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화 하북 팽가장의 금강대도(金剛大刀) (3)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다 생각한 팽무일의 다리에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팽무일이 살짝 고개 숙여 내려다보니, 머리가 터진 부하가 피 묻은 손으로 그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두령님, 살려 주십시오.”
몸도 가누지 못해 겨우 기어와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이 꽤 처량해 보였다.
팽무일은 뭔가 생각났는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고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부하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물었다.
그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이 즐거워 웃음을 참는 모습 같았다.
“살고 싶으냐?”
“네, 두령. 살려 주십시오. 저를 버리지 마세요.”
“그래, 살고 싶으면 내 다리를 꽉 붙잡거라.”
팽무일의 대답에 다리를 꽉 잡으면 살길이 생길 거라 믿은 부하가 피 묻은 손으로 팽무일의 짧은 다리를 꽉 붙잡고 매달렸다.
순간, 팽무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더니, 짧은 다리를 힘차게 앞으로 뻗어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부하를 강이식에게 던져 보냈다.
“이 녀석이!”
갑작스런 팽무일의 행동에 강이식이 낭아봉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적의 허리를 후려쳤다.
허공에서 강이식의 낭아봉에 맞아 허리뼈가 부서진 도적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이 순간, 팽무일의 작고 동그란 몸뚱이가 뒤따라 날아들었다.
그렇게 팽무일이 금강대도를 휘두르자, 강이식은 일격을 피한 후 재반격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 틈에 벌어진 공간으로 팽무일이 몸을 날려 통과해 고갯마루를 향해 날듯이 내달렸다,
경공만큼은 이곳 누구보다 뛰어난 팽무일이었다.
“이런! 이놈이 잔꾀를 쓴 것이구나!”
당황한 강이식이 팽무일의 수를 깨닫고 소리쳤을 땐 팽무일은 짧은 다리를 놀려 벌써 고갯마루에 다다르고 있었다.
“경우! 놈을 막아라!”
양만춘이 고갯마루를 지키는 경우에게 소리쳤다.
경우도 이미 기다리고 있었는지 벌써 활을 팽무일에게 겨누고 힘주어 시위를 당겼다.
“거북아! 내 화살이나 처먹어라!”
“너나 처먹어라!”
경우의 외침과 동시에 팽무일도 소리 높여 외치며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진 부하를 발로 걷어차 경우에게 날렸다.
경우가 쏜 화살이 날아오는 도적의 몸에 박히더니, 도로 경우를 향해 도적의 몸과 함께 날아왔다.
막바우가 경우의 앞을 막아서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도적을 몽둥이로 후려쳐 날려 보냈다.
앞을 가렸던 도적의 몸뚱이가 사라져 시야가 열림과 동시에 팽무일의 발길질이 막바우의 가슴팍을 걷어차고는 그 기세를 이어 경우에게 금강대도를 휘둘렀다.
생각지 못한 팽무일의 공격에 막바우가 날아가고 경우도 놀라 급히 바닥을 굴러 피했다.
다행스럽게도 팽무일의 공격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다시 몸을 튕겨 앞으로 솟구친 팽무일은 열린 길을 멈추지 않고 달려 평강 공주를 향했다.
몸에 피를 잔뜩 뒤집어쓴 팽무일이 땅 위를 날듯 맹렬히 달려오자, 그 험악한 기세에 평강은 독고영을 자신의 뒤에 감추고 몸을 웅크렸다.
“나와 함께 갑시다. 공주!”
어느새 달려온 팽무일이 평강의 목덜미를 낚아채려 할 때, 온달의 성난 목소리가 벼락처럼 그의 귀를 울렸다.
“그 손 멈추지 못할까!”
천지를 뒤흔들 듯한 온달의 고함 소리에 놀란 팽무일이 그동안 안중에도 없던 온달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때,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온달의 운철 대검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히는 것이 들어왔다.
“이 건방진 놈이! 내 금강대도 맛이나 보거라!”
거대한 운철 대검이 내리꽂히며 내는 바람 소리에 기가 죽어 오히려 애써 큰소리치며 팽무일이 금강대도를 치켜 올려 운철 대검을 막아 반으로 가르려 했다.
쾅!
온달이 내리친 운철 대검과 팽무일이 휘두른 금강대도가 부딪쳤다.
팽무일은 쇠망치로 바위를 내리치는 듯한 굉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운철 대검과 맞닿은 금강대도를 쥔 오른손에서부터 어깨로 충격이 파도처럼 전해져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충격과 함께 척추를 타고 발끝까지 이어지는 묵직한 운철 대검의 무게에 전신의 관절이 납작하게 붙는 고통을 느꼈다.
