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29화 (129/328)

129화 팽가장의 비극 (8)

모두가 신선패에 중독되어 패에 통증과 흐트러진 내력에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팽무성은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의 심법으로 흐트러지는 내력을 쥐어짜며 연회장 중앙으로 날아들고는 부러진 상다리를 주워 들고 이를 검 삼아 쏟아지는 암기와 맞섰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팽무성의 외침에 단진평이 흠칫 놀라고 언지창이 주먹을 불끈 쥐니.

웅장한 내력이 실린 상다리가 검광을 만들어내며 독무와 독향까지 하늘로 날려버렸다.

최희와 선우천은 이미 독향에 중독되고 어깨와 팔 등에 암기가 꽂혀 언지창과 당진평을 대적하기 곤란해 보였다.

“스승님!”

꽃잎처럼 휘날리던 암기가 사라지자, 송현과 수련이 기진맥진한 최희를 부르며 달려오려 하니, 최희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차갑게 말하였다.

“멈춰라!”

독에 중독되었어도 기세만은 여전하였다.

“내 장법에 죽은 이가 수십여 명이다. 내가 여기서 죽는들 아쉬울 것 없다. 너희는 황후 마마와 한왕 전하를 지켜라.”

“아이고, 아쉬울 것 없다니 죽여 드리리다. 지금 아니면 백면수라를 언제 제압해 보겠소. 하하하.”

당진평이 최희를 비웃으며 소매를 털자, 두 자루의 단검이 날아 최희의 목을 노렸다.

최희가 몸을 휘청이며 쌍장을 날려보았으나 내력이 실리지 않아 오히려 위급해졌다.

또 한 번 팽무성이 몸을 날려 최희의 앞에 서더니, 손을 뻗어 기를 펼치자 단검이 허공에 멈춘 듯 두둥실 뜨고는 팽그르 한바퀴 돌아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독에 중독된 상태에서도 내력을 마음대로 펼치는 팽무성의 무용에 단진평이 놀라 외쳐 물었다.

“팽 장주, 술 안 드신 게요?”

“잘 마셨소.”

“그런데 어찌 중독되지 않은 것이오?”

“내가 몇 번을 말하였소? 중독되었다 하지 않았소!”

팽무성이 답답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니, 단진평도 할 말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천하의 제일은 하북 팽가라 하더니, 허언은 아니었구려. 나 언지창 그대에게 실로 감탄하였소. 전력으로 상대할 터이니, 어디 검을 들어 맞서 보시구려.”

언지창이 적수공권으로 뚜벅뚜벅 걸어 팽무성의 앞에 서니, 당당한 체격이 팽무성 못지않았다.

“장주의 신물을 잃어 찾을 때까지 우리 팽가장 인물들은 도검을 들지 않소이다. 이 부러진 상다리만으로도 그대를 대적할 수 있으니, 어디 진주언가권(晋州彦家拳) 좀 구경해 봅시다.”

코앞까지 다가온 언지창에게 팽무성이 이렇듯 말하며 상다리를 검처럼 휘둘러 검광을 만들고는 힘껏 언지창의 목을 후려쳤다.

근접한 거리에서 신속히 펼쳐진 공격에 언지창은 피하지도 않고 몸을 뻣뻣이 한 채로 목을 내어주었다.

그리고는, 상다리가 목뼈를 분지를 정도로 후려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강시권?”

팽무성이 놀라 물으니, 언지창이 한 발 더 다가와 답하였다.

“보고 싶다던 진주언가권이요. 세인들은 이를 강시권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어떻소? 부러진 상다리로 대적할 수 있으시오?”

진주언가의 언가권은 손발은 물론이요.

전신을 강시처럼 뻣뻣이 만들고 도검도 베지 못할 정도로 단단히 수련하기에, 관절이 잘 구부러지지 않아 시체와도 같다 하여 강시권이라 불렸다.

고통도 모르고 무엇으로도 밸 수 없는 이 단단한 신체를 이용한 권법은 그 어느 철퇴보다도 강력한 절정의 강권이었다.

언지창이 관절을 쭉 편 상태로 팔을 휘두르자, 턱을 맞은 팽무성이 두어 장 날아가 쓰러졌다.

“팽 장주, 같은 하북에 지내면서도 언가와 팽가가 다툼을 벌이지 않고 누가 제일인지 겨루지 않은 이유를 아시오?”

다리 관절을 쭉 편 채로 바닥을 쿵쿵 뛰어 다가선 언지창이 물었다.

