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겨울곰과 산군 그리고 사냥꾼 (2)
고구려인 특유의 흙과 나무로 지은 촌장의 집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마당에는 나무를 잘 다듬어 만든 창이 놓여 있었으며, 야생 동물에 잘 대비되어 있어 보였다.
잠시 후, 늙은 촌장의 아내는 온달과 평강 공주를 위해 저녁상을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닭과 돼지고기를 볶고 야채를 무친 반찬이 무척 정갈했다.
아마도 온달과 평강 공주가 이곳을 지나게 될 때를 생각해 미리 마련해 둔 음식 같았다.
자신들은 먼저 치렀다며 들라 권하는 촌장 내외의 얼굴을 봐 온달과 평강은 감사히 상을 비웠다.
그동안 두 내외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촌장 내외는 묵묵히 벽만 바라보았다.
죽령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온달은 자신이 고구려인은 맞지만 특별하게 고구려란 나라에 대해 애정을 갖고 생각해 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사냥 대회를 위해 길을 나서며 자신을 진심으로 반겨주는 고구려 백성들의 진정을 느껴 고구려 백성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조금씩 더해 가고 있었다.
이렇든 나라란 땅과 이름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정해지고 더불어 살며 정이 쌓이는 것.
그리고 그곳에 사는 정든 이들을 위해 목숨 바쳐 지키는 것이라 온달은 생각했다.
상을 물리자 온달이 숭늉을 시원스레 들이켜고는 대뜸 물었다.
“그런데 마을로 수레바퀴 자국이 이어졌던데 어찌 된 일인가요?”
“그 수레는 중국 한족인 마을에서 시체를 싣고 온 것입지요.”
“중국인 마을에서 온 시체라 하셨소?”
온달이 중국인의 시체를 싣고 왔다는 말에 놀라 되묻자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근차근 답했다.
“저 앞산 너머에 중국인들이 세운 나무집이 몇 채 있는데 겨울이면 비워 두었다가 매년 봄이 될 때쯤엔 요수를 건너 돌아와 사냥도 하고 또 우리가 겨우내 잡은 토끼나 노루, 멧돼지 가죽을 받아가지요. 담비나 족제비 가죽은 꽤 높은 값도 치르기에 수년째 좋은 관계였습니다.”
촌장의 설명에 평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멀쩡한 자신들의 땅을 놔두고 이곳까지 와 장사를 하는 중국인들의 재물 욕심은 당할 길이 없군요. 요수든 동해든 안 갈 곳이 없겠어요.”
요수란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경계로,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이 갈석산으로 흐르는 황하의 끝을 요수(지금의 란허)라 하며 그 동쪽 요동에 동이가 산다 했다.
그리고 몽고인을 포함한 초원의 유목민들은 황하의 시작을 황수, 그 끝을 황하라 했다.
또한 이보다 삼백 여리 떨어진 천산 산맥 앞에서 동서로 흐르는 강 역시 요수(요하)라 하여 이 강의 동을 요동, 요택을 포함한 서를 요서라 했다.
이렇듯 요동과 요서의 경계를 구분 짓는 강의 위치가 변하고, 그에 따라 요동과 요서의 위치 또한 변함은 아마도 국력의 크기 변화에 따른 국경의 변화 때문이리라.
수해와 요동의 고구려인들은 중국인들 스스로 자신들이 사는 곳을 통칭 중원이라 부르기에, 중원에 자리한 그 나라가 한나라든, 연나라든, 진나라든, 혹은 수나라든 어찌 되었든 그들을 그저 중국인이나 한족이라 불렀다.
이렇듯 수 없는 세월 동안 나왔다 사라져 가는 중원의 나라 이름 따위는 이들에게 아무 의미 없는 것일 뿐이었다.
그것은 중국인들도 고조선 이후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을 조선인, 맥, 동이라 불러왔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구려가 장수 태왕이 평양 천도 후 고려로 국호를 변경했음에도 여전히 고구려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곰의 습격이었습니까?”
평강이 귀하디귀한 공주의 신분임에도 온달을 따라 촌장에게 존대해 묻자 촌장 내외는 황송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아이고, 공주님. 말씀 편히 놓으십시오. 그들은 곰의 습격을 받기 전에 이리 떼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리라 하셨소? 늑대를 말하는 것이오? 늑대 무리가 마을을 습격하였단 것이오?”
이리 떼가 중국인 마을을 습격했단 소리에 놀라 온달이 재차 물었다.
온달이 살던 죽령 지역에도 늑대가 무리 지어 돌아다녔으나, 사람을 두려워해 함부로 마을을 습격하지 못했다.
아이와 노인을 간혹 습격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용케 성인 남자와 손에 든 것이 무기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어 마을 근처를 배회하다가도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오면 그림자처럼 사라지곤 했다.
