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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11화 (11/328)

011화 달 아래 이리 떼와 혈투 (1)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였으나, 바람조차 멈춘 적막한 숲에선 모닥불 타는 소리와 막바우의 중얼거림은 조금 떨어진 경우에게까지 또렷이 전해졌다.

“지금, 태연히 이야기가 나오나? 아무튼, 불 잘 피우셨네.”

태연하란 소리에 잘 어울릴 만큼 청아하고 밝은 경우의 목소리가 조금 높게 화답했다.

막바우가 자신의 곁에 모닥불을 피우고 그 모닥불을 중심으로 사방 네 군데의 사각으로 불을 피운 것이 꽤 듬직해 은근히 칭찬을 한 것이다.

예기치 않게 경우로부터 칭찬을 들은 막바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실룩거렸다.

아마도 웃음을 참는 모양이다.

“힘없이 뿔뿔이 흩어져 가족 단위로 모여 살다가 강한 족장이 생기면 다른 부족까지 모여드는 거란족과 닮았군. 하긴 그놈들은 승냥이 같은 것들이니, 닮았겠군.”

양만춘도 애써 태연히 막바우의 말을 받아 대꾸하며 전방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흉노, 거란, 돌궐, 몽고 등의 드넓은 초원을 삶의 기반으로 하는 유목민들은 가족 단위의 작은 부족으로 넓은 초원에 퍼져 지낸다.

그러다 어느 부족이든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면, 그를 따르기 위해 부족들이 초원에서 하나둘 모여 강력한 집단을 형성하고 순식간에 군대를 만들며 나라를 이루었다.

이들은 따로 영토의 경계를 규정하지 않아, 땅을 지킬 성도 필요 없고 수도 역시 정하려 정착하지 않았기에,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초원 어디까지나 달릴 수 있어 그들이 옮겨 가는 곳, 그곳이 영토였다.

고구려와 중원 위 북방엔 동서 어디까지나 펼쳐진 끝없는 초원이 있었기에, 이들에겐 애써 뺏을 땅은 중요치 않았다.

그리고 집단이 모여 강력해진 그 힘을 기반으로 정착 민족을 침략해 약탈을 일삼았다.

그렇기에 터를 잡고 정착해 사는 중원의 한족과 고구려인은 이들에게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는 것을 항상 경계해 각 부족이 힘을 규합해 집단을 이루지 못하도록 공격과 회유를 병행했다.

초원의 유목민 중, 고구려인과 동일하게 백두산을 자신들이 태어난 성역으로 삼는 말갈족은 깊은 산림과 초원에 걸쳐 무리 지어 살고 산속의 경우 오래도록 한 곳에 터를 잡고 산다.

그들은 다른 유목민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고구려인과 삶의 방식이 비슷했다.

그렇기에 고구려는 같은 땅에 터를 잡고 사는 말갈인을 몰아내지 않고 받아들여 함께 나라를 꾸렸다.

거란인을 이리 떼에 비유한 양만춘의 말에 거란인의 약탈에 시달렸던 막바우는 고개를 끄덕여 답하였다.

그러나 죽령 지역에서 살아온 온달은 크게 체감하지 못해 그저 철궁을 들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내려놓고, 운철 대검의 검 끝을 땅에 박아 세우며 이리 떼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방비를 했다.

“이곳의 늑대 무리는 몇 마리나 되오?”

양만춘도 온달을 따라 활을 바닥에 내려놓고, 검을 땅에 꽂아 세워 언제든 두 무기를 번갈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막바우에게 물었다.

“다른 곳에서 넘어온 무리까지 대여섯 무리가 넘을 것 같구먼요. 이것들은 평소에 따로 굴에서 무리지어 살다가 인가를 습격하거나 사냥할 때 서로 모여 집단을 이루는데, 꽤 큰 우두머리가 조금 높은 곳에서 무리를 지켜보며 지휘하고 있더군요.”

눈으로 본 듯 설명하는 막바우에게 경우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봤어요?”

“봤죠.”

“그런데 용케 살아계시네요.”

“살아 있어야지. 그럼 죽어야겠소?”

막바우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러자 경우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자신도 활을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고 검을 땅에 꽂아 늑대들의 공격을 대비하였다.

