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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2화 (2/328)

002화 평강의 지혜, 철궁

봄이 다가오자, 평강은 무엇인가를 준비하는지 외출이 잦았다.

온달은 여전히 눈이 덮인 들로 말을 타고 달렸으며, 산을 오를 땐 공주가 아끼는 말이 상할 새라 귀히 여겨 말과 함께 걸어 올랐다.

평강은 온달을 태우는 말이라 귀히 대했고, 온달은 세상 무엇보다 귀한 공주가 소중히 대하는 말이라 귀히 여겼으니, 이 말은 늘그막에 주인 복을 잘 받은 것이었다.

하루는 온달이 운철 대검으로 멧돼지의 두개골을 부수고는 말에서 내려 멧돼지를 어깨에 메고 집에 도착했다.

그러자 평강 공주가 마당에 나와 그를 반기고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참을 웃더니 겨우 말했다.

“우리 장군님은 산짐승들의 재앙이 분명하지만, 이 누렁이에겐 큰 복이십니다.”

온달의 말은 북방 계통의 드넓은 초원에서 뛰놀던 말과 진나라 말의 잡종으로 그 옛날 한무제가 흉노와 전쟁을 수행할 당시 기마술이 뛰어난 흉노에 맞서기 위해 몽고인들의 도움을 받아 교배했던 품종이었다.

보통의 갈색과 흑색, 백색의 말과 달리 누런색을 띠어 볼품은 없었으나, 고구려의 철기병 개마 무사를 태웠던 군마였기에 지구력이 무척 뛰어났다.

평강과 온달은 이 말의 누런 털색을 따서 누렁이라 불렀고, 누렁이 역시 자신을 부르는 주인의 음성을 기억해 잘 따랐다.

온달은 괜히 평강의 환한 웃음이 좋아 덩달아 웃으며 마당에 멧돼지를 내려놓았다.

“이 말이 있어서 멀리 갈 수도 있고 사냥도 수월해 참 좋소. 모두가 공주 덕이오. 그런데 어디 다녀오시던 길이시오?”

온달이 공주의 차림이 방금 외출을 다녀온 것 같아 물었다.

그러자 평강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곧 삼월이기에, 준비할 것이 있어 제가 조금 바빴습니다.”

“삼월에 뭔 일이 있는 것이오?”

“삼월이 오기 전에 우린 멀리 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북으로? 북쪽 어디를 가야 하는 게요?”

“안시성 위, 요하의 그 동쪽. 중원인들이 말하는 하북 지역 동북 방향으로 바로 낙랑입니다.”

말로만 들어보았고 낙랑은 가 본 일도, 어디 있는 지역인지도 모르는 온달인지라 놀라 재차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낙랑? 낙랑에 뭔 일이 있는 것이오?”

“있지요. 하하하, 아주 중요한 일이 있지요. 하하하, 우리 장군님이 세상에 산짐승들의 재앙임을 알리는 날이 있지요.”

이야기하는 내내 평강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호쾌한 함박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온달은 영문도 모르면서 그저 공주의 웃음이 좋아 바보같이 따라 웃었다.

고조선의 영토였던 낙랑은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가 나라를 세운 졸본 지역으로 중국 하북성 동북쪽, 내몽고 남동쪽, 신성 인근 지역으로 요동성보다 동쪽 안시성보단 북동쪽 지역이었다.

고구려의 첫 수도를 ‘오녀산성’ 또는 ‘졸본’이라 불렀는데, 중국에선 한때 이 지역에 낙랑군을 설치했었다.

낙랑을 수복한 이래로, 고구려에서는 매년 봄이 오면 삼월 삼일마다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 대회를 열었다.

이날의 사냥 대회에서 잡은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으며.

태왕이 직접 여러 신료와 오부의 병사를 이끌고 사냥 대회를 공정히 평하기 위해 참관하였다.

사냥 대회는 소리를 질러 짐승을 쫓는 이, 놀란 짐승을 에워싸 한쪽으로 모는 이, 말을 달려 활로 사냥을 하는 이, 마치 기마병이 적을 몰아 잡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진행하여 전술 훈련을 방불케 했다.

