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60화 (60/328)

060화 영웅 기개 (5)

막바우의 말속에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계부방이 당황하여 적당한 답을 내지 못하였다.

“우리는 말이요. 숲에 들어와 왕자님과 온달님을 찾느라 좀 헤맸는데, 멀리서 쇳소리가 들려 달려와 보니, 온달님과 왕자님이 이놈들과 칼을 맞대고 계시기에 그제야 싸움에 가담했소.”

막바우의 눈꼬리가 더욱 치켜 올라가며 버럭 호통을 쳤다.

“그러셨다고? 헌데, 댁들은 어찌 알고 처음 마주한 자의 목을 덥석 벤 것이오? 내가 댁들과 숲에서 마주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도 댕강 목을 벨 것이오?”

“이놈이 먼저 우리에게 덤벼 벤 것이다!”

당황한 계부방이 일부러 소리 높여 말하며, 우두머리의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막바우의 비웃음만 샀다.

“허튼소리! 살겠다고 혼자 튄 놈이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에게 먼저 덤빌 리가 있나. 누굴 바보로 아슈?”

바보 취급하지 말란 말에 온달을 비롯해 팽무성과 양만춘은 물론이요.

이 왕자 건무마저 그제야 깨닫고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바보였구나.”

건무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오자, 황망해진 막바우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저하, 그것이 아니옵고.”

걸음을 멈춘 건무가 천천히 검에 손을 대고는 단번에 검을 빼어 들자, 기겁한 막바우가 놀라 털썩 주저앉았다.

“너는 일어나 창을 쥐거라! 살수들이 남아 있다.”

건무의 호통에 벌떡 몸을 일으킨 막바우가 창을 단단히 쥐여 계부방을 겨누었고, 온달과 양만춘도 검을 빼어 들고 자세를 취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팽무성은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다가 상처 입은 건무의 앞에 서며 말하였다.

“뭔 일인지 모르겠으나, 온달 대인께옵선 왕자 저하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내가 대인을 대신하여 공격하는 모든 자의 목을 베겠소.”

검도 없이 적수공권으로 목을 벤다 말하는 팽무성의 말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계부방이 소리쳤다.

“한 놈도 숲을 나가게 하지 마라! 놈들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 쳐라!”

이미 건무마저 자신들에게 의심을 품은 상황에서 다른 방안이 없다 판단한 것이다.

손이 자유로운 열두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고, 손이 묶인 여덟 명의 사내들은 매듭을 풀기 위해 애썼다.

“어딜!”

독고선에게 틈틈이 봉술을 익힌 막바우가 창을 찌르며 매듭을 풀려는 사내들을 공격하자, 손이 자유롭지 못한 사내들은 피하기에 바빴다.

온달과 양만춘은 선두의 막바우를 지키며 검을 휘둘러 사내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우연순의 사병 중 정예만 뽑아 계부방이 이끌고 온 터라, 사내들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온달과 양만춘이 사내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공세를 취하려 할 때였다.

날랜 사내 둘이 올달의 옆을 스쳐 건무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팽 장주!”

온달이 놀라 급히 부르짖음과 동시에 외마디 비명이 길게 울렸고.

옆을 지났던 사내들이 왔던 방향 그대로 날아 계부방의 앞에 처박혔다.

“내가 다쳤다 하여 무시하는 것이더냐?”

어느새 건무도 온달의 곁에 바짝 붙어 사내들과 검을 맞대었고, 팽무성도 뒤따라 양만춘의 곁에 서서 사내들을 대적했다.

온달의 곁을 지나 건무에게 달려든 사내들은 모두 팽무성의 손날에 목이 꺾였는지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놈! 계부방! 어디 감히 역심을 품은 것이냐! 그대들은 나와 함께 저놈을 잡아 태왕께 바치세. 이번 사냥 대회는 저놈들의 수급으로 대신할 것이야!”

건무가 벼락같이 호통을 치며 검을 휘두르자, 건무의 앞을 막은 사내의 칼이 그의 손과 함께 허공에 떠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명을 받습니다!”

온달과 양만춘이 동시에 외치며 맹렬히 검을 휘두르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메아리쳤다.

막바우도 여덟 명의 사내들이 손을 빼내지 못하게 연신 창을 찔러 풀숲에 피를 뿌리게 했고, 팽무성은 막바우를 지키며 누구도 감히 달려들지 못하게 하였다.

중원의 무림인으로 타국의 일에 관여함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본디 그의 성품이 불의와 선의를 구분하여 따르는 것이 협객행이라 믿었다.

그러하기에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이를 위해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팽가장의 전통에 따라 온달 일행을 도움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팽가장의 전통과 인성에도 그의 형 팽무일처럼 본성이 간악한 이가 나올 수 있기에, 언제까지 팽가장의 인물들이 협의의 수호자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이들을 혼절시킬 터이니, 그대도 저들과 맞서시오.”

