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1화 (31/328)

031화 온달 홀로 백 명을 대적하다 (3)

바닥에 떨어진 횃불에 비친 온달의 모습에 달려들던 도적 떼의 발이 일순 멈추었다.

사람 키보다 더 큰, 거대한 검은색 대검을 들고 거침없이 달려오는 팔 척 거구의 사내.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바로 온달이었다.

곰을 목 졸라 죽이고 호랑이를 주먹으로 때려잡았다는 온달이 풍문 그대로 거대한 바위를 공깃돌 던지듯 날려 목책을 박살내고 산채 안으로 뛰어 들어왔으니 놀란 것은 당연했다.

“오, 온달이다!”

누군가의 외침은 곧 놀람을 두려움으로 바꾸고 말았다.

온달을 향해 달려들던 기백은 모두 사라지고 목책을 지키던 도적 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바빴다.

온달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느라 정신없는 도적 떼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산채를 둘러보며 팽무일이 납치해 간 독고영이 어디 있을지 살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리자, 재 살길 찾아 도망치기 바빴던 도적 떼들의 발이 멈췄다.

온달이 목소리 방향으로 고개 돌려보니, 긴 수염의 중늙은이가 호랑이 수염을 기른 사내 곁에 서서 도망치는 도적 떼에게 호령을 하고 있었다.

기 씨 사 형제의 기악과 기범이었다.

“상대는 고작 한 명이다. 모두 에워싸 놈을 잡아라!”

위엄 있는 기악의 목소리에 도망치던 도적 떼가 몸을 돌려 온달에게 다시 덤벼들기 시작했다.

“보통은 숨어들어 오는 것이 당연한데, 목책을 부수고 요란하게 들어오다니, 역시 소문대로 바보가 맞군요.”

기범이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둘러싸인 온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악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혼자인 것 같은데, 괜히 다 깨워 데려오라 한 것 같구나. 우리는 싸움 구경이나 즐기자.”

기악은 자신의 말대로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싸움 구경을 즐기고 있었다.

온달은 자신을 둘러싼 도적 떼의 흉악한 기세에 결코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생각했다.

온달은 운철 대검을 몸 앞으로 기울여 내리며 도적 떼의 공격에 대비했다.

기악과 기범의 등장에 기세 오른 도적 떼들이 삽시간에 온달의 주위를 에워싸고 무기를 휘둘렀다.

온달이 우측에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도적을 피해 좌측으로 한발 비켜서자, 좌측에서도 두 명의 도적이 검을 빼 들고 각각 온달의 옆구리와 가슴을 노리고 찔러 왔다.

온달은 이번에도 도적들의 공격을 피해 뒤로 두어 발 물러났다.

그러나 도적 떼의 공격은 집요해 뒤로 물러선 온달을 향해 창을 쥔 도적이 온달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온달은 이번에도 운철 대검으로 덤벼드는 도적과 거리만 유지한 채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어느덧 그의 발엔 조금 전 그가 박살내고 들어온 목책 조각이 밟혔다.

“힘은 장사인데, 무예는 별거 없는 것 같습니다.”

기범이 검을 제대로 한 번 휘두르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기만 하는 온달을 비웃으며 기악에게 말했다.

“그렇군. 그러나 팽무일 그자가 쫓겨 온 것이, 아무래도 근처에 다른 패거리가 있을 듯하다. 결코 경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기범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기악은 여전히 신중했다.

기범이 기악의 말에 답하며 부하들에게 동시에 명을 내렸다.

“네, 형님. 죽이지 말고 살려서 데려오거라!”

온달을 둘러싼 도적 떼들도 그가 피하기만 하자, 처음에 놀랐던 마음이 사라져 기세가 올라 사로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온달은 고갯마루에서 팽무일과 검을 맞댄 것이 사람과 처음 겨룬 것이고, 그마저도 팽무일의 신체에 검을 댄 것이 아닌 자신을 베어 오던 금강대도를 막은 것이 전부였기에, 아직도 사람을 상대로 운철 대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이런 온달의 사정도 모르고 겁을 집어먹어 뒤로 물러선다 생각한 도적 떼들은 더욱 사납게 달려들었다.

정면에서 창을 든 도적 셋이 온달의 가슴과 복부를 노리고 찔러 들어 왔다.

