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6화 (6/328)

006화 겨울곰과 산군 그리고 사냥꾼 (3)

온달이 궁금해 묻자, 촌장이 덥수룩해 손질 안 된 수염을 만지며 답했다.

“그것이 중국인 마을만 당한 것이 아니옵고 인근 화전민 마을도 수차례 당했지요. 게다가 미친 겨울곰의 등쌀마저 더해 결국 못 견뎌 이 마을 저 마을 뜬 것인데…….”

촌장은 잠시 뜸들이다가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산군만을 의지해 방비를 게을리 한 탓이 컸지요.”

“…….”

“겨울곰은 아무리 방비를 해도 겁 없이 인가를 습격하는 놈이지만, 이리란 놈들은 사람의 공격보다 방비에 주의를 두는 놈들로, 마치 군대처럼 척후병을 두며 인가를 살핍니다. 결국, 습격당한 마을들은 이런 방비가 약했습니다.”

“이리가 척후병을 둔단 말입니까?”

평강이 촌장의 이야기를 살며시 끊으며 묻자, 촌장이 예를 갖추며 싹싹하게 설명하였다.

“그렇지요. 이리 떼는 척후대를 두었습지요. 교활하기 짝이 없는 이리의 척후대 몇 마리는 일몰과 함께 마을에 내려옵니다.”

“그래서 어찌 하나요?”

“몇 마리는 망을 보고, 나머지 한 마리가 양, 돼지는 물론이요, 어미 품에 고이 안겨 잠자는 어린애를 잠든 어미 몰래 훔쳐 가며 사람들의 방비 태세와 반응을 보았습지요.”

“…….”

“대개 여름철에 이런 짓을 하는데 방문을 열고 자거나 뜰에 자리를 펴고 자는 경우, 이리의 척후대는 여지없이 어미 품에 잠든 젖먹이를 물어가 떠봅니다.”

“떠보기 위해 물어간다고요?”

이리의 기이한 행동에 온달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미 품에서 아이를 물어갈 때는 결코 이빨로 살을 물지 않고 잠든 아이의 저고리를 물거나 입술로써 가만히 물어 발톱과 이빨이 연약한 아이의 몸에 닿지 않게 물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주의하지요.”

“아니, 이럴 수가…….”

온달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밖을 나가 멀리 간 후에야 비로소 이빨을 이용하여 아이를 물기 때문에 그제야 아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부모들이 법석하며 쫓아 나오지만, 그땐 이미 이리의 척후대가 마을 바깥으로 달아나 숨은 뒤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촌장이 다시 말을 이을 무렵, 멀리서 들려오던 이리 떼의 울음이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그제야 횃불을 들고 장정들이 몰려나와 소리쳐도 이리들은 멀리서 사람들을 관찰하고는 이를 수차례 반복해도 여전히 방비가 되지 않는 마을은 우두머리가 이끄는 본대가 몰려와 마음 놓고 살육을 벌이게 되지요.”

“…….”

“이리란 놈은 경계심이 강해 사람들의 공격보다 방비를 중요시 살피는데, 사람의 공격이 거셀 땐 멀리 도망가면 피해가 없으나 방비가 강한 곳을 애써 공격할 경우 피해가 심하기에 이를 살피고 피하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온달과 평강 공주가 이리 떼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았다.

말을 멈추었던 촌장이 짧은 헛기침 한 번 하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이리 떼가 사람들의 방비에 신경 쓰는 또 다른 이유는 이리 떼의 공격은 한번 시작하면 어지간해선 멈춤이 없기 때문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우두머리의 지혜라 생각합니다.”

“아…….”

“이리란 놈들은 말을 타고 사냥해도 활에 맞은 이리가 즉사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동료를 위해 반드시 말의 다리를 물어 사람을 떨구기 위해 달려드는 역습을 합니다.”

“…….”

“이는 이리가 잔혹하고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닌 자신의 무리에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행동이지요. 이리 무리는 모두 혈연으로 맺어진 것들이라 이런 의식이 본능적으로 강합니다.”

침을 삼킨 촌장이 힘주어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들이나 사방이 트인 넓은 곳에서 수십 마리의 이리 떼를 사냥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고, 이리들도 이를 잘 알고 있습지요.”

“영리한…….”

