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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121화 (121/328)

121화 온달, 또다시 적봉진으로 향하다. (2)

을지문덕이 연태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으며 물었다.

“막리지께선 세상 모든 일 모르시는 것 없어 좋으시겠습니다.”

오부 귀족은 물론이요.

대형 이상 관리들에게 사람을 붙여 정보를 취한다고 연태조 스스로 말한 것을 빗대어 을지문덕이 농을 걸었으나, 연태조는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답하였다.

“그대만큼은 아닐지라도 짐작하는 것들은 상당하오. 오늘은 그것을 자랑하러 온 것은 아니니 따로 말합시다.”

연태조가 애써 답을 회피하는 것 같지 않아 을지문덕도 더는 묻지 않았다.

“합하께서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온달이 자신을 찾은 연유를 물으나, 연태조가 을지문덕에게 잠시 시선을 두다가 말하였다.

“그대와 총관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청이오.”

“말씀해 보십시오. 저는 지닌 것이 보잘것없어 듣고도 따르지 못할 수 있으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을지문덕이 청을 듣고도 따르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 말하였으나, 연태조의 표정은 변화가 있었다.

“대장군과 총관은 영주가 아닌 임유관을 공략하실 계획이고 이미 태왕께 허락을 득하였을 것이오.”

연태조의 이 말에 을지문덕이 놀라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찬 칼에 손을 대었다.

임유관은 영주보다 더 남서쪽으로 관동 최대의 요충지였다.

수의 대군이 탁현을 출발하여 영주로 향하는 길은 여러 곳이 있겠으나, 바다와 인접해 수군의 지원마저 기대할 수 있는 임유관만큼 최적지도 없었다.

이 임유관은 훗날 산해관(山海關)으로 불리게 된다.

만리장성 동단 최초 관문인 이 임유관을 기준으로 관동이 세워지고, 중원으로 들어설 수 있어 천하제일관이라 불리고 있었다.

실상 강이식이 요동성에 마련한 대장군 관저에 깃발마저 세우고 요서의 영주를 공략할 듯하고 있었으나, 이는 적을 속이기 위한 술책으로 강이식의 정병이 목표로 한 곳은 바로 이 임유관이었다.

그리고, 만리장성 너머까지도 공략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보통은 이럴 때, 정보가 적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목을 베어 후환을 없앤다 하던데, 막리지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을지문덕이 또다시 농담 같지 않은 농을 걸자, 연태조가 껄껄껄 웃으며 호탕히 답하였다.

“낙랑 대회 우승자 두 사람이 나를 없애겠다 마음먹으면 감히 누가 막을 수 있겠소? 하하하.”

을지문덕 역시 온달과 마찬가지로 낙랑 대회 우승자로 그 무예가 지략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

연태조가 죽음도 각오하고 이토록 말하니, 을지문덕이 난감하다는 듯 수염을 매만지며 말하였다.

“마저 말씀하시지요.”

“내 청은 다름이 아니오. 대장군은 영주를 지나 임유관을 공략할 것이니, 영주 공략은 내가 맡고 싶소.”

“막리지께서 직접 군을 이끌고 영주를 공략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위험을 어찌 자초하시려고? 더구나 막리지께서 움직이면 수의 간자들이 쉽게 눈치챌 것인데.”

을지문덕의 지적을 예상하였을 연태조의 답은 명확하였다.

“수는 지금 군을 모으고 출병 준비 중이오. 또한 태왕 폐하께서 이미 전쟁을 불사하겠노라 회신하신 바, 우리 고구려의 조정을 요동성에 전시 조정으로 마련하여 주시오. 그리한다면 내가 요하를 건너 영주를 공략함을 수의 간자가 눈치챌 겨를도 없을 것이오.”

이미 태왕과 요동성에 전시 조정 구축을 상의했던 을지문덕이었기에, 적지 않게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평양성을 비워도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온달이 당황해 물으니, 연태조가 을지문덕을 응시하며 물었다.

“폐하께서 이복동생인 건무 저하를 태자로 책봉하고자 함을 알고 있소이다. 건무 저하가 태자가 되어 평양성을 지키신다면 요동성 전시 조정은 아무런 문제도 없소이다.”

태자 책봉을 언급한 연태조의 이 발언 역시 역심을 품었다 의심받을 지극히 위험한 언사였으나, 을지문덕과 태왕이 이미 논의한 바이었기에, 일견 타당한 의견이었다.

