이때, 하오문의 졸개들 뒤에서 단목순이 무한보(無限步)를 펼치며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팔십일식유성환상검(八十一式流星幻像劍)을 펼쳤다.

이에, 검광이 사방을 에워싸며 독고선은 물론이요.

해진마저 집어 삼켰다.

“피하시오!”

팽무성이 검망 속으로 몸을 날리며 해진과 독고선을 지키고 적수공권으로 맞서니, 진숙이 달려와 월도를 휘두르며 단목순을 도왔다.

팽가사협 중 가림과 국서진이 몸을 날려 해진과 독고선을 구해 내며 소리쳤다.

“두 분을 구하였으니, 안심하시오!”

이 소리에 팽무성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며 단목순과 진숙을 상대로 장법을 펼치는데 조금도 밀림이 없었다.

“포달랍궁을 욕보인 그대에게 죄를 묻겠노라!”

이때, 금화법왕의 제자 이십여 명이 장원 안으로 달려오며 금환과 철편을 날리니, 팽가사협의 한대웅과 소향이 날아들며 팽무성을 도왔다.

여기에, 백의(白衣)를 입은 사내 스물여덟 명이 하오문의 졸개들 뒤에서 몸을 솟구치며 싸움에 가세하는데, 이들은 단목세가의 정예로 이십팔숙(二十八宿)이었다.

수에서 밀리고 부상당한 이가 많은데다, 채 부인과 독고영, 온동 등도 지켜야하니 팽무성의 마음이 급해졌다.

“내 앞에선 아무도 죽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더냐!”

우렁찬 외침이 담장을 날아들어 오며, 남궁민이 검기를 일으키니, 하오문의 졸개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어서, 팽무성의 목을 노리던 금화법왕의 제자가 휘두른 철편도 잘랐다.

“팽 장주! 남궁민이 도우러 왔소이다. 부인과 아이들은 안으로 들이시지요.”

남궁민이 채 부인과 아이들을 피신시키려 하니, 제갈여가 천기신행(天機神行)을 펼치며 앞으로 뛰어들더니, 소매를 흔들어 은하침통(銀河針筒)을 펼쳤다.

“누구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수십 개의 날카로운 바늘이 쏟아져 날아오니, 남궁민이 급히 검을 휘둘러 검망을 만들었다.

“좋은 재주요! 이것도 막아 보시구려! 하하하.”

이때 조피골이 소매에서 검은색 병을 꺼내 던지자, 남궁민은 그 병에 독이 들었다 생각하여 맞서지 않고 피하였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병이 깨지며 독무를 뿌렸다.

“피하시오! 독무요!”

하오문의 장기인 독무로 이미 해독약을 복용하였는지, 제갈여 일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소향이 채 부인을 염려해 재빨리 감싸고 몸을 날려 피하니, 팽무성도 남궁민과 함께 몸을 피하였다.

“이 연기를 걷으라!”

이때 곱고 청아한 음성이 들리며 하오문의 졸개들이 길을 내어주니, 송현이 황금이 든 상자를 멘 호위교위와 함께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황후께서 더 이상 다투지 말라하셨거늘 어찌 이리도 경거망동하는 것이오? 조 장문인은 어서 해독약을 주시오!”

그녀가 황후의 시녀임을 알아본 조피골이 비굴한 웃음을 짓고는 연신 굽신거리며 해독약을 건네었다.

“항아님, 여기 있습니다.”

송현은 조피골이 건넨 작은 병에서 환을 두 알 꺼내 호위교위에게 건네고 자신도 입에 털어 넣더니, 이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네 이놈! 해독약이 아니구나!”

“내가 그대같이 조그만 여인네가 달라면 고분고분 내어 줄만큼 하찮은 인생인 줄 알았소? 황후의 명을 어기고 왔는데, 이제 와 그대 같은 순진한 아가씨 말을 듣겠소이까? 하하하.”

조피골이 조롱하니 호위교위가 칼을 빼어 들다가 휘청이며 쓰러졌다.

내력이 약한 호위교위는 금세 절명하였고, 그가 짊어진 황금 상자에 하오문의 졸개들이 달려들었다.

송현은 어이가 없어 내력을 모으며 독에 저항해 보는데, 내력이 모이지 않고 정신이 아찔하여 몸이 휘청거렸다.

이때 팽무성이 몸을 날려 송현을 번쩍 안고는 소리쳤다.

“모두 서고로 가시오!”

“저것들을 놓치지 말아라!”

단목순이 외치니, 이십팔숙이 맹렬히 뒤를 쫓았다.

송현을 안고 달리며 팽무성이 맨 뒤에서 이십팔숙을 대적하였다.

그 틈에 서고에 모두가 들어갔고, 모두의 안전을 확인한 팽무성도 몸을 날려 서고에 들어간 뒤 급히 문을 닫았다.

