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화 (1/328)

001화 온달의 운철 대검

위대한 두 태왕,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 사후.

고구려는 오부 귀족 간의 다툼이 잦고 왕권이 약해져만 갔다.

또한 남쪽 지역에서는 신라와 충돌이 잦아 오백 년간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강 상류와 죽령 이남까지 잃게 되었다.

덕분에 삼한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죽령을 떠나 아직은 고구려의 땅인 한강 하류로 터를 옮기게 되었다.

키는 팔 척이요, 허리는 아름드리나무와 같고, 크고 둥근 눈이 무척 선한 온달이 그 인물이었다.

큰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헌헌대장부의 기골과 달리, 온달은 배움이 짧은 가난한 평민 출신으로 눈먼 어미를 봉양하며 늦도록 장가 못 간 보잘것없는 사내였다.

순박한 품성과 죽령 지역의 어눌한 억양 탓에 바보라 불린 온달은 삼한 전 지역에서 그 어떤 귀족보다 유명했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장정 열이 겨우 드는 바위를 공깃돌 들듯 가볍게 놀릴 정도의 신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소를 물고 가는 큰 곰을 쫓아가 맨손으로 곰의 목을 졸라 죽이고는 돈 되는 곰은 버려 둔 채, 다 죽어가는 소를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부터.

인가를 습격하는 떠돌이 범을 주먹으로 때려죽이고는 범 고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가죽은 범에게 습격당해 큰일 치를 뻔했던 아이에게 줬다는 이야기까지.

어디가 진실이고 무엇이 과장인지 모를 정도로 그에 관한 이야기는 참으로 다양했다.

여러 소문들 속에서 누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온달을 힘으로는 사람은 물론 짐승들조차 당할 수 없으며, 그가 지극히 순박하다는 것이다.

* * *

당시 고구려의 평원 태왕은 대성산 기슭에 있던 안학궁을 떠나 장안성으로 도성을 옮겼고, 사람들은 이 장안성을 이때부터 평양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평양성은 이전 성들과 달리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한데 합쳐 지은 단일 구조의 도성이었다.

내성, 외성(나성), 북성, 중성 등의 성벽이 겹겹으로 둘러쳐졌고, 성벽의 길이는 날랜 이가 한나절을 달려도 끝에 다다르기 어려웠다.

성벽을 따라 흐르는 대동강을 해자로 이용할 만큼 요새의 기능이 충실했으나, 크고 튼튼한 기존의 안학궁을 두고 평양성 내로 궁을 옮긴 태왕의 뜻은 이 성 내에 백성들도 함께 거주하기 위함이었다.

평원 태왕은 날로 강성해지는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평민들도 관직에 끌어들이며 이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으니, 평양성 내로 궁을 옮김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평원 태왕에게는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맡길 든든하며,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뛰어난 자녀가 셋이 있었는데, 이들은 태자 원과, 이 왕자 건무 그리고 공주 평강이었다.

태자 원과 평강 공주는 같은 어미의 배에서 나왔고 성격 또한 비슷해 밝고 쾌활하며 매사 적극적이고 온화하였다.

이와 달리 다른 어미의 배에서 태어난 이 왕자 건무는 우울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매사 근심이 깊어 부정적인 성향이 짙었다.

태자 원과 평강 공주는 평원 태왕의 뜻을 따라 민심을 살피기 위해 노력했고, 이 왕자 건무는 이복 형 태자 원이 있었기에 자신은 태왕이 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그래서 무예와 병법에 집중했고, 그의 무예가 중원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뛰어나 평원 태왕을 기쁘게 하였다.

평강 공주가 열여섯 살 되던 해, 평원 태왕이 상부(고구려 왕도 5부의 하나)의 귀족 태대형 목원의의 아들 목충에게 그녀를 시집보내려 했다.

그러나 평강 공주는 이를 거역하고 스스로 궁궐을 나와 자신이 생각해 온 인물을 찾아 떠난다.