“도대체 막리지의 눈은 어디까지 심어진 것이옵니까?”

“그저 나의 판단일 뿐이오. 궐에는 없소이다.”

연태조의 대답을 믿지 않았으나, 을지문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합하께서 위험을 자초하며 영주 공략 선봉에 설 정도로 중요한 청이 무엇이십니까?”

“위장군이 내 아들을 적봉진에 데려가 주시기 바라오. 그리고 이 전쟁이 우리 고구려의 승리로 종결되면 총관과 위장군이 하북 팽가장 장주에게 내 아들을 보살펴 달라 부탁하여 주시오. 이것뿐이오.”

* * *

이날 밤 태왕은 남몰래 다시 찾아온 오랜 벗 을지문덕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 자리에는 선대 태왕을 모셨던 단공만이 곁을 지켰다.

을지문덕이 전한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태왕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유쾌히 말하였다.

“만리장성 너머로 우리 고구려의 개마무사가 진격하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어찌 이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막리지가 우리 뜻을 이미 헤아려 앞장서겠다니 들어주시게나. 고작 아들 하나 잘 키우겠다는 것 아닌가?”

대수롭지 않은 듯 태왕이 이처럼 말함은 연태조의 아들 개소문이 고작 열 살을 갓 지났기에,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오면, 뜻을 받들겠나이다.”

태왕이 흡족해 웃으며 관심사를 바꾸었다.

“온달 아우의 몸은 많이 호전되었는가?”

“적봉진으로 향할 만해 보였습니다만, 중상이 재발하여 입궐하지 못하니, 이를 폐하께서 애처로이 여기시어 신성으로 휴양을 떠나도록 하명하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게 좋겠구려.”

온달이 오부 귀족 몰래 적봉진으로 향할 수 있도록 을지문덕이 안을 낸 것이다.

“총관은 이 모든 일이 잘 진행되도록 각별히 신경 쓰시오.”

대국을 상대로 먼저 공격을 진행함은 일국의 흥망성쇠를 거는 일이기에 태왕이 당부하니, 을지문덕이 머리 숙여 다짐하며 나지막이 아뢰었다.

“소신 목숨을 바쳐 양견에게 우리 대고구려의 위엄을 보이겠나이다. 하온데, 폐하. 막리지를 믿으시옵니까?”

오부 귀족 대부분이 연 씨 일족을 두려워하는데도 태왕이 연태조를 신임하기에 을지문덕이 물은 것이다.

“외부의 적과 일전을 겨룸에 그 어떤 오부 귀족보다 연태조 그자가 나와 마음이 잘 맞으니, 어찌 신임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는 내가 오랜 벗 대장군과 총관을 믿는 마음과 다를 바 없소.”

* * *

고구려와 수의 일전이 다가온 이때 독고선 남매와 해진, 온달은 임유관을 넘어 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수와 이리 큰 전쟁을 벌일 것이라 생각도 못 하고 사지로 보냈으니, 어쩌면 좋소.”

온달이 금강대도를 전하러 탁현으로 향한 일행을 염려해 말하니, 평강이 애써 웃으며 다독였다.

“모두가 비범하니, 별일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막리지와 을지 공이 오셨던데, 그 일은 어찌 되셨습니까?”

평강의 물음에 온달이 숨김없이 말하였다.

“주위 몰래 적봉진으로 다시 가야 할 것 같소. 아마도 막바우와 경우도 안시성을 거쳐 적봉진으로 올 듯하고, 나는 신성으로 하여 갈 듯하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밀임에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평강에게 솔직히 말하니, 온달은 자신이 무척 입이 가볍구나 생각하며 허허 웃었다.

“장군, 어찌 웃으십니까?”

“아니올시다. 헌데, 내가 적봉진에 막리지의 열 살 된 아들을 데려가야 하는구려. 게다가 그 아이를 돌볼 하인들도 데려가야 하고, 지키고 보살필 자들도 데려가야 하는구려.”

“아이도 가는 적봉진, 저도 따르겠습니다. 아이보다 제가 더 전장에 도움 되실 것이옵니다.”

아이와 비교 시 자신이 낫다는 평강의 말이야 옳지만, 사실 전장엔 아이와 평강 둘 다 데리고 가고 싶지 않은 온달이었다.

