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7화 (7/328)

007화 겨울곰과 산군 그리고 사냥꾼 (4)

서둘러 마을 밖으로 나온 온달과 막바우는 손쉽게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여전히 산군의 포효가 산머리를 타고 산 중턱까지 장엄히 들리며 내려왔다.

또한 그에 맞서는 이리 떼의 울부짖음이 마을 주위를 둘러싸고 간간히 들리더니, 산군의 포효 소리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지며 줄어들어 갔다.

싸움이 일기 전 대치가 펼쳐진 듯 서늘한 고요가 이어졌다.

“이 발자국은 지금 막 찍힌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핏자국은 없군요. 아직 아이는 살아 있습니다.”

발자국 주위를 급히 살핀 막바우가 다시 앞서 나가며 온달에게 말했다.

추적을 곰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횃불도 들지 않았기에, 온달은 길 안내를 막바우에게 맡겼다.

온달은 그 뒤를 따르며 여기저기 널브러진 곰의 흔적을 살피며 물었다.

“이놈은 전혀 조심하지 않고 있군요. 쫓아올 테면 와봐라. 이건가?”

“장군님, 말씀 편히 놓으십시오. 그리고 어깨에 멘 그 검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언제 놈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장군님께선 활을 빨리 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십시오.”

“난 장군이 아니오. 그리고 이 검은 무게가 상당해, 이걸 메고 산길 오르기 무척 힘들 것이오. 이건 그냥 내가 메고 가겠소.”

온달이 정중히 막바우의 호의를 사양하자, 막바우가 몸을 획 돌려 오른손으로 온달의 검을 쥐고는 가볍게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려 메기 시작했다.

막바우는 왼손에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을 들고 앞으로 나가며 퉁명스레 말했다.

“평강 공주님을 각시로 맞으셨고, 신력을 지니셨으니 장군은 물론이요. 대장군 이상까지 올라가실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검을 메고 어두운 산길 가는 것이 쉽지 않으니 제가 메겠다고 하는 것이고요. 급합니다. 어서 가시죠.”

투박한 막바우의 말투에서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진 온달은 뒤를 따르며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막바우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키는 온달의 어깨 언저리밖에 오지 않지만, 굵은 어깨, 큰 머리, 두툼한 허리, 두꺼운 다리 등 어느 것 하나 굵지 않은 곳 없어, 과연 바위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온달 자신보다 열 살쯤 어려 보이는 이십 대 중반의 앳된 얼굴의 막바우가 백이십 근이 넘는 운철 대검을 메고도 어두운 산길을 쉽게 오르는 근력이 대단하여 놀라웠다.

‘이 사람의 힘이 나 못지않구나. 세상은 넓고 인물이 많으니, 내게 평강 공주가 없었다면 나는 그저 무지렁일 뿐이었으리라.’

온달이 이런 생각을 하며 뒤를 따를 때, 막바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땅에 찍힌 곰 발자국을 살피더니, 살며시 창으로 앞을 가리키고는 소리 낮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놈이 아무리 미친 겨울곰이라 해도 뭇짐승은 사람들의 추적을 본능적으로 회피하기 마련인데, 이놈은 대놓고 따라오라 하는 것 같습니다. 놈은 저 바위 뒤에 있고, 아이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이지요.”

막바우의 창끝이 가리킨 곳엔 작은 초막 크기의 바위가 있었다.

또한 그 주위로 허리 위까지 올라오는 꽤 긴 풀들로 우거진 작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 뒤로는 경사가 조금 급해 보여 아마도 놈은 이곳에서 추적자를 해결하려는 것 같았다.

막바우의 말에 온달이 숨을 참으며 귀를 기울여 보니 아이의 숨소리가 바람에 실려 전해왔다.

‘겁에 질린 아이가 비명도 못 지르고 숨을 참고 있구나.’

온달이 귀를 기울이는 동안 막바우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이놈은 아이를 미끼로 우릴 유인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아이를 살려두고 있는 것이고요.”

“그렇군요.”

“우리가 아이를 구하러 달려들면 이놈이 우리를 역습한 후, 우리 몸뚱이로 배를 채우고는 방비가 풀린 마을을 덮칠 것입니다.”

확신의 찬 막바우의 말에 놀란 온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막바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막바우가 여전히 작지만, 힘이 실린 소리로 말하였다.

“겪어 봐서 알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겨울곰이 활개 치며 이 마을 저 마을 풍비박산 낼 당시, 인근 화전민 마을에서 막바우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아이를 물어가 사람들이 곰을 추적했고, 아이가 살아 있음에 더욱 급히 곰을 따라잡았다가, 오히려 곰이 아이를 두고 옆으로 돌아 추적하던 사람들을 덮쳤다.

