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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3화 (3/328)

003화 터를 잡고 사는 짐승

팽팽히 당겨진 철궁의 시위를 떠난 화살이 날카로운 매의 울음으로 하늘을 찢으며 길게 날아갔다.

요란한 효시의 울음에 놀란 새들이 나무 위로 솟아올랐고. 들짐승들도 효시의 울음을 피해 내달려 주위가 무척 소란스러웠다.

“공주의 말대로 이 철궁으로 매의 울음을 우는 이 화살을 쏘면 일천 보 밖의 동물은 모두 도망가니 다른 이의 사냥을 크게 방해하겠구나. 내 능력이 미천해 이런 편법으로 다른 이를 방해하는 수를 공주가 생각하게 하였으니, 참으로 부끄럽구나.”

자신을 위해 공주가 마련한 활과 화살 그리고 수법을 마다할 수 없었다.

“사냥 대회까지 남은 날이 얼마 없지만, 부단히 노력해 이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 말을 달려 짐승을 쫓아 화살을 먹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천성이 우직하고 선한 온달은 다른 이를 방해하면서까지 자신만 이로울 수 없어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온달은 평강이 그에게 미처 말하지 않은 부분까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을 해치고 가축을 물어가는 곰과 호랑이를 신력을 지녀 맨손으로 잡을 수 있었으나, 온달은 짐승들의 습성을 잘 아는 사냥꾼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구려의 귀족들처럼 사냥을 즐겨, 사냥 대회 전술에 익숙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어려서부터 무예를 배워 활과 말에 익숙한 것 역시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평원 태왕과 태자 원을 따라 여러 사냥 대회를 참관했던 평강은 온달의 이런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채우고자 했다.

이 철궁과 효시엔 다른 이의 사냥을 방해하려는 계획과 달리 온달이 생각 못한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아 짐승을 맞출 실력까진 갖추지 못했지만, 온달도 나름대로 쉬지 않고 노력한 덕에 말을 멈춰 선 자세에서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짐승을 맞춤에 부족함은 없었다.

철궁의 위력은 강력해 바로 앞으로 다가온 짐승의 경우 큰 멧돼지라도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일격에 즉사시켰다.

또한 강력한 활시위의 힘 덕분에 강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곧게 잘 날아 온달의 부족한 실력과 경험을 채워 주고 있었다.

점점 활에 자신이 붙은 온달은 조금 떨어진 벌판으로 말을 달려 사냥 연습을 나가기도 했다.

사냥 대회 준비를 위해 말을 달려 사슴과 노루를 쫓고 어설프게라도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기 위함이었다.

벌판에 나와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드넓은 들에 풀을 뜯는 노루 무리가 온달의 시야에 들어왔다.

낙랑의 사냥 대회에선 주로 말을 달려 사슴과 노루를 쫓고 멧돼지를 사냥한다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온달이었다.

그래서 노루 무리를 보자 아직 많이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온달의 말 누렁이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들판에 한가로이 늘어서서 풀을 뜯는 노루 무리를 보며 발굽을 굴렸다.

“그래 해보자! 누렁아, 오늘 마음껏 달리는 거다.”

누렁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은 온달의 손이 이내 곧 화살을 먹인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쐐애액—

매의 울음을 울며 화살이 날자 그 소리에 놀란 새들이 수풀에서 하늘로 치솟았다.

갑작스런 소리에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삐쭉 치켜든 노루 떼도 곧바로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수풀 사이로 몸을 웅크려 숨으려 했다.

하지만 화살이 비켜 지나가 땅에 처박히자 그제야 정신 차리고 몸을 솟구쳐 뛰어올라 앞으로 내달렸다.

노루 떼가 달려 나가자 온달의 지시가 없음에도 누렁이가 발굽으로 땅을 박차고 노루 무리를 쫓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언덕을 쏜살처럼 미끄러지듯 내달리는 누렁이 위에서 온달은 난생처음 말을 달려 무엇인가를 쫓는 기분에 매료되어 크게 흥분하였다.

