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30화 (130/328)

130화 팽가장의 비극 (9)

황보신유가 팽무성을 두둔하니, 이번엔 하오문의 조피골이 큰 소리로 반박하였다.

“당치 않는 소리요! 우리 하오문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팽무성은 고구려의 낙랑 사냥 대회에서 온달을 도왔다 하오. 그러니 적과 내통하고 있음도 당연할 뿐더러, 저 아이가 온달과 관련 있음도 당연한 일이오. 혹시 황보신유 그대도 고구려의 간자인 게요?”

“뭐라? 이 쥐새끼 같은 놈이!”

황보신유가 노해 조피골의 머리보다 커다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니, 조피골은 감히 맞서지 못하고 경신술을 펼쳐 멀리 몸을 날렸다.

무공은 별 볼일 없으나 경공만큼은 훌륭했다.

“제갈세가의 명성이 헛되지 않아 파산귀검을 알아보았으니, 실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황후 마마께서는 저 아이와 팽 장주를 문초하시어 고구려의 간자임을 밝히시옵고, 당진평, 언지창과의 관계도 실토케 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나이다.”

단목세가의 단목순이 또다시 벗인 제갈여를 거드니, 남궁민이 코웃음 치며 반박하였다.

“고구려의 간자면 어떻고 독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어떻소? 팽 장주가 우리를 구하고 저 아이가 황후 마마를 구한 것은 사실 아니오?”

“…….”

“나, 남궁민 불살이란 칭호를 지녔음에도 오늘 망신스럽게 중독되어 위험에 처한 황후 마마를 구하지 못하였고 당진평과 언지창에 맞서지 못하였으나, 팽 장주와 저 아이의 위험만큼은 못 본 척 할 수 없소이다. 저들을 의심하여 해하려는 자는 나와도 겨루어야 할 것이오!”

남궁민의 이 호기로운 외침에 팽무성은 마음 깊이 고마워하였고, 속이 좁은 이들은 오히려 이를 갈며 더욱 기승을 부렸다.

“남궁세가의 위명이 대단하여 무림 고수들을 업신여기시는 것입니까? 이 진숙 재주가 부족하나 남궁세가의 초식 구경은 해 보고 싶군요.”

진가장의 진숙이 남궁민을 고깝게 여기고 말하니, 악부동도 단창을 흔들며 거들었다.

“불살? 하하하, 개가 웃겠소. 그 잘난 불살이란 칭호는 누가 붙인 게요? 어디 막아 보실 수 있다 생각하면 막아보시오!”

악부동이 단창을 쥐고 온동을 향해 달려드니, 양지가 장창으로 그 앞을 막으며 대들었다.

“내 듣기에 틀린 말 하나 없는데, 웬 생떼요? 나는 저들이 고구려와 내통하였다 해도 짐승이 아닌 한 은혜는 갚아야 한다 생각하며, 더구나 아직은 밝혀진 것도 없는데 성급히 창을 휘두름은 개돼지도 안 할 짓이오. 부끄러운 줄 아시오!”

양지와 악부동은 그 실력이 막상막하라 서로의 창들이 수차례 부딪쳐도 조금의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제갈여가 슬쩍 손을 펼쳐 내력을 실어 장을 날리자, 양지의 어깨를 때리니, 휘청이며 장창을 놓치고 말았다.

“조심하시오!”

독고선과 해진이 양지를 도우려 몸을 움직이자, 단목순이 낙성십이검(落星十二劍)을 펼치며 앞을 막았다.

이를 도우려는 팽무성에게 진숙이 월도를 휘두르자, 남궁민이 검으로 막으며 팽무성을 도왔다.

악부동은 이 틈을 노려 양지의 가슴팍에 창을 밀어 넣었고, 조피골도 몸을 날려 온동의 어깨를 쥐어 낚아채었다.

이에, 독고영이 바닥에 떨어진 장창을 쥐고는 독고창법을 펼쳐 조피골의 손을 후려치니, 맥없이 어린 소녀에게 얻어맞은 조피골이 고함을 지르며 독고영에게 달려들었다.

“이 한심한 인간이!”

황보신유가 대뜸 달려와 조피골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지르니, 조피골이 날아가 쳐 박혔다.

그러나, 황보신유의 손에서도 연가가 피어오르며 시커멓게 변하였다.

“중독되었구나…….”