이때 간신히 몸을 빼내 도망친 이들은 밤새 미쳐 날뛰는 곰의 추적을 피해 산길을 헤매야 했다.

날이 밝아 간신히 마을에 당도했을 땐, 이미 마을마저 밤사이 곰에게 습격당해 여기저기 살육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을 겪어본 막바우였기에, 아이가 살아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의 공격 기회가 실패할 경우 자신은 물론, 마을까지 위험하리란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막바우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지만, 확신의 찬 표정에서 온달도 상황 파악을 하였다.

막바우가 조용히 몸을 숙여 움직이더니 바위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풀숲을 기어 빙 둘러 가기 시작했다.

어떤 짐승이든 사냥꾼이 먼저 짐승을 발견하면 활을 쏘거나 창을 던질 기회가 있다.

하지만 짐승이 먼저 사냥꾼을 발견하면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막바우는 이런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땅을 기어 우회하였고, 온달도 은연중에 막바우의 뜻을 파악해 말없이 따랐다.

이렇듯 추적 중의 사냥꾼은 짐승이 있으리라고 추측되는 근처에 가까이 다가가면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발자국 소리마저 줄여야 했다.

풀숲이라 몸을 움직일 때마다 풀이 눕는 소리가 났지만, 그래도 최대한 골라서 신중한 몸놀림으로 다가갔다.

너무 급히 곰을 상대하려 하지 않고, 간간히 멈춰 한참 동안 곰이 숨어 있으리라 예상되는 바위를 주시하며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아이가 살아 있고 곰도 분명 저기 있다.’

사위가 조용해 곰의 거친 호흡마저 들릴 정도였고, 아이의 숨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곰의 시각은 근시로 예민치 못하나 청각과 후각은 아주 예민했다.

이와 달리 범은 청각과 시각을 등분해서 사용하나 후각이 조금 부족하며.

이리들은 시각, 청각, 후각을 모두 등분하여 사용한다.

사냥꾼이 뭇짐승을 추적할 때 가장 주의하여야 할 놈은 바로 범, 특히 호랑이였다.

이놈들은 추적을 받으면 바위틈에 숨어 반드시 반격을 했다.

그리고 곰도 사냥꾼의 추격을 받으면 우회하여 도리어 사냥꾼을 역추격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곰을 공격할 땐 항상 전후좌우를 두루 주의하여야 했다.

겨울곰의 예민한 후각과 청각은 분명 온달과 막바우를 감지하고 있었다.

이 또한 막바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바람결에 온달과 막바우의 체취가 실려 겨울곰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풀숲을 기어 우회하는 소리도 전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 하여도 당장 일어서 곰이 숨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위 뒤를 향해 무작정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낮은 자세로 숨을 참으며 풀숲을 기어가는 막바우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 턱 끝에 맺혔다.

온달은 막바우가 긴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곰은 탐욕스런 짐승이다. 자기가 잡은 먹이를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이리 떼는 물론이요. 호랑이나 표범에게도 먹이를 넘겨주지 않는다.’

바보라 불렸지만, 사람이 순박하고 한없이 선해 그리 불린 것이지 온달은 결코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온달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아이를 선선히 넘겨줄 생각 따위는 저놈에겐 애초에 없을 것이다. 그런 놈이 바위 뒤에서 아직 아이를 살려둔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건 미끼다. 우리가 놈을 사냥하는 것이 아닌, 놈이 우릴 사냥하려는 것이다.’

배움이 짧았지만, 이해력은 무척 빠른 편이라 서서히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온달의 생각대로 겨울곰은 아이를 넘겨줄 생각이 없었을 뿐더러 자기의 먹잇감으로 욕심을 두었던 중국인들의 시체를 옮겨 간 화전민 마을 사람들마저 먹잇감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뭇짐승들은 아이와 여인, 사내를 구분할 수 있으며 일부 맹수의 경우 아이를 물어 가면 사람들이 정신없이 추격함도 알고 있었다.

이 겨울곰도 그런 놈 중 하나였다.

곰도 사람을 파악했고 사람도 곰을 파악한 상태였기에, 참지 못해 몸을 드러내는 쪽이 먼저 공격받을 것은 분명했다.

곰과 사람 모두, 상대가 언제 우회하여 역습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서로에게 갖게 하고 있었다.

온달은 철궁에 화살을 먹이며 생각했다.