둥근 만월이 풀숲을 비춰 모닥불과 섞이니, 그 주위가 무척 밝아서 어둠 속에서 눈만 반짝이는 이리들은 이들의 행동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무기, 활과 창은 물론 검과 몽둥이도 구별하는 이리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불을 피우고 앉은 인간들이 무기를 지녔고 자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음에 보다 자세히 인간들의 방어 능력을 살피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풍산개 풍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애써 태연히 말을 주고받으며 이리를 경계하던 이들 앞으로 어둠 속에서 이리 한 마리가 살며시 풀을 밟으며 나오더니 육, 칠 장 앞에 섰다.

이리가 몸을 드러내자, 풍이는 양만춘 앞에 서서 이를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이리 역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 개가 못마땅해 붉은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긴 아가리를 일그러뜨려 송곳니를 보이며 풍이를 노려보았다.

모닥불의 불빛이 반영된 이리의 두 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리는 자신의 앞에 타오르는 모닥불이 신경에 거슬리는 듯, 눈을 찡그리며 시선은 그대로 두고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

이리에게 불은 자연과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경이로운 현상으로 자신을 태울 수 있는 무서운 존재였다.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낸 이리의 등장에 모닥불 주위 사람들은 모두 긴장해 그 이리를 주시하며 살며시 손을 뻗어 활을 잡았다.

불빛을 피해 몸을 옆으로 틀어 움직이며 온달부터 경우까지 한 명 한 명의 표정과 눈빛을 살피던 이리가 갑자기 목을 길게 높이 뻗어 올리더니 뒤로 젖히고는 끝내 길게 우짖고야 말았다.

“이런 제길! 지원을 부르고 있어!”

이리의 울음소리와 함께 막바우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도 터져 나왔다.

이리의 길고도 처연한 울음이 시린 한기를 몰고 와 온달과 양만춘은 머리끝이 쭈뼛하며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리의 길게 우는 소리는 집단 사냥을 시작하기 위해 동료를 부르는 소리였다.

멀리서 이 소리를 받은 또 다른 이리의 긴 울음이 화답해 왔다.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던 온달과 양만춘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해 무의식적으로 동시에 손을 뻗어 활을 쥐기 시작하였다.

이젠 멀리 산 중턱에서 화답하는 이리의 울음소리까지 들리자, 들과 숲 여기저기서 이리의 긴 울음이 일었다.

“제길은 뭔 제길!”

날카로운 경우의 고음이 이리의 울음에 맞추어 울리더니, 한 줄기 바람이 모닥불 앞에 서서 우는 이리를 향해 쏘아졌다.

바람은 모닥불의 출렁이는 불꽃을 뚫고 날아 곧장 이리의 길게 뺀 목을 꿰뚫었다.

목에 경우가 쏜 화살이 박힌 이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쓰러져 즉사했다.

동료의 죽음을 본 어둠 속의 불빛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모닥불을 에워쌌다.

‘우리의 본대가 올 때까지 너희 인간 중 그 누구도 여길 떠나지 못한다.’

모닥불 주위를 두른 이리들의 불타는 눈빛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양만춘이 활을 들어 어둠 속 불빛 중 한 곳을 겨냥하여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그보다 먼저 강한 바람 소리를 내며 온달의 철궁에서 화살이 날아올랐다.

짧은 거리를 날카로운 매의 울음으로 공기마저 찢어 놓으며 그대로 불빛에 꽂히더니 강한 힘으로 이글거리는 불빛을 잠재우고는 바람에 실어 날려 보냈다.

온달의 철궁에서 쏜 화살에 꿰뚫린 이리는 몸이 붕 떠 날아가 어둠 속 어딘가에 서 있는 나무에 부딪혀 땅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이미 화살이 박힐 때 즉사한 상태였기에 비명은 없었다.

“역시, 온달님 대단하시군요.”

비록 온달이 말을 달리며 활은 쏘지 못해도 강력한 타격력을 지닌 철궁 덕에 정확도와 살상력만큼은 상승하였기에 과연 양만춘이 감탄할 만했다.