“달려라! 누렁아! 달려라!”

그렇게 노루 무리와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쏠 줄 모르는 온달의 질주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노루는 겨울이 되어 먹이가 부족해지면 인가 부근 야산에서 대담하게 먹이를 찾고 봄이 오면 들에 난 새 풀을 뜯는다.

이때의 노루는 위험이 닥치면 무성한 풀밭에 죽은 듯이 엎드려 위험을 피하다가 발각되면 몸을 튕겨 솟구친 후 빠른 주력으로 도망갔다.

노루는 가늘지만 튼튼한 다리로 한 번에 육 척 이상 도약할 수 있으며, 이 기세로 순식간에 육칠 장을 날아가듯 뛰니, 이 순발력으로 몸을 바람에 실어 내달리면 몇 리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어 그 어느 짐승도 노루를 쉬이 따라가지 못했다.

이렇듯 노루가 한번 내달리기 시작하면 능숙하지 못한 맹수와 사냥꾼은 황망히 노루 사냥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 노루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이것을 알고 있는 맹수와 사냥꾼들은 집요히 추적해 노루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나쁜 버릇은 노루뿐만 아니라 터를 잡고 사는 짐승들 대부분이 지닌 것으로 온달은 몰랐지만, 평강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온달에게 지구력이 강한 누렁이와 철궁, 효시를 마련해 준 것이다.

노루와 사슴처럼 일정한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짐승들은 결코 그 지역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사냥꾼이나 맹수가 쫓아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가 자신들의 서식 지역 경계를 벗어날 때가 되면 몸을 확 틀어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달린다.

이는 터를 잡고 사는 멧돼지와 범에게도 동일하여 이것들이 사냥꾼에게 쫓겨 도망가다가도 다시 돌아와 사냥꾼을 습격하는 것은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습성 때문이었다.

이런 점은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인간들도 다를 바 없으니, 세상의 이치가 그런가 보다.

어쨌든 평강은 온달에게 터를 잡고 사는 짐승의 사냥법을 청궁을 통해 자연스레 익히도록 했으니.

이는 곧 병법에서 말하는 ‘적을 알고 싸우느냐?’ 막연히 ‘용력으로만 싸우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무작정 누렁이가 달리는 대로 노루를 쫓던 온달은 한참을 달려도 노루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더 벌어지자, 슬슬 포기할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지구력이 뛰어난 누렁이는 그런 주인을 더욱 거센 질주로 오히려 독려하며 노루 무리를 쫓았다.

멀리 벌판이 끝나는 지점이 보일 때쯤, 드디어 온달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벌판의 경계가 보이자 노루 무리가 갑자기 몸을 획 돌려 온달을 향해 질주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노루 떼가 방향을 틀어 달려오자, 누렁이도 멈추더니 앞발을 들어 길게 말울음 한 번 내고는 온달이 활을 쉽게 쏠 수 있도록 머리를 숙여 등을 평평히 해주었다.

그제야 온달도 깨달은 바가 있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노루 떼를 겨냥해 바삐 활시위를 당겼다.

이날 온달이 맞춘 노루는 모두 세 마리였고, 모두 철궁의 강한 타격력으로 화살이 어디에 박히든지 몸이 공중에 붕 떠 땅에 처박혔다.

온달이 만약 이러한 노루의 습성을 미리 알고 준비했었다면 더 많은 수를 잡았을 것이 분명했다.

온달은 들판에서의 노루 사냥으로 평강의 깊은 배려를 깨닫고 그 뜻을 따르기 머뭇거렸던 자신의 아둔함을 책망했다.

“공주가 내게 왜 멀리서 활을 쏴 짐승을 쫓으라 했고, 짐승이 다가오면 잡으라 했는지 이제야 겨우 알겠구나. 그 말 그대로구나, 다른 뜻이 아니었어.”