이런 방식의 사냥은 북방 기마 민족들이 사냥으로 군사 훈련을 하는 것과 동일하였다.

이는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해 나라를 세운 지역이 북방의 드넓은 초원과 맞닿았기 때문이었다.

고구려는 고조선과 동일한 민족으로서 언어와 풍속이 기본적으로 서로 같았으며 활과 말을 무척 잘 다루었다.

또한 고구려와 고조선의 문화는 유사한 것이 많았는데 중원과 달리 백성들이 대문을 걸지 않고 생활하였으며 남녀가 혼인하는 것에 있어 재물을 따지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마을에 도둑이 없고 혼인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혼인에 재물이 오가는 경우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평강 공주가 평민 출신의 가난한 온달을 찾아 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공주의 성격 탓도 있었지만, 고조선부터 내려온 고구려인들의 문화적 성격 탓도 컸던 것이다.

‘낙랑의 사냥 대회에서 우리 장군님이 오부의 귀족은 물론이고 태왕까지 놀라게 할 것이야! 세상은 우리 장군님을 반드시 다시 보게 될 것이야! 아무렴.’

낙랑의 사냥 대회에서 온달의 두각을 염두에 둔 평강 공주의 웃음과 달리 공주의 웃음 자체가 좋아 따라 웃는 온달은 장차 자신의 앞에 펼쳐질 일들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사냥 대회에서 가장 많이 짐승을 잡은 이는 곧 그해의 대회 우승자로 군사력을 충실히 축적하던 고구려였기에, 바로 관직을 얻거나 주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아니, 이것은 활 아니오?”

멧돼지를 잘 정리하고 방에 들어온 온달은 벽에 걸린 검은색 무쇠 활에 놀라 평강 공주에게 물었다.

“철궁입니다. 우리 장군님께서 낙랑 사냥 대회 때 사용하실 활이지요.”

자신이 사용할 활이란 소리에 온달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하였다.

“사냥 대회? 낙랑의 사냥 대회라 하셨소?”

온달의 곤혹스런 표정은 개의치 않고 평강의 대답은 자신만만했다.

“네, 그러하옵니다.”

공주가 태연하게 답하자 온달은 더욱 불안해 자신의 못남을 더듬더듬 설명했다.

“실은 공주, 죄송하지만, 나는 짐승을 쫓아가 때려잡기는 해도 활을 쏴 본 적이 없소. 그간 바람결에 실린 소문을 듣자 하니 낙랑의 사냥 대회는 말을 달려 짐승을 쫓으며 활로 사냥한다 들었소.”

“네, 맞습니다.”

“평소에 활을 만져 본 일도 없는 내가 말을 달리며 활을 어찌 쏘겠소. 설령 쏜다 해도 나의 눈먼 화살에 맞아 줄 짐승이 있을 것 같진 않소.”

온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공주가 방그레 웃으며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저 활은 각궁이나 목궁이 아니옵고 철태궁도 아닌, 철궁입니다. 신력이 없으면 아무나 시위를 당길 수 없는 활로 일천 보 이상 날아가지요.”

“…….”

“우리 장군께선 신력을 지니셨으니 충분히 시위를 당겨 일천 보 밖으로 화살을 날리실 수 있을 겁니다. 철궁의 시위를 당김만으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놀래킬 것입니다. 그러나 화살이 멀리 나간다 하여 짐승을 맞춘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

“그렇소. 당겨 보니, 당기는 것은 쉬운 일이나 맞춘다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오.”

벽에 걸린 활을 내려 시위를 가볍게 당겨 본 온달이 평강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공주도 내가 맞추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내게 활을 마련해 준 것은 필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은근히 다음 말을 기다리는 온달의 표정을 읽은 평강이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온달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사냥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선 반드시 말과 활이 필요합니다. 활은 만드는 것도 오래 걸리고 또한 새로 만들어진 활은 길들여지지 않아 오래된 활보다 못하며, 궁술이란 것은 한두 해 수련한다 하여 실력이 쌓이는 재주가 아니옵니다.”

