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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37화 (37/328)

037화 산을 가르는 파산귀검(破山鬼劍) (1)

온달 일행은 우랑이 미리 배려해 둔 객잔에 도착해서야 겨우 노곤한 몸을 눕힐 수 있었다.

이 층으로 된 객잔은 일 층엔 탁자가 놓여 오고 가는 손님들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도록 되어 있고, 주방과 객잔 식구들의 침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 층은 계단을 올라와 바로 보이는 넓은 공간에 탁자 넷이 창가로 붙어 있었고, 이곳을 지나면 투숙객을 위한 방들이 복도를 마주 보고 양옆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우랑이 미리 객잔 주인에게 지시하여 온달 일행 이외에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였기에, 꽤 큰 객잔이 무척 고즈넉했다.

객잔 주인은 미리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와 온달 일행을 맞이하였다.

“방도 깨끗이 치웠고 목욕물도 준비했습니다. 일 층 주방 뒤에 큰 탕이 있으니, 거기서 세신(洗身)을 하셔도 되시고 방에서 씻고 싶으시면 가릴 천과 큰 통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객잔 주인은 공손히 말을 이어 갔다.

“식사는 내려오셔서 하셔도 되시고, 이 층 탁자에서 하셔도 되시며 방으로 날라도 드릴 터이니, 뭐든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주인의 태도가 여간 서글서글하여 양만춘이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어 작은 은 한 덩어리를 쥐여 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 층에서 부르면 잘 달려올 수 있도록 귀나 쫑긋하고 계시구려.”

우랑에게서 이미 충분한 은을 받았음에도 양만춘이 또다시 은 한 덩어리를 쥐여 주니, 객잔 주인의 입이 함지박만 해져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밤낮으로 계단 밑에 사환을 둘 터이니, 언제든 편히 부르십시오. 이 아이의 귀가 무척 밝아 조용히 불러도 다 듣고 올 겁니다.”

객잔 주인이 사환이라 말한 소년은 이제 겨우 독고영보다 두어 살이나 많을까?

아직 객잔 일을 돕기에 어려 보였다.

애처로운 마음에 평강 공주가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물었다.

“얘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이 아직 없구먼유. 여기서 일허니 점소이나 사환이라 불리구먼유. 포당(跑堂)이라고도 불리구유.”

익숙한 아랫녘 사투리에 온달의 얼굴에 반가움이 번지며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객잔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장의 자식이 아니오? 아직 일하기에 어려 보이는데.”

온달의 물음에 객잔 주인이 머뭇거리다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근처에 온달 일행 이외에 다른 이가 없음을 거듭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실은 이 아이는 백제인입니다.”

백제인이란 말에 막바우가 놀라 주인에게 되묻고는 바로 곁에 선 경우에게도 물었다.

“백제인? 백제 아이가 여긴 왜? 나 백제인 처음 보네. 경우 자넨 봤는가?”

“거! 주인장 말 끊지 말고 좀 들읍시다. 주인장은 계속하시오.”

사실 경우도 막바우와 마찬가지로 백제인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이 소년에 대한 것이 궁금해 객잔 주인에게 이야기를 재촉한 것이다.

아마도 고향이 죽령인 온달을 제외하고는 일행 중 그 누구도 백제인과 마주한 것은 처음이라 모두 이 소년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허구헌날 중국인, 선비, 거란, 돌궐, 말갈, 몽고인만 보았지 정작 같은 삼한 사람인 백제와 신라인은 처음이군요. 북쪽에 살아서 그런가? 허허허. 참으로 헛살았네. 같은 배에서 나오고 단군을 섬기는 삼한인임에도 이토록 교류가 없었다니.”

해진이 혀를 끌끌 차며 탄식하자, 객잔 주인이 그에게 잠시 눈길을 주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도 이곳에 살다 보니, 백제인은 처음 봤습지요. 백제인이 이곳까지 군대 끌고 올 리도 없으니…….”

온달이 객잔 주인의 웃는 낯을 쏘아보며 거칠게 물었다.

“그래, 이 아이가 어찌하여 이곳에서 사환으로 일하게 된 것이오?”

어린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온달 자신도 이 아이보다 일찍 산에 올라 나무를 지고 내려왔고, 작대기 꽂을 논밭조차 없어 온갖 동네일에 품을 팔았다.

자신이 그렇게 살았으니, 이 소년이 안쓰러운 것은 당연했다.

객잔 주인은 온달의 노기 서린 물음에 머리를 조아리며 상세히 아뢰기 시작했다.