자신보다 곱절은 어린 팽무성을 놀리 듯 언지창이 내려다보며 물으니, 팽무성이 퉁퉁 부은 턱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나이드니, 하북에서 언가장이 사라져 모르겠소이다.”

팽무성의 조롱에도 언지창은 담담했다.

“팽가장의 금강대도가 무서워 우리 언가장이 시비를 걸지 않은 것이오. 그 칼에는 강시권도 당할 재주가 없었으니 말이오. 이제 그 칼은 없는 것이오?”

마저 몸을 일으킨 팽무성이 상다리를 던져 버리고는 답했다.

“없소. 도둑맞았소.”

“잘 되었구려. 그럼 고생 좀 하시오!”

언지창이 팽무성을 비웃으며 또다시 팔을 휘두르니, 팽무성도 피하지 않고 장법을 펼쳐 맞섰다.

“혼원벽력장(混元霹靂掌)!”

팽무성이 크게 외치며 장법을 펼쳤으나, 언지창이 휘두른 팔에 맞아 또다시 나뒹굴었다.

“아직도 내력을 사용할 수 있다니 대단하오. 허나 금강대도가 없으면 나를 대적할 수 없다오.”

언지창이 다가오니 또다시 팽무성이 몸을 일으키고는 이번엔 권법으로 맞섰다.

“금강대도가 없어도 이 주먹으로 두드려 부셔버리겠소. 파갑추(破甲錘)!”

팽무성의 외침과 함께 그의 주먹이 언지창이 휘두른 팔을 후려치자, 언지창의 팔 관절에서 우드득 소리가 크게 일었다.

“그런 주먹에 내 몸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오.”

언지창이 차갑게 말하며 재차 팔을 휘두르려 하는데 팽무성의 주먹에 맞은 팔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과 달리 몸은 아픈가 봅니다. 파갑추(破甲錘)!”

팽무성이 언지창을 비웃으며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언지창이 휘두르던 팔이 또다시 멈추고 팽무성의 주먹에 연타 당한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이… 괴물 같은 놈이…….”

허공에 떠오른 언지창을 팽무성의 주먹이 계속 쫓으며 강타하니 마침내 언지창의 입에서도 선혈이 토해졌다.

이때 당진평이 몸을 날려 언지창을 돕기 위해 두 손을 펼치니, 붉은 손바닥에서 독기가 쏟아졌다.

“적련신장(赤练神掌)!”

당진평의 외침과 함께 팽무성이 적련신장에 가슴을 얻어맞아 선혈을 쏟으며 휘청였는데, 그의 가슴에 붉은 손바닥 모양이 찍혀 있었다.

“추혼연미표(追魂燕尾標)!”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당진평이 소매를 흔들어 암기를 쏘아 보내니, 팽무성을 향해 수십 개의 암기가 날아들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팽무성이 혼원보의 보법을 펼치며 암기를 피하고는 당진평에게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바짝 붙어 주먹을 날렸다.

“파갑추(破甲錘)!”

팽무성이 날린 주먹에 당진평의 몸이 날아가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용맹하면서도 당당한 팽무성의 모습에 온동의 심장도 격렬히 뛰며 자신도 모르게 주변에 떨어진 상다리를 주워 들었다.

당진평과 언지창이 팽무성에게 호되게 당하였으나, 아직 그의 수하들이 남은 상태라 자신보다 어린 독고영을 지키고자 한 행동이었다.

“영아, 내 뒤에 꼭 붙어 있어야 혀!”

향로 주위로 당진평과 언지창의 수하들이 슬금슬금 모이며 팽무성의 눈치를 보는데, 이틈에 바닥에 쓰러졌던 당진평이 일어나며 소매를 털었다.

“추혼연미표(追魂燕尾標)!”

십여 개의 조그만 암기들이 사방으로 날리다가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한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드니 최희가 놀라 부르짖었다.

“황후 마마!”

암기들은 모두 단상으로 향하여 황후를 노렸다.

“파산귀검!”

이때 온동이 백두검법의 보법을 밟으며 파산귀검을 펼치니.

상다리에서 검기가 일며 바닥이 패이고 흙과 돌조각이 날리며 당진평이 쏘아 보낸 암기들을 검풍으로 감싸고는 날려 버렸다.

단상 위의 황후와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절망하던 송현, 연회장 안의 쟁쟁한 무림 고수들과 암기를 쏜 당진평은 이 광경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낙랑 사냥 대회 전에 온동의 재주를 보았던 팽무성은 빙그레 웃으며 엄지를 치켜 들었다.

