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4화 (34/328)

034화 난전(亂戰) (1)

온달은 자신을 찔러 오는 좌측과 우측의 칼은 방비하지 않고, 우선 전면의 도적을 향해 강하게 운철 대검을 내리쳤다.

운철 대검이 윙윙 바람마저 일으키며 내리쳐 오는 기세에 놀란 도적이 급히 칼을 들어 올려 방비했다.

하지만 온달의 신력이 더해진 운철 대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도적의 칼은 허무히 박살나고 어깨뼈가 으깨진 도적은 부러진 칼과 함께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전면의 도적이 쓰러지자, 온달은 구 척의 운철 대검을 좌우로 길게 휘둘러 좌우의 도적 옆구리와 복부를 강타해 날려버렸다.

온달은 이어서 곧바로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 방향으로 운철 대검을 치켜 올리며 앞에서 달려드는 도적의 턱뼈를 바스러뜨리며 뒤로 날려 보냈다.

일련의 동작은 무척 빠르고 정확했으며, 급소 부위가 아닐지라도 온달이 내리친 운철 대검에 가격당한 도적들은 하나 같이 뒤로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렇듯 온달이 거대한 운철 대검을 휘두르며 취현당 문 앞에 버티고 서니, 감히 누구도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못 하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어 오직 눈앞에서 자신들을 향해 바람을 일으키는 온달의 거대한 운철 대검을 피하기 바빴다.

온달은 자신을 둘러싸고 달려드는 도적 떼의 수가 늘며 시야를 멀리 둘 처지가 못 되어 당장 공격해 오는 도적의 칼을 막고 되돌려 반격하는 데만 집중했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도적 떼들이지만, 온달은 여전히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끊을 수 없어 도적들의 팔과 다리, 몸통만 내리쳤다.

이런 온달의 공격만으로도 도적 떼들은 온달의 몸에 칼과 검을 가까이 들이대지 못하였다.

에워싼 도적의 수가 많으나 취현당을 등지고 선 온달을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는 도적은 서넛뿐이었고, 그마저도 구 척의 운철 대검이 거리를 벌려 쉽게 다가서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온달의 주위로 운철 대검에 맞아 뼈가 바스러져 널브러진 도적의 수 역시 늘어 온달에게 다가서기 위해선 쓰러진 동료의 몸을 밟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와 도적 떼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쓰러지는 수가 늘고 온달은 지치는 기색은커녕 호흡조차 변함없으니, 덤비는 도적들이 오히려 겁을 먹고 슬금슬금 물러나려는 눈치마저 보였다,

그때 기범이 뒤로 물러나려는 부하들의 등짝에 전투 도끼를 내리찍으며 소리쳤다.

“놈은 하나다! 계속 밀어붙이면 반드시 쓰러진다. 온달을 쓰러뜨리지 못하고 물러서는 놈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가거라!”

기범의 도끼에 찍힌 부하들의 등이 갈라져 피가 솟았고, 바닥에 쭉 뻗은 사지가 꿈틀거리긴 했으나 이미 절명한 것으로 보였다.

이 끔찍한 광경에 도적 떼들은 악에 받쳐 온달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온달도 기범이 자신의 부하를 너무도 처참히 죽이는 이 광경에 가슴이 서늘해 한 발 뒤로 물러섰고 도적 떼들은 더욱 기가 올라 온달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에 먼저 누운 동료들이 밟히어 비명을 지르자, 선두에서 달려들던 도적들의 발이 느려졌다.

이때 여지없이 온달의 운철 대검이 날아들었다.

온달의 운철 대검은 한낱 조무래기 도적들이 칼과 검으로 감히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칼과 함께 몸까지 박살 나 무너지듯 쓰러졌다.

“여간내기가 아닌데요.”

앞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던 기범이 기악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온달의 검에 갈아지더라도 계속 온달에게 달라붙게 해라! 온달 저놈도 사람이니 반드시 지쳐 쓰러질 것이다.”

기악이 차분히 말했으나, 냉정한 표정은 한기마저 서린 것 같았다.

“형님! 거북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팽무일이 서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던 기훈이 다급히 소리쳤다.

이들이 온달과 도적 떼들의 전투에 집중한 사이 팽무일이 사라진 것이다.

“이자가 어딜 간 것인가? 설마, 취현당 안으로 숨어 들어간 것은 아니겠지?”

기훈의 외침에 고개 돌려 팽무일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기악이 당황해 중얼거렸고 또다시 기훈이 소리쳤다.