괜히 공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진 온달은 자신이 잡은 노루 세 마리를 누렁이와 처음으로 나눠 짊어지고는 집으로 향했다.

해질녘 붉게 물든 석양을 등지고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린 온달과 누렁이가 노루를 짊어지고 집에 도착하자, 마당에서 기다리던 평강 공주가 크게 기뻐하였다.

“드디어 장군님께서 제대로 된 사냥을 하셨군요.”

노루란 놈은 신력이 뛰어나다고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짐승이 아님을 잘 아는 평강이었기에, 이날 온달의 사냥을 마치 범이라도 잡아 온 듯 기뻐했다.

그런 공주를 바라보는 온달의 마음도 무척 뿌듯하고 평강 공주가 고마웠다.

* * *

이월 중순이 되자 온달과 평강은 이웃과 하인들에게 모친을 부탁하고 북으로 함께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굳이 묻지 않아도 온달과 평강 공주 두 내외가 다정히 향한 곳이 어딘지 어렴풋이 알았고, 모두가 동구 밖까지 나와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배웅하였다.

장에 들러 하얀 말 한 필 구하고는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걷자 마치 모꼬지 떠나는 기분마저 들어 두 내외는 무척 즐거워했다.

길에서 만나는 이 모두가 온달이 어깨에 멘 운철 대검을 한눈에 알아보고 두 내외를 반겼다.

고구려의 평민들에겐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온달은 유례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고, 거대한 운철 대검을 가벼이 어깨에 멘 그의 신력 또한 경탄을 받았다.

그러나 그보다 신분의 격차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고구려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찾아 궁을 나와 평민 온달과 결혼한 평강 공주에겐 모두가 진심으로 감복해 머리를 숙였다.

감히 앞에 나서 어디 가는지 묻지 않아도 목적지가 어디임을 잘 알고 있기에, 길에서 만나는 이 모두 두 내외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애썼다.

평양성을 들르지 않고 지나갈 땐 말 위에 앉은 평강 공주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내렸으나, 이내 다시 밝고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와 온달과 길을 즐겼다.

점점 북으로 향하며 봄이 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바람이 거세고 추위가 심했으며 산세도 무척 험해져 갔다.

아직 얼음이 언 압록강을 건너자 황색 대지가 넓게 펼쳐져 앞에 드러났고, 그 주위로 수해(樹海)라고 불리는 광대한 침엽수림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들판과 깊은 산이 어우러진 정경에 잠시 말을 멈춘 온달과 평강은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수해 안으로 들어갔다.

수해 안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 있는 혼합림들도 있었다.

그래서 봄이 오는 이 시점, 이곳의 산과 산림들은 더없이 아름다운 색을 더해 갔다.

수해 안에선 바람도 막혀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았기에 야영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야수들이 위험하다는 주위의 만류에 날이 저물기 전엔 반드시 객잔을 찾거나 인가를 찾아 하룻밤 머물고 길을 재촉하였다.

하지만 그날은 해질녘이 다 되어 가도 사람이 사는 인가나 객잔은 찾을 수 없었다.

공주를 찬 이슬 맞히며 노숙하게 할 수 없어 애타던 온달의 눈에 멀리 산 중턱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들어왔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분명합니다.”

섬섬옥수를 들어 하얀 연기를 가리키던 평강이 온달에게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온달도 평강 공주와 시선을 마주하며 환히 웃고는 말 머리를 산 중턱으로 돌렸다.

군데군데 솟아 나온 연기가 넓게 퍼진 크기로 보아 인가 수가 꽤 돼 보였다.

“화전민 마을이거나 사냥꾼 마을이 분명할 것이오. 해 떨어지기 전에 당도할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자신 혼자라면 험한 산에서 무엇을 만나도 두렵지 않은 온달이었지만, 못난 자신을 염려해 험한 길을 따라나선 공주를 더 고생시킬 수 없었다.

온달은 저곳이 무엇이든 한걸음에 달려가 공주를 쉬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 급한 마음 탓에 온달은 사위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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