황보신유가 크게 노해 부르짖고는 조피골을 때려죽일 듯 달려드니, 이번엔 제갈여가 소매를 흔들어 은하침통(銀河針筒)을 펼치자 은빛 침들이 쏟아져 날으며 황보신유의 가슴에 박혔다.

“이것들이… 정녕.”

황보신유가 제갈여와 조피골을 노려보며 혈도를 막고 독을 누르니, 팽무성이 그의 앞을 지키고 섰다.

“멈춰라!”

혼란함 속에서 황후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에,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면서도 일시 싸움이 중단되었다.

“무엄한 것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이리도 패악질인 것이냐?”

상처 입은 몸으로 최희가 외치니, 선우천이 검을 빼어 들고 나서며 좌중을 엄히 돌아보았다.

“다들 조용히 하라.”

황후가 다시 차분히 꾸짖고는 장창을 두 손을 쥐고 울먹이는 독고영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하였다.

“아가, 그 창을 내려놓고 이리 오너라.”

독고영이 겁에 질려 창을 내려놓고 황후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용서를 구하였다.

“마마, 살려주셔요. 온동 오라버니는 파산귀검을 훔쳐 배운 것이 아니에요. 온달님께 허락 받았어요.”

독고영은 온동이 파산귀검을 몰래 익혀 야단맞았던 일을 기억하여 황후에게 대신 용서를 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진과 독고선은 물론이요.

온동과 팽무성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래? 훔쳐 배운 것이 아니구나. 너는 이리 올라오너라.”

황후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독고영을 자신의 앞으로 불러 세우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너는 며칠 전 저 아이를 해동이라 하였는데, 오늘은 온동이라 하는구나. 어찌 된 일이냐?”

황후의 물음에 독고영은 답하지 못하고 울먹이었고 황후는 웃으며 달랬다.

“괜찮다. 내게만 들리게 말하렴. 아가.”

그제야 독고영이 황후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고, 독고황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팽무성과 독고선 일행이 이젠 죽었구나 생각할 때, 독고황후가 큰 소리로 좌중을 향해 말하였다.

“이들은 간자가 아닌 나를 구한 은인이다. 송현은 팽가장에 따라가 해동이란 저 아이에게 내가 약속했듯 황금을 전하거라.”

“송현, 명을 받사옵니다.”

“이후로 팽 장주와 이 아이 가족을 의심하는 일 없도록 모두 주의하라. 또한 고구려 원정을 준비하는 한왕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오늘 일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한왕은 살수를 추포하도록 하라.”

독고황후가 엄히 명을 내리고 일어서니, 한왕도 그 뒤를 따랐다.

송현은 온동에게 달려가 “마마께서 황금을 내어주시면 팽가장으로 갈 테니 기다리거라.”라고 말하며 환히 웃고는 급히 황후의 뒤를 따랐다.

연회장에 남은 이들도 연회가 끝났고 더 싸운들 이득 없음을 느끼며 각기 몸을 돌렸다.

“우리도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시지요.”

팽무성이 온동을 번쩍 안고 앞서 걸으니, 독고선도 독고영을 안고 뒤를 따랐다.

해진은 황보신유와 남궁민, 양지 등에게 허리 숙여 답례를 한 후 뒤따랐는데, 제갈여의 시선은 이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쫓다가 단목순에게 말하였다.

“한왕 전하를 함께 찾아뵙도록 하세.”

이 소리가 황보신유와 양지의 상처를 돌보던 남궁민의 귀에도 들렸는지 코웃음을 쳤다.

“누굴 또 모함하기 위해 가는구나. 시정잡배 같은 것들.”

* * *

한왕의 처소에 제갈여와 단목순이 자리하여 팽무성을 의심하는 주장을 폈다.

“황후 마마를 모신 연회에 살수들이 급습하였으니, 훗날 황제 폐하께서 책임을 묻는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제갈여가 먼저 운을 띄우니, 단목순이 거들었다.

“더구나 간자로 의심받는 자들과 팽무성이 함께하였으니, 이를 두고 보시면 안 되시옵니다.”

한왕도 의심이 생겼으나, 황후의 엄명을 거역하기 어려워 난색을 표하였다.

“황후께서 더는 말하지 말라 하셨으니, 나는 당진평과 언지창을 추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오. 그대들이 팽무성을 의심한다면 직접 밝히시구려.”

한왕의 이 말은 자신은 황후를 거역하기 어려우니, 너희가 알아서 팽무성의 죄를 물으란 뜻이 담겨 있었다.

영리한 제갈여가 한왕의 뜻을 헤아려 빙긋 웃으며 일어섰다.