평강 공주가 혼사를 거절한 목충의 집안은 고구려의 시작과 함께 성장한 대표적 귀족 가문으로 절노부(絶奴部)에서 대가(大加)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그는 대장군 고강의 아우 고성과 막역한 사이로 고구려 왕종 계루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고 오골성을 다스리며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은 물론이오, 요동의 고구려 해군 기지인 비사성까지 힘이 닿고 있었다.

그의 부친 목원의는 고구려의 재상 대대로 다음가는 태대형의 지위를 지닌 인물로 목충은 관직을 세습함과 더불어 대대로의 지위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막강한 세를 지닌 목충을 마다하고 평강 공주가 찾아간 인물은 고구려는 물론이요, 삼한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구중궁궐 속 공주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질 만큼 모르는 이가 없는 사내, 바로 온달이었다.

온달의 집은 한강 이남의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했으나, 온달이 워낙 유명해 모르는 이가 없기에 평강 공주가 그를 찾기란 무척 쉬운 일이었다.

젊고 어여쁜 공주가 궁색한 자신의 오두막을 찾아오자 황망한 온달은 공주를 아내로 맞기는커녕 내쫓기에 바빴다.

“이런 깊은 산에 그대같이 어여쁜 이가 나를 찾아올 리 없소. 그대는 필시 여우가 분명하니 썩 물러가시오!”

자신의 신분을 밝힌 평강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내몰기에 바쁜 온달의 우직함을 그녀는 오히려 듬직이 여겼다.

눈먼 온달의 모친 또한 자신들의 움막이 공주가 머물 곳이 못됨을 알고 나서서 아뢰었다.

“제 자식은 비루하여 귀인의 짝이 될 수 없고, 집 또한 몹시 가난하여 정말로 귀인이 거처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한사코 거절하는 두 모자를 바라보며 공주가 허리 숙여 이야기하였다.

“옛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도 방아를 찧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꿰맬 수 있다.’고 하였으니 만일 마음만 맞는다면 어찌 꼭 부귀해야만 같이 살겠습니까?”

이들이 한 명은 각시가 되겠다고 조르고, 다른 한 명은 여우처럼 어여뻐 안 된다며 어처구니없는 실랑이를 하던 중.

하늘이 찢어지며 길게 빛이 이어져 내려 뒷산으로 향하더니, 밤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천지가 진동하고 불이 산을 태워 대낮같이 환해졌다.

말재간이라고는 조금도 지니지 못한 온달로선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져 산불까지 번진 이처럼 험한 밤에 신분이 귀한 공주를 홀로 내칠 재주도 없었고.

밝고 쾌활한 공주의 성격 또한 그가 당해 내지 못하여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온갖 사람들이 전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들은 평원 태왕의 허락을 얻지 못하였기에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의 과정은 꽤 길고 고난스러웠다.

온달의 오두막에 머물며 평강은 지니고 있던 패물을 팔아 제대로 된 그릇 하나 없는 살림에 보태었고.

신력을 지녔으나 무예를 배운 일 없는 온달을 위해 특별히 그에게만 어울릴 검을 만들어 주기 위해 솜씨 좋은 대장장이를 구하였다.

왕궁 호위 무사의 추천으로 평강을 찾아온 대장장이는 무예를 모르고 가진 것이라곤 오직 신력뿐인 온달에게 적합한 검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제대로 날을 갈지 못해 시퍼런 날이 전혀 없으며, 쇠를 갈아 나오는 광택 또한 전혀 없는 투박한 검은색 운철 대검이었다.

운철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에 포함된 광물로 그 수가 적고 귀해 대장장이 역시 자신도 이전에 본 적 없는 검이라 말했다.

“마침, 내게 좋은 쇠가 있고, 온달 그대가 천복이 있어 운철을 지니고 있기에 이런 물건이 만들어진 것이오. 아마도 나는 이와 같은 검은 다시는 볼 수도 만들 수도 없을 것이 분명하오.”

