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화 난전(亂戰) (2)
강이식이 휘두른 낭아봉이 가로로 크게 일자를 그리며 기악을 향해 날아들었다.
바람마저 박살내며 들이닥치는 강이식의 낭아봉을 기악은 방비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전투 도끼로 강이식의 머리를 노렸다.
그러나 강이식은 가속이 붙어 더욱 묵직해진 낭아봉을 가볍게 비틀어 올려 방향을 바꾸고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쳐 기악의 다리를 노렸다.
기악의 전투 도끼가 자신의 머리를 쪼개기 전 허공에 뜬 기악의 다리를 낭아봉으로 후려쳐 날려 버리려는 생각이었다.
강이식도 기악도 자신의 몸을 방어하지 않고, 오직 공격으로 상대를 먼저 제압하고자 공격 일변도였다.
기악은 전투 도끼가 강이식의 낭아봉보다 짧아 공중 도약으로 접근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려 했다.
그러나 강이식이 낭아봉을 다루는 재주 또한 빠르게 변화해 여지없이 기악의 두 다리를 박살낼 기세였다.
한 치가 길면 한 치만큼 유리한 법이다.
기범은 자신의 형이 위급함에 전투 도끼를 머리 위에서부터 일자로 내리치며 기악의 도끼와 강이식의 낭아봉 사이로 뛰어들었다.
깡!
쇠가 쇠를 강하게 내리치며 발생한 굉음이 주위 모든 이의 고막을 진동시켰다.
밑에서 쳐 올라오는 강이식의 낭아봉을 위에서 전투 도끼로 내리친 기범의 어깨가 들리며 급히 뛰어드는 통에 땅에 힘주어 딛지 못한 뒤쪽 왼발이 끝내 들렸다.
기범의 몸은 연이어 앞쪽 오른발마저 들리고는 허리까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날아갔다.
강이식의 머리를 노리며 전투 도끼를 내리치던 기악의 눈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을 허공에서 담으며, 기범을 날려 버린 강이식의 낭아봉이 멈추지 않고, 마치 범이 머리 위를 나는 새를 뛰어올라 앞발로 처내어 잡듯 자신의 다리를 곧장 노리고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쿵!
기범의 재껴진 몸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와 기악이 공중에서 급히 도끼를 내려 낭아봉을 막는 소리가 동시에 일었다.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몸을 받히지 못한 상태에서 낭아봉을 막았음에도 기악은 기범처럼 날아가지 않았다.
기악은 오히려 낭아봉의 맹렬한 기세를 이용해 몸을 더욱 공중에 띄우더니, 전투 도끼를 가볍게 끌어 올려 다시 한 번 강이식의 머리를 노리고 내리찍었다.
“허허, 좋구나!”
강이식은 기악의 재주가 대단함에 감탄하며 낭아봉을 두 손으로 잡아 올려 머리 위를 방어했다.
깡!
또다시 쇠와 쇠가 부딪혀 내는 파열음이 일었다.
기악의 전투 도끼를 빠르게 낭아봉을 들어 올려 막은 강이식은 강한 압력이 어깨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오른발 무릎으로 전해져 발목이 시큰하며 두 무릎의 힘이 빠져 자신도 모르게 오른발 무릎이 굽혀짐을 느꼈다.
“노인네가 힘이 좋구나! 좋아! 좋아!”
위급한 상황에도 강이식의 목소리는 호탕하고 거침없었다.
복부에 힘을 주어 전투 도끼의 강한 압박에 짓눌려 무너지듯 구부러지는 몸통을 단단히 만들고, 구부러진 무릎을 힘주어 펴며 만든 폭발적인 탄력을 이용해 밀어 올린 낭아봉이 기악을 전투 도끼 채 높이 허공에 띄웠다.
“노인장, 이것을 받아 보시겠소?”
기악의 전투 도끼에서 벗어난 강이식은 곧장 낭아봉을 허공에 뜬 기악에게 휘둘렀다.
기악은 이번에도 무거운 전투 도끼를 가볍게 아래로 내리쳐 낭아봉을 받아내고는 그 힘을 이용해 뒤로 날아 사뿐히 땅에 발을 딛고 섰다.
“서부총관 강이식 장군이시군요. 역시 허명이 아니시옵니다.”
애써 태연히 강이식을 칭찬하는 기악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른손에 들린 양날 전투 도끼는 낭아봉과 부딪친 곳의 날이 상해 부서져 쇳조각이 바닥에 술술 떨어져 내렸다.
