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6화 (26/328)

026화 하북 팽가장의 금강대도(金剛大刀) (1)

온달이 술을 마시겠다 말하자, 술장수, 소금 장수뿐만 아니라 평강 공주를 비롯한 모든 이가 놀라 일제히 되물었다.

“정말 마시게요?”

“그렇소. 한 바가지 푹 퍼서 내가 먼저 마셔 보고 일 식경이 흘러도 이상 없으면 그땐 의심치 말고 다 같이 드십시다.”

“…….”

“만약 내가 이상이 생기면 아마도 저 술장수에게 해독약이 있을 터이니, 저 술장수를 붙잡아 그 약으로 해독해 주시기 바라오.”

온달의 말은 빈말 같지 않아 모든 이가 더욱 당황했고, 평강 공주만 겨우 차분히 마음을 진정해 다시 물었다.

“만약 해독약이 없으면, 어떡하옵니까?”

“그럴 땐, 저들을 내 무덤에 함께 산 채로 묻어 내 한을 풀어 주시기 바라오. 이보시오. 술장수! 어서 그 술통 이리 가져와 보시구려. 오해는 풀어야 하지 않겠소?”

평강의 물음에 답한 온달이 다시 술장수를 불렀다.

술장수는 술 항아리를 옮기기는커녕,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식은땀만 비 오듯 흘릴 뿐이었다.

“참, 사람 띄엄띄엄 본 거네.”

보다 못한 경우가 빈정거렸고, 술장수와 소금 장수들의 표정도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됐다! 때려쳐! 이런 거 안 먹힐 거라 내가 말했잖은가.”

그 순간 고개 아래에서 쇠징 두들기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어둡다. 횃불 켜라!”

맨 앞의 사내가 소리치자, 수십 개의 횃불이 삽시간에 켜지며 주위가 환해졌다.

“뭐 하냐? 너희들은 일단 이리 와라!”

맨 앞에 선 사내가 큰 소리로 술장수와 소금 장수들을 불렀다.

사내는 무척 키가 작아 장정 가슴에도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였으나, 머리는 상대적으로 크고 팔다리는 짧았다.

또한 몸통은 북처럼 커, 보기에 사람 같지 않고 거북이 같아 상당히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긴 환도를 쥐고 있었는데, 칼집에 새겨진 용 문양이 정교하고 세련된 것으로 보아 장인의 솜씨가 틀림없었다.

거북이를 닮은 땅딸보의 부름에 소금 장수와 술장수들은 기가 죽어 땅딸보 뒤에 섰다.

이들은 강이식의 말을 훔친 도적 떼로 정찰을 하던 수하의 보고를 받고 괴수가 수하들을 이끌고 온 것이다.

성미 급한 우두머리가 절벽 위에서 활을 쏘아 모두를 죽이고 재물을 뺏으려 했다.

그러나 그나마 꾀가 있다는 수하가 말했다.

“죽여 봐야 시체만 널리고 소지한 물건만 뺏을 뿐입니다. 저들의 행색이 범 거죽도 두르고 꽤나 행세하는 것들 같으니, 차라리 사로잡아 몸값을 받는 것이 재물을 두둑이 챙기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바보도 속지 않을 계책이었다.

“그래, 딱 봐도 산적 떼구만, 도적 뗀가?”

경우가 피식 웃으며 활에 화살을 단단히 먹인 후 들어 올려 땅딸보를 겨누었다.

“우린 녹림의 호걸이시다. 감히 도적, 산적에 비하지 말거라!”

땅딸보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뒤에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린 위세가 헛된 자신감을 충만시켰다고 생각한 강이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며 크게 꾸짖었다.

“네 이놈! 지금 네 눈앞에 계신 분은 고구려 태왕의 금지옥엽 공주이시다! 냉큼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지 못할까?”

강이식의 호통이 쩌렁쩌렁 고갯길에 울려 퍼져 위엄이 대단했으나, 땅딸보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잘 됐단 표정이었다.

“그래? 그거 잘 되었구나. 고구려왕의 딸이면 내가 사로잡아 첩으로 삼아야겠다. 난 그럼 고구려왕의 사위가 되는 거 아니냐? 하하하.”

사뭇 호기로운 소리였으나, 땅딸보 뒤에선 부하들은 사색이 되었고.

온달은 이 무례한 땅딸보의 도발에 크게 격분해 운철 대검을 쥐고 달려들려 했다.

“온달 아우, 잠시 참으시게. 자넨 이곳에서 공주님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내가 저놈을 잡아 올 테니, 그때 요절내시게.”

