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화 산을 가르는 파산귀검(破山鬼劍) (3)
온달은 평강 공주가 알뜰히 전신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천을 감아도 꼼짝없다가 해질녘이 되니,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배고파!”
자는 동안 벌어진 객잔의 상황도 모르고 온달의 첫 마디는 배고프다는 소리였고, 그 소리에 평강 공주는 빙그레 웃으며 크게 안심했다.
“식욕이 도신 것 보니, 이제 피곤이 조금 가셨나 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는 거요? 하하하.”
온달은 평강 공주의 웃음이 좋아 마냥 따라 웃다가 그녀의 손에 이끌려 함께 방을 나와 객잔 이 층 탁자에 앉아 주인을 불렀다.
여지없이 객잔 주인 대신 점소이 소년이 올라왔다.
평강은 소년에게 눈인사를 건넸고, 소년은 평강의 말이 있었기에 일부러 모른 척하였다.
“우리 일행들은 다들 일어났는가?”
“아무렴유지 말이여유. 진작 일어나셔서 다들 아래층에서 의원에게 치료도 받고, 식사도 하시고, 밖에서 몸도 푸시고, 그러셔유.”
고작 많아 봐야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의 말투가 꽤나 조숙하게 들렸다.
“아무렴 우리 장군님만 하시겠어요?”
점소이 소년의 말에 평강 공주가 끼어들어 살짝 온달에게 핀잔을 주고는 소년에게 상 가득 술과 고기를 내오라고 시켰다.
“의원은 오늘 돌아간 모양이에요. 객잔 주인 말로는 내일 일찍 다시 온다 하였으니, 내일은 꼭 의원에게 몸을 보이셔야 하십니다.”
짐짓 평강이 무서운 얼굴로 온달에게 으름장을 놓자, 온달은 겸연쩍어 머리를 긁적이며 웃기만 하였다.
“하하하, 두 분께옵서 무척 즐거운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어느새 이 층으로 올라온 양만춘이 해진과 함께 온달과 평강 공주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하하하, 이 못난 사람은 그저 공주와 함께하면 즐거워 웃음이 절로 나오지요. 하하하.”
평강 공주의 얼굴 한 번 보고는 온달이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귀까지 걸리며 크게 웃었다.
평강도 온달의 그 호쾌하고 순박한 웃음이 좋아 볼이 발그레하며 미소 짓다가 양만춘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어디 가셨나요?”
저녁상을 준비시켰으니 함께 하고자 물은 것이다.
“객잔 앞에서 독고선이 영이에게 봉술을 지도하고, 막바우가 조금 떨어져 도둑 봉술을 배우고 있지요. 경우는 막바우 곁에서 지청구하며 앉아 있고요.”
양만춘의 대답에 온달과 평강은 저절로 익숙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져 크게 웃었다.
평강은 양만춘과 해진의 표정으로 짐작하건대 객잔에 사내 셋이 투숙하게 된 것을 모른다 생각했다.
“모두가 무사하시어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평강의 말속에 진정이 느껴져 양만춘과 해진도 가슴 깊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독고선 그분 봉술이 보통 아니시던데, 나도 도둑 수련을 하고 싶군요.”
온달이 괜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싱거운 소리를 했고, 그 소리에 해진이 웃으며 답했다.
“독고선 그 사람의 봉술은 깊이가 있지요. 젊은 사람이 수련을 잘했습니다. 그러나 온달님께옵선 애써 도둑 수련을 하지 않으셔도 되시옵니다.”
조의선인 한 무리의 큰 스승 신크마리 해진이 이렇듯 말하자, 눈이 휘둥그레진 온달이 놀라 되물었다.
“도둑 수련을 안 해도 된다고요? 다른 좋은 방도가 있으시온지요?”
해진 같은 지위의 사람이 허투루 말하지 않으리라 생각해 답을 구한 것이다.
온달은 그동안 평강의 지도를 받아 운철 대검을 들고 혼자 수련한 것이 전부였기에, 자신의 재주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또한 양만춘 일행과 함께하면서 이들의 몸놀림과 무예가 비상함을 내심 부러워하여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평강을 위해서 보다 나아지고 싶은 간절함이 늘 있었다.
온달의 이런 간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진은 얼굴 가득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병장기를 이용한 무예는 검술, 도법, 창술, 봉술, 비검술 등을 포함해 수십여 가지의 다양한 기법들이 있지요. 이들 기법들은 또 각 나라별, 각 군대별, 각각의 집안과 문파별 혹은 집단과 개인별로 다양하게 존재하지요.”
