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다시, 2030년 (完)
1.
2030년 4월 29일 월요일 저녁 5시.
대산호텔 청담 연회장.
강철이 들어서자 입구에서 한복을 입은 채 손님을 받고 있던 김명길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어! 오셨십니까!”
“우리 김 회장 2세 돌잔치인데 내가 빠질 수가 있나?”
“바쁘실텐데, 고맙십니다, 이사장님.”
“고맙긴. 당연한 걸.”
강철은 그렇게 김명길과 악수한 후 주변을 둘러봤다.
“이거, 주인공 아버지 되는 사람이 제일 건달처럼 보이는 게 참 그림이 웃기네.”
강철의 말에 김명길은 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 물을 빼본다고 뺐는데…… 이 덩치가 있어가.”
“덩치는 개뿔, 와꾸가 그 모양이니 달건이처럼 보이는 거지.”
그때, 강철의 뒤에서 누군가가 김명길을 그렇게 놀려먹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이사장님.”
서용태였다.
서용태는 강철에게 깍듯이 인사했고,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오랜만이야, 서 사장. 사업은 잘 돼가고?”
“그래, 마 오랜만에 이사장님하고 이래 봤는데, 함 설명해봐라.”
강철의 말에 뒤이은 김명길의 말에 서용태는 코웃음을 치며 김명길에게 말했다.
“내가 말한다고 네가 A.I 프로그래밍을 알아듣냐?”
그렇게 말하고는,
“아니 왜 그 미국 부통령 있잖습니까. 빌 라이언. 그 인간이 CIA 출신 아니랄까 봐, 보안 가지고 계속 딴지를 걸어서 요즘 죽겠습니다.”
“라이언 부통령이? 일단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지. 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다소 이야기가 심각해질 것 같자, 일단 강철은 이 자리에선 피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아이쿠, 오랜만입니다.”
최병천이 들어왔다.
“이야, 최 부회장님. 겁나 오랜만이네예.”
“아니 뭐, 저번에 화상회의 했잖습니까.”
“에이, 컴퓨터로 보는 거랑, 이래 직접 보는 거 하고 같십니까?”
최병천은 먼저 김명길과 인사를 나눈 후, 차례로 강철, 서용태와 악수했다.
“이야, 이렇게 모이니까, 옛날 생각 나는구만.”
강철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껄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들이 소리 내어 웃자 주변 손님들 시선이 쏠렸다.
“저 사람 강철 아니야?”
“거신장학재단 이사장?”
“실제로 저 사람이 거신그룹 회장이란 말이 있어. 지금 회장은 바지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거신그룹 부회장 최병천 아니야?”
“맞네. 그러고 보니 최병천 옆에는 그 사람 아닌가? 서용태?”
“삼우전자 A.I부문 사장?”
“이야…… 김명길 회장 인맥이 대단하단 소리는 듣긴 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것은 김명길이 원한 것이기도 했다.
“자, 적당히 이 새끼 가오 살려줬으니까, 그만 들어가 앉으시죠?”
서용태의 말에 김명길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먼저들 들어가 있어. 난 잠시 화장실 좀.”
“아, 네. 자, 들어갑시다, 최 부회장님.”
최병천과 서용태가 먼저 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강철은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나왔을 때, 그는 김명길과 인사하는 또 다른 손님을 볼 수 있었다.
‘허어?’
강철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머!”
“아이고, 강 이사장. 오랜만이오. 허허허.”
조민석과 유아영 부부가, 이제 7살 된 딸 조민영과 함께 김명길 2세의 돌잔치에 참석했다.
“오랜만이오, 조 회장. 형수님. 민영아.”
강철은 조민석과 악수한 후 유아영, 조민영과 차례로 눈인사를 했다.
“민영아 인사해야지?”
유아영은 마주 눈인사한 후 조민영을 강철에게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조민영은 배꼽에 양손을 모은 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허허허허!”
그 모습을 보고서 조민석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내가 요즘 민영이 보는 낙으로 산다오. 허허허. 강 이사장이나 김 회장도 마찬가지겠지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지는 마 요즘 애가 밤만 되면 울어싸가 죽겠십니다.”
“그때가 그래도 좋은 거예요. 막 걸어 다니고 말하기 시작하면 더 힘들어져요.”
네 사람은 그렇게 가볍게 담소를 나누다가 함께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명율 군이 잡은 건 연필이었습니다!”
“아-! 아버지 안타까워해요!”
“연필보단 돈이 더 좋다 이거죠.”
돌잔치는 두 연예인의 사회 아래 즐겁게 진행됐다.
‘다들 잘살고 있구만.’
문득, 강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30년…….’
2030년.
세계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갈등과 빈부격차 같은 문제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세계는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사상 그리고 새로운 문화적 사조가 등장하며 치열하게 진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초능력자도, 멸망도, 괴수도 없는 세상. 뭐, 원래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이지.’
김명길은 2029년에 속도위반으로 결혼했고, 현재 그 아들 김명율을 키우고 있다.