동료 둘이 일순간에 즉사하자, 남은 네 마리의 이리가 동시에 몸을 튕겨 나와 모닥불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럿이 일시에 습격하는 것은 이리들의 사냥 전술이었다.

이 기세에 놀란 사냥감이 당황해 방비하지 못하고 뒤를 보이면 그대로 이리의 송곳니가 사냥감을 덮쳐 목줄을 끊게 된다.

빠른 속도로 풀을 눕히며 덮쳐 오던 이리 한 마리가 경우가 쏜 화살에 맞아 공중에서 털썩 떨어져 즉사했다.

그러나 나머지 세 마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대로 돌진해 왔다.

양만춘의 앞에 서 있던 풍산개 풍이가 맹렬히 짖더니 선두의 이리를 향해 달려가 목을 물고는 바닥에 늘어졌다.

주위에 이리 둘이 남아 자신을 공격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리를 향해 달려들어 목을 물고 늘어진 풍이의 행동은 오직 사람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풍이에게 달려드는 이리를 향해 양만춘과 온달의 화살이 박혔다.

역시나 온달의 화살에 꿰뚫린 이리는 허공에 붕 떠 뒤로 날아가 어둠 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 활 솜씨요.”

양만춘의 감탄과 함께 경우가 쏜 화살이 정확히 풍이가 물고 늘어진 이리의 목에 박혀 단번에 숨통을 끊었다.

막바우가 뒤를 돌아보니, 경우는 여전히 덕쇠네 막둥이에게 무릎을 베게 삼아 내어준 상태로 앉아서 활을 들고 있었다.

화살에 맞아도 끄떡없던 겨울곰과 달리 이리들에게 경우의 화살은 제대로 통하고 있었다.

“몇 마리라고 했었죠? 여기 것들은 다 처리한 것 같은데, 그깟 이리가 집단을 이뤄 떼로 온들 별거 아니리라 생각되네요.”

자신에 찬 경우의 목소리에 막바우가 환해진 얼굴로 답했다.

“여섯 모두 잡은 것 같구먼요. 대단들 하십니다.”

막바우의 밝은 목소리가 채 끝나기 전, 바람을 타고 풀이 눕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리 떼, 본진이 움직이나 봅니다.”

양만춘이 바람에 실려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말했다.

소리에 피비린내도 섞인 듯 비릿한 내음이 사위를 감싸며 모닥불 주위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족히, 육십 마리는 넘을 것 같습니다.”

이들 중 가장 귀가 밝은 막바우가 빠르게 풀이 눕는 소리의 크기를 계산해 온달에게 말했다.

온달은 막바우의 이런 천부적 계산 능력에 감탄하여 말했다.

“이 바람 소리로만, 숫자를 셀 수 있는 것이오?”

막바우는 온달의 말에 대답도 않고 온달과 양만춘의 옷자락을 끌어 경우가 있는 모닥불 가로 이끌었다.

“그렇군. 이곳에서 저 모닥불을 방패삼아 넘어서는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만춘이 막바우의 의도를 헤아려 온달에게 전했다.

온달도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다시 운철 대검의 검 끝을 땅에 박아 세웠다.

경우는 온달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대한 운철 대검을 다루는 모습에 속으로 탄복했다.

‘난 아까 땅에 떨어진 저 검을 들어 올리지도 못했는데, 과연 온달은 힘이 장사구나.’

이들이 중앙 모닥불에서 다시 이리 떼와 맞설 방비를 하는 동안, 바람에 실려 전해오는 풀이 눕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사방에서 풀이 눕고 이리의 거친 호흡이 들리며 비릿한 피 내음이 진동하더니, 그 소리가 절정을 이름과 동시에 모닥불을 두른 사위가 적막한 어둠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 어둠 속에서도 피 내음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이윽고 백여 개의 작은 불빛이 사방 어둠 속에서 나타나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 두 개가 한 마리일 것이니, 육십에서 칠십.”

경우의 목소리가 무척 차분해져 있었다.

양만춘과 경우 그리고 온달 모두 이 정도 숫자의 이리를 상대해 본 일이 없어 자신들도 모르게 이마와 등에서 땀이 흘러 한기와 섞여 저절로 몸이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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