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98화 (98/328)

098화 영주 공방전 (5)

전장에선 정보가 가장 중요한 법.

건무가 이끈 카사르의 부족 전사 일만도 돌지린의 이만 기병이 요하를 넘는 시점을 노리고 급습해 필승지세였다.

“어이하여 저들이 고구려의 편에 서서 우리를 공격하는가…….”

돌지린이 허망하게 요하를 넘지도 못하고 화살에 고꾸라지는 자신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장탄식했다.

그때, 건무는 물론이요.

돌지린조차 예상하지 못한 돌궐의 대군이 전혀 뜻밖의 방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기적절하게 이계찰이 군을 이끌고 빙 돌아 급히 요하를 건너고는 건무의 배후를 공격해 온 것이다.

“저놈들을 쓸어버려라!”

돌궐 기병들이 창과 곡도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기세가 너무도 맹렬하였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적이 밀려오니 건무가 당황하여 퇴각 명령을 내리며 패주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건무의 머릿속엔 이대로 올루스까지 물러날 경우 미처 대비치 못한 카사르와 평강이 큰 피해를 입고, 올루스의 카사르 부족민들이 처참히 죽임을 당하리라 생각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전을 준비하였다.

“이대로 물러나지 말고 말을 돌려 반격하라!”

건무의 명에 패주하던 기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맞서 싸웠으나, 돌궐 기병에 비하여 카사르의 부족 전사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터라 이내 곧 다시 패주하였다.

‘나 혼자라도 저놈들의 진격을 일시 멈추어 방비할 시간을 마련해야겠구나.’

건무가 이런 결심을 하며 홀로 창을 꼬나쥐고 돌궐군을 향해 내달리니, 우랑이 말을 몰아오며 외쳤다.

“저하! 아니 되옵니다. 소신이 막겠나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밀어닥치는 돌궐 기병들에 의해 우랑의 이 외침도 허무히 건무와 우랑은 삽시간에 사위를 포위당했다.

건무가 창으로 이리 치고 저리 찌르며 분전하느라 어느덧 창이 부러져 칼을 빼어 들고 또다시 적을 베었다.

그러나 칼마저 부러지니 우랑이 건무의 앞을 막고 적을 대적하다가 어깨와 가슴, 팔이 창에 찔려 피로 전신을 물들여야 했다.

건무는 우랑의 이 노력으로 간신히 몸을 빼내었으나, 우랑만 남겨둘 수 없어 다시 말을 돌리려 했다.

그때였다.

앞에서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더니 곧장 쭉 뻗어 돌궐군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이어서 화살이 지난 허공에서 매의 울음이 날카롭게 일었다.

쐐애액—

일천 보 밖에서 날아든 온달의 효시였다.

“오, 온달… 온달. 우랑! 온달의 효시다! 온달이 왔다!”

건무의 이 외침에 우랑도 힘을 내어 적을 뿌리치고 건무와 함께 내달렸다.

멀리 흙먼지가 이는 곳에서 화살 수천 발이 일시에 하늘 위로 솟아오르고는 다시 방향을 틀어 땅으로 쏟아지면서 돌궐 기병들의 머리와 어깨에 박혔다.

“저하! 온달이 왔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사실을 천지가 떠나갈 듯 외치는 온달이었다..

그는 누렁이를 몰아 선두에서 달려오더니, 그 외침이 무색하게 건무와 우랑을 그대로 지나쳐 돌궐 기병 속으로 쑥 들어갔다.

이틀을 쉬지 않고 달려와 지쳤을 텐데도 온달의 돌진엔 머뭇거림이 없었다.

온달이 뚫고 들어간 곳에서 운철 대검이 시커먼 그림자를 이곳저곳에 만들며 돌궐 기병들을 말과 함께 날려 보냈다.

연이어 독고선과 막바우가 개마무사 일천을 이끌고 돌진하며, 좌측에선 해진과 경우가 경기병들을 끌고, 우측에선 호타크가 쇼락과 함께 부족 전사들을 이끌며 호응하니,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지세였다.

“아뿔싸! 적이 우리를 유인했구나!”

조심성 많은 이계찰이 급히 회군 명령을 내려 뿔 나팔이 사방에서 울리고 도주하는데, 이미 돌궐군 깊숙이 들어온 온달이 함께 달리며 운철 대검을 휘두르니 백부장 넷이 그의 기세를 꺾기 위해 말을 몰아 일시에 덤벼들었다.

온달은 적들이 떼로 달려들어도 두려운 기색 없이 가장 먼저 달려온 백부장이 휘두른 곡도를 피하며 왼손으로 곡도를 빼앗아 뒤따라오는 백부장에게 비검술을 발휘해 날리고는 또다시 옆에서 덤비는 백부장의 창을 빼앗아 다른 백부장을 향해 날렸다.

