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2화 (32/328)

032화 온달 홀로 백 명을 대적하다 (4)

온달을 사로잡기 위해 취현당으로 밀려든 도적 떼 일진 십여 명은 문을 열고 일시에 안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앞선 도적이 맹렬히 뛰어들던 기세 그대로 외마디 비명과 함께 퉁겨져 등이 새우처럼 구부러진 채 기악과 기범 앞으로 날아왔다.

기범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부하를 받아주지 않고 무릎을 살짝 구부려 몸을 둥실 공중에 띄우면서 자신의 오른발로 걷어차 좌측으로 날려 보냈다.

기범의 이 동작은 육중한 체구와 달리 빠르고 날렵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땅에 발을 딛기도 전 취현당에 들어갔던 도적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계속하여 날아왔고, 위풍당당이 취현당을 마주 보고 섰던 기악과 기범은 좌우로 몸을 피해야 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도적들은 하나같이 흉곽과 갈비뼈가 부러져 뼈에 폐가 찔렸는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기악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걸어와 서며 기범에게 말했다.

“아니, 이놈들아! 왜 들어가자마자 날아온 게냐?”

기범이 쓰러진 부하를 발로 툭툭 차며 취현당 안의 상황을 물었으나, 흉곽과 갈비뼈가 부러진 도적은 아무런 답도 못 하고 숨만 헐떡일 뿐이었다.

“온달, 그자가 보통은 넘는가 보구나. 다시 들어가 놈을 잡아 오거라!”

기악이 뒤를 돌아 도적 무리 십여 명을 지목하며 다시 취현당 안으로 들어가 온달을 잡아 오라 명했다.

기악의 지시로 이진에 섰던 도적 무리가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야 했다.

조금 전 기세 좋게 취현당 문을 밀고 들어갔던 일진의 동료들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들어갔던 문으로 날아와 땅에 패대기쳐진 것을 보았으니 내딛는 걸음걸음 겁에 질린 것은 당연했다.

기악을 스쳐 지날 땐, 바닥에 널브러져 숨만 컥컥 내쉬며 괴로워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앞에 펼쳐져 더욱 이들의 발을 무겁게 했다.

열린 문 사이로 불이 꺼져 어두운 취현당 안의 모습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동굴 같았고, 한편으로는 거대한 맹수의 아가리 같아 흉측스럽기만 했다.

바람에 흔들려 삐걱거리는 취현당의 문소리마저 기괴하게 느껴져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 두렵게 하였다.

“온달, 그자가 정말 모두를 날려 버린 것일까?”

취현당의 열린 문 사이로 장막이 드리워진 듯 내린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선두에 선 도적이 곁의 동료에게 물었다.

“글쎄, 그자밖에 없지 않나? 누가 또 있을까?”

“혼자서 십여 명의 가슴을 작살내고 삽시간에 날려 버릴 수 있나?”

“그건 또 그렇지. 사람이 혼자선 불가하지. 그렇다면 누가 또 있단 소린데… 우리 모르게 무림 고수라도 저 안에 들어와 있단 말인가?”

“아무튼 조심하세.”

목소리를 줄여 나눈 대화지만, 주위 모두가 쥐죽은 듯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대화는 기악과 기범은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팽무일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팽무일은 금강대도를 취현당 안에 두고 온 탓에 기 씨 사 형제 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별수 없이 팔짱만 낀 채, 애써 조급한 마음을 감추고 기악이 도적 떼를 지휘하는 모습만 바라봐야 했다.

기범도 부하들의 대화를 들으며 의구심이 생겨 곁에 선 기악에게 물었다.

“형님, 온달만 있겠죠?”

“팽무일 저자가 나올 때 온달 그자만 들어갔으니, 그자와 어린 계집애만 있겠지. 도끼를 가져 오거라!”

팽무일의 표정을 슬쩍 곁눈질로 살핀 기악이 기범의 말에 대답하며 기룡과 기훈에게 도끼를 달라 말했다.

좌우의 기룡과 기훈이 가까이 다가와 기악과 기범에게 커다란 양날 도끼를 건넸다.