“한두 마리가 아닌 이리 무리를 사냥할 땐 공성전을 벌이듯 불을 환히 지피고 목책을 세우며 그 안에서 활과 창으로 상대하며 이리의 수를 조금씩 줄여 나가야 이리들이 포기해 물러납지요. 이를 중국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촌장은 중국인 마을이 습격당할 때의 상황을 화전민 마을에서 사냥감을 건네러 갔던 막바우란 젊은 사냥꾼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마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곳의 이리들은 언제나 네 마리에서 육, 칠 마리를 척후대로 이용하고 이런 척후대를 네 개나 운영합니다.”

“실로 대단합니다.”

“늙고 거대한 우두머리가 이끄는 본대는 삼사십 마리로 구성되어 이 본대를 우두머리가 이끌고 올 경우, 아무리 강력하고 거대한 곰이라도 이리 떼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지요.”

“…….”

“공격이 시작되면 이리들은 노대한 우두머리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진퇴를 하는데 한 번 공격이 시작되면 우두머리는 반드시 멈춤이 없습지요.”

“중국인들은 이리 본대가 마을을 습격하리란 것을 몰라 학살된 것이로군요.”

“그렇습지요. 막바우가 그날 본 것에 따르면 먼저 이리 한 마리가 마을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쫓는 이가 없자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고 목을 길게 하늘로 빼고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네.”

“그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는 막바우는 등골이 서늘해져 마당에 불을 지피러 나무집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이리 떼의 울음이 멀리서부터 점점 많아지더니 이내 가까워졌다 합니다.”

아까부터 들려오던 이리의 울부짖음이 마치 중국인 마을을 습격할 때 먼저 도착해 울부짖었다는 척후대의 이리 울음소리 같았다.

온달은 살며시 불안한 마음이 들어 평강 공주를 바라보았다.

평강은 촌장의 이야기에 빠져 온달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막바우가 나와 보니 우두머리 이리는 조금 높은 언덕 위에서 부하들을 내려다보았고 중국인들이 이리 떼를 상대하기 위해 활과 창을 들고 나무집에서 몰려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나 그 무서운 기세에 눌려 이리 무리들이 우왕좌왕하였다고 합니다. 막바우가 이때에 맞춰 서둘러 마당에 장작을 펼치고 불을 지피려 하자, 어리석은 중국인들이 지금부터 이리 사냥을 할 터이니 물러나 있으라 말하였다 하지요. 허허.”

잠시 방 안에 촌장의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이리 떼와 중국인들의 대치는 꽤 길었고, 초반엔 중국인들의 활과 창에 이리가 나뒹굴었으니, 언덕 위에서 지켜보던 우두머리 이리는 부하들의 무력함에 분함을 참지 못한 듯 소리 높이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덤벼 들었겠군요.”

“그리고는 번개같이 뛰어 중국인들과 마주하고 있는 부하들의 등과 머리를 단번에 타 넘어 그대로 뛰어 들어와 중국인들 사이에서 용케 지휘자를 찾아 그의 등을 타고 목덜미를 물어 핏줄을 뜯어내었다고 합니다.”

어느새 마을 앞까지 이리의 울음소리가 다가왔다.

그러자 천지를 뒤흔들 듯 멀리 하늘 위에서 노한 범의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져 내려왔다.

산머리에서 이리 떼를 향해 산군이 감히 내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라 경고하는 것 같았다.

“산군인가요?”

평강의 물음에 촌장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마저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두운 밤 검붉은 피가 중국인 지휘자의 몸에서 솟구쳐 밤하늘을 물들이고 어느새 잘려 나간 머리가 마당을 뒹굴자 혼이 나간 중국인들이 살기 위해 나무집으로 도망쳤다지요.”

“…….”

“그 뒤를 이리 떼가 따라 몰아쳐 들어갔다 합니다. 막바우는 살기 위해 횃불을 들고 죽을 둥 살 둥 내달려 우리 마을로 도망쳐 왔고요.”

“다행입니다.”

“네… 우리가 막바우의 말을 듣고 중국인 마을에 갔을 땐, 피 냄새를 맡고 이리 떼에게서 먹이를 가로채기 위해 겨울곰까지 도착해 이리 떼와 대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살아 있는 중국인은 보이지 않았습지요.”

당시 상황이 떠오르는지 주먹을 굳게 쥐고 말하는 촌장의 기세가 무척 굳건해 보였다.

“장작불을 환히 밝히고 먼저 싸우지 않고 방비하면 지쳐 물러가는 이리 떼의 습성을 알기에, 이리 떼만 있으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무엇을 해도 먹잇감에 대한 탐욕으로 물든 겨울곰은 결코 물러서지 않기에 저희도 무척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습지요.”