온달이 날린 곡도와 창은 여지없이 백부장들의 목과 입을 꿰뚫고 들어가 절명시켰고, 무기를 빼앗긴 백부장들은 운철 대검에 맞아 말과 함께 널브러졌다.

짧은 순간 백부장 넷을 물리치고 더욱 속도를 높여 달리니, 천부장 한 명이 창을 쥐고 달려오며 돌지린도 몸을 돌려 화살을 날리는데.

온달은 먼저 날아온 화살을 가볍게 낚아채고는 곧바로 다가오는 천부장을 향해 비검술을 발휘하여 화살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화살이 빠르게 날아 천부장을 쓰러트리니, 주위의 돌궐군은 온달의 재주가 너무도 신묘하고 놀라워 감히 온달을 향해 달려들 엄두도 못 내고 사방으로 퍼져 도망치기 바빴다.

온달이 이렇듯 돌궐군 속을 종횡무진하며 운철 대검으로 적을 후려치고 날리며 뒤를 쫓으니, 기세 오른 고구려 군과 커레이트 전사들도 바짝 쫓으며 공격을 쉬지 않았다.

“이놈의 요하! 도대체 넘나들 때마다 피해가 얼마란 말인가?”

요하를 넘으면서 입은 피해가 상당하여 겨우 고구려 군을 떼어 놓고도 허망하기 그지없는 이계찰이 중얼거렸다.

“장군, 그 시커먼 검을 휘두르는 고구려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이오? 야차보다 더한 놈 아니오?”

돌지린이 이계찰의 곁으로 말을 몰아오며 물으니, 이계찰의 생각에도 야차 같은 강이식보다 시커먼 검을 휘두르던 장수의 용맹이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퇴각 판단이 늦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를 사발략가한이 인정해 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허허, 이런. 아무래도 가한께 고하여 요하 앞으로 진을 옮겨야겠구려.”

“배수진입니까?”

돌지린이 놀라 되물으니, 이계찰이 고개를 저으며 답하였다.

“아니오. 진을 갖추어 요하를 넘어 퇴각하고자 함이오. 이 전쟁은 이제 얼마나 병력을 보전하여 요하를 넘은 후, 영주를 탈환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오.”

* * *

식량은커녕 군사만 잃고 돌아온 돌지린과 이계찰을 보며 사발략가한이 할 말 없어 한숨만 쉬니, 유역비가 나서며 아뢰었다.

“가한 이대로는 우리가 아파가한을 기다릴 수 없으며 철륵에서의 보급 또한 영주를 놈들이 포위한 터라 장담키 어렵습니다. 속히 군을 몰아 영주를 구하고 보급로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이에 이계찰이 나서며 말하였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고구려 군이 공격해 올 것이니, 전군이 진을 갖추어 천천히 요하 앞으로 이동한 후, 부대 단위로 도하해야 하옵니다.”

두 사람의 진언에 사발략가한과 우문도웅이 장탄식하며 서로 마주 보았다.

“요동을 취하러와 요하만 계속 넘나드는구나.”

“가한, 잠시 분을 참고 이 원수 놈의 고구려 땅을 반드시 불태워 버립시다.”

* * *

돌궐군은 요동에 진을 친 고구려군의 급습이 두려워 천천히 진영을 갖춘 채 요하로 이동하니,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식량은 이미 바닥이 났고, 수차례 전투로 화살도 남지 않아 원거리 공격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몇 끼니 굶은 군사들의 사기 또한 바닥에 떨어졌으니, 어찌 보면 더딘 것이 당연하였다.

그나마 이계찰이 군을 독려하며 고구려군의 급습을 방비한 덕에, 말을 달리면 반나절에 당도할 거리를 이틀 만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힘겹게 도착한 요하엔 넓은 강 건너 언덕 위에 포차 이백여 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돌궐군이 도착하자마자 진을 펼칠 시간도 주지 않고 불붙은 나무 기둥부터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엇이냐?”

불붙어 넘어오는 나무 기둥이야 피하면 그만인데도 고구려군의 이 도발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사발략가한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여 천천히 부대 단위로 도하를 시도하려던 계획은 깡그리 무시된 채 총공격 명령이 내려졌다.

“저 시건방진 포차들을 당장 뭉개 버려라! 전군 도하를 시작한다!”

“가한! 적은 그저 포차들뿐입니다. 저 포차를 돌아 도하를 시도해야 합니다.”

이계찰이 아무리 만류하여도 사발략가한의 공격 명령은 변함없었다.

“닥쳐라! 이 정도 참았으면 많이 참았다. 너는 당장 군을 이끌고 강을 넘어 저 포차들을 뭉개거라!”

