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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8화 (8/328)

008화 겨울곰과 산군 그리고 사냥꾼 (5)

사나운 곰의 기세에 정신을 놓은 막바우의 다리가 힘이 풀려 주저앉자, 당장 막바우의 머리를 곰의 앞발이 박살내기 위해 곧장 쳐내려왔다.

이 광경에 온달은 생각할 겨를 없이 무작정 운철 대검을 높이 치켜들고 곰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곰과 온달과의 거리는 열 장 남짓, 지금 달려도 막바우의 목숨은 장담하기 어려운 거리였다.

그러나 다른 수가 없는 온달로선 허리까지 올라오는 풀숲을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 순간 온달의 뒤에서 작은 바람이 일더니 그의 옆을 스쳐 앞으로 쭉 나아갔다.

달빛을 받은 바람의 흔적은 길게 꼬리를 남기며 곧게 뻗더니 막바우를 내리치던 곰의 앞발 발바닥에 정확히 박혔다.

고통에 겨운 곰의 울부짖음과 함께 온달은 바람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화살?’

온달의 화살보다 짧은 화살로 미뤄 짐작하건대 소의 갈비뼈를 깎아 만든 단궁이 분명했다.

화살을 쏜 이가 누구인지 확인할 여유가 없는 온달인지라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풀을 눕히며 달려 나갔다.

곰은 자신의 신체 중 가장 부드럽고 연약하며 신경이 몰린 발바닥에 화살이 박히자 끔찍한 울부짖음과 함께 다른 발을 들어 막바우를 향해 내리쳐 분풀이하려 했다.

“이거나 처먹어라!”

또다시 온달의 등 뒤에서 바람이 일더니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달빛을 받은 화살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온달의 옆을 스치고 곰의 어깨에 박혔다.

갑작스런 외침에 어리둥절한 사이, 어깨에 화살이 박히자 분노한 곰이 머리를 가로로 내질러 막바우의 몸통을 쳐내버렸다.

담벼락도 부술 곰의 박치기에 막바우의 몸이 붕 떠 나뒹굴었다.

“어이쿠!”

바닥을 나뒹군 막바우가 피를 한 모금 토하며 신음을 내었다.

‘막바우가 살았구나.’

그러나 온달은 오히려 안심하며 그대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려 운철 대검을 휘둘렀다.

구 척의 운철 대검이 바람을 때리며 곰의 몸통을 갈기자 곰도 몸이 휘청이며 중심을 잃었다.

‘징그러운 놈. 이 검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구나.’

허공에 뛰어올라 곰을 내리친 온달은 발이 땅에 닿자마자 왼손을 앞으로 뻗고 오른손으로 운철 대검을 단단히 쥐었다.

그 후, 곰의 가슴팍으로 뛰어들며 검을 일자로 곧게 뻗어 창처럼 염통을 겨냥해 찔러 나갔다.

그러나 곰도 만만히 당하지는 않았다.

화살이 박힌 왼쪽 앞발로 온달의 운철 대검을 쳐내고는 오른쪽 앞발로 온달을 후려쳤다.

곰의 앞발에 맞아 운철 대검은 방향이 틀어져 곰의 옆구리 쪽으로 빠져나왔음에도 온달의 발은 멈추지 않고 곰의 가슴을 계속 파고들었다.

그 순간 온달은 곰의 오른쪽 앞발이 자신을 내리치자 급히 왼손을 들어 곰의 앞발을 쥐고는 오른손에 쥔 운철 대검을 휘둘러 곰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그러나 운철 대검은 날이 없고 곰과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워 심각한 타격을 주진 못했다.

“이런 제길, 너무 가깝다.”

곰과의 육박전에선 운철 대검은 너무도 길고 무거웠다.

온달이 다시 운철 대검을 휘둘러 곰의 머리를 가격하려 할 때였다.

곰도 머리를 숙이더니 주둥이를 벌려 커다란 아가리로 온달의 머리를 물어 두개골을 박살내려 했다.

마음이 급한 온달은 운철 대검을 떨구고는, 곰의 목을 쥐어 올려붙이며 자신을 물지 못하게 힘으로 버텼다.

“아니, 뭔 사람이 대책 없이 곰과 몸싸움을 해? 이러면 활을 쏘기 어렵잖아. 미친 사람인가?”

또다시 멀리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젊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하다. 경우야! 우리도 달려들자. 풍! 달려라!”

“넵!”

새털처럼 가볍고 청아한 목소리가 답함과 동시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풀숲을 밟으며 요란히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이어졌다.

온달은 누군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여전히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곰의 오른발은 자신을 짓누르다가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할퀴려 하기에 왼손으로 간신히 붙잡아 둬야 했다.

곰의 아가리는 자신의 머리를 노리기에 이 역시 오른손으로 곰의 두꺼운 목을 쥐어 붙들어야 했는데, 남겨진 곰의 왼발이 번쩍 치켜 올라가더니 온달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컥.”

