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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13화 (13/328)

013화 달빛을 가르는 화살 (1)

언덕 위에서, 아래에 펼쳐진 자신의 이리 무리와 인간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우두머리의 시선이 겨울곰의 커다란 사체로 옮겨졌다.

‘이 산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힘의 균형이 깨졌다.’

산에 터를 잡은 자존심 가득한 호랑이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보이는 전부를 탐욕스럽게 먹잇감으로 여기던 난폭한 곰.

그리고 숱한 위협에도 악착같이 산을 떠나지 않던 인간들.

우두머리가 이끄는 이리 집단은 이런 힘의 균형 속, 한 축이었다.

호랑이와 이리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인간 마을을 덮쳐 살육을 펼치며 제 하고 싶은 바를 행하던 겨울곰이 인간들의 무기에 쓰러져 고깃덩이가 된 지금.

두려움 중 하나가 사라진 인간들은 이제 이곳에서 이리 무리를 몰아내고자 힘을 모을지 모를 일이었다.

마주 보이는 저 산의 호랑이 역시, 흩어져 사는 이리 무리를 하나씩 습격해 자신들을 이곳에서 몰아내려 할지 모를 일이었다.

우두머리에게 지금 자신의 부하들과 싸우고 있는 저 인간들은, 단지 살을 뜯고 뼈를 부숴 먹고자 사냥하는 사냥감 따위가 아니었다.

기필코 갈기갈기 찢어 죽인 후 머리통만 물어다 인간들의 마을에 떨궈 감히 자신들에게 대항할 엄두조차 못 내고 두려워 산을 떠나게 할 수단이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 산에서 사라진 후, 이리 떼의 힘을 모아 이 산의 주인 행세를 하는 거만한 호랑이를 사냥해 이곳에서 자신이 이끄는 이리 무리에게 그 무엇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단초일 뿐이었다.

이 복잡한 생각은, 사실 단순한 야수의 본능.

자신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야성이었다.

쓰러진 이리보다 남은 이리의 수가 몇 배나 많았지만, 인간이든 짐승이든 기세가 꺾여 두려움을 갖는 쪽이 물러날 수밖에 없음을 우두머리는 본능적으로 익혀 알고 있었다.

선두에서 인간들과 싸우고 있는 이리 무리의 두려움이 뒤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이리 무리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목을 길게 빼고 짧게 울어 싸우고 있는 이리 무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뭐지? 왜 물러나지?”

우두머리 이리의 짧은 울음 한 번에 귀밑까지 찢어진 아가리를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고 맹렬히 달려들던 이리 떼가 삽시간에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리둥절한 막바우가 물러나는 이리 무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군요. 마치 첫 공격에 방어가 뚫리지 않으니 뒤 진영의 사기 저하를 염려해 후퇴하는 군대 같습니다. 곧 다시 몰려오겠는데요.”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는 작은 불빛이 아직도 밤하늘의 별처럼 남아 있음을 가리키며 양만춘이 말했다.

“그럼, 곧 총공격이 있겠군요.”

온달이 모닥불 주변에 쓰러진 이리의 몸통을 발로 밟고 화살을 쑥 뽑으며 무심히 말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화살의 촉은 도끼날 모양으로 뼈와 살에 한 번 박히면 온전한 상태로 쉽게 빼지 못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온달의 괴력은 그러한 걸림마저 눌러 버렸다.

온달은 어느새 꽤 많은 수의 화살을 뽑아 경우에게 피와 살점이 묻은 화살들을 건네며 말했다.

“아무래도 화살이 더 필요할 것 같구려.”

경우는 화살집에 남은 화살이 세 개밖에 없던 터라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화살을 받았다.

경우가 온달이 건네는 화살을 받아 화살집에 넣자, 양만춘도 자신의 화살집에 두 개 남은 화살을 경우에게 건넸다.

온달도 자신의 화살집에 세 개 남은 화살을 바라보며, 마을에 남겨 두고 온 화살을 생각했다.

온달은 쓴웃음을 짓고는 경우에게 남은 화살을 마저 건네려 했다.

“아니요. 그 화살은 온달님이 가지고 계셔요.”

“고작 세 개 남은 화살이지만 그대가 나보다 활을 더 잘 다루니, 받아 두시는 것이 좋겠소.”

“온달님, 그 활은 철태궁이 아닌, 철궁이지요? 일천 보 밖까지 날릴 수 있는.”

“그렇소만.”

“온달님의 철궁만이 화살을 언덕 위, 저 우두머리 이리에게 날릴 수 있어요. 제 활은 저곳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제 힘으론 아쉽게도 온달님의 철궁을 당길 수 없답니다. 오직 온달님만이 화살을 저놈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양만춘이 경우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온달의 철궁을 자신도 오랫동안 수련하면 활시위를 당길 수 있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오직 온달만이 철궁을 당길 수 있고, 저 우두머리를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온달님, 경우의 말이 옳습니다.”

