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화 억지스러운 싸움
청색 도포의 사내는 약장수가 한 손에 아이를 안고 뒤로 두어 장 날듯이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왼발이 땅에 닿자마자 무릎을 튕기듯 지면을 차고 다시 날아올라 약장수를 계속해 쫓으며 손바닥을 후려쳤다.
왼발로 땅을 차고 공중에 몸을 띄워, 오른손을 내리치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이 수면을 날개 펴고 솟구쳐 오르는 모습 같았다.
약장수는 계속해 자신을 따라붙으며 손바닥을 험악스레 휘두르는 청색 도포의 사내를 보고는 옆으로 피했다.
그때, 약장수는 우연스럽게 막바우 곁을 지나며 왼손에 안은 소녀를 살며시 땅에 내려놓고는 우측으로 몸을 틀어 경쾌히 움직였다.
약장수의 동작 또한 청색 도포의 사내 못지않게 날래고 경쾌해 좀처럼 둘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한 명은 허공에 몸을 솟구쳐 그 기세를 이용해 내리꽂듯 손바닥을 휘둘렀고, 다른 한 명은 그 공격에 맞서지 않고 새털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피했다.
그러니 구경하는 이들은 이 광경이 그저 신기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잘하는구나! 아이는 내가 볼 테니 마음껏 해보슈!”
막바우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흥분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약장수가 두둥실 허공에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하면서도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이런 여유로운 행동에 화가 치민 청색 도포의 사내는 더욱 거세게 손을 휘둘려 약장수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이 공격은 이전 공격보다 빠르고 매서워 급히 옆으로 몸을 날리던 약장수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청색 도포의 사내가 오른손으로 날린 공격은 허수로 약장수가 몸을 틀어 피하는 틈을 노려 왼손을 곧게 펴 칼날처럼 만든 후 손끝을 그대로 뻗어 몸이 틀어진 약장수의 옆구리를 따라 들어가 찌른 것이다.
한 줄기 바람이 날카롭게 먼저 약장수의 옆구리에 닿았고, 연이어 청색 도포의 사내가 내지른 왼손 끝이 약장수의 옆구리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약장수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청색 도포의 사내가 내지른 험악한 기세의 바람이 불어 닥쳐 여기저기서 놀라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기 바빴다.
살기를 담은 공격에 얼굴이 벌게진 약장수가 소리쳐 항의했다.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이제 그만 합시다.”
청색 도포 사내의 옆구리 살점을 후벼 파고 갈비뼈를 분지를 일격을 맞고도 약장수가 멀쩡히 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항의한 것이다.
자신의 공격을 정확히 맞고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은 약장수의 태도에 청색 도포 사내의 입꼬리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잘도 피하는군. 그게 당신이 말한 경공술이란 거요? 나의 공격을 옆구리에 맞고도 멀쩡한 것은 금강불괴고?”
자신의 공격에 맞대응하지 않고 피하다가 정확히 급소를 맞고도 고통스런 표정조차 없는 약장수를 도발하기 위한 빈정거림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나는 재주가 보잘것없어 스승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소?”
청색 도포 사내의 빈정거림에도 예를 다해 약장수가 점잖게 말했다.
그러자 더욱 분이 치밀어 오른 청색 도포의 사내가 억지를 쓰며 맹렬히 달려들었다.
“아직도 잘도 허황된 말을 씨부렁거리는구나! 그래 네가 네 스승에게 제대로 배웠다면 그 잘난 경공술도 펼치고 금강불괴라도 된다는 소리냐?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것 같으니, 내가 정신이 들도록 해주마. 어디 내 삼 초식만 받아 보아라!”
오른발로 약장수의 허벅지를 후려쳐 속도를 늦추게 하고 왼손으로 멱살을 잡은 후, 몸을 바짝 밀어붙이며 그 기세로 약장수의 명치에 주먹을 단단히 꽂아 넣었다.
