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45화 (45/328)

045화 대돌궐 총사령관 일가를 도륙 낼 것이구먼유.

산 위로 먼동이 금빛으로 터오는 모습에 밤을 꼬박 샌 온동은 자리에서 일어나 짧은 팔다리의 관절을 풀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직 안 일어나셨을 것 같은디, 그렇다고 혀서 공주님을 문밖에서 함부로 막 부르다가 끝방 아저씨들이 눈치라도 채면 큰일이고. 어쩌면 좋은 겨?”

객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온동의 눈에 작은 돌이 들어왔다.

온동은 평강 공주와 온달의 옆방에 막바우가 묵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빙그레 웃었다.

객잔 이 층의 방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객잔 전면 창가 쪽 방을 온달과 평강 공주가, 그 옆방은 막바우가, 그 옆은 경우가, 마지막 끝방은 독고선과 독고영 오누이가 사용하고 있었다.

양만춘과 해진은 사내들이 묵은 끝방과 마찬가지로 복도 건너였고 애써 불렀다가는 사내들마저 깨울 것이 분명하였다.

“그 우락부락한 덩치 큰 아저씨 침상이 저 창문 바로 밑이었지?”

온동은 객잔 이 층을 올려다보며 막바우가 자고 있는 방의 나무로 된 창을 주시했다.

“공주님을 함부로 깨울 수 없으니, 대신 아저씨가 일어나셔유.”

온동은 힘차게 손에 쥔 돌을 막바우가 잠든 방을 향해 날렸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어제 열심히 외운 파산귀검의 호흡과 발동작을 사용해 던지는 통에, 돌을 던지는 위력이 폭발적으로 강력해져 놀라 소리쳤다.

“으악! 너무 세게 던졌구먼! 큰일이다. 피혀유!”

온동의 외침과 함께 돌에 맞은 창이 박살나며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막바우의 비명도 일었다.

“아이고! 어느 놈이 돌을 던졌어!”

박살 난 창으로 막바우가 머리를 내미는데, 돌에 맞은 건지 박살 난 창에 맞은 건지 이마가 터져 크게 부풀어 있었다.

“아저씨! 저여유!”

온동이 입에 손가락 하나를 가져가 대며 조용히 하라 신호를 보냈으나, 눈치 없는 막바우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았다.

“너! 내게 감정 있냐? 난, 너 좋게 봤는데 왜 돌 던지고 지럴이냐? 아침부터.”

막바우의 소란에 옆방에서 잠들었던 경우도 ‘뭔 일인가?’하며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갑작스레 창을 열고 밖을 살피느라 경우는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미쳐 남장을 하기 위한 상투를 틀지 못했다.

“뭔데 이리도 시끄럽소!”

자신이 머리를 풀어 헤친 것도 모르고 시끄럽게 떠들어 잠을 깨운 막바우에게 짜증부터 부렸다.

막바우는 온동에게 소리치다 말고 옆방 창을 열고 머리를 내민 경우를 빤히 바라보더니, 놀라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고는 소리쳤다.

“너! 아니, 당신! 어? 어! 어?”

막바우가 넋 나간 표정으로 버벅거리자, 경우는 그제야 자신이 삼단 같은 머리를 풀어 헤친 상태란 것을 깨닫고 급히 정색해 소리쳤다.

“뭐? 왜? 뭐가 왜?”

소리는 쳤으나 남장을 하지 않아 영락없는 여인의 모습인 자신의 상태를 알기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경우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던 막바우가 손을 들어 경우의 얼굴을 가리키고는 간신히 정상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 아니. 당신! 어쩐지 성격이 까칠하다 생각했더니…….”

“했더니? 뭐?”

자신이 남장을 한 여인임을 들킨 경우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그래도 자존심에 지지 않고 소리쳤다.

“역시나, 여자 같이 생겼었군! 어쩐지 하는 짓이 지청구만 하고 꼭 잔소리 심한 여인네 같더니, 생긴 것이 그리하여 그런 것이구먼. 이제 알았네. 하하하.”

“뭐가 어째? 이 미친!”

경우는 막바우가 자신이 남장 여인이란 것을 눈치 채지 못해 안심하기는커녕 그의 눈치 없는 소리에 더욱 화가 나 꽥 소리 질렀다.

막바우와 경우의 북새통에 마침내 평강 공주도 창을 열고 내다보았고, 독고선과 독고영도 졸린 얼굴로 창을 열고 내다보았다.

“막바우 아저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공주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독고영이 씩씩히 인사하였으나, 경우는 독고영의 인사도 받지 못하고 방 안으로 머리를 쏙 집어넣으며 들어갔고, 평강 공주가 그 인사를 대신하여 받았다.

“그래, 영이도 잘 자고 안녕하였느냐?”

“네!”