이들 기 씨 사 형제의 도끼는 여느 도끼들과 달리 양날 도끼로, 나비의 날개처럼 펼쳐진 도끼날의 크기는 두툼한 장정 가슴팍만큼 넓었고, 쇠로 된 도낏자루까지 포함한 길이는 오 척이 넘어 범인들은 함부로 다루기 어려웠다.

전투 도끼로 제작된 이 도끼는 적의 진영에 돌진해 방패를 부수고 막아서는 적의 몸뚱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박살내는 용도로 휘두르는 이의 완력이 무척 중요했다.

어지간한 사내는 들고 휘두르는 것조차 버거운 물건으로 팽무일의 금강대도에 쇠로 된 도끼 자루가 맥없이 잘리기 전까지, 기 씨 사 형제는 이 도끼를 들고 누구와 대적해도 패한 일이 없었다.

팽무일의 금강대도에 잘렸던 도낏자루를 대신해 새로 박아 넣은 도낏자루를 매만지며 기악이 나지막하게 자신의 곁에 선 기범, 기룡, 기훈 등 세 동생에게 말했다.

“정면만 보며 듣거라. 팽무일의 등에 있어야 할 금강대도가 안 보인다. 분명 저 안에 두고 왔을 거야. 그러니, 저 인간이 우리 가까이와 서지 못하는 것이고. 우린 저 안의 온달을 잡아내고 팽무일보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 금강대도를 취해야 한다. 알겠느냐?”

“형님, 저 거북이를 지금 치는 것이 절호의 기회 아닐까요?”

기룡이 조금 전 기범과 같은 의견을 내었다.

“아니야. 팽무일의 등에 불쑥 솟아야 할 금강대도가 안 보이지만, 만약 금강대도가 저 취현당 안에 없고 팽무일 근처 어딘가에 있다면 도리어 우리가 당한다.”

“아…….”

“게다가 우리 명을 받는 부하 중 팽무일 저자에게 붙어 충성을 바칠 놈들도 있으니,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처음으로 팽무일에게 패배를 맛본 기악은 팽무일을 극히 경계해 복수를 서두르지 않고 항상 신중했다.

“큰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부하들이 안에 웅크린 온달을 끌어내면 저와 셋째 형님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 금강대도를 찾고, 둘째 형님께서 팽무일 저자가 취현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십시오.”

“그 다음에는……?”

“우리는 안에 금강대도가 있음을 확인하면 소리칠 터이니, 그때 큰 형님도 둘째 형님과 함께 놈의 발을 붙들어 두시면 저희가 그동안 밖으로 나와 두 형님과 함께 진을 짜, 놈을 요절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 기 씨 사 형제의 전투 도끼는 그 크기가 크고 무거워, 기 씨 사 형제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에도 휘두르는 속도가 느리고, 다루는 이의 움직임도 빠르지 못한 단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 단점을 보완하여 마련된 것이 기 씨 일족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가전비기인 파천진(破天陣)이었다.

파천진은 두 명 이상이 전투 도끼를 들고 정해진 진영을 이루어 풍차 돌듯 진영을 이동하여 전투 도끼의 느린 속도를 서로가 보완하는 진법이었다.

진법을 펼치는 이가 둘보다 셋이면 위력은 곱절이 되고, 넷이면 더욱 위력이 배가 되며.

그 수가 늘면 늘수록 공격과 방어 모두 위력이 상승하지만, 오직 기 씨 일족 이외엔 전수가 금지되어 파천진을 목격한 이가 적었다.

일족에게만 전해지는 이 파천진에 대한 기 씨 일족의 자부심은 대단하여 그 어떤 무림 고수도 자신들이 진법을 펼칠 시, 감히 대적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팽무일의 금강대도와 부딪친 순간 허망하게 도낏자루가 잘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패하였다.

이날 이후, 기 씨 사 형제는 반드시 팽무일을 상대로 설욕하고자 하는 마음을 숨긴 채 그를 섬겨야 했다.

“우리는 온달과 원한이 아직은 없으니, 금강대도를 확보하면 팽무일을 도끼로 토막 낸 후, 그다음에 온달을 없애는 것이 순서다. 명심하거라.”