온달은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으나, 차근차근 설명하는 해진의 말을 감히 끊지 못하고 눈만 말똥말똥 뜬 채 듣고만 있었다.
해진은 그런 온달에게 여전히 인자한 미소와 함께 조곤조곤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병장기를 들지 않고 적수공권으로 펼치는 무예도 마찬가지로 다양한데, 이 병장기를 사용하는 무공과 적수공권을 사용하는 무공은 크게 외공과 내공이란 것으로 구분된 답니다.”
독고선이 내공과 외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연태조와 동행하던 젊은 사내와 싸움이 일어났던 것을 상기한 온달이었다.
온달은 해진의 이야기에 어느덧 푹 빠져들고 있었다.
“즉, 세상의 무공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외공과 내공으로 간단히 구분되지요. 내공은 몸속의 기를 수련해 병장기나 신체에 기를 전달하여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옵고, 외공은 신체의 근골을 단련해 병장기나 신체 일부에 근골에서 나온 힘을 실어 상대를 제압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옵니다.”
“허허, 그렇군요.”
“그런데 온달님께옵선 타고나신 신력이 뭇사람들을 능가하고 저 무거운 운철 대검을 들고 수련하시어 그 신력이 배가 되었으니, 외공은 이미 따를 자가 없으리라 생각되옵니다. 더구나 온달님의 철궁과 운철 대검은 그 자체만으로 어지간한 병장기 위에 선 물건이온데, 이것들에 온달님의 신력이 더해지니, 이것을 당할 병장기는 없습지요.”
해진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온달은 난데없는 해진의 칭찬에 당황해 얼굴이 벌게져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지요. 제게 너무 과한 말씀입니다.”
“저는 실없는 소리 하지 않는 성정이옵니다. 내공과 외공 중 무엇이 더 강하다고 평할 수 없고, 오직 수련한 이의 깊이에 따라 우열이 있을 뿐입니다.”
“…….”
“그런데 온달님의 신력은 범인이 외공 수련을 평생하고 다시 태어나 또 한다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천부적인 복이신지라, 이미 외공 수련을 평생한 이들조차 온달님의 운철 대검에 감히 맞서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해진의 극단적인 단정에 온달도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여 양만춘과 평강 공주를 바라보며 의견을 구했다.
“해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온달님.”
전혀 거짓을 말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양만춘의 심지 곧은 얼굴에서도 이런 답이 나오자, 황망해 머리만 긁적이는 온달이었다.
해진이 그런 온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마저 이야기를 진행했다.
“온달님께선 이미 충분히 강하시어 달리 누구에게 배우지 않으시고 혼자 수련을 하셔도 충분하오나, 좀 더 강해질 수 있는 방안을 제가 전해 드릴 터이니, 비록 부족한 재주이오나 이것을 온달님께서 활용하시면 크게 빛이 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해진이 자신에게 무예를 전해주겠단 말에 온달은 기쁘고 놀라 감격한 마음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해진은 온달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 일으켜 세우는데, 온달은 앙상한 해진의 손에서 결코 힘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상체가 세워짐에 탄복해 연신 머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신크마리 해진님께서 직접 우리 온달님을 지도하여 주신다니 은혜가 너무도 깊습니다.”
평강도 해진의 마음이 고마워 온달의 곁에 서서 허리 숙여 깊이 인사를 올렸다.
“저는 그저 조의선인들이 익히는 비검술의 검 날리는 잔기술과 백두검법에서 검을 다룰 때 발 놀리는 보법과 호흡 정도만 전해드리고, 그 깊이는 온달님께서 홀로 수련하시어 쌓으시는 것인지라 스승도 아니고 은혜도 아니옵니다.”
별거 아닌 잔재주라 말하지만, 보법과 호흡은 검술뿐만 아니라 힘을 싣는 몸놀림에 기본이 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조의선인들의 비검술 역시 그 이치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거칠기만 한 온달의 무예가 다듬어질 것이 분명했다.
해진의 곁에 선 양만춘도 제 일처럼 기뻐하였다.
‘온달님이 비록 태왕에게 부마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해도 평강 공주를 맞이한 신분이니, 해진님께서 이를 고려해 체면을 살려 스승이라 부르지 않도록 하시며 조의선인의 비기인 비검술을 전수해 주시려는 것이구나.’