파천진을 펼치기도 전에 달려든 강이식을 상대하기에 기악과 기범은 역부족이었다.
“저런, 날이 상했구먼. 그래도 한쪽 날이 남았으니 마저 하던 걸 해야지. 안 그렇소?”
강이식이 웃으며 낭아봉을 고쳐 잡고 한 발 내디뎠다.
“형님, 함께 달려듭시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기범이 비틀거리며 달려와 기악의 곁에 섰다.
기악이 옆을 돌아보니, 기범이 땅에 떨어지며 다리를 상했는지 절룩이고 있었다.
강이식이 기악과 기범 둘을 상대하는 동안, 취현당 안에서 도적 떼를 상대하던 온달은 등 뒤에서 들려온 쾅 소리에 팽무일이 바닥에 떨어졌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앞에는 아직도 도적 떼가 밀려들고 있는 상황에 팽무일마저 취현당 안으로 들어와 뒤에 있으니 독고영을 지키기에 무척 곤란한 형편이었다.
“어이쿠, 머리야. 오늘 내 머리통이 아주 고생이구나. 우리 아가가 내 검을 가지고 있구나. 이리 가져오렴.”
도적 떼의 칼을 막으며 뒤로 시선을 돌린 온달은 부서진 지붕을 통해 들어온 달빛 덕에 조금 걷힌 어둠 속에서 땅딸막한 팽무일이 히죽거리며 문 뒤에 숨은 독고영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두 눈에 담았다.
“다가오면 나의 운철 대검이 네 녀석의 머리를 박살낼 것이다!”
온달이 급히 소리쳐 팽무일의 다리를 묶으려 했다.
“그러는 네놈도 여유로워 보이진 않는데, 어찌 허세냐?”
팽무일이 온달의 으름장을 비웃으며 계속 다가왔다.
‘저 온달이란 놈이 지금 자유롭진 않아도 시커먼 운철 대검은 무서우니, 조심히 기회를 봐 저 계집아이에게서 금강대도를 빼앗아야겠구나.’
팽무일은 자신의 경공술을 믿고 온달의 곁에 숨은 독고영을 낚아채 금강대도를 취할 생각을 했다.
온달도 팽무일의 빠른 몸놀림을 알기에 신경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온달이 등 뒤의 팽무일을 신경 쓰느라 운철 대검을 휘두르는 위세가 느려졌다.
그러자 앞에서 밀고 들어오는 도적 떼들의 기세가 도리어 올랐다.
동시에 대여섯의 도적이 일시에 칼과 검을 찔러 오자 온달이 급히 몸을 정면으로 틀어 이들을 막아 냈다.
“아가! 내 검을 다오!”
이때를 놓칠 팽무일이 아니었다.
“온달님!”
독고영이 오른발로 바닥을 박차고 날듯이 독고영을 향해 일자로 팔을 쭉 뻗어 달려드는 팽무일을 피해 다급히 소리쳤다.
온달은 독고영이 위급함에 자신을 향해 앞에서 찔러 오는 도적의 검을 피하지 않고 왼손을 내밀어 도적의 검날을 쥐고는 그대로 비틀어 검을 부러뜨렸다.
검이 부러졌음에도 달려들던 속도를 늦추지 못한 도적을 온달의 피로 젖은 왼손이 확 낚아채더니 연이어 달려드는 도적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오른손의 운철 대검을 휘둘러 독고영에게 달려드는 팽무일의 등을 후려쳤다.
팽무일은 갑자기 불어닥치는 광풍에 독고영을 향해 뻗었던 손을 되돌려 땅을 짚고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팽무일이 달려들던 바닥을 온달의 운철 대검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내리쳐 돌과 나무 파편을 날렸고, 그 사이를 독고영이 잽싸게 몸을 놀려 금강대도를 품에 안고 뛰어들었다.
“영아! 내 왼쪽으로 피하거라!”
온달이 독고영을 자신의 왼쪽으로 숨기기 위해 불렀다.
독고영이 온달의 몸 뒤로 돌아 왼편에 몸을 웅크려 숨자, 바닥의 몸을 굴려 운철 대검을 피했던 팽무일도 몸을 날려 온달의 왼편으로 쫓아왔다.
“악! 온달님! 거북이 아저씨가 와요!”
팽무일의 날랜 움직임에 독고영이 놀라 소리쳤다.