물론 풍문으로 늑대가 수십 마리씩 무리를 지어 마을을 초토화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으나, 꽤 드문 일로 오직 전해오는 이야기로만 들어 봤을 뿐, 막상 겪어본 일은 없었기에 놀라 물은 것이다.
“온달 장군님께옵서는 이곳보다 남쪽 지역에서 오셨지요? 이곳에서부터 두만강 아래 동북면 (함길도 혹은 함경도)의 삼산(三山) 오대(鰲載)까지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삼산과 오대는 무산(茂山)을 일컫는 옛 지명으로 동해와 두만강, 백두산을 맞대고 있는 고산지대이다.
그곳은 요동과 매서운 추위의 동북지역 및 남쪽 지역의 짐승들이 오가는 최대의 원시림이었다.
지금 온달이 있는 이곳은 무산과 연결되는 수해의 속하여 다양한 뭇짐승들이 오가는 통로 중 하나였다.
“아마도 죽령 지역에선 늑대라 불릴 터인데 이곳에선 이리라 부르지요. 사실 늑대와 이리는 성질이나 크기가 꽤 차이가 납니다. 이곳에선 산에 살며 늑대와 닮았지만 좀 더 큰 놈을 이리라 부르고, 요동 벌에 사는 늑대보다 작은 놈을 승냥이라 부르며, 이보다 작고 붉은 놈을 적랑이라 부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사실 이놈들을 구분하기는 해도 그저 통칭 이리라 편히 부르지요. 아마도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이리라 그런가 봅니다.”
진시황이 명명한 요동이라는 이름은 요수(遼水)의 끝을 시작으로 그 동쪽에 솟은 태산(泰山)의 동쪽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매우 오래되고 넓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중국 여러 국가들에게 밀린 요동의 위치는 요수가 아닌 요택을 지난 요하의 동쪽으로 굳어진지 오래였다.
“이리는 개와 유사하게 생긴 놈들이며 범들과는 여러 가지로 서로 반대되는 차이점이 많지요.”
촌장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온달이 몸을 당겨 집중했다.
“장군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범은 호랑이와 표범, 스라소니를 모두 부르는 말이고, 이곳에선 늑대와 요동 벌의 적랑, 야견과 이곳 울창한 숲에 사는 이리를 모두 통칭해 이리라 부르옵니다.”
“네.”
“범들은 주로 매서운 눈에 의지하여 다른 동물을 추격해 잡지만, 이리들은 주로 냄새를 맡아 다른 동물의 발자국이나 몸 냄새(體臭)를 추격하여 사냥합지요. 동기간은 물론이요. 제 부모하고도 함께 살지 않는 범들과 달리 이리들은 한 굴에 무리 지어 살고 떼를 이루어 사냥합니다. 어찌 보면 범보다 무서운 놈들이지요.”
이리들은 지능이 높고 교활하며 후각과 함께 시각, 청각도 예민하여 세 가지 감각을 아울러 사용했다.
매우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쉽게 지치는 범과 달리 밤낮을 일정한 속도로 달려 사냥할 정도로 지구력 또한 좋았다.
늑대는 삼한의 남반부(南半部) 특유의 짐승으로, 몸집은 이리보다 조금 작고 어깨까지의 높이(肩高)가 세 자 일 치 가량이었다.
그러나 간혹 용력이나 형모가 이리와 비슷한 놈도 있어 이리와 분간치 못할 만큼 닮아 함께 생활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애써 사람들이 그 이름을 요동 벌에 사는 초원 이리(初元狼), 적색 이리(滿洲 赤狼, 만주 적랑), 이리(산림 이리), 늑대 등으로 구별했다.
하지만 삼한에 사는 이들이 각기 다른 이름의 나라 백성으로 구분되어도 한 줄기인 동이로 불리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이리를 이곳 촌장처럼 모두 그저 이리라 불러도 충분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승냥이와 적랑을 주로 보아온 중국인들로선 이곳 이리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지요. 물론 적랑도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민가를 습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승냥이와 적랑이 강하기보다 그 지역 사람들이 무능한 것으로 이곳에선 그런 것들은 얼씬도 못 하지요.”
“…….”
“아무튼 중국인들은 산림의 이리를 무시했고, 사실 저희도 이리가 이렇게 세를 키울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전엔 없던 일이오?”
“네,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어찌 이리가 창궐하게 된 것이오?”
“모두가 산군이 힘을 잃은 탓이지요.”
“산군이 힘을 잃어요?”
가만히 곁에서 듣던 평강이 묻자, 촌장이 자세를 바로잡고 조곤조곤 공손히 아뢰기 시작했다.