“제가 이 아이의 부모에게 듣기로, 이 아이는 산동 지역 해적들에게 부모와 함께 끌려가 중국 어느 집에 노예로 지내다가, 지난해 가을 도망쳐 이곳까지 왔다 했습지요. 이 아이의 부모와 여동생도 이곳까지 오기는 했는데, 하룻밤을 못 넘기고 모두 세상을 떠났고 이 아이만 남아 우리 집에 머물게 된 것이지요.”

그곳에 있는 모두는 그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객잔 주인은 말을 이어 갔다.

“이름도 있을 테고, 고향도 있을 터인데, 이름을 말하지 않고, 고향도 말하지 않아 저도 더는 묻지 않는 중입니다.”

“…….”

“다만 아이의 어깨에 아가리를 벌린 이리 낙인이 찍혀 있어 그저 북주나 수나라 귀족 집에 팔려 간 노예였겠거니, 짐작하여 묻지도 못하고 고향으로 가라고 내쫓지도 못해 우리 집 일을 도우며 지내도록 하고 있습지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객잔 주인의 처사가 딱히 잘못하기는커녕 칭찬받을 만했다.

온달이 무안해 머리만 긁적이자, 평강이 방그레 웃으며 객잔 주인을 칭찬하고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인장의 마음이 곱소. 산동 지역 해적들에게 습격당했다면 이 아이의 고향은 삼한의 남녘, 서쪽 해안 지역이나 섬일 터인데 되돌아간들 또다시 해적들이 올 수도 있고, 아이의 어깨에 낙인이 찍혀 있다면 해적들에게 잡힐 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곳에 머물게 함은 참으로 잘한 일이오.”

평강이 이렇듯 칭찬하자 주눅 들었던 객잔 주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나 당부하자면, 이 아이는 아직 어리니, 주인장 그대의 보살핌이 각별하였으면 하오.”

평강의 이어진 당부에 객잔 주인이 연신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누구의 명이라고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소년은 평강 공주의 부드럽고 다정한 음색에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름 없이 사환이라 불리는 이 소년의 안내로 온달 일행은 이 층에 올랐다.

이제 겨우 둥근 해가 뜬 아침이건만, 조반 따윈 누구도 거론하지 않고 이 층에 마련된 각자의 방에 들어가 눈부터 붙였다.

평강 공주는 온달에게 상처부터 치유하고 누우라 종용했으나, 온달은 처음으로 공주의 말에 이견을 내었다.

“침상에 눕기 전에 상처부터 치유하셔야지요. 을지문덕 공의 부장이 미리 의원까지 아래에 대기시켜 놓았는데, 어찌 이러십니까?”

“하하하, 공주. 나는 소처럼 튼튼하고 무쇠만큼 단단하니 너무 심려치 마시오. 잠시 일 다경만 눈 감고 생각 좀 하다가 일어나겠소. 일 다경이오. 하하하.”

평강 공주도 온달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잠을 재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다경이면 일어나겠다던 온달은 차가 식고 또 식어도 일어나기는커녕 한낮의 해가 눈부셔 아지랑이가 올라올 무렵까지 새근새근 잘도 잤다.

너무도 곤히 자는 온달이 왠지 안쓰러워 깨우지 못한 평강 공주는 온달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어 따뜻한 물에 천을 적시고 몸을 닦아 주었다.

“이리도 많이 상하셨구나.”

깊은 상처는 없었으나 팔과 어깨, 가슴과 등 허벅지와 엉덩이 어느 한 곳도 긁히고 베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화전민 마을에서 곰과 이리를 상대하셨고, 망우산에선 도적 떼를 물리치셨으니, 몸이 성할 새가 없으시구나. 내가 너무도 과욕을 부려 우리 장군님을 사냥 대회에 서둘러 참가시켰구나. 모두 내 탓이다.”

취현당에서 도적의 검을 맨손으로 잡아 부러뜨리느라 깊게 패인 왼손의 상처를 쓰다듬고는 의원에게 받아온 약을 곱게 펴 상처에 바른 후 준비된 깨끗한 천을 감았다.

온달의 상처를 치료한 평강은 방을 나와, 이 층 객잔 창가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 차를 시키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불렀음에도 소년은 평강의 부름을 듣고 차를 내왔다,

소년은 싹싹하게 탁자를 치우고, 차를 올리고는 허리 숙여 인사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행동거지가 영특해 보이는 아이구나.’

아이의 뒷모습에 잠시 시선을 두던 평강은 소란스런 밖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따사로운 햇살이 한가로이 느껴지는 한낮의 풍경이 들어왔다.