온달은 앞에서 덤비는 도적의 몸통을 운철 대검으로 후려쳐 쓰러뜨리고는 왼손으로 잡아 올려 달려드는 팽무일을 향해 집어 던졌다.
팽무일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부하의 몸통을 허공에서 타 넘으며 계속 독고영을 덮쳤다.
독고영은 이틈에 바닥을 기어 온달의 몸 앞을 지나 오른편으로 숨었다.
온달을 중심으로 팽무일과 독고영이 빙글빙글 도는 형국에 전면에선 계속 도적 떼가 거대한 기둥 같은 온달을 무너뜨리기 위해 쉴 새 없이 덤벼들고 있었다.
온달은 자신이 한 발이라도 뒤로 물러설 경우 독고영과 팽무일, 도적 떼가 일순간에 합쳐질 상황인지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전면의 도적들을 상대하며 팽무일의 걸음을 늦추느라 정신없었다.
“영아! 사람들이 왔으니, 잠시만 버티거라! 내 옆을 벗어나면 안 된다.”
“네, 온달님! 열심히 돌게요!”
온달이 내지른 왼손 주먹에 맞아 지르는 도적의 비명과 함께 독고영이 가쁜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경공술이 뛰어난 팽무일이라 해도 구 척이 넘는 온달의 운철 대검이 날아들어 방해하는 통에 독고영을 쉽게 잡진 못했다.
‘저놈의 시커먼 검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 없구나. 제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내게 검까지 휘두르다니, 참으로 지독한 놈이다.’
좀처럼 독고영을 낚아채지 못해 조급해진 팽무일이 더욱 빨리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도적 떼의 거센 공격을 받으면서도 온달이 운철 대검을 휘둘러 앞을 막는 통에 번번이 실패하였다.
“도끼든 놈들은 총관님께 맡기고 우린 온달님에게 갑시다!”
온달의 귀에 양만춘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아 조금만 더 버티거라!”
온달이 독고영을 격려하며, 자신을 향해 덤비는 도적을 발로 걷어차 날려 버릴 때, 온달의 주위를 돌던 독고영의 가녀린 발목이 끝내 팽무일의 거친 손아귀에 붙잡혔다.
“이거 놔요! 온달님!”
바닥에 쓰러진 독고영이 애처롭게 온달을 불렀다.
온달은 마음이 급해 달려드는 도적 떼에게 등을 돌리고 팽무일의 몸통을 노려 운철 대검을 내리쳤다.
팽무일은 잽싸게 몸을 놀려 독고영의 작은 몸을 타고 올라가 강한 아귀힘으로 금강대도를 뺏고는 옆으로 몸을 굴려 온달의 공격을 피했다.
온달은 팽무일이 독고영을 두고 금강대도만 취해 피하자, 오히려 크게 안심하며 말했다.
“영아! 차라리 잘 되었다.”
팽무일에게 금강대도를 빼앗긴 독고영이 눈물을 글썽이며 온달을 바라보았다.
‘독고영에게 금강대도가 없으니, 팽무일은 이제 이 작은 아이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온달은 이런 생각을 하며 급히 독고영의 앞을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달려드는 도적 떼를 어깨로 들이받아 막아냈다.
간신히 금강대도를 취한 팽무일은 취현당의 입구를 막고 전투를 벌이는 온달과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와! 두령님이 금강대도를 되찾으셨다!”
“이제 두령님의 칼이 온달의 목을 벨 것이야!”
“두령님과 함께 앞뒤에서 온달을 공격하자!”
팽무일이 금강대도를 되찾은 걸 본 도적 떼들은 환호를 지르며 기세가 올랐으나, 팽무일의 시선은 차가웠다.
‘저 괴물 같은 온달 놈의 배를 가르고 취현당 밖으로 나가 기 씨 사 형제를 요절내고 싶지만, 고갯마루의 놈들이 온달을 돕기 위해 온 것 같으니, 이대로 나간다 해도 내게 결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리숙하기로 유명한 하북 탁현의 팽가장 인물들과 달리 팽무일은 어려서부터 도적질과 노름을 하며 눈치만 늘어 영악하기 그지없었다.
“이보시오! 온달 대형! 나는 칼만 찾으면 만족하기에 그대와 더 이상 다툴 생각이 없소. 그렇기에 그대를 공격하지 않을 터이니 염려 마시구려.”
팽무일의 이 말은 거세게 달아올랐던 도적 떼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팽무일의 금강대도를 경계하던 온달마저 당황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