온달은 더는 뒤로 피할 곳이 없다 생각하여 자신을 향해 찔러 오는 창들을 피해 몸을 살짝 옆으로 틀고는 왼팔을 벌렸다.

그리고 겨드랑이 사이에 도적 떼의 창을 끼고 왼팔로 누른 후, 몸을 지렛대 삼아 옆으로 비틀어 창을 분질렀다.

온달에게 창을 찌르던 세 명의 도적은 창이 부러지자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중 한 명을 온달이 왼손을 내밀어 목을 쥐고 번쩍 들어 올렸다.

“거북이가 데려온 아이는 어디 있느냐?”

온달의 강한 악력에 목뼈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 오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적의 입에서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취, 취현당에 있습니다.”

온달의 시선이 산채 끝 절벽에 맞닿은 기와가 멋들어진 집으로 향했다.

‘저기가 취현당이구나.’

취현당이란 현판을 읽던 온달의 시야에 기룡과 기훈이 도적 떼 백여 명을 이끌고 멀리서 달려오는 것도 들어왔다.

‘저놈들까지 몰려오면 독고영을 구할 시간이 없다. 일단 취현당까지 가서 독고영을 구한 후, 그곳에서 놈들을 상대하며 버티자.’

온달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너무도 쉽게 부하가 자백한 것에 속 터진 기범이 화가 나 소리쳤다.

“저, 저놈이! 저놈까지 모두 죽여라!”

기범의 지시에 온달을 에워싼 도적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온달은 자신을 향해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도적을 향해 왼손에 쥔 도적을 던지고는 그대로 도적 떼를 향해 몸을 날렸다.

피하기만 하던 온달의 태도가 갑작스레 변하자 공격하던 도적 떼들이 머뭇거렸고, 그 순간 온달의 묵직한 어깨가 중앙의 도적 얼굴에 부딪혔다.

황소에게 들이 받힌 듯한 그 충격에 도적의 코뼈가 무너지며 목이 홱 젖혀진 채 뒤로 날아갔다.

온달은 진열이 무너진 그 사이로 거대한 몸을 매우 빠르게 날려 뚫고는 곧장 취현당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 잡아라! 놓치지 마라!”

기범이 포위를 뚫고 달리는 온달을 잡으라고 외치자, 그제야 정신 차린 도적 떼들이 온달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목채와 조금 떨어진 앞에 있던 도적 둘이 그 소리에 달려와 온달의 앞을 막아섰다.

온달은 달리는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오른손에 쥔 운철 대검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땅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박살나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온달의 외침과 함께 운철 대검이 앞을 막아선 도적들 앞 땅을 후려치더니, 사방으로 흙과 돌을 뽑아 올려 뿌렸다.

그 기세에 그만 도적 둘은 놀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멍하니 자신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는 온달을 바라만 보았다.

“안 돼! 저놈이 취현당으로 간다. 잡아라!”

기악과 기범은 온달이 취현당을 향해 달려 나가자, 사색이 되어 소리치며 부하들과 함께 온달의 뒤를 맹렬히 쫓았다.

기범의 고함 소리에 산채 좌측과 우측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나오던 기용과 기훈도 놀라 부하들과 함께 온달을 쫓았다.

온달은 뒤에선 기악과 기범이 부하들을 이끌며 쫓아오고, 좌측에선 기용이 부하들과 함께 달려왔다.

우측에서도 기훈이 부하들과 달려왔지만, 온달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취현당만 향해 무작정 달려 나갔다.

온달의 앞 작은 초막에서 이 소란에 놀라 도적 셋이 뛰어나와 앞을 막고 칼을 휘둘렀다.

온달은 이들의 공격에도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더욱 거세게 달리며 제일 먼저 칼을 휘두르며 달려온 사내의 가슴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그리고 이 동작에 탄력을 더해 몸을 솟구쳐 좌측에서 공격해 오는 도적의 얼굴을 걷어차 날려 버렸다.

순식간에 동료 둘이 온달의 발길질에 맥없이 날아가자, 남은 도적 한 명은 감히 온달을 대적할 생각조차 못 하고 온달의 앞을 앞서 달려 도망치기 바빴다.

이 소란은 취현당 안의 팽무일에게도 전해졌다.