서고는 단단한 철문으로 외부의 적을 방비할 수 있으나, 창문도 없어 빠져 나갈 길도 없었다.

온동이 급히 초에 불을 붙여 안을 살피니, 독무에 중독된 채 부인의 상태가 무척 위급해 보였다.

그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꽤 심각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독고영과 채 부인이 품에 안은 아이는 무사해 보였다.

“죄송하구먼유. 제가 연회장에서 황후를 구하겠다고 파산귀검을 펼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죽을죄를 지었구먼유.”

온동이 넙죽 엎드려 팽무성에게 사죄를 하니, 팽무성은 말없이 온동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채 부인의 상태가 위급하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하였다.

“뭣이라? 이 아이 말이 모두 사실입니까? 이 아이 때문에 우리 팽가장이 저들에게 공격받는 것입니까?”

팽 장주 대신 소향이 불같이 노하여 온동은 물론이요.

독고선 일행 모두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니, 한대웅, 가림, 국서진 등도 일어나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니오! 저들은 이 아이가 파산귀검을 펼치지 않았더라도, 이들이 고구려와 아무 관련이 없더라도… 단지 팽 장주에 대한 시기심만으로 시비를 걸었을 것이오.”

남궁민이 두둔하니, 오히려 불쾌한 내색을 노골적으로 보이며 가림이 물었다.

“당신이 뭔데 다 아는 듯 말하시는 것이오? 밖에 있는 저들의 속내라도 들어가 본 것이오?”

감림의 태도가 무례하였으나, 남궁민은 노여워하지 않고 태연히 답하였다.

“나는 다 아오. 내가 곧 정의고, 내가 걸어온 길이 협객행이었으니, 나는 옳고 그름을 모두 아오.”

“그 잘난 분이 어찌 고구려 침략 전쟁에 참여하러 한왕 휘하에 들어간 것이오? 협객행에 다른 나라 침략 전쟁도 있더이까? 지금 우리 팽가장을 보시오. 이게… 이게 뭔 일이란 말이오…….”

이번엔 소향이 감적이 격하여 따지고 묻다가 울먹이니, 남궁민이 쩔쩔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나도 침략 전쟁은 내키지 않았으나, 여러 영웅들이 참여한다기에, 호승심 때문에 참여한 것인데… 반성하고 있습니다. 실로 팽가장의 이번 고난은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도울 수 있는 일은 모두 돕겠소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독고선이 손에 쥔 헝겊에 둘둘 말은 금강대도를 두 손에 바쳐 팽무성에게 건넸다.

“독고 형, 이게 무엇이오?”

“금강대도입니다.”

독고선의 이 말에 팽가사협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팽무성이 황급히 헝겊을 걷어 보니, 정녕 금강대도였다.

“이것을 어찌 독고 형이?”

팽무성이 놀랍고도 반가워 물으니, 독고선이 머리 숙여 용서를 구했다.

“팽무일이 지닌 이 금강대도를 온달님이 빼앗아 보관 중이셨는데, 신라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떠나시며 팽 장주에게 전해 달라 하셨소. 하여.”

“하여?”

“하여, 우리가 이 금강대도를 지니고 이곳까지 온 것인데, 와보니 고구려와 전쟁을 준비 중이더이다. 하여, 이 속 좁은 사람이 팽 장주가 한왕 휘하에 들어가 고구려와 온달님께 위협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전하지 않고 있었소이다. 용서하여 주시오. 이 금강대도만 있었어도 팽 장주가 상하는 일은 없었을 터인데.”

장주의 신물을 잃은 뒤로 팽무성을 비롯한 모든 팽가장 인물들은 도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제 실력을 펼치지 못하였으니, 독고선이 금강대도를 지니고도 전하지 않았던 행위에 팽가사협의 분노가 극에 달하였다.

“정녕, 이자들이… 이 빌어먹을 고구려 놈들이 우리 팽가장의 원수로구나. 네놈들을 팽 장주가 극진히 대하였거늘… 네놈들 때문에 채 부인이 지금 사경을 헤맨다. 네놈들 목을 잘라 내 씹어 먹으리라.”

국서진의 두 눈이 증오로 이글이글 타올라 기괴하였다.

“사형들, 모두 진정하시오. 이들은 나의 벗이었고 지금도 나의 벗이오. 나를 의심하여 금강대도를 전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지금이라도 전하여 준 것을 감사할 따름이요.”

“팽 장주!”

“사형, 이들이 금강대도를 전하기 위해 고구려에서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끝내 찾지 못하였을 것이오. 그 외의 것은 불필요한 추측과 억측일 뿐, 이분들의 탓이 아니오.”

팽무성이 이렇듯 말하니, 살기등등했던 팽가사협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엔 여전히 노여움과 원망이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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