약장수는 이번에도 청색 도포 사내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모두 몸으로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약장수는 작은 비명 소리조차 내지 않고 몸을 틀어 자신의 멱살을 잡은 청색 도포 사내의 왼손을 뿌리치고는 길가 아름드리나무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일련의 싸움 과정 중 약장수는 단 한 차례도 오른손에 쥔 봉을 휘두르지 않아 전혀 싸울 의사가 없음을 고수하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청색 도포 사내의 공격이 매서워 보이지만, 수차례 몸으로 받아낸 약장수가 멀쩡한 것에, 그 공격이 보기보단 위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청색 도포의 사내도 몸놀림은 약장수 못지않아 재차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려 쫓더니, 손바닥을 휘둘러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를 흉악스럽게 내며 약장수의 어깨를 내리쳤다.
이번엔 약장수도 몸을 잽싸게 놀려 공격을 옆으로 피했다.
쾅!
그 순간 소리가 요란히 나며 약장수가 피한 자리에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청색 도포 사내의 손바닥을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나뭇잎이 우수수 휘날리며 손바닥에 맞은 애꿎은 나무의 단단한 몸통이 패여 나무껍질과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광경에 구경하던 이들이 경악해 눈이 휘둥그레지며 청색 도포 사내의 장법이 흉악스럽고 매우 강력하다는 것에 놀랐다.
한편으로는 이런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한 약장수의 단단한 몸에도 놀랐다.
온달도 그제야 청색 도포의 사내가 장난삼아 약장수와 싸우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놀라, 말 위에서 내려 막고자 했다.
“잠시만요. 저들의 일행이 구경하는 것 같습니다. 약장수도 쉬이 당할 인물 같진 않으니 잠시 지켜보시지요.”
경우가 온달에게 살며시 귀띔을 하자, 온달이 고개 들어 객잔의 이 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얼굴선이 굵은 중년의 사내와 얼굴이 곱고 하얀 젊은 여인이 몸을 기울여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저들이 저자의 일행인가? 그러고 보니, 여인과 저 사내가 닮았군.”
온달의 중얼거림처럼 젊은 여인과 청색 도포의 사내는 분위기부터 얼굴 생김새까지 닮았다.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선이 굵은 중년의 사내는 상투를 틀어 비단 끈으로 묶은 행색이 이들과 달리 고구려인이 분명했다.
“저자가 이런 곳에 있군요.”
평강 공주도 온달의 시선을 따라 눈을 움직여 살피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시는 인물이오?”
온달의 물음에 그저 미소로 평강이 답했다.
온달은 공주의 그런 모습에 ‘지금은 말하기 어려운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약장수와 청색 도포 사내의 싸움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 봉을 빼 들고 덤벼 보시지! 왜 피하기만 하느냐?”
자신의 공격에 맞서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약장수의 태도에 울화통이 치민 청색 도포 사내의 외침이 들려왔다.
경우의 말대로 청색 도포 사내에게 쉽게 당할 약장수가 아니었다.
“객잔 이 층의 중년 사내는 고구려 재상에 해당하는 관직인 ‘대대로’를 지낸 인물로 연 씨 성을 사용하는 연태조란 인물입니다.”
주위가 시끄러운 틈을 타 평강 공주가 나지막이 온달에게 속삭였다.
“아니, 그런 인물이 왜 이런 곳, 객잔에? 더욱이 저런 이와 왜? 일행으로…….”
평강의 말에 놀라 하마터면 목소리를 크게 낼 뻔한 온달은 간신히 소리를 낮춰 평강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평강은 그저 미소로만 화답했다.
온달이 잠시 두 사내의 싸움에 신경을 쓰지 않던 그 순간, 막바우의 쇠징 치는 듯한 우레 같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니, 저항하지 않는 사람에게 뭐 하는 짓이오? 너무 심하지 않소?”
온달이 서둘러 시선을 옮기니,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해 품에서 날이 시퍼런 비수를 빼어 들고 약장수의 품을 찌르러 달려들고 있었다.
약장수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당황한 기색 없이 몸을 급히 피하지 않고, 청색 도포 사내의 손에 들린 비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오히려 오지랖 넓은 막바우가 더 마음 급해 소리 지르며 청색 도포 사내의 비수를 뺏으러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막바우의 생각처럼 손에 들린 비수를 호락호락 뺏길 사내가 아니었다.