촌장이 손가락으로 방 밖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산군이 산머리에서 천지를 뒤흔들듯 울더니 어느새 중국인 마을 앞에 나타나 이리 떼와 겨울곰을 마주하며 서지 뭡니까?”

“산군말입니까?”

“네, 마치, 이곳은 내 영토인데 감히 네깟 것들이 함부로 설치느냐고 엄포 놓는 것처럼 마당 한가운데를 어슬렁거리며 이리 떼와 겨울곰을 노려보는 모습에 저희도 두려워 숨죽였습니다.”

“허허, 그것 참.”

“그런데 막바우가 갑자기 겁 없이 내달리며 횃불을 휘둘러 장작더미에 환히 불을 밝혔고, 그 기세에 눌려 겨울곰이 슬금슬금 물러나자 이리 떼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요.”

산머리에서 들려오는 산군의 우렁찬 포효 소리는 사람이 순간순간 정신을 놓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이리 떼 역시 기세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길게 울부짖었다.

점점 수가 늘어나더니 이제는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전날 풀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리 떼가 집결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산군과 저희만 남았는데 산군은 저희 쪽으론 등을 돌려 시선도 두지 않고 사라져 가는 이리 무리와 곰만 바라보더니 발을 절며 역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군요.”

“허…….”

“산군의 다리가 부실한 것이 아마도 이리 무리나 겨울곰과 이미 싸워왔던 것 같았습니다. 날이 밝아 시체를 수습해 수레에 싣고 마을로 돌아왔는데, 먹잇감을 결코 포기 못 하는 겨울곰이 시체를 싣고 가는 우리가 자신의 먹잇감을 뺏었다 생각해 뒤를 쫓은 모양입니다.”

“이런…….”

“이리 떼는 겨울곰을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아 추적해 온 것 같고요. 아니면 산군이나 이 마을이 목표일지도 모르지요. 이제 우리도 이 마을을 떠나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갈 곳은 없지만, 날이 밝으면 마을을 떠나야 함을 촌장은 물론, 마을 모든 이가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리와 겨울곰의 횡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를 만큼 심히 두려운 일이었다.

촌장이 말을 마치자, 온달과 평강 공주는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였다.

촌장의 집 마당으로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소리 지르며 촌장을 찾았다.

“촌장님! 덕쇠네 막둥이가 염소 우리를 돌보다가 곰에게 물려갔습니다. 서둘러 곰을 쫓아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외침에 놀라 촌장 내외와 온달과 평강이 방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그러자 횃불로 환히 불 밝힌 마당에 장정들이 몽둥이와 나무창을 들고 서서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상황을 깨달은 온달이 미안한 마음을 담아 횃불에 비쳐 빛나는 평강의 일렁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주가 애써 준비한 사냥 대회도 중하지만, 내가 바쁘다 하여 이곳의 못된 짐승을 모른 척할 순 없소. 미안하오. 공주, 난 산에 들어가야 할 것 같소.”

“아니옵니다. 백성의 곤경을 보고도 부귀를 얻을 기회만 찾아 모른 척한다면 그 누가 따르겠습니까?”

“…….”

“이리는 거란인 같고, 겨울곰은 욕심 많기가 중국인 같으니 부디 혼을 내주시어 다시는 우리 백성들이 땅을 떠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온달은 평강이 선선히 자신의 뜻을 따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격려까지 해주자 감격하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저 철궁을 둘러메고 바로 운철 대검을 한 손에 쥐어 어깨 위에 들어 올리고는 뒤따르려는 마을 사람들을 손으로 저지하며 말했다.

“밤이 깊어 가고 밖에는 아직 이리가 마을을 노리고 있으니, 그대들은 이곳에 남아 방비하심이 좋겠소. 산에는 나 혼자 올라갈 터이니 날 밝으면 그때 오시구려.”

“그게 좋겠습니다. 모두 우리 장군님을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평강 공주도 온달의 말에 동조해 마을 사람들을 말리자, 마지못해 따르며 촌장이 말했다.

“바우야, 막바우야! 네가 온달 장군님을 따라 산길을 안내하거라! 부디 잘 모셔야 하느니라. 장군님, 이놈 바우는 산을 잘 알고 뭇짐승도 잘 알며 힘이 세기에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음을 잘 아는 온달이었기에, 촌장에게 가볍게 고개 숙인 후.

평강 공주에겐 미안하고 미안해 인사도 건네지 않고 몸을 돌려 막바우와 함께 어둠 속을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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