“으악!”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팽무일의 동공에 온달의 운철 대검이 점점 더 거대해지며 자신의 몸을 짓눌러옴이 느껴졌다.
동시에 움츠러들었던 온몸의 관절이 반발하듯 튕겨져, 그만 의도하지 않게 땅에 붙은 작은 몸이 솟구쳐 올라 그 반동으로 몸이 뒤로 날아가 거친 바닥에 머리부터 처박히고 말았다.
감히 평강 공주를 도적 떼의 괴수가 손대려 한 것에 격분한 온달의 일격에 나뒹굴었던 팽무일은 온몸의 골격이 모두 제각각 어긋난 듯한 고통에 숨도 쉬기 어려웠다.
그러나, 팽무일도 단 일격에 뻗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내장까지 울린 고통에 엎드려 피를 한 모금 토하고는 금강대도로 땅을 짚고 다시 일어서서 피 묻은 주둥이를 실룩이며 온달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시커먼 온달의 운철 대검에 꽂혔다.
팽무일은 금강대도와 맞부딪치고도 조금의 흠집조차 없는 저 투박하고 거대한 검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며 부정하고 있었다.
온달도 그 나름대로 독고선과 해진을 상대로 너무도 쉽게 그들의 검을 가르는 금강대도의 위력을 보았기에, 자신의 운철 대검과 고작 일 합 만에 나뒹군 팽무일의 실력이 겨우 이 정도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저 땅딸보 팽가 놈이, 나를 얕잡아 보고 방심한 모양이오. 내가 저놈을 상대하는 동안 공주는 경우와 막바우에게 달려가시오.”
팽무일이 듣지 못하도록 온달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지막이 평강에게 말을 건네었다.
평강은 온달만 혼자 두고 몸을 피하고 싶지 않았으나, 혹여 자신과 독고영을 돌보기 위해 온달이 실수라도 할까 두려워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십니다. 영이와 함께 잘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거북이 사내의 칼이 무척 사납고 무서우니 우리 장군님은 주의, 또 주의하시옵소서.”
말을 마친 평강은 손을 뒤로 돌려 독고영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언제라도 달릴 수 있는 채비를 하였다.
막바우가 온달을 돕기 위해 달려 나가려 하자, 경우가 낮게 그를 불러 세웠다.
“이보시오. 막바우! 저자와 온달님이 재차 검을 마주할 때, 그때 달려가시오.”
“그건 왜?”
“아마도 그때 공주님께서 우리 쪽으로 오실 것이오. 당신은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달려 나가 저 거북이의 앞을 막아서시오. 내 활이 당신을 돕겠소.”
“그래? 알겠소. 그럼 뛰어나갈 준비 해야지.”
경우가 영리함을 겪어본 막바우인지라, 다른 말없이 몽둥이를 단단히 쥐고 팽무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팽무일은 고갯마루를 향해 강이식을 포함한 사내들이 곧 달려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단 일격에 온달을 제압하고 평강 공주를 사로잡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여 금강대도를 일자로 세우고 앞으로 쭉 내밀었다.
이대로 달려들면서 손목의 탄력을 이용해 단 일격으로 온달의 머리를 가를 계획인 것이다.
숨을 고르며 온달에게 달려들 태세를 취하던 팽무일은 경우가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누는 것을 보았다.
‘저 활을 든 놈의 솜씨가 여간 아닌데 활을 쏘지 않고 있구나. 아마도 뭔가 꿍꿍이가 있다.’
눈치 빠른 팽무일은 경우가 화살을 날리지 않고 있음에 의아함을 느꼈다.
‘시커먼 검을 든 저 덩치 큰 놈을 내가 공격하면 그 틈에 공주가 저 활을 든 놈 쪽으로 피할 게 분명하다. 놈은 내가 공주를 쫓으면 그때 화살을 날려 내 발을 묶고 공주를 피신시킬 생각인 것이야.’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팽무일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일단, 이 덩치 큰 놈을 일격에 제압하고 저 활을 든 놈에게 달려가는 공주를 사로잡아 좌측 숲속으로 뛰어들어야겠다. 모든 건 단 한순간에 진행된다.’
경우와 막바우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하는 곳, 좌측 비탈에 꽤 우거진 숲이 어둠을 드리우며 있었다.
그 숲을 뚫고 지나 두 식경 쯤, 내려가면 팽무일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는 산채가 나왔다.
팽무일은 무기를 지닌 사내들이 산길을 오른다는 부하의 보고를 받고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나온 것이라, 도적 떼의 주력은 아직도 산채에 건재했다.
경우의 활이 점점 더 긴장으로 팽팽해져 갔고, 팽무일을 향해 겨눈 온달의 운철 대검도 조금씩 그 끝이 살짝살짝 흔들렸다.
