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41화 (41/328)

041화 산을 가르는 파산귀검(破山鬼劍) (5)

해진은 어리둥절해 하는 온달과 평강 공주를 바라보며 주름진 이마를 더욱 주름지게 환희 미소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조의선인들은 대대로 비검술과 백두검법이 유명하지요. 실상 우리는 이 무예에 이름을 붙인 적도 없고, 기록하여 남긴 일도 없이 늘 선대가 익혀 온 것을 입으로 전해 듣고 수련했습니다.”

“네, 그렇군요.”

“그랬기에 아마도 선대 분들께서 세인들이 부르는 이런 무예 이름을 들으셨다면 전혀 생소해 의미조차 모르실 것입니다.”

해진의 말처럼 조의선인들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수련 자체에 의미를 두었고, 문파를 이뤄 다수에게 전승하는 과정과 세인들에게 과시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화려하고 멋들어진 이름도 필요 없었으며 무공 비급서의 존재도 의미 없었다.

“이런 저희 조의선인들의 무공 중 천 년의 세월을 두고 선대까지 대를 이어 이름을 지닌 채 전해 내려오는 무공이 하나 있사온데, 우리는 이 무공을 파산신검(破山神劍)이라 부르옵지요.”

“파산신검? 검법인가요?”

해진의 말을 평강 공주가 살짝 끊으며 묻자, 해진은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물음을 반기는 기색으로 답하기 시작했다.

“네, 검법입니다. 외공을 기반으로 한 검법이지요. 저희는 적수공권의 무예나, 창, 봉 등도 다루지만, 검을 이용한 수련을 주로 합니다.”

해진은 말을 이어 갔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검술과 백두검법이 잘 알려졌으나, 선대께서 우리 조의선인들의 오의는 이 파산신검에 있다 하셨습니다.”

무예를 수련한 적 없으나, 세상일에 밝은 평강은 조의선인들의 검법 중 파산신검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해 뭔가 숨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해 다시 물었다.

“가장 심오한 절정의 검법이온데, 어찌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요?”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분명 대를 이어 전해지길 파산신검은 이름 그대로 산을 가른다 할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했습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조의선인들이 대련을 통한 수련 시, 백두검법보다 미흡할뿐더러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한다는 기본 원칙에 어긋나 방어에 심대한 약점이 있어, 이 약점 때문에 공격마저도 위력이 대단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해진은 파산신검의 약점을 말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간단히 말해 실전에서 사용한다면 상대의 공격에 대한 방어가 허술해 검과 검이 부딪칠 경우 파산신검 시전자의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군요.”

“네, 파산신검은 총 열두 초식으로 구성되어 공격 여덟 초식, 방어 네 초식이 있습니다. 공격 초식은 이렇다 할 약점은 없고, 방어 네 초식 하나하나는 훌륭합니다.”

“네……?”

“그런데… 공격 초식과 함께 사용하여 펼치면 약점이 드러나 공격 초식조차 제대로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근심을 털어 낸 해진의 눈빛은 퀭하니 들어갔으나, 여전히 맑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하여 윗대에선 수차례 보완도 했으나, 공격 초식과 함께 사용할 시 나타나는 허술한 방어가 보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약점으로 부각만 되어 큰 스승이 스승에게 입으로 전수는 하되 사용을 금한 상태이지요.”

“아! 그런 연유가 있었군요.”

“또한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기에, 일반 조의선인들은 파산신검의 존재조차 모르게 되었고요.”

“사용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세인들이 모를 수밖에 없겠군요.”

해진의 이야기에 파산신검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납득한 평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해진이 빙그레 웃으며 소리를 더욱 죽여 말하기 시작했다.

해진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무척 힘이 실렸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지난 밤 공주께옵서 제가 온달님께 전한 호흡법과 보법 등을 한 번 듣고 글로 남기시어, 밤새 그것을 들여다보며 저도 기억을 더듬어 스승께서 전하신 무공들을 처음으로 모두 글로 적어 보았지요. 이것들이 모두 그것들입니다.”

해진이 탁자 위에 놓인 두루마리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평강은 뭔가 느끼는 바가 있어 조용히 해진을 바라보았다.

“온달님께 조금 전 제가 드린 것은 파산신검에서 방어 네 초식을 제한 공격 여덟 초식으로 파산신검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오직 공격 일변도로 조정하여 파산귀검(破山鬼劍)으로 제가 함부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파산귀검…….”

