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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58화 (58/328)

058화 영웅 기개 (3)

온달과 건무가 선두로 노루 떼를 몰았고, 멀리 들판이 끝나 숲과 맞닿은 곳이 시야에 들어왔다.

말을 탄 장사들은 화살을 날려 보았으나, 날랜 노루와 거리를 아직 좁히지 못하여 번번이 화살이 빗나가거나 치명상을 주지 못하여 쓰러지는 노루는 아직 없었다.

들판을 에워싸고 소리 지르는 몰이꾼이 없기에, 선두가 노루를 몰아 나가다가 말들로 앞을 막아야 했다.

또한 옆으로 빠지는 노루를 다른 장사들이 에워싼 후, 퇴각로를 찾는 노루 떼가 허둥거릴 때 섬멸하는 전술을 구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는 개인이 성과를 내야 하는 사냥 대회가 아닌 기병 훈련을 대신한 고구려의 사냥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마 전술이었다.

개인의 활 재주와 기마 능력만으로는 쉽게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 기마 전술 훈련이 충실한 건무가 온달에게 바짝 붙어 손으로 멀리 떨어진 숲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노루 떼의 선두 방향이 저 숲이네. 저 숲속을 향해 살을 날리시게!”

노루 떼가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앞을 막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건무는 노루 떼를 쫓을 심산인지, 온달에게 효시를 또 날리라 말했다.

심성이 우직한 온달은 아무 의심 없이 철궁에 살을 먹이고 단단히 당겨 힘차게 날렸다.

철궁의 강력한 탄력을 받은 효시가 나르며 매의 울음을 울리니, 놀란 노루 떼가 급히 방향을 좌측으로 틀었다.

“저기 선두 노루 무리의 앞으로 살을 날리시게!”

건무가 또다시 온달에게 방향을 가리켰고, 온달은 질주하는 누렁이의 위에서 효시를 다시 날렸다.

쐐애액—

귀청을 찢는 매의 울음이 자신들의 앞을 지나자, 선두의 노루 무리가 놀라 또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뒤따르는 노루 떼 역시 모두 방향을 틀어 내달렸다.

드디어 노루 무리가 뒤쫓는 장사들의 정면으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와아!”

온달과 건무의 뒤를 쫓던 장사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멀리서 참관하던 이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대들은 우측으로 에워싸고, 자네들은 좌측으로 에워싸며 계속 말을 달려 노루 떼를 넓게 포위하라! 이제부터 섬멸전이다!”

건무의 호령에 장사들이 좌우로 말을 나누어 달리며 노루 무리를 넓게 에워싸고는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기마술이 뛰어난 장사들이 계속 말을 몰아 퇴로마저 봉쇄하며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자, 건무의 말 대로 포위 섬멸전이 이루어졌다.

온달도 누렁이를 세우고 정면에서 달려오는 노루 무리를 향해 살을 날렸는데, 곧게 뻗은 화살이 바람을 뚫고 빠르게 날아 노루를 맞출 때마다, 일격에 즉사한 노루가 허공에 떠서 피를 뿌렸다.

“좋구나! 좋아! 단 일격에 노루의 숨통을 끊을뿐더러, 커다란 노루를 멀리 날려 버리다니, 역시 대단해!”

이 왕자 건무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온달은 쉬지 않고 살을 날렸다.

철궁의 강한 힘은 뛰어난 정확도와 무시무시한 타격력을 보여주었다.

정면으로 달려오던 노루 떼는 온달의 화살에 맞고 날아가 들판 곳곳에 널브러졌고, 이를 피하기 위해 나머지 노루 떼가 방향을 틀자, 온달도 누렁이를 몰아 노루 떼가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몰이에 참여하려 했다.

“아닐세! 곧 섬멸될 걸세. 여긴 다른 장사들의 몫으로 남기고, 우린 저 숲으로 들어가 좀 더 크고 사나운 놈을 잡도록 하세.”

남은 노루 떼는 장사들에게 남기자는 건무의 제안은 고작 노루로 공을 다투지 않고 적당히 나누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또한 함께 시야가 가려진 숲에서 온달과 함께 사냥을 하여 잡은 짐승을 모두 온달의 것으로 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담겨 있었다.

이미 사냥에 참가한 장사들은 물론이요.

멀리서 참관하는 이들 모두 온달이 노루 떼를 몰아 에워쌌음을 알고 있기에, 애써 노루 몇 마리 더 잡아 공을 다툴 이유는 없었다.

이런 사정까지 모르는 온달이었으나, 본디 남과 경쟁하는 심성이 아니었기에, 건무의 제안에 아무런 이견도 달지 않고 따라 말을 몰았다.

