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62화 (62/328)

062화 을지문덕의 계획 (1)

요동성으로 태왕의 행차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평강 일행만이 사냥 대회장에 남게 되었다.

“아니 온달님은 이렇게 잡혀가려고 사냥 대회에 오신 거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온달이 끌려가는 모습에 부아가 치민 막바우가 괜히 양만춘에게 투덜거렸다.

온달이 사냥 대회에서 태왕에게 부마로 인정받아 양만춘의 출세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경우 역시 입이 잔뜩 튀어나왔다.

“온달님과 왕자 저하를 결박하여 압송하였는데, 성주와 그대들은 총관부 정병들이 어찌 그대로 둔 것일까요?”

경우의 물음은 지당하였으나, 양만춘이나 막바우, 팽무성 등이 답을 가질 리 없었다.

자신들이 자유로운 몸임을 의아해하며 양만춘이 평강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공주님, 어찌해야 할까요? 온달님의 억울함을 아뢰고 구명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생각에 일행 중 오직 평강만이 온달을 구할 방법을 지녔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태자와 강이식 장군, 을지문덕 공은 같은 스승 밑에서 수련한 사이로 형제지간과 같습니다. 저 세 분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뭔가 깊은 뜻이 있을 터이니, 기다려 보시지요.”

평강도 마음이 심란했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담아 답했다.

“공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왕자 저하도 함께 압송하며 강 장군께서 뫼신다 말씀하셨고, 공과는 태왕 폐하의 뜻을 따르겠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온달님과 왕자 저하를 치하하더라도 오부 귀족은 나서지 말란 의미로 생각됩니다.”

침착한 독고선이 차분하게 말하자, 그제야 막바우와 경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그게 그 말이었어? 독고 형은 가만 보면 정말 대단해. 분명 중원의 좋은 가문 출신일 거야. 배운 게 참 많아 보여. 경우 자네는 이런 생각 못 하지?”

막바우가 공연히 경우를 들먹였으나, 경우는 그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양만춘과 평강을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마음의 짐을 덜어 한결 개운한 표정이었다.

“이 말이 타당합니다. 허나, 어찌 되었든 우리도 서둘러 요동성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던 해진이 멀어져 가는 태왕의 행차를 가리키며 입을 열자, 다들 동의하며 말에 올랐다.

그때, 총관부의 부장 한 명이 말을 돌려 달려오며 손짓하자 기병 다섯 기가 뒤를 따르더니, 평강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총관께서 공주 일행을 뫼시라 하였습니다.”

부장의 얼굴에 강압적인 기색은 없었지만, 온달과 건무가 압송되는 과정을 지켜본 뒤라 평강 일행은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였다.

* * *

총관부로 압송된 온달과 건무는 목원의와 우연순 잔당들이 지하에 마련된 옥과 외부에 자리한 전옥소로 신속히 나뉘어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을지문덕의 부장 우랑이 다가와 공손히 말을 건네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송구하옵니다. 뭣들 하느냐? 속히 두 분을 뫼시거라!”

포승줄을 풀어주는 우랑과는 이미 안면이 있는 온달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군령을 어긴 죄인의 포승줄을 풀어도 되시겠습니까?”

온달의 물음에 우랑이 웃으며 온달의 옷에 묻은 흙을 살피고는 다시 허리 숙여 예를 표하며 말하였다.

“갈아입을 옷을 마련하였습니다. 제 뒤를 따르시지요.”

온달과 건무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우랑의 뒤를 따라 걷자, 저 멀리 낭아봉을 쥔 강이식이 달려와 건무 앞에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는 온달의 손을 덥석 쥐었다.

“온달 아우, 고생했네. 왕자 저하 송구하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폐하께옵서 군령을 어긴 죄를 사하신 게요?”

건무가 먼저 묻자, 강이식이 손을 내저으며 껄껄 웃었다.

“두 분은 공만 있고 과는 없는데, 폐하께서 사하실 것도 없으시지요. 태왕 폐하와 태자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주님께도 을지문덕 공이 사람을 보냈으니, 조용해질 때 들어오실 것입니다. 가시지요.”