“역시! 소영웅이오. 하하하. 천하의 사천당문의 당진평님도 우리 소영웅에겐 안 되는구려. 하하하.”

어느덧 팽무성의 웃음에 내력이 점점 더 실리며 사자후처럼 연회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에, 당진평과 언지창은 급히 몸을 일으켜 수하들과 연회장을 빠져 나갔다.

“팽 장주! 다음에 봅시다!”

당진평의 외침이 점점 멀어지자, 그제야 팽무성도 자리에 주저앉으며 붉은 선혈을 한 움큼 토하였다.

“팽 장주!”

독고선과 해진이 급히 달려가고 온동도 독고영을 안고 팽무성에게 달려갔다.

독고황후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수련에게 해독약을 구하라 명하였다.

“처소에 가서 만독해약을 가져오너라. 군사들은 부르지 말고 조용히 다녀오너라.”

수련이 급히 처소에서 해독약을 가져와 독고황후와 한왕을 치유하니, 독고황후는 팽무성과 최희를 비롯한 무림 고수들에게도 해독약을 건네라 명하였다.

“팽 장주 덕에 위기를 넘겼소. 그리고 저 조그만 아이 또한 용감히 나를 구하였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않겠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사례로 들어줄 터이니, 편히 말하시구려.”

황후가 고마운 마음을 표하니, 팽무성이 일어나 읍하며 사양하였다.

“사례라니요. 당치 않사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이 소영웅에게 사례하여 주시옵소서.”

팽무성의 말에 황후가 웃으며 온동에게 물었다.

“아가, 네 무용이 대단하더구나. 너는 사양하지 않고 내 고마운 마음을 받아주겠느냐?”

비록 온동이 어리지만, 팽무성과 달리 계산이 빨라 사양하지 않았다.

‘어차피 고구려와 수나라는 원수가 될 것이여. 내가 수 황후에게 돈이나 확 뜯어 고구려로 가져가 싸울 칼 한 자루라도 더 만들면 이득이잖여. 사양할 일 없구먼.’

이런 생각으로 온동이 넙죽 엎드려 답하였다.

“제 고향에 험한 도적놈들이 쳐 들어온다 들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칼도 사 주고 말도 사줘 도적놈들과 맞서게 하고 싶사오니, 황금을 많이 내려 주시옵소서.”

온동의 이 소리에 팽무성이 허탈해 웃고, 독고선과 해진도 깜짝 놀라며 내심 기특히 여겼다.

온동의 속내도 모르고 독고황후가 껄껄 웃으며 송현에게 명하였다.

“아이들이 팽가장에 머물고 있다지? 송현 네가 황금을 실어 전해주거라.”

이때 제갈여가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모으고 읍하더니, 황후에게 아뢰었다.

“소인 제갈여라 하옵니다. 황후 마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저 아이가 조금 전 펼친 초식은 고구려의 온달이 배찰산에서 사발략가한의 대군을 상대로 펼친 파산귀검이옵고, 보법 또한 고구려의 조의선인들이 수련하는 백두검법의 보법이옵니다.”

“뭐라?”

“어린아이가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런 신묘한 무공을 펼칠 수는 없사오니, 고구려의 장수 온달과 관계가 어찌 되는지 하문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나이다.”

세상 모든 무예에 관심이 많고 눈썰미가 좋은 재걸여가 이렇듯 온동의 정체를 의심하여 말하였다.

이에, 단목순도 앞으로 나오며 팽무성을 가리켜 말하였다.

“팽 장주께서 홀로 살수들과 맞서심은 경탄할 만한 재주이며 감읍할 일입니다. 허나, 모두가 중독된 상태에서 팽 장주만 멀쩡한 것은 조금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

“현명하신 황후 마마께선 독과 암기에 능한 사천당문의 당진평이 어찌하여 극독을 사용해 이곳 모두를 죽이지 않고 내력만 없애는 신선패를 사용하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는지 살피시리라 믿사옵니다.”

“음…….”

“분명 이 모든 일엔 팽 장주가 해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니, 고구려의 온달과 관련 있을 저 아이와 함께 문초하여 흉수들을 색출하소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황보신유가 커다란 주먹으로 제 가슴을 탕탕 치며 앞으로 나와 황후에게 고하였다.

“팽 장주와 저 아이가 기껏 목숨 걸고 구하니, 이제 저들을 의심하는 것은 바르지 않사옵니다. 제갈 공자와 단목 공자는 팽 장주의 무예를 질시하여 해치려는 수작이니, 마마께선 저들의 말을 믿지 마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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