참새처럼 잘도 재잘대는 독고영에게 눈웃음을 짓고는 막바우와 온동을 번갈아 보며 평강이 물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어찌 이리 소란스럽소?”

온동의 계획대로 어쨌든 막바우가 평강 공주를 깨운 셈이다.

온동은 평강 공주와 눈이 마주치자, 넙죽 허리부터 숙여 인사를 올린 후, 막바우에게 했듯이 손가락 하나를 입에 대어 소리를 낮춰 달라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낮고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공주님, 지가 차를 가져다 올려도 되겠습니까?”

평강은 온동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에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리고는 아직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막바우와 독고선에게도 함께 차를 마시자 권했다.

“그래, 그런데 차는 아무래도 내려가서 마시는 것이 좋겠구나. 독고선님과 막바우님도 함께 내려가 차를 드시지요. 우리 영이도 내려오렴.”

“네!”

독고영이 힘차게 답하자, 평강에게 존대를 들어 신이 난 막바우와 독고선도 따라 답했다.

급히 상투를 튼 경우도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는 자신도 곧 내려가겠다고 말하고는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갔다.

평강은 온달이 존대하는 이는 그 누구도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따라 존대하였기에, 막바우와 경우는 오히려 온달보다 그녀를 진심으로 따르게 되었다.

창문을 닫고 동생에게 옷을 입히던 독고선에게 독고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경우 아가씨가 남장한 것을 막바우 아저씨는 아직 눈치 못 채신 것 같아요. 그죠?”

“그렇구나. 우리 영이도 진작 눈치 채 아는 것을… 아마도 온달님과 막바우 아저씨는 누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평생 모를 것 같구나. 하하하.”

오빠의 너털웃음에 독고영도 작은 입을 크게 벌려 따라 웃었다.

독고선이 독고영의 작은 몸을 번쩍 들어 안고 계단을 내려오자, 어느새 먼저 내려온 평강의 좌우로 막바우와 경우가 앉아 있었다.

“온달님은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는지요?”

독고선이 평강의 맞은편에 앉으며 묻자, 평강은 벙긋 웃으며 답했다.

“근래에 일이 많아 피곤하신지 늦게 일어나십니다.”

대화 중 온동이 차를 내와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평강 공주 옆에 섰다.

평강은 전날, 자신이 끝방 사내들을 찾아온 자의 행색을 기억해 알려 달라 말한 것을 상기하며 부드럽게 물었다.

“지난밤에 사내들과 약속된 이가 찾아온 것이로구나. 그래 어떤 사람이더냐?”

“예, 그게 그런데유.”

온동이 평강 공주 곁에 사람들이 있어 대답을 망설였고, 눈치 빠른 평강은 그런 온동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켰다.

“이분들은 너와 마찬가지로 온달님을 돕는 한 일족과 같은 분들이시란다. 거리 둘 필요 없단다.”

일족과 같다는 평강 공주의 말에 감격한 온동은 소상히 지난밤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막바우와 경우, 독고선 역시 평강 공주의 마음이 고마워 감격한 표정으로 온동의 이야기를 듣다가 점점 표정이 굳어져 갔다.

경우는 눈치 없는 막바우가 목소리를 높일까 염려스러워 미리 손을 뻗어 막바우의 입을 가리고는 평강에게 의중을 물었다.

“막바우, 당신은 입을 열지 마시고, 공주님! 위에 자고 있는 사내들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 뒤를 캐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강 공주가 잠시 생각하느라 머뭇거리던 사이 막바우가 경우의 손을 뿌리치고는 대뜸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목소리를 크게 높이진 않았다.

“수나라가 돌궐과 연합해 우리 고구려를 공격하려는 것인가요? 저들은 수나라의 간자들인 거죠?”

막바우의 물음에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온동이 평강을 대신하여 어른스레 답했다.

“아닐 것이구먼유. 수나라는 아닐 것이여유. 돌궐은 지금 수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아유.”

돌궐은 동으로 대흥안령과 백두산에서 서로는 알타이 산까지 이루어진 대초원의 주인을 자처하는 강자였다.

흉노부터 시작되어 돌궐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변하는 초원의 주인은 늘 중원에 터를 세운 국가들에겐 위협이었다.

수의 황제 양견이 자신의 외손자인 북주의 황제로부터 나라를 찬탈해 수로 국호를 변경하기 전, 북주는 우문선비족의 국가였다.

그러나 중원에 자리한 탓에 한족화 되면서 초원의 주인을 자처하는 돌궐을 크게 경계하여 돌궐의 칸(가한 可汗)에게 스스로 공납을 바치고 공주를 칸에게 시집보내 평화를 샀었다.

본래, 중국인들은 돌궐을 평량(平凉)의 잡호(雜胡)로 불렀는데, 평량은 감숙성의 속한 지역으로 잡호는 세력이 약한 소수의 잡다한 오랑캐란 뜻이었다.