온달과 건무가 빠진 자리를 다른 장사들이 들어와 말을 몰았다.

그들이 노루 떼를 쫓으며 화살을 날리니,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진영이 무너져 허둥대며 이리저리 내달리는 노루 떼는 사방에서 피를 흘리며 차츰 들판에 눕기 시작했다.

말을 달리며 화살을 날리는 장사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숲으로 들어선 건무는 말에서 내려 나무에 말을 매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온달도 누렁이에서 내려 철궁을 어깨에 메고, 운철 대검을 손에 쥔 채 그 뒤를 따르다가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비릿한 내음에 바삐 달려 건무의 옷소매를 쥐었다.

“왕자 저하, 피비린내이옵니다.”

자신을 붙잡은 온달에게 건무가 웃으며 답하였다.

“내가 자네보다 어리다 하여 아직도 형님이라 못 부르는 것인가? 이 사람 온달, 그리 안 보았는데 못 쓰겠구먼, 하하하.”

건무의 호탕한 웃음에 온달이 급히 옷소매를 쥔 손을 풀며 허리 숙여 말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옵고…….”

“아니면 되었네. 그만 가세. 총관이 알려 주기를 이 숲 안에 곰과 호랑이가 꽤 된다 하였네. 어서 가 보세!”

건무가 부드러이 손을 뻗어 온달을 일으켰다.

그런데 건무의 손에 이끌려 허리를 세운 온달의 눈에 정면 언덕 위 바위에 걸터앉아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동글고 큰 눈동자가 들어왔다.

황금빛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를 지닌 대호였다.

온달이 쏜 효시에 잠에서 깬 대호가 동굴에서 나와 고함을 지르며 노루 떼를 모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중, 마침 숲 안으로 겁 없이 들어온 두 사내에게 흥미를 느낀 것이다.

대호는 두 사내가 자신의 먹잇감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생각하였는지, 시선을 고정한 채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마치, ‘애써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게 어서 한 발 더 내딛거라!’는 듯 한가롭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온달 자네는 범을 잡은 일이 있다 들었네. 나는 오늘 범과 처음 대면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짐승일세. 과연 산군이라 불릴 만하네.’

건무도 보통 담대한 인물이 아닌지라 대호와 눈을 마주하고도 놀라거나 두려움 없이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 * *

대호와 눈을 마주한 채 건무가 손을 돌려 어깨에 멘 활을 쥐려 하자, 온달이 급히 나서 나지막이 물었다.

“왕자 저하, 저 범(凡)이 인근 사람을 해친 일이 있습니까?”

“그건 아닐 것이네. 만일 그러하다면 요동성의 관아에서 사냥꾼과 군사를 풀어 잡았겠지.”

온달의 물음에 건무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하자, 온달이 재차 소리 죽여 물었다.

“그러하다면 저 범은 잡지 않는 것이 어떠시온지요?”

거리가 꽤 떨어져 있으나, 그 어떤 범 못지않게 거대한 체구를 지닌 대호를 고작 사내 둘이 잡네 마네 할 처지가 못 됨에도 거침없이 온달이 말했다.

대호가 알아들었다면 크게 노했을 것이 분명했다.

“자네, 어찌 그러는가?”

다른 이라면 범 사냥을 두려워하여 만류한다고 생각하겠으나, 이미 온달의 무용을 서부총관 강이식에게 전해들은 건무였기에 의아해 물었다.

“저하께옵서도 아시겠으나, 본디 범이란 것은 호랑이라 불리는 대호와 줄무늬가 아닌 칡잎과 같은 무늬가 둥글둥글한 형태로 된 갈범(葛凡, 칡범 혹은 표범)이 있습니다.”

“그렇지.”

“갈범은 몰래 숨어 사람 해치기를 쉬이 하오나, 대호는 사람을 마주하여도 갈범에 비해 함부로 인명을 앗지 않고 탐욕스런 곰과 흉폭한 이리 떼의 창궐을 억제하오니, 저 범이 우리에게 달려들지 않으면 모른 척하심은 어떠하시온지요?”

온달은 평소 그답지 않게 장황히 말하면서도 대호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살을 날리지 못하여 저 범이 우리를 덮치면 어찌하겠는가?”

“그땐 제가 나서 이 검으로 저 범의 목을 뚫겠나이다.”

온달의 기개가 듬직한 건무는 범을 잡지 않아도 크게 만족하였다.

“듣고 보니,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군. 자네가 나를 형님이라 부르고 형제간으로 잘 따른다 맹세한다면 내가 자네 뜻을 듣지 않을 리 있겠는가?”