소리를 낮춘 기악의 말에 세 동생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순서가 팽무일이 먼저라 해도 아무 원한 없는 온달을 해하는 것은 그대로 변치 않았다.

팽무일은 여전히 이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거리에 서서 취현당을 향해 입술을 실룩거리며 실없이 웃었다.

‘저 기악이란 놈이 평소 같으면 내게 달려와 굽신거리며 명을 받을 것인데, 오늘은 오지 않는구나. 기 씨 형제들이 내게 금강대도가 없음을 아는 게야. 이를 어쩐다?’

도적 떼의 우두머리들이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동안, 이진의 도적 무리는 억지로 걸음을 옮겨 취현당 앞에 서서 누가 먼저 들어갈지 망설이고 있었다.

쿵!

기악이 도낏자루로 땅을 두드려 재촉하자, 물러설 곳이 없음을 느낀 이들은 칼과 검을 쥐고 일시에 취현당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좁은 문은 한 번에 두셋이 겨우 통과할 너비였으나, 선두가 맹렬한 기세로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고 뛰어들며 공간을 만들어 주자, 뒤이어 나머지들도 잇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전면의 어둠이 익숙해질 때까지, 마구 검과 칼을 휘두르던 이들에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만 들어왔느냐?”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위엄이 서려 있었다.

“누, 누구냐? 썩 이리 나오거라!”

아직도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각자의 무기를 휘둘러 어둠 속의 목소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앞만 겨우 방어한 도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쐐애액—

대답 대신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공기를 가르며 덮쳐 오는 소리에 도적 무리가 일제히 부르짖었다.

“온다! 막아라!”

챙챙!

무리의 좌측에서부터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도적들의 비명이 함께 울렸다.

“아악!”

비명과 비명 사이에 사람의 몸에서 관절이 부러지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파도치듯 고통에 찬 소리가 우측으로 넘실대며 몰려오자, 아직 멀쩡한 도적들은 몸을 돌려 밖으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옆구리를 가격하는 강한 충격에 컥 소리조차 못 내고 취현당의 천장과 벽으로 날아가 처박히고 말았다.

안에 들어온 도적 무리 중, 아직도 서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음 소리만 내며 사지를 뻗은 도적 무리 곁으로 다가선 온달이 운철 대검을 들어 어깨에 메고는 횃불로 환한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많구나.”

조금의 불빛도 모두 차단한 취현당의 어둠에 의존해 밖을 살핀 온달은 쓰러진 도적을 왼손으로 들어 밖으로 내던지고는 곧바로 곁에 쓰러진 다른 도적을 발로 차 연달아 밖으로 날려 보냈다.

온달의 운철 대검은 날이 없기에, 운철 대검에 맞은 도적들은 조금도 몸이 베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쇠몽둥이로 가격당한 것처럼 뼈가 박살 나 내부 장기를 찌르는 통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숨만 겨우 컥컥댈 뿐이었다.

온달은 자신이 날려 보낸 도적들이 기악과 기범 앞에 쌓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뒤로 두어 발 물러섰다.

‘추운 산속에 지은 집이라… 벽은 두꺼운 통나무와 흙으로 단단히 쌓았고, 지붕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멋진 기와를 덮었다. 비록 작지만, 강한 북풍과 짐승을 막기 딱 좋은… 도적 떼 산채에 잘 어울리는 집이다. 어지간한 공격으로 벽이 무너질 것 같진 않으나, 저 횃불이 거슬리는구나.’

통나무로 두르고 흙을 바른 벽, 온달의 생각대로 외부의 충격에 쉽게 부서지진 않겠지만, 기름 먹인 솜과 섶을 지붕에 던진 후, 그 위에 횃불을 던진다면 결코 이 집은 더 이상 제 형태를 유지하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우리를 언제까지 살려 두진 않겠지. 내가 나가서 놈들의 목표가 되어야 집에 불을 붙이지 않을 것이야. 이대로라면 놈들은 반드시 이 집을 목표로 삼아 횃불을 던져 불을 붙인다. 나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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