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92화 (92/328)

092화 온달 이십오만 대군을 막아 내다. (1)

회의가 끝난 후 막리지 연태조가 따로 을지문덕과 강이식을 불러 물었다.

“총관, 적의 보급로를 끊는 것이 정녕 용이하겠소?”

이번 공격으로 적의 경계가 더욱 삼엄할 터이고, 대실호연이 주요 정보를 알릴 것은 당연하니 근심스러워 보였다.

“쉽지 않지요. 더구나 칠일 후, 적의 총공세가 있을 것이고, 그날 대실호연이 요동성에 북주의 기를 내걸어 북주군을 끌어들일 터이니, 오히려 우리가 보급이 끊긴 채 앞뒤로 공격받는 형국이 될 것입니다.”

강이식이 너무도 태연스레 위급 사항을 나열하는 을지문덕의 입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한 위급 사항을 어찌 그리 편히 말하오?”

“그렇다고 울며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에이, 정말.”

을지문덕의 답이 못마땅한 강이식이 혀를 끌끌 차니, 연태조가 넌지시 을지문덕의 심중을 떠보았다.

“대책이 있는 것이오?”

“있지요.”

“아니! 있으면 빨리 좀 말하시오!”

강이식이 버럭 소리지르자, 을지문덕은 귀가 먹먹한지 귀를 만지며 답하였다.

“귀청 떨어져 죽으면 어찌하려고, 허허. 우리가 적의 계획을 아니, 쉽게 당하겠습니까? 막아야지요.”

“하면, 북주군이 요동성에 들어가기 전에 길을 막고, 군을 몰아 대실호연이 차지한 요동성을 점령하겠다는 것이오?”

연태조가 강이식을 제지하며 물으니, 을지문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니지요. 그리하면 우리의 피해가 크니, 북주군을 요동성에 끌어들여 몰살시켜야겠지요.”

을지문덕의 이 말에 강이식이 기가 막혀 되물었다.

“이보시오, 총관. 요동성은 대실호연이 장악했을 것인데, 어찌 북주군을 성 안에 끌어들여 몰살시킨다는 게요?”

“대장군, 소장이 생각하건대 요동성의 군사는 가족을 요동성에 두고 있고, 그들 모두가 고구려를 배신한 대실호연을 따르진 않을 것입니다.”

“…….”

“그러니 대실호연이 서둘러 북주군을 성 안으로 들이려 할 것이고요.”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오?”

“북주의 기를 대실호연이 요동성에 내거는 순간, 그의 목을 베고 요동성 군사들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오는 북주군을 맞아 싸울 생각입니다.”

을지문덕이 강이식의 물음에 답하니, 연태조가 잠시 눈만 끔뻑거리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요동성 안에 대비책을 마련한 게요?”

“이제부터 마련해야지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그나저나 적의 보급로를 끊어야 할 것인데…….”

을지문덕이 요동성에 들어올 북주군을 궤멸시킨 뒤에도 요동에 남은 적의 수가 많음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자 연태조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고, 이에 강이식이 뭔가를 말하려 하니, 을지문덕이 크게 재채기하며 제지하였다.

“에취! 아직 날이 차니, 밤에 꼭 이불 따스히 덮고 주무십시오. 전장이라도 건강이 제일입니다.”

* * *

쇼락의 말대로 이틀을 기다리니, 철륵에서 출발한 돌궐의 보급 부대가 줄지어 소가 끄는 수레에 물자를 가득 싣고 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다.

“뭐여? 도대체 수레가 몇 대여?”

막바우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수레를 세다가 포기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경우가 손가락으로 대충대충 세며 말하였다.

“가만히 있어 봐. 내가 세고 있으니.”

이 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쇼락이 온달에게 적의 규모를 설명하였다.

“장군, 소가 끄는 수레는 약 천이백 대이며, 호위하는 기병은 일천이요, 보병이 삼천입니다.”

시력이 좋고 눈썰미가 뛰어난 초원의 민족은 양 떼와 멀리서 침입하는 적의 규모를 헤아리는 재주가 뛰어나 쇼락의 이 가늠은 매우 정확했다.

건무와 카사르가 군을 둘로 나누어 올루스를 호위해 떠났고, 우랑과 기 씨 사 형제가 보좌하였는데 올루스 행렬에 평강이 온동과 독고영을 보살피며 따르는 모습이었다.

이곳에 남은 병력은 호타크의 삼천 기병과 온달의 이천오백 기병이 전부였으나, 적의 보급 부대를 급습하기엔 충분한 수였다.

“수레가 천이백여 대라… 대단하구먼.”

