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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18화 (18/328)

018화 허황된 중원의 무술 (2)

맑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객잔 앞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일시에 고개를 올려 객잔 이 층을 바라보았다.

젊고 준수한 외모의 사내가 머리에 푸른 띠를 둘러 긴 머리를 묶었는데, 일순 상체가 모두 드러나 보이더니 튕기듯 몸이 솟구쳐 창밖으로 전신이 나왔다.

그리고는 가볍게 처마를 왼발로 디뎌 재차 몸을 허공에 솟구친 후, 몸을 앞으로 기울여 공중에서 한 바퀴 제비를 돌며 땅에 사뿐히 내렸다.

사람 키 세 배쯤 되는 높이에서 가볍게 뛰어내리는 동작에 주위 모든 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군중 속에서 봉술 시범을 구경하던 막바우도 산골에선 볼 수 없는 광경에 신이나 연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이야! 잘한다! 담비보다 날래구먼! 새가 따로 없네.”

우렁찬 막바우의 외침에 객잔 이 층에서 뛰어내린 사내가 얼굴에 의기양양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가득 담고 웃음으로 화답했다.

온달이 사내의 모습을 살펴보니, 광택이 도는 비단으로 만든 청색 도포를 잘 차려입고 금실로 어깨와 등에 호랑이와 이리를 수놓았으며,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가죽 신발을 신었는데, 역시 금실로 여러 동물 문양을 수놓았다.

사내는 얼굴이 하얗고 코가 오뚝하며 눈의 색이 갈색으로 상당히 준수한 외모였다.

또한 사내는 양쪽 귀에 금으로 고리를 꼬아 만든 귀고리를 했다.

이 귀고리의 세공 기술은 무척 섬세하고 깔끔했다.

사내는 주변의 사람들보다 훌쩍 큰 키였으나, 눈빛이 어딘지 소년 같은 느낌이 들어 나이는 약관을 넘지 못한 것 같았다.

한눈에도 주변 그 누구보다 값비싼 옷을 차려입었으니, 신분이 귀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청색 도포 사내에게 모두가 길을 열어 주었다.

복식에 어두운 온달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단지 그가 입은 옷이 귀해 보여 신분이 높을 거란 짐작만 했다.

그러나 평강 공주와 경우는 단번에 그의 복식으로 신분을 가늠했다.

도포는 중원에서 관자(冠者)가 입는 겉옷으로 관리들이 관청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평상복으로 많이 입었다.

원래는 도교나 불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승려와 도사의 권투(圈套)에서 유래되어 승복인 장삼(長衫)과도 동일하여, 포 앞에 도를 붙여 도포라 부른 것인데, 경우에 따라 도복이라 불리기도 했다.

고구려인은 그들만의 포를 입었고 관복은 별도로 입어 중국식 도포를 아직 따르는 이가 없었다.

중원 한족들의 도포는 관리들이 관복을 일상복으로 입지 못하기 때문에 관복을 변형하여 일상복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직이 없더라도 신분이 귀한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도포를 일상복으로 만들어 입었다.

삼한인들이 중원인처럼 도포로 신분이 귀함을 나타내기 위해 일상복으로 입기 시작한 것은 당시엔 없는 일이니, 평강 공주와 경우가 대번에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신분을 눈치 챈 것은 당연했다.

‘겉옷이 길게 늘어진 것이 꽤나 멋들어진 옷이구나. 도력 높은 도사가 한껏 멋 낸 품새인데. 저런 애송이가 도사일 리는 없고, 말은 또박또박 잘도 하지만, 우리 고구려인은 아닌 것 같구나.’

사내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한 경우가 계속 사내의 행색을 살폈다.

‘아마도 중원 어딘가의 귀한 집 자제일 것 같은데, 평강 공주께서는 저런 귀한 신분을 많이 보았을 터이니, 짐작 가는 바가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경우가 곁눈으로 평강을 살피니, 평강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신분이 귀함을 나타내는 도포를 입고 금실로 동물 문양을 수놓았으며 금으로 꼬아 만든 귀고리라…, 우리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하니, 이곳에서 자란 선비족일런가?’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온 북주 고관의 후손일런가? 억양으로 봐선 결코 신라와는 무관해 보이는구나. 아무튼 저 고약을 팔기 위해 봉술하는 사내도, 이 청포를 입은 사내도 우리 고구려인은 아니다.’