“그렇다고 들었소.”

“다시 말씀 올리자면 이 활은 직접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철궁이옵니다. 장군님께선 천부적인 힘을 지니셔 이 활의 무게를 전혀 느끼시지 못하시지만, 일반 장정은 한 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활입니다.”

“음…….”

“이 활에 사용될 화살은 잘 다듬은 싸리나무를 대로 하고 도끼날 모양의 촉을 달고 있는데, 촉과 대 사이에 작은 구멍이 두개 파여 있어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 때, 바람이 구멍 사이를 통과하며 매의 울음소리를 내지요. 바로 호시가 효시이며 명적입니다.”

공주의 말에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화살촉 부위를 살펴보는 온달이었다.

그의 눈에는 도끼날 모양의 화살촉과 연결된 대에 풀피리처럼 작은 구멍이 두 개 난 것이 들어왔다.

이 구멍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화살과 다른 점이 전혀 없는 모습의 화살이라 온달은 이리저리 살펴보며 무척 신기해했다.

“이 화살을 날리면 매의 울음소리가 난다 하였소?”

“그러하옵니다. 일천 보를 나르며 날카롭게 울지요.”

“그런데, 매의 울음과 사냥과는 어떤 관계가 있소? 이 화살이 운다고 화살에 짐승이 맞을 리는 없을 것이고…….”

“그날의 장군님께선 가장 앞서 말을 달리시며 가장 멀리 활을 쏘십시오. 그리고 사슴이나 멧돼지같이 사람을 보면 도망치는 짐승보다 사람을 보면 노해 달려드는 범과 곰을 잡으십시오.”

“…….”

“이 활은 쇠로 만들어졌기에, 접근전에선 철퇴와 같은 능력도 보일 것입니다. 물론 장군님껜 운철 대검이 있어서 그리 사용하실 일은 적겠으나, 원거리 공격 능력만 지닌, 다른 활보단 분명 요긴하시리라 생각되옵니다.”

온달은 그제야 평강 공주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깨닫고 그녀의 지혜에 탄복했다.

‘아하! 공주는 내가 짧은 기간 수련으로 짐승을 맞출 수 없음을 알고서 먼 곳에서 짐승에게 활을 쏴 다른 이도 사냥하기 어렵게 주변 짐승들을 모두 쫓으란 이야기였구나.’

온달이 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가 무척 사려 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이 철궁을 들고 범과 곰처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소리에 이끌려 분노해 달려드는 짐승을 접근해 상대하란 이야기구나.’

온달이 생각해 보니 그간 공주가 그를 가르치고 마련해 준 말과 운철 대검은 모두 숱한 세월을 허송세월로 보낸 자신에게 가장 최적화된 것들로, 이 철궁 또한 공주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져 내심 고마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온달이 생각한 것은 평강의 의도를 반도 헤아리지 못한 것이었다.

고조선을 이어 고구려인들은 어려서부터 활을 다루고 말을 모는 솜씨 또한 뛰어나, 자신들을 중원인이라 칭하는 중국인들(한족)에게 동이족이라 불리었다.

동이족(東夷族)의 이(夷)는 큰 활을 의미하는 대(大)자와 궁(弓)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로 고구려의 건국 시조 고주몽(高朱蒙)의 이름인 ‘주몽’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고구려인을 ‘맥’이라고도 불렀고, 고구려의 활을 맥궁(貊弓)이라 했으며, 이들의 활을 좋은 활로 여겨 무척 탐내곤 했다.

맥궁은 고구려인이 사용하는 여러 종류의 활을 통칭하며 동이란 명칭에서 유래된 대궁은 철궁, 철태궁을 뜻했다.

철궁은 뜻 그대로 활의 모든 부분이 쇠로 되었고, 철태궁은 몸통 부분에 쇠를 된 활로 이 두 활이 대표적인 고구려의 대궁이었다.

단궁으로 물소의 뿔로 단순하게 만들어진 중국의 각궁과 달랐다.