막바우가 막대한 물자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함은 당연하였다.

“고개에 오르면 급습합시다.”

커레이트 부족의 대전사이자, 족장인 호타크가 제안을 하니 반대 이견을 내는 이가 없었다.

“적은 앞서간 대군이 안전을 확보하였으리라 믿고 방심한 상태라 경계가 허술할 것입니다.”

침착한 독고선도 찬성하니, 온달이 모두의 뜻을 따라 결정을 내렸다.

“놈들이 고개에 오르면 양옆에서 급습하겠소. 준비합시다.”

* * *

천이백여 대의 수레로 수송 중인 물자는 철륵부의 열다섯 부족이 한 달여간 모아 마련한 것으로 이후 출병할 아파가한의 이십오만 대군이 소비할 식량과 물자까지 포함 한 보급 물량이었다.

기병이 앞장서며 길을 열고 보병이 수레를 호위하며 언덕을 오르는데, 그 행렬의 길이가 산 중턱까지 쭉 이어졌다.

광야에 자리한 탓에 비교적 높지 않은 이 산의 고갯마루 양옆으로 낮은 언덕이 솟아올랐는데, 호타크와 온달이 각기 군을 나누어 매복하였다.

적의 선두가 고갯마루에 올라도 온달은 공격 신호를 내리지 않고 고개를 넘도록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장군님 공격 안 하십니까?”

막바우가 답답한지 묻자, 경우가 조용히 하라 옆구리를 쿡 찌르며 핀잔을 주었다.

“쉿! 부총관께서 뭔 생각이 있으시겠지.”

온달은 막상 적의 수송 행렬이 산에 오르니 고민이 되었다.

그들의 행렬은 길이가 너무도 길어 지금 급습할 경우, 후미의 적이 산 아래로 도망칠 듯하다 판단하여 공격 신호를 내리지 않은 것이다.

해진과 독고선은 이런 온달의 생각을 읽고는 건너편 언덕 위를 살며시 응시하였다.

역시 호타크도 대전사라 불린 인물로 온달과 생각이 일치하여 적의 수송 행렬만 조용히 주시할 뿐이었다.

“적의 후미가 고갯마루에 오르면 그때 공격하겠습니다.”

온달이 소리 죽여 말하니, 막바우도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불현듯 떠오르는 불안감에 온달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먼저 산을 내려간 선두가 도망치면 어떡합니까?”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산 아래까지 내려간 그들을 내가 유인하여 불러들일 테니, 시간을 조금 둔 뒤 독고선님이 개마무사를 끌고 돌진해 내려오십시오.”

“알겠습니다.”

“분명 내가 혼자 나서면 적은 얕잡아 보고 다시 산을 오를 것입니다. 그동안 다른 분들은 이곳을 깔끔히 정리하십시오.”

온달이 위험을 자초해 말하자, 막바우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입을 들썩이려고 했다.

허나, 보다 못한 경우가 막바우의 소매를 끌며 지청구하였다.

“우린 저기나 지켜보며 집중해요.”

경우는 온달이 헛된 공명심을 쫓는 이가 아님을 알기에, 온달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마침내 후미마저 고갯마루에 오르니, 온달이 철궁을 들어 효시를 먹인 후 힘차게 당겼다.

쐐애액—

매의 울음이 일더니, 후미를 지휘하던 장수가 말 위에서 날아가 땅에 처박혔고, 이를 신호로 온달과 호타크가 이끄는 군사들이 말에 오른 채 언덕을 내려가며 일제히 활을 당겼다.

“기습이다!”

“매복이다!”

이곳은 돌궐의 세력권으로 요동의 고구려군이 이곳까지 와 매복할 리 없고, 앞서 십오만 대군이 지나간 뒤라 적의 출현 역시 우려할 필요도 없어 보급 부대의 방비가 허술하였었다.

온달은 우왕좌왕하는 적을 두고 누렁이에 올라 고갯마루를 달려 먼저 산을 내려간 적의 선두 행렬을 쫓았다.

그러자, 수송 행렬의 책임자로 보이는 장수가 기병을 이끌고 산을 다시 오르는 게 보였다.

멈춰진 수송 행렬에서 호위를 담당한 보병들이 온달에게 달라붙으며 저항해 보았으나.

운철 대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부러지고 으깨지는 끔찍한 소리만 만들어 낼 뿐, 온달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못하였다.

그간 백두검법과 파산귀검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은 성과였다.

그럼에도 막바우는 온달을 걱정해 긴 창을 쥐고 말을 달려와 대뜸 부르짖었다.