팽무성이 막바우가 상대하는 여덟 명의 사내들 속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날래고 담대한 그 모습에 막바우가 경탄하며 양만춘이 대적하는 사내들의 등에 창을 찔러대었다.

“독고선 그 사람이 중원 무림의 경공술을 말하며 약 팔더만, 그게 사실이었네.”

* * *

멀리 들판이 끝나는 숲 깊숙한 곳에서 누런 연기가 피어오르자, 해진이 경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온달님과 이 왕자님이 들어가신 곳이다. 우리도 가 봐야 하지 않겠느냐?”

총관부의 군사 오십여 기가 말을 몰아 달리는 것을 보며 경우가 답했다.

“저들에게 맡기고 우린 공주님을 지켜야 합니다. 저곳엔 사냥 대회에 참가한 장사들과 그들의 수행인들도 많고 성주님과 장주님, 막바우도 있으니 믿어 보십시오.”

경우의 이야기에 해진이 불안한 시선으로 연기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쉴 때, 귀가 밝은 온동이 크게 부르짖었다.

“매예요! 매의 울음이 이쪽으로 날아와요!”

온동의 말에 오빠 독고선의 손을 쥐고 있던 독고영도 폴짝폴짝 뛰며 하늘을 가리켰다.

“공주님! 저기예요!”

독고영이 가리킨 하늘에 누런 연기를 뚫으며 온달의 효시가 날아오고 있었다.

조그맣게 들리던 매의 울음은 점점 더 커지며 온갖 새들을 놀라게 하며 새 떼 구름마저 끌고 날아와 푸른 풀밭에 박혔다.

“무사하시고, 이제 곧 오실 것이야.”

평강이 웃으며 독고영과 온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말대로 들판 끝에서 흙먼지가 일더니, 사냥 대회에 참가했던 장사들과 수행인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말을 달렸다.

그곳에서 누렁이에 오른 온달이 나타나더니, 뒤이어 양만춘과 막바우가 말에 올라 숲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들판의 장사들과 수행인들은 크게 함성을 지르며, 그들을 에워싸고는 개선장군의 행렬처럼 호위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찾아 말을 몰던 총관부의 군사 오십여 기도 이내 곧 온달 일행과 합류하여 말을 달리니, 온달 일행에 합류한 인마의 수가 벌써 오백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사냥 대회에 참가한 장사들과 수행인들은 신분 여하를 떠나, 온달이 보여준 신력과 당당함에 매료되어 함께 하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게 된 것이다.

들판 가득히 흙먼지를 일으키며 당당히 말을 몰아오는 온달의 모습은 어느덧 언덕 위에서 참관하는 태왕과 오부 귀족들에게 또렷이 보였고, 이는 곧 동지에겐 치솟는 사기를 적에겐 절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 * *

우연순은 흙먼지 자욱이 날리며 말 달려오는 장사 무리 선두에 이 왕자 건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내심 계부방의 계략이 성공하였다고 생각하여 목원의를 바라보며 쾌재를 불렀다.

‘오라! 더 빨리 오너라! 장사 무리를 이끌고 어서 빨리 와 목원의와 연태조가 내통하여 역모를 일으켰다고 몰거라!’

그가 이렇듯 혼자만의 생각에 기뻐할 때, 목충은 온달이 선두에서 장사들을 이끌고 오자,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목원의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불길합니다. 저 누런 연기 덕에 총관부 군사들이 경계를 하기 시작했고, 사냥에 참가한 장사들까지 온달이 이끌고 오니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언덕 아래에 총관부 정병과 태왕의 호위군이 중앙에 도열해 있고, 그 양옆으로 오부 귀족의 사병들이 도열한 터라, 언덕 위에서 참관 중인 태왕과 태자를 호위하는 무사들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당장 명을 내려 자신들의 사병으로 총관부 정병과 중앙 호위군을 제압한 후, 우연순과 연태조를 꿇어앉히고, 강이식과 을지문덕을 엮어 죄를 묻는다면 어렵지 않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아니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거라. 뭔가 이상하다. 촉이 좋지 않아.”

목원의는 난데없이 피어오른 누런 유황 연기도 수상하였고, 온달이 효시로 경계를 알린 것 또한 수상했다.

“이 왕자 건무가 보이지 않는다. 건무의 모습이 어찌 없는가? 총관은 왕자에게 어떤 변고가 생겼는지 대비하라!”

태왕이 장사들 무리의 선두를 가리키며 묻자, 강이식이 앞으로 나서며 언덕 아래에 도열한 총관부 정병들에게 소리쳤다.

“경계를 늦추지 말라! 궁노수는 살을 준비하거라!”