“저기 있습니다! 저기!”

기훈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취현당 지붕 위로, 팽무일은 그곳에서 기왓장을 들어내고 있었다.

경공술이 뛰어난 팽무일은 모두가 온달과 도적 떼의 전투에 집중한 사이, 조용히 취현당 지붕 위로 몸을 날려 살며시 기왓장을 들어내어 안으로 들어가려던 중이었다.

“이런, 낭패다!”

팽무일과 같은 경공술을 펼칠 수 없는 기 씨 사 형제는 혼란스런 취현당 앞을 뚫고 지붕 위로 오를 재주가 없기에, 넋 놓고 바라만 봐야 했다.

온달은 도적 떼들과 싸움 중에도 기 씨 사 형제의 외침을 들었기에, 팽무일이 서 있던 곳을 살피고는 이내 그가 지붕 위로 올라갔음을 깨달았다.

‘팽무일이란 자의 몸놀림이 날래더니, 기어코 지붕 위로 올라간 모양이다. 그자가 안으로 들어가면 영이가 위험하다. 큰일이구나.’

산채로 향하는 팽무일의 뒤를 쫓으며 그의 경공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봤던 온달인지라 마음이 급해졌다.

“영아! 이리와 내 뒤에 서거라!”

팽무일이 기왓장을 뜯고 취현당 안으로 들어오면 안에 있는 독고영은 꼼짝없이 그에게 잡힐 것이 뻔하여 온달은 고개 돌려 독고영을 불렀다.

어둠 속에 홀로 남았던 독고영은 온달이 부르자 쪼르르 달려와 문 뒤에 섰고, 온달은 좀 더 문에 바짝 붙어 독고영을 지키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도적 떼들은 온달이 물러나며 잠시 틈이 생긴 사이를 노려 칼과 검을 맹렬히 휘둘러 달려들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 신경이 분산된 온달은 허벅지와 어깨를 검에 찔려 휘청거렸다.

“온달이 무너진다!”

온달의 허벅지에 검을 찌른 도적이 외치자, 뒤따른 도적들도 기세가 올라 거세게 밀려들었다.

온달은 도적 떼의 기세에 밀려 취현당 문 안으로 들어갔고, 그의 뒤를 따라 도적 떼들이 거세게 들이닥쳤다.

“온달님!”

“영아! 반드시 내 뒤에 꼭 붙어 있거라!”

도적 떼의 검과 칼이 온달의 몸 이곳저곳을 찌르고 베어 그의 옷이 피로 물들었다.

그러자 독고영이 놀라고 걱정돼 온달을 불렀으나, 온달은 도리어 독고영을 염려해 자신의 뒤에 붙으라 말했다.

팽무일이 기왓장을 들어내는 취한당 안으로 온달이 도적 떼에게 밀려들어가자, 기악이 코웃음 치며 기훈과 기용에게 지시를 내렸다.

“취현당에 기름통을 던지고 횃불로 불을 붙여라! 저 지붕 위 팽무일과 온달 둘을 산 채로 인신공양 드리자꾸나.”

기악의 지시에 기룡과 기훈이 기름통을 옮기러 움직였다.

이 소리를 들은 지붕 위의 팽무일과 취현당 안의 온달은 물론 취현당을 둘러싸고 죽을 둥 살 둥 온달과 혈전을 벌이던 도적 떼들도 경악하였다.

“너희는 계속 밀어붙여라!”

기범은 부하들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도끼를 들고 서서 으름장을 놓으며, 지붕 위 팽무일을 향해 씨익 웃었다.

“불에 타 죽고 싶지 않으면 내려오시죠. 두령님.”

웃는 얼굴과 달리 그의 손에 들린 피 묻은 전투 도끼의 양날이 달빛에 무척 빛났다.

‘오늘 내가 운수가 사납구나. 이대로 내려가면 저 기범의 도끼가 내 머리를 노릴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지붕 위에 있다간 꼼짝없이 불에 타 죽을 것이다. 별수 없구나. 놈들이 불을 지른다 해도 기왓장을 뜯고 안으로 들어가 금강대도를 취한 후 다음 일을 생각해 보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처지인 팽무일은 일단 취현당 안에 들어가 금강대도부터 찾기로 생각을 정하고 더욱 속도 높여 기왓장을 뜯기 시작했다.

“잘 뜯는군요. 어서 기왓장을 뜯고 취현당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불 싸지르기 쉽게. 하하하.”