고구려의 각궁은 말 위에서 상체를 뒤로 돌려 활을 쏘는 기마 민족 특유의 사법(射法)을 위해 소의 갈비뼈로 만들어 두 번 굽은 이중만곡궁(二重彎曲弓)과 나무와 뼈, 힘줄 등을 결합해서 만든 합성궁(合成弓) 등이 있었다.

말 위에서는 각궁을 사용하고 대궁은 말 위에서 사용하기 어려웠으나, 평강의 생각대로 신력을 지닌 온달에겐 이는 해당하지 않았다.

평강 공주가 온달을 위해 전투용으로 특별히 제작한 이 철궁은 과히 대궁이라 불릴 만큼 컸고, 쇠로 만들어졌기에 전투 무기로 파괴력과 정확도가 극대화되어 있었다.

이는 훗날 온달이 수련을 계속해 활쏘기가 능숙해질 때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했다.

그 무엇에게도 멀리서 단 한 발로 절명에 이를 정도로 필히 치명상을 입힐 그런 활이었다.

팔 척의 온달이 말을 타고 대궁을 든다면 사냥 대회 누구보다 가장 돋보일 것은 분명했다.

활 재주와 별개로 오부의 귀족을 포함해 평원 태왕에게까지 온달의 위용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었다.

‘아, 공주의 말대로 아무리 큰 곰이라도 이 활로 후려치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구나. 물론 나는 운철 대검이 있어 활을 철퇴처럼 휘두를 일은 없겠지만, 여러모로 요긴하겠다.’

그때, 온달은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화살을 날리면 매의 울음소리에 놀라 사슴과 멧돼지 같은 짐승들이 멀리 도망갈 텐데… 사냥 대회의 다른 이들도 짐승을 잡기 어렵지 않을까. 공주가 원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사냥을 방해하는 것인가? 물어 볼 수도 없고 난처하구나. 어찌 되었든, 난 사냥을 해야 하는데 소리에 노해 도망가지 않고 내게 덤빌 곰과 호랑이가 어디 흔한 일인가?’

한 손으로 활의 묵직함을 느끼던 온달이 평강을 바라보며 물었다.

“곰과 호랑이가 사슴이나 멧돼지만큼 흔하고 눈에 잘 띄는 것이 아닌데 다른 짐승은 내쫓고 그것들만 상대해도 되겠소?”

호랑이와 곰이 나타날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호랑이와 곰이 자신에게 덤비지 않을까 두려운 온달이었다.

평강은 온달의 근심을 미소로 다독이며 말했다.

“이번 대회는 서부총관 강이식과 을지문덕 공이 맡고 있는데 두 분께 제가 사람을 보내어 이전 대회와 달리 들판에서만 진행하지 않고 들과 산이 맞닿은 곳에서 열리도록 부탁했습니다.”

“…….”

“아울러 범과 곰도 이 지역에 부족함이 없도록 당부드렸지요. 다행스럽게도 사냥 대회가 열리는 신성 인근은 대대로 태왕의 사냥 터이옵기에 범과 곰이 부족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평강은 말을 이어 갔다.

“또한 이번 대회는 시작 시, 징과 나팔로 짐승을 쫓는 이는 있어도 말 탄 이를 위해 들판으로 뭇짐승을 몰이하는 이들은 없이 들과 숲, 산에서 진행될 터이니, 숲에 들어가 곰과 호랑이를 만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시리라 생각하옵니다.”

공주의 설명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으나 자신만만한 공주의 음색에 기운을 얻은 온달은 그제야 얼굴이 환히 펴졌다.

“아하! 아무튼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있었구려. 어찌 된 일이든 곰과 호랑이를 쉬이 만날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참 잘 됐어요.”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고 담력이 센 장수라도 산에서 곰과 호랑이를 만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진대, 온달은 오히려 기뻐하였다.

그의 아내 되는 평강 역시, 곰과 호랑이가 많을 거라 온달을 안심시키니, 이 두 내외는 과연 보통의 사람들과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북방의 곰과 범은 한강 이남의 것들과 크기에 차이가 남을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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