팽무일은 호흡을 가다듬고는 왼발에 힘을 주어 땅을 박차고 밀며 오른발로 땅을 힘주어 끌어당겨 튕기듯 몸을 날려 나갔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치켜든 금강대도로 온달의 머리를 가르기 위해 내리찍었다.
“가시오!”
온달은 팽무일이 공격해 오자, 뒤에 선 평강 공주에게 이때를 이용해 피신하라 외쳤다.
그리고는 자신도 운철 대검을 휘둘러 팽무일의 금강대도를 막았다.
땅을 박차고 공중에 솟구쳐 금강대도를 휘두른 팽무일은 온달의 운철 대검과 부딪칠 때도 여전히 몸이 허공에 뜬 상태였다.
조금 전 온달의 운철 대검이 위에서 짓누를 때와 달리, 숨 막힐 듯 육중한 운철 대검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운철 대검과 자신의 금강대도가 맞닿는 순간, 마치 쇠망치로 단단한 철벽을 때린 것 같은 저림이 금강대도를 쥔 손바닥에 일었다.
“이얍!”
온달이 큰 소리로 기합을 주며 공중에서 덮쳐 오던 팽무일을 운철 대검으로 막았다.
온달은 전신의 힘을 어깨와 허리에 주고 허리의 움직임을 이용해 운철 대검으로 팽무일을 쳐내어 날려 버리기 위해 어깨를 강하게 비틀어 움직였다.
이번에도 팽무일의 금강대도는 온달의 운철 대검을 가르지 못하고 거친 파열음만 내며 멈췄다.
순간, 온달의 기합 소리와 함께 팽무일의 두툼하고 둥근 몸뚱이가 공중에 붕 뜨더니, 땅바닥에 머리부터 처박히고 말았다.
온달은 아직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검으로 조금의 해도 입히지 않았기에, 팽무일을 단숨에 날려 버려 바닥에 패대기치고도 이 기회를 살려 팽무일의 숨통을 끊을 생각은 못했다.
팽무일이 머리와 목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도 그나마 목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뺐지 못한 온달의 심성 덕분이었다.
머리가 거꾸로 땅에 처박히는 순간, 팽무일의 눈에 평강 공주가 온달의 뒤에서 뛰어나와 조그만 아이의 손을 쥐고 경우에게 달려가는 것이 들어왔다.
‘저년을 사로잡아야만 오늘 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팽무일은 단단한 땅이 머리를 으깨는 고통 속에서도 몸을 일으켜 평강 공주의 뒤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두 다리가 풀려 설 수 없자, 손을 다리 삼아 네 다리로 땅을 날듯 기어 평강 공주의 뒤를 쫓았다.
여전히, 팽무일의 경공술은 뛰어났다.
온달은 팽무일이 강한 타격을 받았음에도 땅을 기어 평강의 뒤를 쫓으니, 크게 당황해 급히 팽무일을 막기 위해 내달렸다.
그러나 손을 발삼아 땅을 기어도 팽무일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고, 온달이 쫓아올 것을 이미 계산한 팽무일이 뒷발질로 돌을 걷어차 온달에게 날렸다.
날아오는 돌의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 온달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에 맞았으나 워낙 강골인 온달인지라 잠시 멈춰 주춤했을 뿐 크게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다시 팽무일을 쫓아가기 전 평강 공주는 팽무일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팽무일의 거친 손이 평강의 목덜미를 낚아채려는 찰나의 순간!
어느새 달려온 막바우가 팽무일의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 더러운 손 치워라!”
팽무일은 두 다리에 힘주어 개구리처럼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그 탄력을 이용해 두 손으로 막바우의 어깨를 잡아 눌러 타고 넘으며 두 다리로 막바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막바우를 가격한 반동을 이용해 몸을 쭉 뻗어 날리며 두 손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평강 공주의 어깨를 붙잡았다.
“악!”
평강 공주의 고운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독고영을 쥔 손마저 풀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평강 공주를 사로잡은 팽무일의 눈이 득의에 차 빛났다.
이때를 기다렸던 경우가 화살을 날렸다.
몸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 평강의 어깨를 잡은 팽무일은 경우가 날린 화살을 피할 곳이 없자, 그녀를 잡은 두 손을 풀어 경우의 화살을 막아야 했다.
팽무일에게 잡혔던 어깨가 풀린 평강은 정신없이 앞으로 달리며 뒤로 손을 뻗어 독고영의 손을 쥐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독고영의 손이 닿지 않았고, 당황한 평강이 달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팽무일이 어느새 독고영을 품에 안고 좌측 비탈길로 뛰어내려 어둠이 물든 숲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