선비족은 이민족이면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민족이기도 했다.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막았던 진시황 이전부터 강성했던 기마 민족으로 몽고 고원 먼 동쪽 지역에서 살았었다.

이들은 동호의 후예로 몽골, 거란과도 피가 이어져 있었고, 고구려는 물론 신라와도 피가 이어져 신라의 쇠 금(金)자를 성으로 사용하는 김(金) 씨 성의 왕들은 이들과 오래전부터 혈연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은 흉노족보다 강성했으나 한동안 흉노족에게 복속되어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흉노족이 멸망한 후 다시 독립해 중원 땅에 소수의 선비족이 다수의 한족을 지배하는 연나라를 세웠었다.

중원의 수많은 왕조가 멸망하듯 선비족이 세운 나라는 여러 이름으로 중원 땅에 망하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으나, 이들이 세운 나라를 사람들은 국호와 무관하게 항상 연이라 불렀다.

선비족이란 명칭은 동호가 흉노에게 멸망한 뒤에 살아남은 동호의 후예 중 선비산으로 들어간 무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지역에서 연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에 의해 선비족은 완벽히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 잊혀 가는 중이었다.

이들이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 세력을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수나라의 황족 양 씨 일족과 이후 세워질 당나라의 황족 이 씨 일족이 한족화된 선비족, 혹은 선비족의 혼혈이었기 때문이다.

황실이 앞장서, 자신들의 문화를 버리고 한족화에 나서니 사라짐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의 양 씨뿐만 아니라, 모용 씨, 독고 씨, 탁발 씨, 우문 씨, 공손 씨 등이 대표적인 선비족의 후예로 한때, 공손 씨 일족이 세우고 지배하던 요동성과 요동벌을 차지한 고구려는 숱한 세월 이들 선비족과 대립해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가장 인접해 중원의 한족보다 문화적 동질성이 높아 교류도 잦았다.

그렇기에 연나라와 후연의 뒤를 이은 선비족의 나라 북주마저 멸망하면서 북주 재건을 위해 초원으로 세력을 옮기거나 고구려로 망명 온 이들이 상당했다.

평강 공주와 경우 두 여인이 말 위에서 이런 생각에 잠길 무렵.

난데없이 객잔 이 층에서 뛰어내린 청색 도포 사내의 등장에 봉술을 시범 보이던 약장수가 동작을 멈추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사내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의 스승께서 그리 신묘한 재주를 지니셨으니, 당신도 그 내공이란 것을 배우셨겠지요? 어디 구경 좀 합시다.”

두어 걸음 정도 사이를 두고 걸음을 멈춘 청색 도포의 사내가 만면에 웃음 가득해 물었다.

청색 도포 사내의 표정은 마치 재밌는 짐승을 잡아 즐거워하는 아이의 그것과도 닮았다.

“제가 아둔해 스승께 전혀 배울 수 없었습니다. 송구하게도 보여드릴 것이라곤 이 봉술 이외엔 없습니다.”

다소곳이 답하는 말투와 몸가짐이 그저 봉술이나 선보이며 고약 파는 약장수답지 않았다.

“당신의 스승께 배운 것이 그 봉술이란 말이지요? 어디 그럼 중원의 신묘한 봉술 좀 구경해 봅시다. 중국은 예부터 창과 봉을 잘 다루고 고구려인들은 활을 잘 다룬다 했으니, 중원의 봉술이 그 얼마나 대단하겠소?”

“허허.”

“당신이 나를 그 봉술로 이기면 내가 여기 이 고약을 모두 다 사겠소이다. 아가, 어떠냐? 너도 좋겠지?”

여전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말하던 청색 도포의 사내가 봉을 쥔 약장수의 뒤에 숨은 소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거 잘 되었네. 어디 한번 겨뤄 보시오!”

청색 도포 사내의 제안에 구경하던 이들이 신이나 떠들어 대었다.

봉을 쥔 사내도 고약을 모두 사겠단 제안이 솔깃했는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런데 내가 이기면 나도 뭔가 얻어야겠으니, 당신이 지면 다리를 스스로 분지르거나, 허황된 중원 무술 타령을 한 그 혀를 뽑으시구려. 내공 어쩌고 한 그 혀 말이오. 어떻소? 설마 중원의 봉술이 지기야 하겠소? 하하하.”

서슴없이 스스로 다리를 분지르거나 혀를 뽑으란 제안에 봉을 쥔 약장수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했다.

주위 사람들도 너무 심하다 생각하여 한마디씩 떠들었다.