밖이 소란스럽자 팽무일은 독고영에게 눈을 부라리며 엄포를 놓았다.

“내가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넌 얌전히 앉아 있거라! 움직이면 돌아와 혼내줄 것이야!”

험상궂은 팽무일의 협박에도 독고영은 두려운 기색 없이 눈을 똘망똘망 뜨고 바라보았다.

“알겠다는 거야? 모르겠다는 거야? 일단 살펴보고 오자.”

이 어린 소녀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말로 더 으름장 놓아도 소용없다 생각한 팽무일은 문을 열고 취현당 밖으로 나왔다.

이때 온달이 자신의 앞을 달리던 도적의 목덜미를 왼손으로 낚아채 붙잡고는 그대로 번쩍 들어 이제 막 취현당 밖으로 나온 팽무일을 향해 집어 던졌다.

팽무일은 누군가 달려오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던 이에게 잡혀 번쩍 들어 올려지더니, 밤하늘을 새처럼 날아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것을 잠시 넋 놓고 지켜보다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금강대도를 휘둘러 막으려 했다.

“앗! 금강대도를 안에 두고 왔구나!”

등에는 칼집만 있고, 있어야 할 금강대도는 없었다.

당황한 팽무일은 자신을 덮쳐 날아오는 도적을 피해 경공술을 펼쳐 옆으로 날았다.

그 사이에 온달은 곧장 날듯이 뛰어 취현당 안으로 들어갔다.

온달이 뛰어든 취현당 앞으로 기악, 기범, 기용, 기훈이 도적 떼 백 십여 명을 이끌고 도착해 에워쌌다.

팽무일은 자신의 등에 금강대도가 없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않도록 이들 기 씨 사 형제와 조금 떨어져 서서 명령을 내렸다.

“저 안에 아이는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여 뛰어든 놈을 잡거라! 반드시 놈을 잡아서 끌어내 이 앞에 꿇려야 한다.”

“명을 받습니다.”

팽무일의 명령에 기악이 허리 숙여 답하고는 나지막이 기범에게 귀띔을 했다.

“팽무일 등에 금강대도가 없네. 그래서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떨어져 선 것 같다.”

“그렇다면 금강대도가 안에 있단 이야기군요.”

“그렇지. 온달을 제압하고 팽무일보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 금강대도를 취해야겠구나.”

“금강대도가 없으면 저 거북이는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이 기회에 지금 저 망할 거북이를 치시죠.”

성질 급한 기범이 기악을 재촉했다.

“아니다. 아직 금강대도가 우리 손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온달이 저 안에 금강대도와 함께 있으니, 아직 우리가 팽무일과 다툴 때는 아닌 것 같구나. 일단 온달부터 처리한 후 팽무일을 제거하자.”

기범과 달리 신중한 기악이 잘라 말하자, 기범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빨리 안에 들어간 온달을 잡아 이 앞에 무릎 꿇리거라!”

기범의 엄한 명령에 선두의 도적 일진 십여 명이 칼과 도끼를 들고 취현당 문 앞으로 다가섰다.

취현당에 뛰어든 온달은 문을 잠글 겨를도 없이 독고영을 찾아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방 한쪽에서 금강대도를 두 손으로 꼭 쥔 독고영이 눈을 반짝이며 온달에게 달려왔다.

“온달님!”

“영아! 무사하구나. 그런데 이 칼은…….”

독고영이 쥔 칼이 팽무일의 금강대도임을 알아본 온달이 놀라 물었다.

“저 거북이 아저씨가 두고 나갔어요.”

독고영의 대답에 온달은 결코 팽무일이 이 칼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칼은 결코 거북이 같은 악인에게 돌려줄 수 없다. 어떡하든 내가 버텨야 하는데… 내가 쓰러지면 어린 영이가 걱정이구나. 이제는 사람이 상하더라도 이 운철 대검을 휘둘러야겠구나.”

운철 대검을 쥔 온달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영아! 너는 저 뒤에 있거라! 곧 공주와 사람들이 구하러 올 것이니, 버텨야 한다. 알겠지?”

온달의 물음에 독고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꼭 그렇게 할게요!”

입을 꽉 다문 다섯 살 소녀의 눈이 무척 빛나 강한 의지가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