어느새 기훈이 기름통을 안고 와 바닥에 내려놓고는 바닥에 떨어진 횃불을 집어 올리며 팽무일을 조롱했다.

팽무일은 가슴 깊이 욕지거리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기왓장을 뜯는 것에 더욱 집중해 구멍을 넓혔다.

“그래, 그래. 더욱 힘내어 기왓장을 들어내십시오. 하하하.”

기훈의 비웃음이 차가운 밤바람을 타고 팽무일의 신경을 자극했다.

분을 참지 못한 팽무일이 고개를 번쩍 들고 기훈을 향해 욕을 퍼부으려던 순간!

한 대의 화살이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팽무일의 둥근 어깨에 박혔다.

예기치 못한 화살이 몸에 박히자 팽무일은 컥 소리 한 번 내고는 몸을 벌러덩 젖히며 뒤로 넘어갔다.

미리 벌려 놓은 지붕의 구멍이 그의 둥글고 육중한 몸과 부딪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주변의 기왓장마저 와장창 무너지며 팽무일은 취현당 안으로 머리부터 떨어져 바닥에 처박혔다.

“누구냐!”

갑작스레 날아온 화살에 당황한 기 씨 사 형제가 일시에 몸을 돌렸고 차분하기만 했던 기악이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긴, 너희를 소탕하러 온 토벌대다.”

묵직하고 걸걸한 목소리, 고구려 최강의 무력 강이식이었다.

“잘했다! 경우. 자! 우린 온달님과 영이를 구하러 갑시다.”

양만춘이 활로 팽무일을 떨어뜨린 경우를 칭찬하고는 곧장 검을 뽑아 들고 내달렸다.

그의 뒤를 해진과 독고선이 따랐고 강이식도 낭아봉을 치켜들고는 성난 범의 기세로 맹렬히 덮쳐왔다.

막바우는 경우의 앞을 지켰고 경우는 취현당을 둘러싼 도적들을 향해 화살을 쉴 새 없이 날렸다.

평강 공주는 막바우와 경우의 뒤에서 온달이 혼전을 벌이고 있는 취현당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었다.

“네 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양만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기룡이 전투 도끼를 들고 달려 나오며 고함을 질렀다.

“총관님께서 토벌대라 하시지 않았느냐!”

양만춘은 앞을 막아선 기룡의 가슴을 노리고 검을 찌르며 답했다.

양만춘의 검이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히 찔러 오자 기룡은 당황해 전투 도끼를 일자로 내리쳐 양만춘의 검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양만춘의 이 수법은 기룡의 방비를 이끌어 내기 위한 허수였다.

양만춘은 달려오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검을 틀어 올려 무거운 전투 도끼를 내리치느라 상체가 숙여진 기룡의 어깨를 깊숙이 찔렀다.

기룡이 컥 소리를 내며 상체를 들려 했으나, 전투 도끼를 내리치던 가속이 여전히 남아 중심이 무너지며 오히려 몸이 더욱 앞으로 쏠렸다.

뒤에서 달려오던 독고선은 몸을 허공에 붕 띄우더니, 기룡의 숙여진 머리를 밟고 타 넘으며 기훈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독고선에게 머리를 밟힌 기룡은 땅에 얼굴을 처박았고, 기훈은 기룡의 몸을 삽시간에 타넘으며 검을 내리치는 독고선의 기세에 눌려 두어 발 물러섰다.

그 순간 해진이 던진 검이 달빛과 횃불을 받아 일렁이며 곧게 날아와 기훈의 가슴에 힘차게 박혔다.

조의선인들의 장기인 비검술이었다.

기훈은 힘차게 날아와 박힌 검의 힘이 너무도 강해, 길게 비명을 지르며 검과 함께 날아가 땅에 나뒹굴었다.

기악과 기범은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바로 온달과 함께 팽무일을 물리친 인물들이라 짐작하며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투 도끼의 느린 속도를 보완해 주는 파천진을 준비했다.

“너희는 왜 안 덤비느냐? 어서 덤비거라!”

기악과 기범이 전투 도끼를 들고 정해진 자리에 서서 서로의 몸을 방비할 자세를 취할 무렵.

득달같이 달려온 강이식이 어서 덤비라고 꾸짖고는 힘차게 낭아봉을 휘둘렀다.

범 가죽을 두른 탓인지 그의 날래고 거센 기세는 마치 성난 범의 그것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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