온달이 자신의 앞에 놓인 두루마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막상 적어 놓고 보니, 파산신검의 방어 네 초식은 우리 조의선인들이 대를 이어 수련해 온 보법 및 호흡법 등과 일치하면서도 일부 동작에서 묘하게 어긋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실은 이 부분은 저도 마음속 깊이 의구심을 지녔던 것인데, 그동안 감히 선대에서 전해 내려온 초식을 감히 부정하지 못해 잘못된 부분을 짚어 낼 생각조차 못 하고 덧붙이려 노력만 했지요. 저뿐만 아니라 제 스승께서도 의문을 품으신 채, 덮어두셨고요.”

여기까지 말한 해진이 온달의 앞에 놓인 두루마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펴보라 했다.

온달이 두루마리를 펼쳐 보니, 공격 여덟 초식이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온달님께선 그 초식들을 모두 암기하소서.”

해진의 말에 온달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소리 죽여 나지막이 두루마리의 기재된 여덟 초식을 되뇌이기 시작했다.

“제가 아둔해 암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여러 번을 외워도 머릿속에 글자들이 둥둥 떠 쉽게 남지 않자, 온달이 송구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공주께서 온달님이 읽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미 암기하셨을 터이니, 온달님께선 큰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실 것입니다.”

해진의 말대로 평강은 온달이 읽는 소리를 듣고 파산귀검 여덟 초식을 이미 머릿속에 단단히 남긴 상태였다.

“방어 네 초식은 분명 우리 조의선인들의 보법과 호흡법을 역행하고 있어 기본을 어겼기에, 약점이 된 것이지요.”

“…….”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구전으로 전해지다 보니, 잘못된 것인지…….”

해진은 말을 이어 갔다.

“혹은 파산신검은 방어 초식이 처음엔 없었는데, 선대의 누군가가 억지로 넣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방어 네 초식을 빼니 오히려 공격 일변도의 초식들이 상대의 공격을 원천 봉쇄하여 완벽히 방어를 구성하더군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온달과 평강에게 천천히 눈을 맞추더니, 확신에 찬 표정으로 힘주어 다시 말을 이었다.

“즉, 한 동작으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한다는 기본 원칙이 지켜진 셈입니다. 아마도 공격 초식만 있음이 불안했던 선대의 누군가가 이를 보완하고자 방어 초식을 넣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고, 이를 시정하고자 손대면서 더 큰 문제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해진은 탁자 위에 놓인 두루마리들을 모두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온달과 평강을 향해 말했다.

“귀결은 공주님께 전해졌으니, 이제 제가 직접 동작을 시범 보이겠습니다. 밖으로 나가시지요.”

온달과 평강은 해진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고, 계단 아래에서 대기하던 점소이 소년은 이들을 흘깃 보더니, 잠시 이 층 객잔에 귀를 기울이고는 조그만 몸을 돌리고 온달 일행과 조금 떨어져 객잔 밖으로 따라 나왔다.

아마도 소년의 귀에는 이 층 끝방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던 것 같았다.

객잔 밖에 먼저 나와 있던 독고선과 독고영은 잠시 수련을 멈췄다.

막바우와 경우 역시, 객잔 밖으로 나온 온달 일행에게 자리를 비켜주며 독고선의 곁으로 이동했다.

양만춘도 해진과 잠시 시선을 교환하고는 빨리 오라 손짓하는 경우의 곁으로 달려갔다.

해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자 조금 넘는 길이의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는 장검의 손잡이를 쥐듯 양손으로 잡아 자세를 취했다.

고작 한 자 남짓 되는 나뭇가지였기에, 두 손으로 쥐어 자세를 잡으니, 손 위로 나온 나뭇가지는 세 치도 되지 않았다.

“딱 좋군요. 장검의 손잡이라 생각하고 조금 나온 부분을 검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파산귀검은 근골 수련을 통한 외공을 기반으로 하기에 양손으로 검을 쥐어 일격에 바위를 부수고 산을 벤다는 기세로 힘차게 초식을 펼치시면 됩니다.”

“네.”

“온달님의 신력과 운철 대검의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가장 잘 어울릴 검법이지요.”

운철 대검을 방에 두고 내려온 온달도 나뭇가지 하나를 쥐어 두 손으로 자세를 잡았다.

“먼저 일 초식부터 팔 초식까지 보여드리겠습니다.”

해진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불완전한 방어 초식을 제거한 파산귀검의 여덟 초식을 순차적으로 시범을 보였다.

