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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54화 (54/328)

054화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법 (2)

연태조의 허락을 득한 모용설이 고운 음색으로 조용하지만,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태대형을 뵙기 전에 본 것은 비단 옷을 입은 젊은 사내가 대실호연과 우연순의 목을 베는 것이옵고, 이곳에서 그 젊은 사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내평 목충님이셨습니다.”

모용설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하자, 목원의가 놀라 연태조를 바라보았다.

연태조 역시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모용설이 사실대로 말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여 괜히 헛기침만 하였다.

“하오나, 안타깝게도 목충님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온달에게 목이 베어지고 태대형께옵선 곰 가죽을 두른 사내의 손날에 목이 부러지시게 되옵니다.”

“무엇이라? 온달이 내 아들을 죽이고 나 또한 누군가의 손에 죽는단 말이더냐? 그래, 그날이 언제더냐?”

“정확한 시기는 모르오나, 창칼이 즐비하고 온갖 깃발이 늘어선 곳으로 해질녘이었습니다. 대대로의 말씀대로 제 예언은 듣지 않으신 것만 못하시오며, 운명은 바꾸실 수 있사옵니다.”

그제야 자신의 의도대로 모용설이 말하자, 내심 안도하며 연태조가 대신 말을 이었다.

“내평이 왜 대실호연과 우연순의 목울 벨까요? 그럴 이유라도 있으시온지?”

“그것이 뭐가 중요하오?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라 사실도 아닌데. 너는 어서 답하거라! 어찌 온달이 내 아들의 목을 베고 곰 가죽을 두른 괴한이 나의 목을 꺾는지 그 연유를 대거라!”

대실호연과 우연순의 죽음은 벌어지지 않은 사실이라 말하면서도 자신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에 관해 연유를 밝히라 추궁하는 목원의를 모용상이 슬쩍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목충이 죽기 전에 대실호연과 우연순을 먼저 베었으니, 자신들 죽음의 연유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발생할 일부터 관심을 갖는 게 순서 아닌가? 과연 죽음을 맞이할 만한 자로다.’

모용설은 목원의의 추궁에 가만히 고개 숙여 차분히 답했다.

“들어오면서 본 호위 무사들 역시 명이 얼마 남지 않았사옵니다. 소녀는 죽음만을 볼 뿐, 본인들도 모르는 연유는 알 수 없습니다.”

모용설의 이 말은 곧, 죽음의 연유는 본인들이 알지 않겠느냐는 뜻이었고.

목원의도 그녀의 답변을 이해하여 얼굴색을 차분히 돌리고 연태조에게 말하였다.

“연 대가, 오늘 그대의 장난에 이 늙은이가 많이 놀라고 휘둘렸구려. 오늘은 그만 쉬고 싶으니, 다음에 마저 농을 즐기기로 합시다.”

그만 물러가란 말에 연태조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그 말이 사실이더냐?”

소리 죽여 묻는 연태조에게 모용설이 다른 이가 듣지 못하도록 바짝 붙어 답하였다.

“거짓이옵니다.”

“뭣이라?”

놀라 되묻는 연태조에게 모용설이 눈짓으로 주위 시선을 가리켰다.

목원의의 사택 밖으로 나오자, 연태조가 모용설에게 바짝 붙어 나지막이 물었고, 모용설은 눈을 반짝이며 차분히 답했다.

“앞엣것은 제가 본 것이고, 뒤엣것은 보지 못한 것이옵니다. 이곳의 누구도 같은 날 죽는 이는 없사옵니다.”

“뭣이라? 하하하. 어찌 그리 말하였느냐?”

“대대로께서 원하시던 것 아니옵니까?”

“내가 원하던 것은 맞으나, 어찌 사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였는지 묻는 것이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고 싶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라는 옛말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앞에 넣고 거짓을 뒤에 넣는 것이옵지요.”

“뭐라?”

“그리하면 이야기의 전체적 사실 여부를 떠나서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더이다.”

“허허, 네가 거짓을 사실로 바꾼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로구나.”

“독고 황후가 제게서 얻고자 하는 것은 죽음을 보는 능력이 아니라, 제 능력을 이용해 다른 이를 죽음으로 이끄는 방법이옵지요.”

그녀의 말대로 죽음을 보는 여인으로 알려진 모용설이 차분히 거짓과 사실을 섞어 죽음을 예언한다면, 그 어떤 정적도 제거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곰 가죽을 두른 사내는 누굴 지칭한 것이더냐?”

“사냥 대회로 인하여 가죽을 입는 자가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단지, 범 가죽보다 많이 보일 듯하여 말한 것이옵니다.”

그때였다.

이들이 소리 죽여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는 앞에 계부방이 나타나 깊이 허리 숙여 예를 표하며 청하였다.

“태대사자께서 장기를 두고 싶다 하옵니다.”

* * *

연태조 일행이 떠난 자리에 목충을 부른 목원의가 모용설이 말한 예언을 이야기하였다.