평강에게도 사람을 보냈다는 말에 온달의 얼굴이 펴지자, 강이식이 그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하였다.

“을지문덕이라고 내 벗이 있는데 말일세. 그 친구가 이런 짓궂은 장난을 좋아한다네. 나는 미워하지 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어찌나 주장하던지, 태자 전하마저 동의하시니, 나도 따르게 된 것이야. 아무튼 그렇네. 하하하.”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혼자 호쾌히 웃는 강이식을 온달과 건무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총관부의 정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모습을 떠올리며 건무는 생각에 잠겼다.

‘사전에 치밀히 준비된 것이로구나. 을지문덕은 태대형과 태대사자의 역심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란 말인가?’

건무는 을지문덕의 의도가 궁금하였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예로부터 역모가 발생하면 친족들이 가장 의심받았고, 자신은 태자의 이복형제로 오부 귀족들이 역모와 엮는다면 언제 죽어도 당연한 신세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 * *

“옷은 다음에 갈아입고, 폐하부터 뵙겠소. 총관께서는 폐하께 안내해 주시오.”

건무의 요청에 강이식이 고개 숙여 답하고는 앞장섰다.

건무는 요동성에서 따로 거처를 마련하였기에, 총관부 내의 태왕의 처소는 이번이 처음 방문이었다.

총관부 내에서도 가장 깊숙이 자리한 태왕이 거처하는 처소에 이르자, 지나칠 정도로 경비가 허술함에 온달과 건무가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찌, 폐하를 모시는 곳에 경비가 이다지도 허술하단 말인가?’

건무는 총광부 밖에 마련된 자신의 거처에 배치된 총관부 군사의 수를 생각하며 작은 문 앞에 선 호위 무사 둘이 고작인 태왕의 처소에 의아해하였다.

건무와 온달의 생각을 읽은 강이식이 웃으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지시한 것입니다.”

들을수록 의아함만 커지는 답변이었다.

역심을 품은 무리를 사냥 대회에서 확인한 뒤였기에, 온달과 건무의 의구심은 당연했다.

* * *

안에서 문이 열리고 늙은 환관이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앞서 걷자, 강이식이 손짓으로 온달과 건무를 이끌었다.

좁은 복도에는 환관 몇이 불을 밝히고 지켜 서 있는 것이 전부라 누군가 태왕을 시해할 마음을 품는다면 그 뜻을 이루기 수월해 보였다.

“간자들을 추포하였고, 역심을 품은 무리가 존재함도 확인되었으며, 아직 외적과 내통한 간적 무리를 색출하지 못한 터인데, 이다지도 경계가 허술해도 되는 것이오?”

건무가 주위를 둘러보며 강이식에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미소뿐이었다.

복도를 지나 문이 열리자, 태왕이 자리한 탁자 양옆에 태자 원과 을지문덕이 서 있었고, 그 뒤에 단공이 한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폐하, 왕자 저하와 온달이옵니다.”

강이식이 고개 숙여 아뢰자, 온달과 건무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예를 올리란 명이 없기에 죄인으로 처분을 기다리고자, 고개 숙인 이들의 머리 위로 태왕의 담담한 음성이 내리었다.

“네가, 온달이더냐?”

“소인 온달, 태왕 폐하 말씀을 받습니다.”

온달은 근래 들어 신분이 귀한 이와 대면할 일이 잦았으나, 태왕께 어떤 예를 올려야 할지 익히지 못하였고 벌을 받는 처지였기에 머리만 조아려 답할 뿐이었다.

“듣던 대로 손발이 크니, 과연 도적이 따로 없구나. 그래, 네놈이 평강을 훔친 그 도적이 맞구나.”

태왕의 음색에는 노기가 실리지 않았으나, 한 마디 한 마디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폐하, 도적은 재물로 배상하거나, 노비로 삼는 것이 국법이옵니다. 어찌하오리까?”