운철에 포함된 광은 단단하며 무거웠고, 이를 녹여 쇠와 섞어 만든 검은 합금 제작 과정상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팔 척이 넘는 온달보다 일 척이 더 큰 검은 검날의 넓이가 곰 발바닥 같은 온달의 손바닥보다 넓었고, 두께 또한 두툼했으며, 그 무게가 백이십 근을 훌쩍 넘어 장정 둘이 겨우 들 수 있었다.

이 거대한 운철 대검을 온달은 한 손에 쥐고 가볍게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고, 그가 바위를 내리치면 바위가 산산조각 나며, 나무를 후려치면 허리가 부러진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 날아갔다.

훈련을 위해 이 운철 대검과 감히 부딪칠 도검은 물론이요.

방패 또한 없었다.

검집을 만들 수도 필요도 없는 검이라 자신의 키보다 더 큰 검을 온달은 어깨에 메고 이 산 저 산 뛰어다니며 바위와 나무, 곰과 멧돼지를 상대로 몸에 맞게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익혀 나갔다.

온달이 운철 대검을 오른손에 쥐어 한쪽 어깨에 올려 메고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놀라 말했다.

“저것이 창이여? 쇠몽둥이여? 뭐가 저리 길고 크더냐? 색은 또 왜 저리도 검고.”

누구도 이와 같은 검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온달이 운철 대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될 무렵, 평강 공주는 온달에게 패물을 건네며 이것을 팔아 말을 구하라 말했다.

“이것들을 팔아 말 한 필 구하세요. 아마도 여기는 시장에 나가도 좋은 말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주의하셔야 하세요.”

“좋은 말이 있다 해도 내가 알아볼 수가 있겠소?”

말을 타 본 적도 구해 본 일도 없는 온달인지라 당연한 반응이었다.

평강은 방긋 웃으며 그에게 한 가지만 명심해 구하면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 조언했다.

“늙고 비루한 말이더라도 군대에서 사용하던 군마를 사시면 되옵니다. 윤기가 흐르고 잘 먹어 살찌고 근육이 튼실한 말보다 군대에서 사용했던 말을 꼭 사시옵소서. 그런 말이라면 어떤 경우도 우리 장군님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공주와 결혼했다고 하나, 여전히 온달의 신분은 평민이었고 평원 태왕과 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혼이었다.

그렇기에 감히 그가 장군이란 직함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평강은 그를 항상 존중해 우리 장군님이라 불렀다.

말을 사러 나온 온달을 보자, 사람들은 순박하지만 효심 깊고 신력이 뛰어난 그를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 뒤를 따라다니며 기웃거렸고, 온달이 말을 둘러보자 떼를 지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온달이 말을 산다!”

“말보다 큰 온달을 태울 말이 있을까?”

“힘이 장사인 온달이 말을 타면 항우 못지않을 거여.”

공주의 이야기대로 보기 좋은 말은 모두 거르고 군대에서 내다 파는 늙고 여윈 말을 사자, 말 장수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그를 비웃었다.

“저 말은 늙고 삐쩍 말라 온달을 태우지 못하겠지만, 다행스럽게 온달이 장사라 말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 되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말은 말을 타 본 적 없는 온달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태우고 뚜벅뚜벅 잘도 걸었고, 말 위에 앉은 온달의 당당한 풍채에 사람들이 경탄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후, 온달은 말을 타고 산을 오르며 들판을 달리고 검을 휘둘렀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야윈 말은 결코 그를 떨어뜨리지도 주저앉지도 않았고, 온달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힘차게 내달렸다.

평강은 자신의 낭군을 태우는 이 말이 너무도 소중하고 고마워 알뜰히 돌봤고 가죽만 남았던 말도 점점 살이 찌며 털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말과 함께 온달 역시 평강의 가르침으로 글자를 깨우치고 병법을 공부하며 늠름한 모습에 조금씩 지혜까지 더해 나갔다.

이 순간에도 온달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고구려는 물론 삼한 곳곳과 주변 나라까지 퍼져 나갔다.

어느새 사람들은 거대한 검은색 운철 대검을 어깨에 멘 온달이 말을 타고 세상에 나올 날을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손꼽아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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