이렇듯 한족들이 하찮게 여기던 돌궐은 한때 세가 약해 평량에서 쫓겨 알타이 산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알타이 산의 정상 형국이 투구 모양이라 하여 이들은 곧 돌궐로 불리게 되었다.

돌궐 칸의 성(姓)은 아사나(阿史那) 씨로 수가 중원을 통일하기 전, 분열로 혼란한 중원의 정세를 이용해 초원의 각 민족들을 규합한 후 남하하여 북제와 북주를 농락하고 늘 재물을 요구하였다.

또한 고구려에도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으나, 연신 패하여 칸이 사망하기도 했었다.

본래 돌궐과 고구려는 사이가 좋았다가 싸우기를 반복하는 사이로 돌궐의 힘이 강성해지면 전쟁이 일어나고, 고구려의 힘이 강하면 평화가 유지되었다.

지금은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뉘어 힘이 약해지긴 했으나, 아직 초원의 주인을 자처할 힘은 지녀, 이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칸의 원한을 갚으려고 했다.

또한, 북주로부터 나라를 빼앗은 수의 황제 양견에게 그 죄를 동시에 묻고자 궁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돌궐의 태도는 돌궐로 시집간 북주 공주들의 영향이 커, 수의 황제 양견에게 쫓겨 중원을 떠난 우문선비족과 북주의 귀족들이 돌궐에 투항해 새로운 북주 재건을 부르짖고 있었다.

수나라는 황제 양견이 돌궐의 침입을 대비해 장성을 보강하고, 선비족 출신 백마장군 공손찬의 후예인 공손성에게 돌궐을 대적하라 맡기는 한편.

돌궐을 동돌궐과 서돌궐로 갈라지게 서로 이간시키고 있기에, 돌궐을 이용해 고구려를 침범할 이유도 형편도 아니었다.

대초원의 정세와 중원의 정세는 시시각각 변화하며 각 나라가 강해지고 약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은 돌궐의 힘이 아직 강하고 수나라는 건국 초기라 힘을 모아야 할 시기며, 이러한 시기에 늘 고구려는 초원의 주인을 자처하는 이들과 일전을 벌여야 했다.

더구나 중원에 선비족의 나라인 새로운 북주를 재건하기 어려운 우문선비 일족의 잔존 세력들은 고구려의 영토를 빼앗아 그곳에서부터 힘을 기르고자, 돌궐의 칸을 충동질하는 상황이었다.

“얘야, 아니. 온동아! 너는 뭐 알고 수나라가 우리 고구려를 침범하지 않을 거라 말하는 것이냐?”

막바우는 온동이 너무도 당연하게 돌궐과 연합해 고구려를 침범하려는 세력이 수나라가 아니라 단정 짓자 눈을 크게 뜨고 온동을 바라보며 물었다.

막바우의 물음에는 결코 온동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기색은 없고 순수한 의문 해결이 담겨 있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유. 그런데유, 지금은 아니구먼유. 그럴 여유가 없어유.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려면 우선 돌궐부터 해결해야 하구먼유.”

“뭐? 돌궐?”

“네, 지금은 수가 중원을 통일하여 그 힘이 막강해 보이지만, 실상 수의 힘이 돌궐을 완벽히 제압할 정도는 아니어유. 물론 시일이 지나 몇 년 뒤엔 수나라가 돌궐을 제압하겠지만유. 하지만 수나라는 돌궐과 고구려가 서로 싸워 힘이 약해지길 바라긴 할 거여유.”

고작 일곱 살 아이가 이야기할 수준을 넘어선 말에 물어본 막바우는 물론이요, 평강 공주를 비롯한 경우까지 놀라고 말았다.

“온동아! 너는 어찌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혹시,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이냐? 있다면 들려줄 수 있느냐?”

온동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던 독고선이 현자에게 의견을 구하듯 온동에게 의견을 구했다.

온동은 자신을 수양아들로 받아 준, 수양아버지로는 꽤 젊은 독고선의 물음에 자세를 바로잡고 공손히 답했다.

“제가 산동 해적들에게 끌려가 노예로 팔려 간 곳이 바로 공손성이란 수나라 장수의 집이었구먼유.”

공손성의 집에 노예로 지냈다는 온동의 말에 경우가 기겁하며 놀라 소리쳤다.

“그럼 네가 개도 남기지 않고 도륙 내겠다고 한 그 집안이 공손성의 집안이더냐?”

“그렇구먼유. 수나라의 대돌궐 총사령관 공손성 일가를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도륙 낼 것이구먼유.”

수나라 황제 양견의 총애를 받아 대돌궐 총사령관이 된 공손성의 집안을 도륙하겠다고 태연히 말하는 일곱 살 온동의 태도에 일순 모두 경악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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