* * *

“대장군, 여쭙기 어려운 것은 아나, 수는 언제 출병할 듯합니까?”

물자 보급에 어려움은 없는지 살피던 요동성 성주 고무가 대장군 강이식의 관저를 찾아와 어렵게 물었다.

을지문덕의 명을 받은 첩자들이 장안과 낙양 및 탁현과 영주 등에서 수집한 정보는 기밀 사항이라 고무도 알 수 없기에, 수의 출병 시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게 뭐가 어렵습니까? 지금은 가을이니 내년 봄에 대군을 움직이겠지요. 누구나 예측할 당연한 일이라 숨길 것도 없으니, 편히 생각하십시오.”

강이식이 오히려 고무의 마음을 편히 안심시켰다.

“고맙소. 그래도 기밀일 것인데, 그럼 혹시 대장군은 수의 출병 시기에 맞춰 영주를 공략하실 것이오?”

고구려의 영주 공략 시기는 결코 수에게 넘어가면 안 될 기밀임이 분명한데도 강이식은 여전히 머뭇거림 없이 답해주었다.

“나는 겨울이 오면 바로 영주를 공격할 것입니다. 한참 군을 훈련 중이니, 성주께서도 느끼셨지요?”

“실은 나도 느끼고 있었기에 묻는 것이었소. 수는 봄이 되어야 대군을 움직일 터인데, 어찌 영주 공략을 서두르시오? 더구나 태왕께서 요동 서부총관부에 정병을 더 충원하셨음에도 어찌 말갈 일만에 개마무사 오만만 이끌고 영주를 공략하시려는 것이오?”

“영주 공략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폐하께서 총관부의 정병 수를 더 늘림은 후일을 대비하신 듯하나, 나는 그 큰 뜻을 모두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서부총관 을지문덕이 돌아올 터이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강이식이 딱 잘라 답하니, 고무로선 더 묻기 어려웠다.

* * *

요양을 떠난다는 명분으로 태왕의 사냥터인 신성에 도착한 온달이 다시 적봉진으로 향할 무렵.

금강대도를 전하기 위해 평양성을 출발한 독고선 일행은 마침내 하북 탁현에 도착하였다.

“팽가장이 어디쯤에 있는지 아시오?”

객잔에 짐을 풀고는 음식을 시키며 독고선이 팽가장 위치를 점소이에게 물었다.

점소이가 팽가장 위치를 가르쳐 주고는 불안한 표정으로 소리 죽여 말을 남겼다.

“탁현에서 팽가장 위치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큰길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커다란 장원이 나오는데, 그곳이 팽가장입니다. 그곳에 볼일 있으십니까? 요즘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조심하십시오.”

“무엇을 조심하란 말이오?”

독고선이 궁금해 물으니, 점소이가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급히 얼버무렸다.

“아무튼 찾는 이가 많으니 조심할 것도 많겠지요. 저는 바빠서 이만 갑니다.”

점소이의 태도가 마음에 걸린 독고선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팽가장을 찾는 이가 많다더니, 이 객잔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군요.”

“임해관을 지나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늘더니, 이 탁현은 사람도 많고, 그 사람보다 군사들이 더 많고, 오래도록 무예를 익힌 고수들도 많군요. 오는 길에 수와 고구려가 큰 전쟁을 치를 것이라 사람들이 말하더만, 이곳에 오니 그 말을 제대로 실감하게 됩니다.”

해진도 이미 느꼈는지, 찻잔에 시선을 두고 독고선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팽가장의 위치가 그리 멀지 않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고 내일 아침 일찍 향하도록 하시지요.”

수와 고구려가 전쟁을 벌인다면 이 탁현에 오래 머물기 어렵다 생각한 독고선이 곧 어둠이 내림을 의식해 아침 일찍 팽가장으로 향하자 말한 것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쯤엔 객잔 안의 탁자가 꽉 차, 더는 손님을 받기 어려울 정도였다.

문밖의 풍경도 사람들로 붐비었는데 대부분이 군사들이며, 수의 군사가 아님에도 검과 창 등의 병장기를 지닌 사내들이 종종 보였다.

해진이 ‘오래도록 무예를 수련한 고수’라 지칭할 정도의 무공의 깊이를 지닌 인물들이 탁현에 널리고 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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