가만히 듣던 목충은 얼굴이 벌게져 소리 높여 말하였다.

“오늘 우연순, 그 늙은이의 종놈들과 우리 아랫것들의 투석전이 있었고, 제가 패하여 돌아온 놈들을 혼내던 중 평강이 나타나 방해하기에, 개를 풀어 겁박하였습니다. 그때 평강을 도운 이가 곰 가죽을 두른 사내였지요.”

“뭣이라? 평강을 네가 개로 겁박해? 온달 그놈이 제 처를 위협한 네게 앙심을 품겠구나. 음…….”

성미 급한 목충은 자신의 즉흥적인 생각을 계획으로 만들어 목원의에게 떠벌렸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아버님, 서부총관부가 있다 하여도 여기는 우리 목 씨 일족의 세력이 닿는 곳입니다.”

“…….”

“또한, 대장군의 아우와 제가 막역한 사이옵니다. 낙랑 사냥 대회는 오부 귀족들이 각기 사병을 끌고 참여하기에 한편으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목원의의 안색을 살핀 목충은 목원의가 아무런 말이 없자, 동의한다 여기고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의 태왕과 태자는 을지문덕과 같은 평민 출신을 중히 여기고 공주마저 평민과 혼례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이는 오부의 귀족들을 무시하는 처사로 불만들이 많습니다.”

“…….”

“하여, 태왕이 바뀐들 고 씨라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대장군 고강도 왕종입니다. 그를 세우면 계루부도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요동 일대는 저희 세력이옵니다.”

여전히 침묵중인 목원의는 계속해서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혹여라도 온달이 사냥 대회에서 인정받고 태왕이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면 저희는 기회가 없사옵니다.”

침착한 목원의도 자신의 죽음에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었으나, 목충과는 역시 그릇이 달랐다.

“고강을 세운다라… 하긴 태왕이야 누군들 어떠하겠느냐. 다만, 대장군 고강 형제에겐 아무 언질도 주지 않고 끌어들이지도 말거라.”

“그들이 탐탁지 않으시온지요?”

“아니다. 다만 그들이 우리와 공을 나눌까 우려되어 하는 말이다. 이 일은 우리 목 씨 일가만으로도 충분하니 다른 가문은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예로부터 권력은 나누지 않는 법이다.”

“네?”

“또한 고강과 고성 형제도 고 씨이므로 이후 허수아비가 되어야 하기에, 이 기회에 단단히 제압해 우리 손아귀에 쥐어야 하느니라. 이번 사냥 대회에서 우리는 태왕과 태자는 내치지 않을 것이다.”

“태왕과 태자를 이대로 남기시면 훗날 비수가 되어 저희를 노릴 것입니다.”

“대의명분이 부족하다. 명분이 없으면 이곳에서 일을 벌여도 평양성까지 들어갈 수 없느니라.”

정혁엔 대의명분이 필요한 법으로, 이것까지 미처 생각지 못한 목충이 이제야 깨닫고 의견을 물었다.

“대의명분이라 하셨습니까?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지요?”

“주위 성에 사람을 보내 군사를 대기시키고, 이곳엔 오골성의 정예 삼천 만 이끌고 오너라.”

“삼천으로는 요동성의 총관부 군사를 대적하지 못하옵니다.”

“사실, 삼천도 많다. 대군이 움직이면 역심을 품었다고 당연히 의심할 것이다.”

“가능한 일이옵니까?”

“사냥 대회에 우리가 삼천의 정예를 이끌고 나타나도 태왕을 포함한 오부 귀족들은 크게 경계할 터이니, 이천은 신성과 요동성 인근에 대기시키고 일천만 사냥 대회 장소에 막사를 치고 대기시키거라.”

“일천으로 가능하시겠습니까?”

“충아! 네가 대의명분을 묻지 않았느냐? 대의명분이 있고 정혁이 아니라면 일천으로도 가능 하느니라.”

“……!”

“우리는 먼저 외적과 내통한 연태조의 죄를 묻고, 둘째로 연태조가 우리 고구려 내부를 좀 먹으며 기밀을 팔아먹은 간적의 수괴임을 알면서도 추포하지 않고 활보하게 놔두어 불씨를 키운 서부총관 강이식과 을지믄덕의 죄를 물을 것이다.”

목원의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셋째로 연태조가 불충한 장기를 제안하였음에도 태왕께 고변하지 않은 태대사자 우연순의 죄를 물을 것이다. 넷째로 한낱 미천한 평민 출신으로 공주를 넘본 온달의 죄 또한 물을 것이다.”

“하오면 태왕과 태자는 어찌 되는지요?”

“우린 죄인들의 죄를 묻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태왕과 태자에게 바치며 충성을 다짐한 후, 감히 우리에게 맞설 오부 귀족들의 목을 마저 베고, 벌벌 떠는 오부 귀족과 태왕을 앞세워 평양성에 들어갈 것이다.”