온달은 양만춘마저 자신이 활을 당겨 언덕 위 우두머리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붉어져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도 활을 당겨 저놈에게 화살을 먹이는 생각을 했으나, 재주가 미천해 감히 당기지 못했소. 부끄럽게도 나는 그대들의 솜씨를 흉내도 못 낸다오.”

“그 화살 효시지요?”

온달이 미안해하며 말하자 경우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소만.”

“온달님은 맞추실 수 있을 거예요. 기회를 봐 놈이 방심할 때 화살을 날리세요.”

“흠…….”

“우리 힘만으로 이 수십 마리의 이리 떼를 몽땅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숲에서 우릴 도와줄 이 한 명 없으니, 이리 떼의 아가리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저 우두머리에게 화살을 먹이는 수밖에 없어요. 하실 수 있어요.”

온달은 차마 더 이상 못한다 말할 수 없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온달 저자가 화살로 우두머리 이리를 맞추지 못하겠지만, 저 화살은 반드시 우두머리 이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저 언덕까지 닿을 것이다.’

경우도 온달이 우두머리를 맞출 것이라 신뢰하지 않았고, 이내 생각을 이어 갔다.

‘매의 울음을 울며 화살이 날아오면 우두머리도 겁을 먹고 언덕에서 내려올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이리 무리의 지휘 체계가 무너질 것이다. 그때 우두머리의 지휘를 받지 못해 어수선한 이리 떼를 단숨에 몰아쳐 물러나게 하자.’

경우는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온달을 격려할 수 있었다.

마음속 깊이 부담을 느끼며 철궁을 어깨에 둘러메고 말없이 운철 대검을 땅에 꽂아 세워 언제든 뽑아 들 수 있게 다시 준비한 온달.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둥근 달이 산머리 범바위를 비추자, 그곳에서 커다란 무엇인가가 눈에 불을 밝히며 내려다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산군입니다.”

막바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뭐요? 이리 떼마저 버거운데, 범이 우리를 노리고 있단 거예요?”

그 소리에 놀란 경우가 일어서 산머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거리가 멀어 어렴풋한 형상만 보이지만, 막바우의 말대로 분명 호랑이가 분명했다.

“곰과 이리 떼의 사체가 내는 피 내음이 놈의 시선을 끈 모양이군요. 설마 이 난장판에 끼어들 생각은 아니겠지요?”

양만춘이 이 산에 대해 잘 아는 막바우에게 묻자, 막바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내가 호랑이가 아닌데 어찌 알겠소. 우리와 이리를 먹이로 생각할지, 소란 피우는 것들이 그저 못마땅해 보는지…….”

막바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행을 둘러싼 이리 떼의 으르렁거림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저 범보다 당장 이놈들이 우선이오. 옵니다.”

양만춘이 일부러 굵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하며 일행을 이리 떼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했다.

비록 낮은 으르렁거림이었으나, 그 무리의 수가 많아 큰 울림이 되어 온 산에 진동했다.

이 소리가 산머리 산군에게까지 전해졌는지, 산군이 범바위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포효했다.

산머리에 등을 돌려 이리 떼의 공격을 대비하던 온달 일행은 갑작스레 천지를 뒤흔드는 산군의 포효에 정신이 아찔해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 순간 산머리의 맞은편 언덕에서 우두머리 이리의 처연한 긴 울음이 산군의 포효에 맞서듯 울렸다.

그것을 신호로 모든 이리 무리가 일시에 길게 울고는 한 번에 모닥불을 향해 몰려들었다.

“이거나 처먹어라!”

경우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그녀의 활에서 동시에 세 대의 화살이 날아 모닥불을 타 넘는 이리 세 마리를 쓰러뜨렸다.

감히 자신의 영토에서 소란 피우는 이리와 인간 무리에 격노한 산군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려 고막이 흔들렸다.

그러나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는 온달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리 무리에게 운철 대검을 휘둘러 날려 버린 후 몽둥이로 버티는 막바우의 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이리를 발로 걷어찼다.

이리는 모닥불 위로 날아갔고, 온달은 또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빈틈을 노려 밀고 들어오던 이리 무리를 막아섰다.

경우의 활에서 쉴 틈 없이 화살이 날아 양만춘과 온달에게 달려드는 이리 두 마리를 쓰러뜨렸다.

경우는 이어서 막바우의 좌우에서 아가리를 귀까지 벌리며 달려드는 이리 두 마리의 목에 깊숙이 화살을 박아 넣었다.

양만춘은 네 마리의 이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리 무리 뒤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이리 집단이 파도처럼 회색 물결을 넘실거리며 밀려오고 있었다.

그는 그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수박의 땅 딛기와 절구치기를 응용해 허리에 힘을 주어 몸을 젖힌 후, 강하게 앞발에 힘을 실어 땅을 쿵 딛었다.

양만춘은 온 힘을 왼손바닥에 집중해 자신을 향해 날듯 뛰어오른 이리의 면상을 강하게 후려친 후, 다시 오른손의 검으로 다리를 물려는 이리의 모가지 뒤를 뚫어버렸다.