그들 중 가장 목소리가 큰 이가 바로 막바우였다.

“아니, 이런 제기랄. 이깟 고약 얼마나 한다고 다리나 혓바닥이랑 바꿔? 어린애가 말이 심하구먼. 생긴 건 착하게 생겼는데 말하는 건 이리 같네.”

막바우의 눈엔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곱상한 청색 도포의 사내가 젖내 나는 어린애로 보여 한 말이었다.

순간 청색 도포의 사내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한쪽 입꼬리가 살짝 실룩였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눈치 없이 막바우를 거들며 자극했다.

“그래, 너무 심하네. 약장수가 고약 좀 팔려고 재미난 이야기를 과장되게 한 것인데, 누가 그런 걸 믿는다고…….”

분위기가 괜히 험악해지자, 봉을 쥔 약장수가 미안해하며 공손히 말했다.

“지체 높으신 분의 귀한 자제 같으신데, 저처럼 미천한 약장수와 겨룸은 사람들 보기 좋지 않을 듯합니다.”

“…….”

“제가 봉을 휘두르며 했던 말들은 모두 약을 팔기 위해 봉술을 선보여 사람을 모으고 흥미를 끌기 위한 소리로, 그저 약장수의 통상적인 허풍일 뿐입니다. 부디, 이해하여 주십시오.”

객잔으로 들어가려던 온달도 평강 공주와 함께 말 위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며 약장수가 상당히 예의 바르다 생각하여 호감을 느꼈다.

이와 반대로 옷은 잘 차려입어 허우대는 멀쩡했으나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말과 생각이 너무 상식밖이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음, 허풍이면 성주에게 말해 고약 장수가 혹세무민하는 죄를 지었으니, 엄히 다스리라 고변해야겠군요. 그렇지 않소?”

서슴없이 성주를 언급하며 발고하겠다 말하자, 주변 사람들은 더욱 술렁이며 수군거렸다.

“재밌게 구경하던 봉술 시범인데 너무 심하네. 허무맹랑한 내공이며 장풍을 믿는 이도 없는데, 혹세무민은 과해.”

어쨌든 수습해야겠단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 약장수라 칭했던 사내가 봉을 쥔 채 양손을 맞잡아 예를 취한 후, 허리를 깊이 숙이며 공손히 사정했다.

“공자, 앞으로 허풍으로 사람을 끌지 않고 봉술이나 선보이며 얌전히 고약만 팔 터이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요. 앞으로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청색 도포의 사내가 선선히 답하자, 약장수는 허리를 재차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요. 이해하지요. 당연히 앞으로 그럴 수 없을 터이니… 앞은 앞이고 이미 떠벌인 말은 되돌릴 수 없으니, 아시잖아요? 이미 늦었어요. 자, 관에 제가 끌고 갈까요? 아니면 저와 겨뤄 보실까요?”

감사를 표하는 사내를 무시하며 거만하게 으름장 놓는 청색 도포의 사내였다.

“아니, 너무 심한 거 아녀? 애송이 말 그렇게 하면 안 돼!”

봉을 쥔 약장수보다 막바우가 더 흥분해 소리치자,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막바우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그가 멘 거대한 운철 대검에 시선이 고정되어 잠시 막바우와 운철 대검을 번갈아 살피고는 피식 웃었다.

“뭐야? 왜 날 보고 실실 웃어?”

청색 도포의 사내는 막바우의 소리엔 아주 신경을 끄고 거만한 눈매로 봉을 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눈매에 정이란 없었고, 이젠 어쩔 수 없다는 듯 봉을 고쳐 쥔 약장수가 사내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들어오십시오.”

“먼저 들어오라 말하니, 그럼 들어가겠소.”

청색 도포의 사내는 답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공중에 몸을 띄운 후,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그대로 약장수를 향해 내리쳤다.

언뜻 보면 고구려인들이 전장에서 사용하는 실전 무술 수박의 절구찧기의 응용 동작 손바닥 치기와 닮았으나, 두 발이 모두 뜬 허공에서 펼친다는 것이 크게 달랐다.

청색 도포의 사내가 허공을 뛰어올라 펼친 수법이 바람을 일으키며 약장수를 덮쳤다.

봉으로 간단히 막을 수 없음을 느낀 약장수는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소녀를 들어 올린 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뒤로 두 장 날아 피했다.

공격하는 이도 피하는 이도 날래고 범인의 몸놀림이 아니라 보는 이들은 일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중원의 허황된 무술, 장법과 경공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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