“아…….”

“이후 너는 제가회의를 열어 스스로 대대로에 오르고, 우리 대대로의 임기를 종신으로 바꾸며, 우리 목 씨에 한정하여 세습할 수 있도록 정하거라. 이 고구려에서 우리의 정적만 없애면 태왕이야 누가 한들 상관없느니라.”

목원의의 입에서 계획이 술술 나오자 감복한 목충이 잘도 답했다.

“따르겠습니다.”

“평양성에 입성하여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후, 태왕과 태자의 거동이 수상할 시 고강이든 고성이든 우리가 태왕으로 추대하면 될 것이다.”

“네.”

“허나, 이번 사냥 대회에서 죄인들의 목을 거침없이 벤다면 태왕과 태자는 겁에 질려 감히 딴마음을 품지 못할 터이니, 굳이 갈아치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번 사냥 대회에선 짐승보다 사람이 더 많이 죽겠구나. 사라질 귀족들도 꽤 되겠어.”

매년 사냥 대회에 사병을 이끌고 참여하면서 그 사병들의 창칼로 눈엣가시 같은 정적들의 목을 벨 생각을 품어 왔던 목원의인지라 이야기함에 막힘이 없었다.

목충은 짐승보다 사람이 더 많이 죽을 것 같다는 아비 목원의의 말에 혹여 목원의가 다시 망설일까 염려되어 부질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상처가 아물려면, 고름을 솟아오르게 해야 하는 법입니다. 죽을 놈이 죽어야 살 사람이 살지요. 이번 사냥 대회는 이전과 달리 사람의 머리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겠군요. 거사 일 전까지 연태조 저자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사람을 붙여 두기만 하거라. 그가 이후 태왕에게 찾아가거나, 우연순을 만나 우리를 음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죄만 더 늘어날 뿐이다.”

“네, 알겠습니다.”

“또한 사전에 그를 죽인다면 누구나 우릴 의심하여 경계가 생길 터이니, 그가 잘 활보하여 죽을 자만 더 늘어나게 하거라. 그가 만난 이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들 두 부자가 급히 논의한 정변 계획은 훗날 연태조의 아들 연개소문이 차용해 연회에서 정변을 일으키게 된다.

* * *

평강이 팽무성을 데려와 목충의 사자견으로부터 겁박당할 때 도움을 받은 사실을 말하자, 온달이 감격해 깊이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팽 장주와 같은 대영웅께옵서 협의를 보여주시오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막바우는 온달의 말투에 날이 갈수록 문자사용이 늘어나는 것을 감탄하며 자신도 따라 중얼거렸다.

“왜? 그대도 온달님처럼 머릿속에 학식 좀 넣게?”

이를 놓칠 경우가 아닌지라 여지없이 핀잔을 주었고 양만춘이 꾸짖었다.

“은인 앞에서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말거라.”

팽무성은 온달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 그의 숙여진 허리를 펴게 하며 자신이 오히려 머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우리 팽가장은 검술에 있어 꿀림이 없다 자부하고 있으나, 대대로 인물들이 영악하지 못해 세인들에게 이용당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네.”

“하여, 외부로 나감을 줄이고 외부인 역시 교류하지 않았음에도 부끄럽게도 저의 형님 되는 이가 장주의 신물을 훔쳐 고작 망우산의 도적이 되어 그나마 선하다는 팽가장의 명성마저 더럽혔기에 제가 나서서 벌하려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온달 대인께옵서 망우산 산채를 없애 주셨기에 조금이나마 수고를 덜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음에 있는 소리를 거짓 없이 진솔히 말하는 팽무성의 인성에 주위 모두가 내심 감탄하였다.

“하여, 온달 대인께옵서 허락하시온다면, 대인의 사냥 대회에 본인도 수행인으로 함께 하여 은공을 갚고자 하오니 부디 내치지 마시옵소서.”

오부의 귀족들은 사냥 대회에 각기 사병을 끌고 와 위세를 과시하기에 온달 일행으로선 검술 명가인 하북 팽가장의 장주가 수행원으로 함께 한다면 비록 중국인이라 해도 마다할 일은 없었다.

팽무일처럼 예외는 있으나 팽가장이 검술 명가로 유명한 것은 누구나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세인들에게 알려진 팽가장의 명성은 인물됨이 거짓 없고 순박하여 다른 이를 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성품 탓에 남에게 이용당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믿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이용할 줄 모르는 온달만이 황망해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감사한 일이나 어찌 제가 팽 장주를 수행원으로 하겠습니까? 당치 않습니다.”

온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우가 불쑥 나서며 대꾸하였다.

“팽가장 장주님께옵서 신분이 높으시오나, 거절하신다면 수행원으로 함께하시는 안시성 성주와 신크마리 해진님은 어찌 되시는지요?”

너무도 직설적이지만, 온달을 단번에 제압할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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