여전히 기운 좋은 막바우가 경우의 곁에 앉아 뭐가 그리 좋은지 껄껄 웃으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바우의 시선이 향한 곳엔 독고선이 누이동생 독고영에게 봉술을 지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막바우는 어리디 어린 독고영이 제 키보다 큰 봉을 들고 오빠의 동작을 따라 열심히 몸을 놀리는 것이 귀여워 웃는 모양이다.

“영이를 구해 다행이다.”

평강 공주도 독고영이 두 다리를 앞뒤로 옮기며 힘차게 봉을 휘두르는 모습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물들며 혼자 중얼거렸다.

객잔 밖에 해진과 양만춘은 보이지 않았는데 의원에게 아직 치료 중이거나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독고영의 봉술 수련을 지켜보던 평강 공주의 시선에 두 오누이의 뒤로 짐을 진 사내 셋이 객잔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들어왔다.

옷차림새가 삼한인과 달라 중원 상단에 속한 장사치로 짐작되었다.

“이 객잔은 총관부에서 우리만 머물도록 배려했다 들었는데…….”

평강 공주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장사치 세 명은 독고선과 독고영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막바우와 경우도 이들의 등장에 의아해하며 주시하였고, 독고선은 봉술 지도를 멈추고 이들의 행색을 빠르게 살폈다.

‘허리에 짧지만, 꽤 두터운 박도를 차고 있구나.’

독고선은 이들이 허리춤에 찬 박도에 시선을 두다가 손과 어깨를 살피고는 이들의 걸음 보폭도 주시했다.

‘잘 수련된 보폭이다. 언제든 중심이 앞발에 옮겨지기 좋은 놀림이구나.’

독고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점소이 소년이 객잔 안에서 쪼르르 달려 나와 이들의 앞을 가로막더니 퉁명스레 말했다.

“객잔에 더는 손님을 받지 않구먼유.”

점소이 소년은 객잔 주인의 말대로 귀가 밝아 부리나케 달려와 막아선 것이다.

“뭣이라? 저리 탁자가 비었거늘 어찌 박대하는 것이냐?”

장사치 행색의 사내 중 하나가 객잔 안을 둘러보더니 소년에게 물었다.

중원인임에도 고구려 말이 꽤나 유창해 오히려 온달보다도 더 말 잘해 보여 평강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들에게 흥미가 생겨 계속 주시하였다.

“소상히 말씀드리진 못 허지만, 어찌 되었든 더는 못 받구먼유. 송구허구먼유. 다른 곳으로 가셔유.”

“어허, 이 맹랑한 놈을 보았나! 어찌 다른 곳으로 가라 내모는 것이냐? 썩 꺼지고 주인 나오라 전하거라!”

앞을 가로막은 소년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사내가 윽박지르는데도, 소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여전히 두 팔 벌리며 앞을 막아섰다.

소년과 사내들의 실랑이에 막바우가 일어나 앞으로 나서려 할 무렵, 객잔 안에서 주인이 달려 나와 사내들에게 손을 비비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애가 아직 어려요. 화내시지 마시고, 우리 객잔은 총관부에서 귀한 손님을 뫼시란 지시에 아무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객잔 주인의 말에 사내들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막바우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콧방귀를 뀌며 웃었다.

“그래, 여기 있는 이들이 총관부의 귀한 손님이라고 우리더러 믿으란 것이오? 우리는 내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이가 있어 달리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소.”

사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비아냥거림을 깨달은 막바우가 얼굴이 벌게져 한 소리하러 앞으로 나서자, 경우가 그의 소매를 잡아 세우며 대신 앞으로 나섰다.

“다른 곳에 머물다가 내일 약속 시각이 되어 오시면 되지 않겠소? 객잔에서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데 굳이 불청객이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경우가 막바우를 대신해 차분한 목소리로 사내들에게 좋은 말로 내일 다시 올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사내들은 경우가 호리호리한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거들떠도 보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빈정거렸다.

“기골이 장대한 당신도 총관부에서 극진히 모시는 귀빈인 게요?”

“뭐라?”

“당신처럼 그리 중한 분을 총관부로 모시지 않고 이런 객잔에 머물게 한 고구려의 위세당당한 서부총관부는 아마도 당신의 위풍당당한 체구와 무예를 믿고 따로 호위가 필요 없다 생각한 것이겠지요? 하하하.”

객잔에 머물지 못하게 함에 빈정 상했는지, 사내의 비아냥거림은 꽤나 자극적이었고, 당장이라도 싸움을 벌일 심산인 것처럼 시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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