온달이 사냥 대회에 참여해야 함을 생각한 강이식의 배려였다.

“그것이 좋겠습니다. 저 거북이 같은 사내는 강 장군님에게 맡기세요.”

평강 공주도 온달을 붙잡았고, 강이식은 그들에게 싱긋 웃으며 낭아봉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감히 나 팽무일을 누구 맘대로 사로잡겠단 소리냐? 저 건방진 것들을 당장 잡아 오거라!”

자신을 팽무일이라 말한 땅딸보도 기세에서 지지 않고 부하들에게 온달 일행을 잡아오라 명했다.

땅딸보의 엄한 명령에 도적 떼 무리가 무기를 빼어 들고는 일제히 고갯길을 뛰어올랐다.

“감히, 어딜 오느냐?”

경우의 외침과 함께 그녀와 양만춘의 활이 화살을 날려 선두의 도적 떼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

동료 넷이 화살에 맞아 순식간에 쓰러지자, 고개를 뛰어오르던 도적 떼들의 발이 주춤주춤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때를 노려 양만춘이 강이식을 향해 소리쳤다.

“총관께선 자리를 지키소서. 저희가 달려들어 저 팽가 놈을 잡아오겠습니다.”

강이식이 답하기도 전에 양만춘이 검을 뽑아 들고 앞장서자, 해진도 등에서 검을 뽑아 들고 뒤를 따랐다.

조의선인들은 멀리 오십 보 밖까지 장검과 대도를 날려 적을 제압하는 비도술, 비검술이 절정에 달했다.

또한 적수공권의 무예도 뛰어났지만, 검술과 봉술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은 무예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조의선인 한 무리의 큰 스승인 신크마리 해진의 검술은 이미 상당한 경지라 그가 검을 휘두르자, 앞을 가로막던 도적 때들은 풀이 눕듯 쓰러져 길이 열렸다.

독고선도 도적 떼를 물리치는 일을 못 본 척할 수 없어, 봉을 들고 도적 떼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 팽무일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이 광경은 막바우의 심장을 격하게 뛰게 하여 몽둥이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어서 막바우는 도적 떼를 향해 달려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경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이봐요! 막바우 당신은 내 앞에서 나를 지켜야지요! 이리 무리와 싸울 때처럼 말이오. 그래야 내가 활을 편히 쏠 거 아니오?”

경우가 불러 세우자 막바우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경우의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이봐요. 당신 등으로 앞을 가리면 활은 어찌 쏘우? 옆으로 냉큼 비키시오.”

앞을 지켜도 경우가 잔소리하자, 뻘줌해진 막바우가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 시야를 열었다.

경우는 열린 시야 사이로 독고선이 팽무일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들어와, 그를 돕기 위해 팽무일을 향해 두 대의 화살을 날렸다.

거북이처럼 굼떠 보이던 팽무일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 소리에 빠르게 긴 환도를 칼집에서 뽑아 화살을 쳐냈다.

그리고는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와 자신을 내리치는 독고선의 봉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곧장 내리쳤다.

신체 관절이 만든 곡선의 동작이 직선으로 변하며 팽무일의 단단한 어깨와 허릿심이 환도에 전해져 위력이 대단했다.

독고선은 팽무일의 긴 환도가 자신이 휘두른 봉을 방비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머리를 쳐내려오자 당황해 급히 봉을 거둬 팽무일의 환도를 막았다.

비록 나무를 깎아 만든 봉이었으나, 단 한 번도 검이나 칼과 맞서 베인 적 없었기에, 독고선의 동작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팽무일의 긴 환도는 지금껏 독고선이 상대한 검이나 도와 달랐다.

팽무일의 칼 따위는 간단히 막아낼 거로 자신했던 독고선의 봉은 소리 없이 베어져 두 동강 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독고선도 어깨를 환도에 베이고 말았다.

다행히 독고선은 동체 시력이 빨라 팽무일의 환도가 봉을 가를 때 몸을 비틀어 머리가 갈라지는 것은 그나마 피할 수 있었다.

“이놈 수법이 흉악하구나! 내 검도 받아 보거라!”

해진이 독고선을 돕기 위해 급히 달려와 검을 쭉 뻗어 팽무일의 두툼한 가슴을 노렸다.

팽무일은 봉이 두 동강 난 독고선을 버려두고, 자신의 가슴을 노린 해진의 검을 상대하기 위해 재빨리 환도를 휘둘렀다.