사내는 옆에서 달려드는 막바우의 복부를 왼발로 가볍게 차고는 계속해 약장수의 가슴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어이쿠.”
복부를 걷어 채인 막바우가 비명을 질렀으나, 용케도 몸이 밀려나지 않고 계속 달려들더니 손을 뻗어 청색 도포 사내의 오른쪽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악! 아니 이 자식이.”
이번엔 청색 도포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막바우의 강력한 손아귀 힘에 그만 손의 힘이 풀려 비수를 떨구고 말았다.
“이 뭐 하는 짓이오? 이 시퍼런 칼로 사람을 해쳐서야 되겠소? 뭔 원수진 일 있다고 이러는 것이오? 어디 말이나 들어 봅시다.”
막바우의 커다란 손이 사내의 희고 얇은 손목을 들어 올린 후 이리저리 마구 흔들었다.
봉두난발 한 머리에 누더기를 걸친 미천한 인간의 손에 손목은 물론 온몸이 마구 흔들리자, 청색 도포 사내의 얼굴은 수치심과 분노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당장이라도 막바우를 쳐 죽이고 싶었으나, 오른손 손목이 너무도 저리고 아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래, 상아! 이제 그만하거라. 중원인을 중오 한들 여기는 고구려가 아니냐. 이제 그만하고 들어오거라.”
객잔 이 층 창가에 기대어 내려다보던 젊은 여인이 곱고 단아한 음성으로 청색 도포 사내를 불렀다.
그 목소리의 묘한 매력이 있어 막바우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시선을 올린 순간이었다.
청색 도포 사내의 왼발 끝이 신속히 올라 무릎이 구부러지다가 그대로 쫙 펴지며 막바우의 목을 발끝으로 차올렸다.
“컥.”
잠시 방심했던 막바우는 사내에게 목을 발로 차여 고개를 확 뒤로 재낀 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직도 노기가 풀리지 않은 사내는 그대로 몸을 날려 바닥에 쓰러진 막바우의 목을 노리고 온몸의 힘을 무릎에 실어, 공중에서 그대로 찍어 내려갔다.
“이보게 막바우!”
온달이 놀라 외치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청색 도포 사내의 살기등등한 공격을 그대로 무방비 상태의 막바우가 목으로 받을 경우, 필시 목뼈가 부러질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온달과 청색 도포 사내와의 거리는 대여섯 장 정도였기에, 온달이 달려들 때는 이미 막바우의 목이 부러진 후가 분명했다.
바닥에 쓰러진 막바우는 목을 채인 충격에 숨을 컥컥 내쉬면서도 움직여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흉한 살수는 사용해선 안 되지요.”
그동안 청색 도포 사내의 공격을 피하고 맞기만 하던 약장수가 태도를 바꿔 처음으로 봉을 내밀어 청색 도포 사내의 다리를 향해 찔렀다.
몸이 허공에 뜬 상태라 약장수의 봉을 피하지 못한 청색 도포 사내는 막바우를 내리찍기 위해 구부렸던 무릎을 맞아 그만 방향이 틀어졌다.
그 결과, 그는 단단한 바닥을 무릎으로 강하게 내리찍고는 끝내 고통에 겨워 아이처럼 울부짖고 말았다.
청색 도포 사내의 비명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객잔에서 흑의 사내 다섯이 칼을 뽑아 들고 뛰어나와 약장수와 막바우를 에워쌌다.
그리고 흑의 사내들의 뒤를 따라 하얀색 도복을 걸친 노인이 하얗고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와 섰다.
노인과 흑의 사내들은 상투를 틀어 고구려인의 행색이 분명했다.
“이런, 이런. 우리 상 공자께서 하찮은 것들에게 망신당하셨구려. 그러길래 증오를 함부로 아무에게나 풀지 마시라 했거늘. 쯧쯧.”
점잖은 음색과 달리 막바우와 약장수를 번갈아 노려보는 노인의 눈길은 뱀의 그것처럼 무척 차갑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