건무가 장난스레 말하자, 온달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답을 찾지 못하였다.

우직한 온달의 모습에 건무가 웃으며 말하였다.

“괜찮네. 내 반은 농일세. 편할 때 하시게나. 자네 말대로 저 범은 그냥 두세. 하하하. 예로부터 범 잡는 것이 담비라 했으니, 우리 담비나 잡아 태왕께 바치세. 하하하.”

건무의 호탕한 웃음이 숲에 울려도 대호는 여전히 바위 위에 앉아 겁 없는 두 사내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아마도 대호 역시 겁 없는 이 두 인간이 먹잇감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 것 같았다.

온달은 여전히 대호를 경계해 시선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건무는 태연히 대호에게 등을 돌렸다.

순간, 대호의 부리부리한 눈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몸을 바위에서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온달이 운철 대검에 손을 대었다.

대호가 몸을 날리면 족히 십여 장은 뛸 수 있으며 그 기세로 언덕을 내달려 덮치면 철궁을 당길 여유가 없다 생각한 것이다.

“아, 이런.”

등을 돌린 탓에 대호의 움직임을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건무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고, 이내 곧 강한 바람이 쏘아져 그의 어깨에 박혔다.

“악!”

건무의 비명에 급히 고개 돌린 온달의 눈에 건무가 어깨에 화살이 박힌 채, 정면의 사내들을 노려보는 게 들어왔다.

온달이 운철 대검을 뽑아 들고 건무의 앞에 서며 외쳤다.

“누구냐?”

사내들의 행색은 사냥 대회에 참가한 장사의 수행원으로 짐작되었으나, 건무를 짐승으로 잘못 여겨 함부로 살을 날렸다고 생각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이 짧은 거리에서 사람과 짐승을 구분 못 할 리 없다. 그나저나 범은?’

염려스런 온달이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으나, 있어야 할 곳에 대호는 없었고, 그렇다고 언덕을 달려 내려오는 모습도 없었다.

‘우리 뒤에 나타난 이 사내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구나.’

대호가 몸을 일으킨 이유를 그제야 깨달은 온달이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음에 안심하며 사내들을 대적하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었다.

“호승심이 강한 이 왕자는 반드시 숲으로 들어갈 것이라 하더니, 그 말이 맞았군.”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조금은 어색한 높낮이로 말하였다.

“고작 일곱이 나를 노린 것이더냐? 그래, 누가 시켰느냐?”

건무도 검을 빼어 들고 몸을 세우며 당당히 물었다.

“왕자 나으리, 이 표식을 보시고서도 어찌 물으시옵니까?”

사내들의 팔에는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나무 목자가 쓰여져 있었다.

태대형 목원의가 따로 깃발을 올릴 때 사용하는 표식과 동일하였다.

“네놈들은 중원에서 왔구나. 그래 그 팔에 단 나무 목(木) 표식으로 목원의가 너희를 사주했다고 내가 여길 것이라 생각한 게냐? 세상 어느 살수가 그리 허술할 리 있겠느냐?”

사내들의 음성은 고구려인들과 달리 높낮이가 있어 중원 한족 특유의 성조였기에, 대번에 건무가 중원에서 왔느냐 물은 것이다.

“중원이라니, 터무니없는 소리! 어차피 왕자 저하는 죽을 몸, 궁금한 것은 염라대왕에게 물으시옵소서.”

사내 중 하나가 벼락처럼 달려들며 소리 지르자, 온달이 자신도 모르게 백두검법의 보법을 밟으며 앞을 막았다.

그리고는 운철 대검을 휘둘러 사내를 검과 함께 날려 보냈다.

하지만 허공에 뜬 사내는 바닥에 처박히지 않고 가볍게 몸을 놀려 사뿐히 내려서니, 조금의 다친 기색도 없어 경공술을 익힌 무예 고수가 틀림없었다.

“장백검법? 네놈도 조의선인이었구나. 어쩐지… 네놈 명성이 자자하더니.”

온달의 보법을 지켜본 우두머리가 온달을 가리키고는 코웃음 치며 말하였다.

“틀렸다. 백두검법이다! 장백검법이라 말하는 꼴이 네놈은 고구려인이 아니로구나.”

온달의 지적에 우두머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수하들에게 명하였다.

“이런, 이런. 온달도 없애란 지시는 없었으나, 그대도 함께 가셔야겠소. 처라!”

우두머리의 명령으로 사내 여섯이 좌우로 갈라져 일제히 달려드는 모습이 무척 험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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