양만춘은 그리 생각하며, 온달이 이것을 배웠을 때의 강력함을 떠올려 보았다.
‘온달님이 비검술로 운철 대검을 칠십 보 밖의 적에게 날릴 수 있다면, 세상 그 어떤 방패와 갑주도 결코 막지 못할 것이고, 겨울곰 같은 거대한 맹수도 명줄이 끊어지겠구나. 진정 온달님께 가장 잘 어울릴 기술이다.’
양만춘의 생각처럼 장검을 날리는 조의선인의 비검술은 활보다 파괴력이 강했고, 투창보다도 위력이 강한 일격필살의 무공이었다.
온달의 신력이라면 칠십 보 밖의 적에게 무시무시한 운철 대검을 날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온달님,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온달님의 신력이 실린 운철 대검이 비검술로 날아가 꽂힌다면 그 어떤 적도 감히 온달님 앞에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이번 사냥 대회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양만춘의 말에 온달이 기쁘고 고마우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난감해하며 말했다.
“이 몸이 아둔해 어찌 사냥 대회 전까지 익힐 수 있겠습니까?”
이에 해진이 웃으며 답했다.
“비검술은 장검을 칠십 보 밖까지 날려야 하는 기술이기에, 완력이 크게 필요하여 대체로 이 완력을 수련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리지요.”
“아…….”
“그러나 온달님께옵선 타고난 신력이 있으시니, 이런 절차가 줄고 오직 정확히 보내는 것에만 집중하시면 되시기에 아무래도 다른 이들보다 수련 기간이 짧을 것은 분명하옵니다.”
해진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온달도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 수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었다.
“단언컨대,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결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투박한 온달의 이 말속엔 그 무엇에도 꺾이지 않을 굳은 의지가 담겨 있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진정성은 그렇게 가슴으로 전해지는 법이다.
온달의 결의에 해진이 웃으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우리 조의선인들이 사용하는 검법엔 사실 이름이 없는데, 세인들은 백두검법이라 부르고, 중원인들은 장백검법이라 부르지요. 딱히 정해진 이름이 없으니, 이렇듯 달리 불리나 모두 같은 검술입니다.”
“네.”
“제가 전해 드릴 부분은 이 검법의 기틀인 보법과 호흡법이며 비기인 비검술이온데, 온달님의 신력과 운철 대검에 맞게 수정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 백두검법이 기반되었다 해도 전혀 다른 무예가 되리라 생각되옵니다.”
해진이 이렇듯 백두검법을 기반으로 전하지만 전혀 다른 검법이 되리라 말하는 데에는 나름에 이유가 있었다.
조의선인들은 산속에서 수련하며 큰 스승이 스승에게, 스승이 선배에게, 선배가 선인에게 입에서 입으로 무예를 전하기에 따로 글이나 그림으로 무예를 기록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능력 여하에 따라 무예 수준의 넓고 깊음이 천차만별이었다.
또한 전하는 사람이 품은 깨달음의 깊이와 수련 방식에 따라 변화가 많았는데, 해진은 온달에게만 어울릴 수단을 찾아 변형하여 전하고자 했기에, 이렇듯 말한 것이다.
마침 객잔 주인이 저녁상을 차렸기에, 밖에 있던 독고선 일행도 올라와 함께 자리했다.
막바우가 고기를 뜯으며 새로 객잔에 머물게 된 사내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경우도 한마디 거들었고 독고선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중원인들로 보이는 자들이 들어왔어요. 내쫓으려 했는데 공주님께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셨지요.”
“좀 수상해 보이는 자들인데, 내일 이곳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다 하더군요,”
그 시간에 없던 온달과 양만춘, 해진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평강 공주가 내린 결정이라 전혀 이견을 달지 않았다.
“방이 많고 객잔이 넓으니, 다른 손님들이 묵어도 상관없지요. 잘하셨소, 공주. 공주의 판단은 항상 옳소.”
그저 공주가 하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인 온달로선 당연한 말이었다.
온달마저 달리 말이 없으니, 경우와 막바우도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온달님 말씀처럼 공주님께서 뭔 생각이 있으시겠지. 헌데, 뭔 약속을 성 안도 아닌 이런 길가 객잔에서 하는 것일까? 우리야 사정이 있어 성 안에 못 들어가 이 객잔에 묵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수상해.’
‘다들 이견이 없으니 더는 말을 꺼내진 못하지만, 밤이 깊어도 주의를 해야겠구나.’
막바우와 경우는 이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배를 채우는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