사발략가한의 엄명에 별수 없이 이계찰도 군을 이끌고 도하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요하 건너 언덕 위에서 온달이 누렁이에 올라 나타나더니 철궁에 효시를 먹여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쐐애액—

효시가 매의 울음을 요동벌에 울리며 날자, 멀리서 이에 호응하는 북소리가 일더니, 봄 햇살에 요동벌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온달의 효시에 요동의 고구려 군이 호응하여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개마무사를 선두로 기병들이 내달리고 뒤이어 중장보병과 창병, 노궁수들도 진격을 하였다.

태왕도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 친히 군을 독려하였고, 그 곁에 연태조와 을지문덕이 나란히 말을 몰며 따랐다.

대장군 강이식은 중군을 지휘하며 천천히 군을 이끌었는데, 강을 등지고 고구려 군을 맞아 싸우기엔 너무도 굶주린 북주와 돌궐군의 사기는 현저히 부족하였다.

“맞서지 말고 일단 강을 건너라! 요하를 건너 싸워야 한다!”

사발략가한도 이 순간만큼은 침착함을 되찾아 엄히 명을 내리니, 전군이 강으로 말을 몰아 내달렸다.

이때 언덕 위에 온달을 따라 독고선과 막바우가 개마무사를 이끌고, 해진과 경우가 경기병을, 호타크와 쇼락이 커레이트 전사들을 이끌고 나타나 진영을 넓게 펼치며 화살을 날렸다.

“강 건너 적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몰아붙여 돌파하라!”

사발략가한이 무찔러 궤멸시키란 명령 대신 돌파하라 명을 내렸다.

그러나 퍼붓는 화살에 잔뜩 기죽은 돌궐과 북주 연합군은 언덕 위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급급해 옆으로 흩어져 요하를 건너기 바빴다.

그 순간에도 요동에서 밀려오는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일으키는 흙먼지가 거대한 황사보다 더 높이 솟으며 바람처럼 덮쳐 오니, 북주와 돌궐 연합군은 오직 이 죽음의 모래바람을 피해 도망치고자 무작정 강을 건넌 것이다.

진영도 갖추지 못한 북주와 돌궐 기병이 요하를 넘어오니, 고구려와 커레이트 전사들은 제자리에 서서 화살을 날리며 사냥을 즐겼고.

간신히 강을 건넌 사발략가한이 또다시 명을 내려 영주로 퇴각하라 외치자, 북주와 돌궐 기병은 그제야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영주로 말을 몰아갔다.

온달은 패주하는 적의 뒤를 쫓았는데, 이는 마치 사냥터로 노루를 몰아가는 노련한 사냥꾼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사발략가한이 영주에 다가서고 보니, 영주 성벽에는 삼족오 깃발이 나부꼈고, 건무와 카사르가 기병을 끌고 달려오며 일제사격을 해 왔다.

이에 사발략가한이 맞서고자 결심하여 돌격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빠르게 뒤쫓아 온 온달이 군을 이끌고 배후를 공격하니, 도저히 감당할 재간이 없어 퇴각 명령을 내려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퇴각 명령을 내렸음에도 어디까지 물러나야 할 지 몰라 사발략가한이 탄식을 하니, 유역비가 재빨리 나서며 말하였다.

“가한! 갈석산과 배찰산 인근에 우리가 먼저 진을 치면 저들도 감히 쉽게 덤비지 못할 것이며, 유림관 근방에서 철륵의 보급부대와 아파가한의 이십오만 대군을 기다려 오늘의 이 수모를 반드시 설욕하십시오.”

오지도 않는 보급부대와 아파가한의 이십오만 대군만 믿고 사발략가한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목적지를 배찰산으로 정해 퇴각 명령을 내리니, 북주와 돌궐 기병은 살고자 정신없이 내달렸다.

이 뒤를 온달이 건무와 군을 합쳐 천천히 뒤를 쫓았고, 요하를 넘어 요서에 들어온 평원 태왕은 북주와 돌궐군이 영주에서조차 물러났음에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이미 적은 영주를 벗어난 듯한데, 어찌된 일인가?”

이 물음에 총명한 연태조가 상황을 짐작하여 아뢰었다.

“신이 사료컨대, 건무 저하와 온달이 이곳에서 적을 물리쳐 내몬 듯하옵니다.”

이 말에 을지문덕과 강이식은 연태조의 눈치 빠름에 내심 탄복하며 태왕의 하명을 기다렸다.

“끝까지 쫓아 다시는 요하를 넘겠다는 망령된 허망을 품지 못하게 하리라!”

태왕이 이렇듯 명하니, 연태조가 즉시 개마무사를 포함한 기병 삼만을 추려 적의 뒤를 쫓았고, 태왕도 수레에 올라 독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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