‘이 화살이 곰의 염통을 꿰뚫어 단번에 쓰러뜨리지 못할 경우 막바우에게서 검을 받아 달려들어 머리를 박살 내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리하고는 뚫어지라 바위를 응시했다.

그 순간 바위 뒤에서 참지 못한 곰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마음이 급한 온달이 풀숲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려 하자, 막바우가 제지했다.

“아직이구먼요. 아직.”

‘이 아이는 내가 잡은 먹이요, 네 놈들이 수레에 실어 간 시체들도 내 먹이이니라!’

곰의 울부짖음은 내 먹이를 당장 내놓으라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이 미친 곰의 사나운 소리에 순간, 고막이 울려 머리가 멍해지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온달이었다.

하지만 용케 막바우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미친 곰이구나.’

온달이 이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을 때, 전방을 주시하던 막바우가 고개를 돌려 온달을 돌아보았다.

온달의 눈에서 투지가 빛나고 있었다.

막바우는 누군가 몸을 세우지 않으면 참지 못한 곰이 아이를 해치리란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결심이 선 막바우가 온달에게 옅은 미소를 짓고는 불쑥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온달의 운철 대검을 땅에 박으며 말했다.

“제가 곰에게 달려갈 테니, 곰이 바위 뒤에서 몸을 드러내면 장군님이 활을 쏘시오. 자, 갑니다!”

온달이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제 말만 한 막바우는 고함을 지르며 곧장 바위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놈! 내 창 받아라!”

갑작스런 상황에 온달도 몸을 일으켜 세워 철궁을 들어 올리고는 크게 외쳤다.

“이놈 나와라! 어디 내 활 한 번 먹어 보거라!”

막바우에게만 곰의 시선이 집중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온달과 막바우의 외침에 성난 곰이 바위 위에 올라서며 거대한 몸을 드러냈다.

달빛에 비친 곰의 털은 황금색으로 빛났고, 조그만 눈이 피를 탐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바위에 올라 뒷발로 선 놈의 크기는 열다섯 자는 족히 넘었고, 두툼한 몸의 근육으로 미뤄 짐작해 볼 때 백오십 관은 충분히 넘어 보였다.

온달의 철궁에서 화살이 나르며 매의 울음소리로 적막한 밤공기를 길게 찢었다.

효시의 울음에 놀란 곰이 당황한 순간!

화살은 곰의 오른쪽 어깨에 깊이 박히며 곰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곰에게 박힌 화살은 아직도 힘이 남았는지 곰을 바위 뒤로 구르게 했다.

화살은 정확히 곰에게 박혔고 큰 타격을 주었으나, 다른 곰보다 지나칠 정도로 두툼한 상체 근육 탓에 치명적이진 못했다.

분노한 곰이 울부짖으며 땅을 박차고 자신과 가까운 막바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막바우는 성난 곰의 기세에 부르르 몸을 떨면서도 나무창을 단단히 쥐고 곰의 가슴팍을 향해 뛰어들었다.

멀리서 창을 날려서는 효과가 없을 거란 생각에 직접 곰의 가슴팍에 창을 밀어 넣기 위해 달려든 것이었다.

막바우의 생각대로 이 미친 겨울곰의 탄탄한 근육은 나무창을 던지면 튕겨 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창마저 손에 없다면 막바우는 곰의 앞발 일격에 두개골이 으스러져 뇌수를 풀숲에 뿌릴 것이 당연했다.

막바우가 창을 들이밀며 달려들자, 뒷다리로 선 곰이 가슴을 열고 앞발을 벌려 오히려 막바우를 맞아들였다.

이것은 크기를 부풀려 적을 위협하고 앞발로 적을 잡아 후려치려는 곰의 습성이었다.

막바우의 나무창이 이틈을 노려 곰의 가슴팍을 깊이 찔러 들어갔다.

막바우의 손에 곰의 가슴팍을 나무창이 뚫는 충격이 느껴졌다.

곧이어 충격이 전해진 손바닥은 갈라지며 피를 뿌렸다.

순간, 곰의 가슴에서 우드득하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통쾌히 들리더니, 이내 곧 막바우의 나무창도 부러졌다.

곰의 갈비뼈에 부딪혀 멈춘 창이 끝내 뚫지 못하고 부러진 것이다.

막바우는 두 토막이 난 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를 내리치는 곰의 앞발에서 불어오는 비린내 나는 바람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옆으로 굴러!”

멀리서 운철 대검을 치켜들고 달려오는 온달의 외침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막바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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