“전하께선 살수들을 쫓으시고, 저희는 간자들을 추포하겠나이다.”

* * *

팽가장에 돌아온 팽무성은 자신의 처소로 들어가 급히 상처를 치료하였고, 독고선과 해진은 온동과 독고영을 데리고 별채로 향했다.

“영아, 황후가 뭐라하더냐?”

팽가장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독고선이 바로 물었는데, 독고영의 대답은 의외였다.

“온동 오라버니를 온달님이 일가로 받아주시고 해진님이 파산귀검을 직접 전수한 거라 훔쳐 배운 것 아니라 말씀드렸더니, 가만히 들으시다가 제 이름과 오라버니 이름을 물으셨어요.”

“뭐라? 그래서?”

“그래서 오라버니는 독고선이고 저는 독고영이라 했더니, 이제부터 다른 이가 묻거든 해선이와 해영이라 말하고 온동 오라버니도 해동이라 말하라 하셨어요.”

“뭐라?!”

독고선이 놀라 큰 소리를 내니, 해진이 얼른 주위를 둘러보며 독고영을 덥석 안아 서둘러 별채로 들어갔다.

“황후가 우리 정채를 아는 것이쥬?”

뒤따라 별채로 들어서는 온동의 물음에 독고선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는데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해진님, 서둘러 떠나야겠습니다. 준비하시지요.”

“금강대도는 어쩌시겠소?”

해진이 금강대도를 팽무성에게 전할 것인지 물으니, 독고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음으로는 팽 장주를 믿고 싶으나,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가 고구려의 적이 되면 온달님에게 큰 위협이 된다. 팽 장주, 나를 용서하지 마시오.’

독고선이 혼자 자책하면서도 고개 저어 금강대도를 전하지 않을 것을 해진에게 표하였다.

이에, 해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온동도 독고선의 판단이 옳다고 여겼다.

‘팽 장주님은 훌륭한 분이시지만, 무예도 훌륭해 온달님께 위협이 될 것이구먼. 이런 칼은 온달님이 사용하셔야 혀. 아무렴.’

이때 밖에서 팽무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상처를 치유하겠다 말하고 처소에 들어갔던 팽무성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들어오더니, 보따리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분명, 한왕 휘하 무림 고수들이 이곳을 공격할 것입니다. 제 안 사람과 아이는 사형들에게 부탁하여 조금 전 서둘러 이곳을 떠나 강동 장인 댁에 갔습니다. 송구하오나, 이곳은 이제 안전하지 않으니, 여러분도 떠나심이 좋겠습니다. 여기에 여비를 넣었습니다.”

팽무성이 처와 아이를 사형들에게 부탁해 피신시켰다는 소리에 독고선과 해진이 놀라 서로 마주 보았다.

“우리 때문에 팽가장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것은 받지 않고 팽 장주의 마음만 받습니다.”

해진이 보따리를 사양하며 말하니, 팽무성이 손을 내저으며 답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나서지 말 일에 나서서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잘 해결될 것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이곳에 머무시다가 속이 좁고 시기심 가득한 소인배들에게 해를 입을까 우려되어 피하시라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팽무성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팽무성의 진정을 느끼며 독고선도 더 머물겠다 말하지 못하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문밖에서 하인이 팽무성을 불렀다.

“장주님! 큰일 났습니다. 나와 보십시오!”

“뭔 일이오?”

팽무성이 방문을 열고 나와 보니, 늙은 하인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 크게 당황하였다.

“머리가 왜 그러오? 누가 그랬소?”

“채 부인께서 돌아오셨는데, 누가 길을 막았나 봅니다. 저는 장원 문을 지키다가 불량한 것들이 때려서 이리 됐습지요. 괜찮습니다.”

친정으로 팽가사협과 함께 떠났던 채 부인이 다시 돌아왔단 소리에 놀라 장원 문 앞으로 달려간 팽무성의 눈에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부인과 그녀를 가운데 두고 지키고 선 한대웅, 가림, 국서진, 소향 등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들의 앞에는 조피골이 하오문의 졸개들을 이끌고 히죽히죽 웃으며 서 있었다.

해진과 독고선도 팽무성을 돕기 위해 달려왔는데, 이들의 뒤로 온동이 독고영의 손을 꼭 쥐고 섰다.

“우리 하오문이 수집한 정보에는 저 빡빡 머리 노인이 고구려에서 꽤 신분이 높다 하던데 사실이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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