을지문덕이 온달이 들을 수 있도록 태왕에게 아뢰자, 강이식의 얼굴색이 변하여 항의하려 할 때, 태자가 껄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저 행색으로는 평강을 훔친 죄를 재물로 갚을 수 없을 터이니, 노예로 삼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나, 감히 폐하의 앞에서 검을 휘둘러 내평의 목숨마저 앗았으니 따로 죄를 추가하여 물으심이 합당하다 사료됩니다.”

태자마저 온달을 벌하라 말하니, 강이식이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하였고, 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는 건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건무, 너는 어찌하여 사냥 대회에서 태대형을 죽였느냐?”

태왕의 이 짧은 물음에 건무가 생각해 보니, 자신이 목원의를 죽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태대형이 군사를 불러들이려 하기에 성급히 손을 썼나이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것은 태대사자 우연순이 분명하였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목원의는 사병을 집결시킨 의도가 불순하게 느껴졌으나, 역심을 품었다는 증거는 없고 오직 심증과 증언만이 있을 뿐이었다.

건무가 크게 변명하지 않으니, 태왕도 더는 말이 없었다.

“부총관 어찌 이러시오? 말이 다르지 않소? 폐하, 태자 전하! 왕자 저하와 온달은 공만 있고 과는 없사옵니다. 저들을 치하하시어 중히 쓰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강이식이 끝내 소리 높여 호소하였으나, 태왕의 대답은 차가웠다.

“총관은 그만하라!”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건무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폐하, 소자 건무 한 말씀 아뢰나이다.”

“무엇이더냐? 달리 변명할 것이 생각난 것이냐?”

태왕이 냉정히 물으니 가슴이 먹먹한 건무가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심중에 비수를 품은 이들이 가득하고, 간자들과 내통한 간적 무리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폐하와 태자 전하의 호위가 어찌 이다지도 허술하온지요? 총관에게 명하시어 방비에 힘쓰게 하시옵소서.”

태왕이 엄히 죄를 묻는 자리에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태왕과 태자의 안위를 근심하는 건무의 모습에 태자 원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우야! 너와 온달은 국법이 지엄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와 폐하를 걱정하는 것이냐? 네 살길은 보이지 않더냐?”

왜인지 즐거워 보이는 태자의 목소리에 건무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태자께서 어미가 다른 형제라 나를 버리시는구나.’

건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떨구니 태왕이 차분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듣거라! 나의 신변 호위가 허술한 것은 내게 태자와 네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노리고 살수가 이곳에 온들 내 목숨만 가져갈 뿐, 나보다 젊고 뛰어난 태자가 뒤를 이을 것이고 태자를 네가 보필할 것이 아니더냐?”

“…….”

“나의 목숨을 노린 자들이 얻을 것은 고작 나의 명줄뿐이고 그들이 잃을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태왕의 이 말은 따스하게 들려 건무의 마음을 다독였다.

“하오나, 폐하…….”

건무가 말을 잇지 못하자 태자 원이 웃으며 단공에게 손짓을 하며 명을 내렸다.

“아우와 온달에게 죄를 물어 벌을 내릴 것이니, 모두 물러가라 하시오.”

태자의 명에 단공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 벽을 응시하자, 벽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지붕 위에서도 소리 죽인 발소리가 전해왔다.

소리가 사라지자, 태자 원이 을지문덕과 시선을 마주하고 웃으며 건무에게 다정히 말하였다.

“단공이 지휘하는 호위 무사들일세. 독을 바른 화살을 지녔으나, 해독제는 폐하와 단공 그리고 나만 지니고 있네. 간적들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총관부의 경비를 처소에 두지 않은 것이네.”

태자 원이 말을 마치자, 을지문덕이 허리를 숙이고 나와 태왕에게 읍을 한 후, 건무와 온달을 향해 큰 소리로 호령하였다.

“이 왕자 건무와 온달은 들으라! 태왕 폐하께서 그대들의 경거망동을 물어 벌을 내리시니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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