“우리 장군님이 오셨으면 넙죽 엎드려 항복할 것이지, 어디 감히 저항이냐!”

막바우의 호령이 고갯마루에 쩌렁쩌렁 울리고, 그의 창이 바람을 가르며 온달을 도와 말을 몰아 산 위로 오르는 적을 함께 맞았다.

온달은 자신의 곁에 딱 달라붙은 막바우가 듬직해 믿고 철궁을 당겨 가장 앞서 말을 몰아오는 적의 장수를 마상에서 떨궈 버렸다.

온달이 철궁을 당기는 동안, 막바우가 주위를 에워싼 적을 향해 쉬지 않고 창을 휘둘러 모두 눕히고는 이제 막 고갯마루에 오른 적들을 향해 말을 몰아 온달의 앞에 섰다.

“막바우! 나와 함께 돌파해 산 아래 길을 막으세.”

파산귀검에 자신감이 붙은 온달이 막바우에게 산을 오르는 적을 돌파하자 제안하니, 막바우는 두려움 속에서도 온달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병들이 창과 칼을 들고 둘러싸며, 산 아래에서 올라온 기병들이 몰려드는데도 두려움 없이 막바우가 창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는데, 그동안 독고선에게 배운 창봉술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온달은 막바우의 창끝이 흔들리며 빈틈이 살짝 보이자, 누렁이를 급히 몰아 맹렬히 질주하며 산 아래로 내달렸다.

온달이 지나가며 휘두른 운철 대검의 위력에 막바우를 에워싼 적들이 모두 쓰러지며 막바우도 온달의 뒤를 따라 산 아래로 함께 질주하였다.

고작 두 사람이 공격해 오니, 돌궐군은 이를 우습게보고 일제히 산 위로 오르며 덤벼들었으나, 온달이 앞에 서고 막바우가 뒤를 맡으며 깊숙이 돌격하여 길을 뚫어 나가니, 감히 막을 이가 없었다.

마침내 온달과 막바우가 산 아래 돌궐 기병마저 돌파한 후 뒤를 돌았다.

그때, 고갯마루에서 천지가 진동할 함성이 일더니 돌궐 보병을 정리한 개마무사들이 일제히 내달리며 돌궐 기병들을 향해 질풍처럼 돌격해 왔다.

독고선을 선두로 개마무사들이 질주해 내려오며, 돌궐 기병의 배후엔 온달과 막바우가 길을 막고 서니, 온통 돌궐 기병의 비명 소리만 메아리쳤다.

온달이 거대한 운철 대검으로 바람을 가르며 산 아래 길을 막았고, 천지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보이지 않은 돌궐 기병들은 전의를 상실한 가운데 그나마 살 길을 찾고자 온달과 막바우가 지키는 산 아래 길로 일제히 말을 돌렸다.

그러나 온달의 운철 대검의 위력에 선두에선 기병 여섯이 말과 함께 동시에 쓰러지며 오히려 길을 막았다.

이들의 뒤로 노도와 같은 개마무사들이 거친 말울음과 함께 삭을 번뜩이며 돌격해와 삽시간에 전투는 종결되었다.

“부상자를 챙기고 불을 붙일 준비 합시다.”

뒤이어 내려온 경우에게 온달이 부드럽게 명을 내리자, 막바우가 놀라 되물었다.

“혹시 저 수레들을 불태우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천이백여 대나 되는 보급 물자를 챙겨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생각하여 물은 것이다.

막바우의 이 물음에 온달이 잠시 망설이니, 해진이 나서며 말하였다.

“부총관의 판단이 옳습니다. 이 수레를 끌고 적의 추격을 피해 기일 내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이때 호타크가 다가와 제안하였다.

“수레는 태우고 소만 끌고 가시지요.”

양 떼와 소를 몰며 이동하는 것에 능숙한 초원의 민족이기에 당연한 제안이었다.

소는 물자도 나르며 식량으로도 사용할 수 있기에 두고 가면 적을 이롭게 하고, 그렇다 하여 산 짐승을 애써 죽일 수도 없으니, 온달도 호타크의 말에 동의하였다.

수레에 지른 불길이 고갯마루 위로 자욱한 연기를 뿜어 올리니, 봉화가 따로 없었다.

온달은 그제야 평강이 공성 병기를 운반하는 돌궐의 공성 부대는 급습하지 못할 것이란 말을 떠올리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이 연기를 보고, 곧 추격대를 보낼 것이다. 빠르게 이동하며 급습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연기는 이틀거리에서 공성 병기를 운반하던 돌궐의 후발대가 포착하여 바로 철륵에서 대기하는 아파가한에게 보고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