“이곳 산에는 터를 잡고 사는 호랑이가 한 마리 있는데, 인축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인가에 해를 끼치는 이리와 멧돼지 수를 줄이고 떠돌이 범을 쫓으며 탐욕스런 곰의 기세를 꺾기에 우리는 이 호랑이를 산군이라 불렀습지요.”
“네.”
“그런데 이 산군이 점점 나이가 들어 지난해 멧돼지 사냥에서 늙은 멧돼지에게 옆구리를 송곳니에 찔려 상처 입은 뒤 그 힘을 잃자, 멧돼지의 수가 늘고 멧돼지가 늘자 이리의 수도 늘고 자신을 몰아내던 호랑이가 뜸하자 덩치 큰 곰도 득세하게 된 것이지요.”
호랑이를 왕대라 부르며 산신령처럼 모시고 제사를 지내어 인축이 호랑이에게 해침을 당해도 왕대가 노하셨다며 도리어 제물을 갖다 바치는 중국인들의 어리석음과 달리.
삼한의 백성들은 호랑이를 떠돌이 범과 일정한 산에 터를 잡고 사는 범으로 확실히 구분해 대했다.
이들은 터를 잡고 사는 호랑이는 떠돌이 범을 쫓고 늑대와 멧돼지 수를 줄이며 곰을 몰아 내주기에 큰 도움이 되어 호랑이가 피해를 주지 않으면 존중하였다.
반대로, 산군이라도 인축에 피해를 주면 확실히 보복을 해 사람의 무서움을 알려 주었다.
같은 짐승이요, 사람인데도 이렇듯 중국인과 삼한의 백성들은 달랐다.
이를 호랑이들도 오랜 세월을 거치며 본능적으로 중국인과 삼한의 백성을 구분해 알고 있었다.
호랑이에게 인축이 해침을 당해도 망연자실 복수는커녕 오히려 제물을 바치는 중국인을 호랑이들은 손쉬운 먹이로 여겼다.
그리고 삼한인들은 인축을 해친 짐승은 산군이라도 반드시 응징하기 위해 창과 몽둥이를 들고 덤볐기에 터를 잡고 사는 호랑이들은 오히려 삼한인을 보면 말썽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아 슬그머니 피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심마니나 나무끈, 심산의 절을 오가는 중들이 호랑이를 만나도 호랑이가 먼저 못 본 척 피해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이렇듯 현명히 사람과 충돌 없이 터를 잡고 사는 호랑이를 삼한인들은 경외와 두려움을 담아 대했고, 산군이 있는 지역은 해수들의 출몰이 적어 힘든 산 생활에도 살기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것은 사나운 맹수인 호랑이의 습성과는 무관히 그저 그 지역에 사는 인간들에게 호랑이가 맞춰 생활하게 된 것이다.
무릇 사람이든 짐승이든 저항할 땐 저항해야 함부로 못 하는 법이다.
“산군이 젊고 용맹할 땐, 저 산머리에 앉아 계곡에 빨래하는 아낙네를 지켜보고, 산 중턱 풀밭에서 염소에게 풀 먹이는 아이들을 구경하여 그 주위에 맹수들이나 잡것들이 감히 껴들지 못했는데, 산군이 다친 뒤로 한 해에 이리 무리가 새끼를 수없이 낳고 거친 곰이 이곳에 터를 잡아 난동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촌장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멀리 산에서 이리의 울음이 들려왔다.
“이 사실을 자세히 모르는 중국인들은 산군이 건재하다 생각해 이곳에 위험을 간과한 것이옵지요. 사실 이곳은 깊은 산세에 비해 그동안 평안했던 곳이 맞았으나, 지난겨울 미친 곰이 날뛰고 이리 떼가 마을을 습격해 근방 마을들이 초토화되어 하나둘 사라져 갔습니다.”
“아…….”
“곰은 곰대로 무지막지한 식탐으로 난폭히 마을을 습격했지만, 사람들의 저항에 마을을 한 번에 몰살시키진 못하였고 두고두고 그 마을을 습격해 괴롭히는 정도였지만, 이리들은 떼를 지어 한 번 작정하면 하룻밤에 작은 산골 마을 정도는 사람과 가축 모두를 먹어 치울 정도라 무엇이 더 위험한지 알 수 없을 지경이옵지요.”
잠시 말을 멈춘 촌장이 멀리 들려오는 이리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이리의 습성을 알면 대책 없이 마을을 습격해 사람에게 덤비는 곰보단 덜 두렵고, 방비할 길도 많지요. 이리는 영리해 사람이 이리 떼가 덤빌 기회만 주지 않으면 피할 수 있는 놈이나, 미친 곰은 사람이 어찌해도 결코 피할 도리 없는 놈이지요.”
“그리도 이리를 잘 안다면 어찌 중국인 마을이 당한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