황소의 등뼈도 분지를 곰의 괴력이 어깨를 강타하자 온달은 철퇴를 맞은 듯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여기서 기운을 잃고 무릎이라도 꿇게 되었다간 일순간 황천행이라 생각하여 이를 악물고 곰과 힘겨루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우라질 놈! 어디서 감히!”

바닥에 나뒹굴었던 막바우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 반 토막 난 창을 들어 곰의 옆구리를 두드려 팼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이 미친 겨울곰에겐 심대한 타격은 아니었기에, 곰의 왼발이 다시 날아 온달의 얼굴을 후려쳤다.

날카로운 곰의 발톱이 얼굴을 할퀴면 살이 패여 뼈까지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요.

목뼈가 부러질 것이 분명했기에, 온달은 죽을힘을 다해 곰의 가슴팍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허공을 친 곰이 제힘을 못 이겨 뒤뚱거렸다.

이때 뒤에서 풀숲을 날듯이 헤치고 달려온 하얀 개 한 마리가 땅을 닫은 곰의 굵은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이 틈에 자세를 가다듬은 막바우가 반 토막 난 창으로 곰의 옆구리를 다시 후려쳤다.

곰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힘을 겨루던 온달이 막바우를 향해 소리쳤다.

“자넨 빨리 가, 아이부터 구하게! 이놈은 내가 어찌해 볼 터이니, 빨리!”

자신이 살던 죽령 지역의 곰보다 갑절은 큰 이 괴물 곰을 상대로 힘을 겨루다 혹여 자신이 무너질 경우 아이마저 위험하다 생각한 온달이 막바우에게 아이부터 구하라 명한 것이다.

“허허, 자신은 곰의 아가리 밑에 있으면서 아이부터 구하라니, 과연 제정신을 지닌 사내는 아니구나.”

청아한 목소리가 온달의 용기를 칭찬하는 것인지 놀리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어느새 달려와 곰의 옆구리에 무엇인가를 깊게 밀어 넣었다.

“경우야! 이 형씨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뒤이어 굵은 목소리마저 온달의 등 뒤에서 들리더니, 빛나는 검이 쑥 온달의 옆구리를 지나 곰의 복부에 꽂혔다.

온달은 곰과 씨름하듯 힘을 겨루면서도 자신의 좌우에서 검으로 곰을 찌르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소리쳤다.

“뉘신지 모르오나 은혜 잊지 않겠소.”

“감읍은 곰의 아가리에서 벗어난 뒤에 하시고.”

청아한 목소리가 힘을 주어 말하며 곰의 옆구리를 찌른 검을 비틀어 올려 곰의 뼈를 가르려 했다.

가죽이 찢기고 살이 발라지며 뼈가 끊어지는 고통에 곰이 크게 울부짖었다.

고통에 휩싸인 곰은 오른발을 번쩍 휘둘러 잡고 있던 온달까지 밤하늘에 높이 날려 보내고는 왼발을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내리쳐 검을 비틀던 청아한 목소리의 사내를 공격했다.

곰의 갑작스런 반격에 놀란 청아한 목소리의 사내는 곰의 옆구리에 검을 꽂은 채 뒤로 물러서다가 넘어졌다.

연이어 곰의 아가리가 그를 덮치자 굵은 목소리의 사내가 검의 복부에서 검을 빼내 곰의 주둥이를 노리고 찔렀다.

곰의 뒷발을 물고 늘어지던 하얀 개도 청아한 목소리의 사내를 구하기 위해 번갈아 뒷다리를 물며 곰을 괴롭히다가 곰이 뒷발을 휘둘러 걷어차자 잽싸게 뒤로 빠지더니, 다시 바닥을 뛰어올라 곰의 허벅지를 물고 늘어졌다.

이런 소동 속에서 온달의 강한 힘에서 겨우 풀린 곰의 앞발이 자신의 주둥이를 노리고 찔러오는 사내의 어깨를 후려쳤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땅을 구르며 간신히 치명상은 피했으나 사내의 어깨를 덮은 짐승 가죽이 찢어져 검은 하늘로 피가 튀어 올랐다.

“성… 성님!”

청아한 목소리가 곰에게 일격을 받은 사내를 부르며 옆으로 바닥을 굴러 곰의 아가리를 피한 후 풀숲에 꽂힌 온달의 운철 대검을 발견하고는 냅다 들어 올렸다.

“어이쿠! 허리야. 뭔 검이 들리지도 않아?”

생각과 달리 온달의 운철 대검은 풀숲에 꽂힌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청아한 목소리의 사내는 망연자실해 자신을 덮쳐 오는 곰을 두 주먹 굳게 쥐고 맞서려 했다.

“일단 피하시오!”

곰의 앞발에 휘둘려 풀숲에 날아 꽂혔던 온달이 머리에 풀을 잔뜩 꼽고는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곰의 뒤에서 거대한 나무 밑동 같은 곰의 허리를 붙잡고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땅을 딛고 씨름 뒤집기 기술을 응용해 자신의 허리를 뒤로 확 젖히며 곰을 들어 올려 뒤로 집어 던졌다.