짧은 팔로 펼친 동작치고는 신속하고 정확해, 해진의 검이 가슴 근처에 오기 전에 팽무일의 환도가 아래에서 위로 궤적을 그리고는 해진의 검과 맞닿았다.

그렇게 검과 도가 강하게 부딪혔는데도 불꽃도 튀기지 않고 아무런 저항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팽무일의 환도는 물을 가르듯 계속 아래에서 위로 궤적을 그리며 끝내 해진의 검마저 반으로 가르고 말았다.

해진은 독고선을 돕기 위해 달려들던 기세가 있어, 검의 절반이 갈라져 하늘 위로 날아올라도 동작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팽무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팽무일의 환도는 이번엔 해진의 목을 노리며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의 궤적을 그리며 베어 왔다.

“이거나 처먹어라!”

경우가 위기에 처한 해진을 돕기 위해 또다시 두 대의 화살을 날렸다.

팽무일은 해진의 목을 베어 나가던 환도를 거둬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고는 여전히 달려드는 해진을 피해 짧은 다리를 급히 놀려 두어 발 물러섰다.

해진도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아 멈춰 서서 반이나 잘린 자신의 검을 들여다보았다.

이때 팽무일의 부하들이 해진을 향해 달려들자, 독고선이 반 토막 난 봉을 양손에 각각 쥐고는 해진의 곁에 바짝 붙어서 달려드는 도적 떼를 단숨에 제압했다.

비록 팽무일의 환도에 봉이 잘리는 수모를 겪었으나, 독고선의 실력을 이런 조무래기 도적 떼가 당해낼 수는 없었다.

해진도 잘린 검을 버리고는 허허롭게 웃더니, 겁 없이 달려드는 도적 떼를 맨손으로 때려눕혔다.

“저 거북이가 지닌 환도는 하북 팽가장 장주에게 전해진다는 금강대도가 분명합니다. 무엇이든 베어 버린다는 명도이오니 조심하십시오.”

등을 맞댄 독고선이 도적 떼를 상대하면서 해진에게 말을 전하였다.

“그럼 저자가 팽가장의 장주란 말이오?”

해진이 놀라 되묻자, 독고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짧게 답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북 탁현의 팽가장은 용력이 뛰어나고 칼을 잘 쓰기로 유명하나, 학문엔 관심이 적고 지나칠 정도로 마음이 선하며 신의를 중히 여겨 세인들은 오히려 어리숙하다고 비웃는 형편이었다.

이런 그들의 순박하고 어리숙함을 노려 자신들의 이권에 팽가장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재물을 탐했다.

그랬기에 세인들에게 시달린 팽가장 인물들은 한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연 덕분에 근래에는 세인들이 그들의 무예 실력을 가늠해 볼 일이 없었다.

그러나 독고선은 부친으로부터 그들의 칼솜씨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수없이 들었기에,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팽가장의 신물인 금강대도는 팽가장 장주만이 사용하는 칼이지만, 저자의 도법은 결코 팽가장 장주라 보기 어렵습니다. 팽가장의 장주였다면 제 봉이 잘렸을 때, 제 머리도 갈라졌을 겁니다.”

독고선은 비록 팽무일에게 자신의 봉이 두 동강 났으나, 금강대도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팽무일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한 소리였다.

사실 이 말속엔 한편으로는 팽무일을 자극해 그가 흥분하여 허점이 노출되도록 유도함도 숨어 있었다.

“그럼 저자는 팽가장 장주의 칼을 훔친 도둑이로군. 어쩐지, 명문세가의 자손이 도적 떼 두령이 될 리 없지.”

산전수전 다 겪은 해진도 독고선의 뜻을 이해해 팽무일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뭐야? 도둑? 누가 도둑이란 말이냐? 네 놈들의 주둥이를 찢어 놓고 말겠다.”

팽무일의 얼굴이 벌게져 짧은 다리를 동동 구르다가, 긴 환도를 치켜들고 해진과 독고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양만춘은 해진과 독고선을 돕기 위해 달려가고 싶었으나, 자신의 앞을 막은 도적 떼를 상대하느라 여유가 없어 급히 경우에게 소리쳤다.

“경우야! 놈에게 네 활 맛 좀 보여주거라!”

이 소리에 경우의 활 솜씨가 날카롭고 정확하여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느낀 팽무일이 날아들 화살을 경계해 발을 멈추었다.

그 사이 독고선과 해진은 자신들에게 달려들던 도적 떼에게서 검을 빼앗아 팽무일을 대적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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