손 위로 고작 조금 나온 나뭇가지임에도 빈 공간을 가르는 소리가 무척 웅후해 모두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해진을 바라보았다.

해진은 이런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천천히 팔 초식을 모두 펼쳐 나갔다.

보법과 호흡의 이치와 초식의 원리를 익히지 않고 단순히 초식의 동작만 눈으로 배워 따라 한들 품세만 익힌 것이기에, 파산귀검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해진이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시범을 보인 것이다.

“외공을 기반으로 하여 검에 내력이 실리지 않으나, 파산귀검은 보폭의 변화에 따라 중심을 이동시키며 발끝에서 허리까지 힘이 옮겨와 복압을 유지하며 호흡을 들이쉬고 내쉴 때 순간적으로 전신의 힘을 어깨에서 손목으로 옮겨 검에 싣지요.”

“…….”

“또한 초식의 각 동작과 초식 간의 연계 동작으로 점점 힘이 더해져 감히 막아서는 적의 검과 방패를 부수고 태산을 가르옵니다.”

초식을 펼치면서도 조금의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고 해진의 설명은 이어졌다.

점점 초식을 펼치는 기세가 강해지고 빨라지더니, 마지막 팔 초식을 펼치던 해진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머리 위로 나뭇가지를 들어 올려 길게 땅을 내리치듯 휘둘렀다.

땅을 향해 휘둘렀으나, 터무니없이 짧은 나뭇가지가 지면과 닿을 리 없었다.

“물론, 실제 산을 가를 순 없으나, 온달님이라면 운철 대검으로 능히 바위를 부술 수 있으시리라 생각되옵니다.”

팔 초식을 마무리한 해진의 발 앞 땅은 강한 힘으로 타격받은 듯, 세 치가 넘게 깊게 패여 해진의 앞으로 석 자 정도 길게 흔적을 남겼다.

또한 땅이 패이면서 튀어 오른 흙과 그 충격에 박살 난 작은 돌이 튀어 올라 자욱한 먼지를 만들었다.

해진은 이번엔 팔 초식부터 일 초식까지 역으로 동작을 펼치고는 다시 초식을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섞어 펼쳤다.

해진은 초식을 시범 보이면서도 주변 나무가 상할까 염려하여 항상 초식 마무리에선 나뭇가지의 끝을 지면으로 향해 파산귀검의 위력을 보였다.

해진의 초식을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나뭇가지로 펼치는 초식의 웅후함에 절로 위엄을 느껴 감탄하였다.

“막바우,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막바우가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해진이 펼치는 동작을 따라 하다 경우에게 지청구만 듣고 뻘쭘해 서자, 그 소리를 들은 온달 역시 해진의 동작을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러 참아야 했다.

‘공연히 따라 흉내 내다간 욕보겠구나.’

실상 온달이나 막바우가 해진의 동작을 따라 흉내 내기도 어려웠고, 흉내를 낸들 파산귀검 각 초식들의 이치를 깨우치지 않았기에 조금의 위력도 없을 것이었다.

오직 평강 공주만 조의선인들의 보법과 호흡법 및 파산귀검 각 초식을 기재한 두루마리를 외웠기에, 초식의 이치를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예 수련이 전무하여 해진의 동작을 따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려서 잠시 조의선인에 들어 백두검법을 익혔던 양만춘과 비록 봉술만 못하지만, 검술의 깊이가 있는 독고선도 해진의 동작을 따라 하고픈 욕망을 자신들도 모르게 품었다.

그들은 초식의 난이도와 이치를 이해 못 해 눈으로만 따르며 감탄할 뿐이었다.

무예를 조금도 모르면서도 해진의 파신귀검 시범에 취했던 평강은 해진이 펼친 초식들을 그림으로 남겨 온달에게 전하고자, 급히 점소이 소년을 불렀다.

“아가! 종이와 붓을 부탁한다.”

그러나 그녀가 부르면 아무리 작은 소리에도 알아듣고 달려오던 점소이 소년의 대답이 없었다.

큰 소리를 내어 해진의 시범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평강은 스스로 객잔 안에 들어가 종이와 붓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소리 죽여 발을 옮겼다.

평강이 객잔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위해 시선을 돌린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해진의 동작을 정확히 따라 하는 점소이 소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해진의 주위 땅이 패여 흙먼지가 자욱한 것처럼 점소이 소년의 주위도 깊진 않으나 땅이 패여 흙이 날리고 있었다.

‘이 아이가 해진님이 펼치는 파산귀검을 따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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