그의 이 외침에 총관부의 정병과 중앙 호위군은 물론, 오부 귀족들이 이끌고 온 사병들마저 긴장하여 병장기를 단단히 쥐여 온달이 이끌고 오는 장사 무리를 주시하였다.

총관부의 궁노수와 중앙 호위군이 활에 화살을 먹인 후 준비하자, 우연순은 더욱 마음이 여유로워졌고.

목원의 부자는 그들의 사병만으로는 미리 경계를 시작한 총관부 정병을 일시에 제압하기 어려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폐하, 건무는 저기 저 장수들 무리에 섞여 있을 것이옵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태자 원이 건무의 안위를 염려하는 태왕에게 소리 죽여 말하며 손을 들어 장사 무리 속 백마를 가리켰다.

분명 이 왕자 건무의 말이 틀림없으나, 말 위에 앉은 사내는 범 가죽 상의의 건무가 아닌 곰 가죽을 두른 사내였다.

태자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였기에, 태왕 역시 소리를 낮추어 되물었다.

“건무와 옷이 다르지 않느냐?”

“옷이 다르고, 멀리 있으며, 장사들 사이에 있어 잘 보이지 않으나, 저 말은 건무 이외에 누구도 태우지 않으니, 말 위에 누군가 올라 있다면 그는 건무가 분명하옵니다.”

차분히 답하는 태자의 태도에 마음이 진정되는 태왕이었다.

살수들이 몸을 숨겨 어딘가에서 활을 날릴지 모르니 옷을 바꿔 입으라는 막바우의 제안이 있었다.

이를 건무가 받아들여 팽무성의 곰 가죽을 두르고 팽무성이 그 곁을 지키며 장사들이 겹겹이 에워싼 터라, 언덕 위에서 그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새 언덕 아래까지 당도한 온달이 말에서 내려 성큼성큼 언덕을 오르자, 양만춘과 막바우가 꽁꽁 묶인 살수 두 명을 어깨에 걸쳐 메고 온달의 뒤를 따랐다.

“저자가 온달이옵니다.”

강이식이 태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온달을 설명하였고, 온달 일행이 결박하여 메고 오는 사내 둘에 우연순과 목원의가 당황하여 동시에 외쳤다.

“멈춰라!”

“태왕 폐하 앞이다. 걸음을 멈추어라!”

우연순의 멈추라는 말은, 계부방이 보이지 않고 살수 둘을 온달이 생포하여 끌고 오니 놀라 부르짖은 것이었고.

목원의의 멈추라는 말은 온달 일행에게 사로잡힌 사내들의 팔에 자신의 사병들과 동일한 표식을 알아보고 외친 것이다.

우연순과 목원의는 서로가 일이 틀어지고 있음에 크게 당황하였으나, 태왕은 언덕 아래에 이 왕자 건무가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 숙여 예를 표하는 것에 안도하여 엄히 명하였다.

“됐다. 올라오너라!”

서부총관 강이식이 태왕의 명을 받아 크게 소리쳤다.

“온달과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올라와 태왕 폐하께 아뢰거라.”

“명을 받습니다.”

온달이 답하며 다시 앞서 걸음을 옮겨 언덕에 올라 무릎 꿇자, 양만춘과 막바우가 그 뒤를 따랐다.

“그대들이 포박한 자들은 누구인가?”

태왕의 물음에 양만춘이 살수의 팔에 표식을 보이며 아뢰었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 아뢰나이다. 이 표식은 태대형 어른이 깃발에 사용하는 표식과 같은 것으로 저 아래 사병들도 하고 있사옵니다.”

“그러하구나. 헌데?”

태왕이 묻자, 목원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양만춘이 온달을 대신하여 다시 아뢰었다.

“이들이 왕자 저하를 암습하였나이다.”

그의 짧은 대답에 모두가 놀랐다.

우연순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부르짖었다.

“당장 목원의 부자를 잡아 꿇리거라! 역모다! 또한 목원의를 만나 사전에 내통한 연태조 역시 잡아 꿇리거라!”

그의 외침과 동시에 시종으로 늘어서 있던 사내 아홉이 뒤에서 뛰어나오더니, 두 패로 갈라져 연태조와 목원의 부자에게로 향했다.

목원의 부자는 사내들이 겨눈 칼에 자리에서 끌려 나와 바닥에 무릎 꿇었고, 연태조 역시 갑작스레 덮치는 사내들에게 대항하려는 모용상과 단 사부를 손으로 제지하며 스스로 걸어 나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함부로 몸을 움직이면 역도가 되느니라.”

연태조의 낮지만 중후한 목소리에 모용상과 단 사부도 뒤따라 무릎을 꿇었고, 이 모습에 을지문덕이 내심 생각했다.

‘역시 연태조는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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