곰의 핏발 선 눈에 밝은 달이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어두운 밤하늘과 푸른 풀밭이 들어오며 그대로 대가리가 땅에 처박혀 풀숲에 꽂혔다.

어려서부터 씨름을 즐기고 타고난 힘이 장사였던 온달이 백이십 근이 넘는 운철 대검을 짊어지고 다니며 더욱 힘이 늘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오십 관은 족히 넘을 괴물 곰을 허릿심으로 메다꽂은 온달도 허리가 시큰거려 풀숲에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 순간 하얀 개가 사람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곰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끈질기게 치고 빠지며 공격하는 하얀 개의 뒤로 바위를 향해 달려가는 막바우의 모습이 곰의 흉측한 눈에 담겼다.

곰은 결코 자신의 먹잇감을 넘겨주지 않는 탐욕스런 짐승이었다.

이 단단한 근육질의 곰은 자신의 체중을 머리로 받으며 풀숲에 처박혀 머리가 부서질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그러면서도 야성의 감각은 여전해 몸을 뒤틀어 하얀 개를 뿌리친 후, 아이가 있는 바위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마침 바위 뒤에선 막바우가 아이를 구해 안고 나오던 중이었다.

그는 성난 곰이 자신과 아이를 향해 네 발에 피를 흘리며 맹렬히 달려오자, 놀라 급히 뒤돌아 언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와 막바우가 위급해지자, 하얀 개가 크게 짖으며 곰을 향해 질주했다.

청아한 목소리의 사내와 굵은 목소리의 사내도 활에 화살을 먹여 날리며 달려갔다.

달리면서 쏜 이들의 화살은 정확히 곰의 등에 꽂혔으나 이 화살로 곰의 숨통이 끊어질 것 같진 않았다.

온달도 벌떡 일어나 근처 풀숲에 꽂힌 자신의 운철 대검을 쑥 뽑아 들고는 무작정 곰의 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놈! 내 검 다시 한 번 맞아 보거라!”

온달의 우렁찬 외침에 곰도 반응을 보였다.

자신과 힘을 겨루고 심지어 자신을 들어 풀숲에 메다꽂기까지 한 이 터무니없는 인간을 등 뒤에서 맞이하기 싫었던 것이다.

막바우와 아이를 버려두고 바위를 옆에 끼고 선 곰이 뒷다리를 단단히 힘주어 몸을 크게 세운 후 앞다리를 번쩍 치켜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온달을 맞이했다.

달빛 아래 황금색으로 빛나던 곰의 털은 이젠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크게 벌린 아가리에서 누렇고 긴 송곳니에 핏물마저 흘렀다.

곧장 곰을 향해 달리던 온달이 운철 대검을 양손으로 굳게 쥐고는 곰의 곁에 불쑥 서 있는 바위로 몸을 날려 두 다리로 바위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운철 대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러 곰의 두툼한 목을 후려쳤다.

백이십 근이 넘는 운철 대검의 강력한 타격에 곰의 목이 옆으로 획 꺾이고는 곰의 몸뚱이가 뒤뚱거리며 뒤로 두어 발 물러섰다.

온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운철 대검을 일자로 길게 뻗어 곰의 염통을 겨냥해 밀고 들어갔다.

곰이 앞발로 자신의 가슴팍을 뚫고 들어오는 운철 대검을 잡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온달도 결코 힘을 줄이지 않고 뒷발로 땅을 밀고 앞발로 땅을 당기며 어깨를 크게 앞으로 기울여 운철 대검을 몸으로 밀어붙여 나갔다.

어디가 곰의 염통인지 생각하지도 겨누지도 않고 그저 힘으로 운철 대검을 밀고 들어가는 온달이었다.

“어떠냐? 내 검 맛이.”

온달의 힘에 밀린 곰의 입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온달은 운철 대검을 끝까지 몸으로 밀어붙여 끝내 곰의 등뼈마저 부수고 핏물 가득 머금은 검의 끝이 등 뒤로 불쑥 솟아 나오게 만들고 말았다.

뚝뚝.

검 끝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핏방울은 어느새 굵은 물줄기가 되어 핏물을 풀숲에 쏟아 내었다.

썩은 고목 넘어가듯 곰이 하늘을 보고 뒤로 눕자 하얀 개가 달려와 곰의 목을 물어 남은 숨마저 끊어 놓았다.

지독한 이 괴물 곰도 온달의 신력을 당해 내진 못한 것이다.

겨우 한숨 돌린 온달은 자신들을 도운 사내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이를 데가 없어 언변이 부족한 저로선 어떤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인들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시는지요.”

말을 버벅인 온달이 최대한 진정을 담아 인사하자, 굵은 목소리의 사내가 다친 어깨를 옷을 찢어 동여매고는 웃으며 답했다.

“우린 그저 사냥꾼이고 큰 도움도 되지 못했으니, 너무 괘념치 마시오.”

자신들은 사냥꾼이란 말에 막바우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내들의 행색을 살피며 생각했다.

‘세상 어디에도 창잡이 없이 검을 들고 사냥하는 사냥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온달님은 예외고… 이들은 결코 사냥꾼이 아닐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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