고구려인의 수박은 전투 시, 군인들이 백병전에서 사용하던 실전 무술이었다.

몸의 모든 힘을 일시에 이동시켜 손이나 발에 실어 타격을 가하여 적을 한 번에 제압하는 기술 위주였기에, 양만춘의 손바닥에 면상을 맞은 이리는 안면의 뼈가 무너져 그대로 즉사했다.

그들이 이리 무리를 상대로 전혀 방어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 내고 있었다.

그러나 모닥불을 타 넘고 밀려오는 이리의 수는 계속 늘어났고, 언덕 위 우두머리의 긴 울음은 끊이지 않았다.

‘밀어붙여라! 인간들을 갈기갈기 찢을 때까지 밀어붙여라!’

우두머리의 긴 울음은 이렇게 이리 집단을 독려하고 있었다,

우두머리의 울음에 묻혔는지, 아니면 이리 떼 기세에 질렸는지, 더 이상 산군의 포효는 없었다.

온 숲엔 오직 이리 떼가 내는 울음과 으르렁거림뿐이었다.

간혹 인간들이 힘에 겨워 내지르는 기합 소리만 간간히 숲에 울리고 있었다.

“아가, 내 뒤에 꼭 붙어 있어야 해.”

화살집에 화살이 슬슬 바닥을 보이자, 경우는 검을 뽑아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자상히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런 소동과 어울리지 않게 무척 부드러워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던 아이의 눈망울에 한 줄기 빛처럼 힘이 되어 주었다.

“저리 안 꺼지냐!”

풍이의 짧은 비명에 막바우가 풍이의 목을 물고 늘어지는 이리의 두개골을 몽둥이로 박살내며 연이어 덤비는 이리 떼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의 몽둥이 위력을 본 이리 한 마리가 급히 뛰어올라 막바우의 오른손 손목을 억센 아가리로 물었다.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에 몽둥이를 놓친 막바우는 이 순간을 집요히 노린 이리 무리가 자신의 사지를 물어뜯으러 덮쳐 오는 것을 망연자실해 바라보았다.

“죽기 싫으면 정신 차려!”

경우가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몸을 날려 막바우의 손목을 물고 늘어지는 이리의 목에 검을 깊이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검을 뽑기도 전에 달려드는 또 다른 이리를 발로 걷어차 겨우 몸을 지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막바우가 살이 뜯겨 힘을 줄 수 없는 오른손 대신 왼손에 몽둥이를 쥐고 몸을 세웠다.

그러자 경우의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계집아이가 달려와 막바우의 오른손 손목에 천을 감아 지혈해 주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 듯 막바우도 기운을 내었다.

이 순간에도 이리 무리는 끊임없이 밀려들어와 인간들의 방어 지점 중 가장 약한 부분인 이곳을 공격해 왔다.

“어디 이놈들아!”

온달도 막바우의 위급함을 돕기 위해 달려와 막바우와 경우의 앞을 막아선 후.

운철 대검을 가로로 휘둘러 달려들던 이리의 옆구리를 꺾어 날려 버렸다.

그리고 막바우와 경우 대신 자신의 몸을 이리 떼의 공격 목표로 내어주고는 이를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이리 무리를 운철 대검과 손발을 급히 내질러 막아냈다.

양만춘도 이젠 자리를 사수할 필요가 없음에 자신의 허벅지를 물고 늘어지는 이리의 목 뒤를 찔러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는 막바우와 경우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온달의 곁에 서서 이리 무리에 맞섰다.

아이를 중심으로 등을 돌려 이리 떼를 마주하고 선 온달과 양만춘 그리고 막바우의 팔다리에서 이리의 피와 섞인 그들의 피가 흘렀다.

그나마 몸이 잽싼 경우만 아직 상처를 입진 않았으나, 전신의 기운이 빠져 간신히 서 있는 상태였다.

“정말 끝도 없구나.”

경우의 입에서 신음이 흐르더니 끝내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검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 해도 손과 어깨가 흔들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절망스런 상황에도 온몸의 힘을 쥐어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리에게 검을 겨누던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묵직한 바람이 일더니 곧 광풍으로 변해 그녀의 몸을 훌쩍 뛰어넘고는 그대로 이리 무리를 덮쳤다.

온달과 양만춘도 등 뒤에서 불어닥친 광풍에 몸이 휘청거려 간신히 두 다리에 힘주고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이리 무리를 상대할 때, 자신들의 머리를 타 넘는 검은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다.

비단처럼 고운 털이 모닥불에 빛나며 이리 무리 위에 묵직한 땅 울림을 일으키며 내려앉고 있었다.

“사, 산군이다!”

막바우가 놀라 소리쳤다.

온달과 양만춘도 산군의 등장에 긴장해 검을 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긴 등과 두툼한 발, 얼룩덜룩한 꼬리의 길이가 이리의 몸통을 둘둘 감아 집어 던져 날려 버릴 만큼 길었다.

이 범 역시, 온달이 살던 죽령 지역에선 볼 수 없을 만큼 큰 대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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