여전히 그는 대산그룹 회장이고, 방송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를 받을 만큼 나름 열정적으로 산 덕분에, 이제는 건달보다는 사업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최병천은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15살 연하의 애인과 함께 동거하고 있으며, 거신그룹 법무전담 부회장으로 벌써 14년째 재직하고 있다.
서용태는 애초에 고학력자였던데다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및 A.I관련해서 전문가였기에 삼우전자에 A.I부문 사장으로 캐스팅돼 현재 열심히 삼우전자의 A.I산업을 진흥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조민석은 은퇴자의 삶을 즐기며 조용히 살고 있었고, 유아영과는 8년 전 정식으로 결혼하여 현재 7살 난 딸 조민영을 키우며 즐겁게 살고 있다.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어.’
강철은 자신과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즐거운 삶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2.
2030년 5월 7일 화요일.
경상남도 진해시.
“조심해서 다녀와. 위험한 보직은 가급적 피하고.”
“걱정 마세요, 삼촌. 뭐, 애초에 갑판병으로 지원한 거라서…… 삼촌이 힘을 좀 써 주셔서 고구려호에 배치되게 해주신다면 더 편할 거예요.”
“항공모함은 더 힘들지 않나?”
“오히려 더 편해요. 전자동화에 삼촌도 잘 알겠지만, 고구려호는 훈련이나 파병보단 행사 때 더 많이 출동하니까요.”
“항모랍시고 애매하게 3만 톤짜리를 만들어 놓으니 그 모양이지.”
“근데 그거 태성중공업에서 만든 거잖아요.”
해군 병사로 입대하는 엄민식과의 마지막 점심 식사 자리에서, 강철은 그의 말을 듣고서, 곧장 폰을 꺼내 해군참모총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민식이가 해군병으로 입대합니다. 아이가 항공모함을 그렇게 좋아하네요.>
“쉿!”
엄민식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온, 태성중공업 사장 겸 태성그룹 부회장 박정연은 엄민식의 지적에 조용하라 손짓하며 윙크했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었어.”
“책임 떠넘기기, 그거 좋은 거 아니에요, 이모. 그렇지, 지우야?”
엄민식은 박정연에게 그렇게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을 던지고는, 자기 옆에 앉은 어린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배다! 배!”
“그래, 저 배들이 거의 다 지우 엄마가 만든 배야.”
“얘는, 지우가 그런 걸 알겠니? 그리고 배를 만든 건 조선소 기술자지 내가 아니야.”
“배!”
“하하하. 지우야. 너도 13년 뒤에 형처럼 해군으로 입대하렴. 그땐 그래도 항공모함이 어디 해외 파병은 나가고 있겠지?”
2024년생, 올해 세는 나이로 7살이 된, 강철과 박정연의 아들 강지우는 어른들의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아이는 식당 벽에 걸린 군함 사진을 바라보며 신기해할 뿐이었다.
“지우도 나중에 해군에 오고 싶은가 봐요.”
엄민식의 말에 박정연은 씩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장교로 보낼 거야.”
잠시 후, 식사를 끝마치고, 강철과 박정연, 엄민식 그리고 강지우는 함께 해군기지 강당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6주간의 훈련을 통해,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는 당당한 수병으로 탄생하게 될 겁니다!”
사령관의 연설이 끝나고, 입영 대상자들은 모두 줄지어 앞으로 6주간 지낼 생활관으로 이동했다.
“갔다 올게요! 나중에 영통이나 해요, 삼촌!”
“그래, 잘 갔다 와라.”
강철은 엄민식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지우가 민식이 나이가 됐을 때쯤엔, 우리나라도 통일이 돼서 모병제를 할 수 있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정연은 뒷좌석에 앉아 잠든 강지우를 바라보며, 강철에게 물었다.
“민식이도 어릴 때 그렇게 생각했어.”
강철은 그 말을 일축했다.
“하긴…….”
그러면서 박정연은 강철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어허, 왜 이래?”
“A.I 운전으로 세팅하고, 오랜만에 어때? 달리는 차 안에서?”
“지우가 자고 있잖아.”
“내가 신음소리 참을게.”
“어허. 왜 이래?”
“어머, 그러는 자기는 왜 이래? 지우도 이렇게 만들어졌잖아?”
“어허!”
강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지우의 눈치를 살짝 본 후, 운전을 A.I 자동 세팅으로 설정했다.
“내숭 떨기는.”
박정연은 씩 웃으며,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3.
2030년 5월 24일 금요일 정오.
강철은 가야호텔 웨딩홀에 도착했다.
“아이고, 이사장님! 오시기 힘드시다더니!”
“아니 뭐, 힘들다고 했지, 못 간다곤 안 했으니까 말입니다.”
거신장학재단 부이사장은 상급자이자 거신그룹의 실지배자인 강철에게 허리를 숙이며 굽신거렸다.
“아들놈도 기뻐할 겁니다.”
“주4일제라 금요일에 결혼하는 커플이 많다더니…… 진짜 많더군요. 밖에 웨딩카만 7대나 되는 것 같던데.”
“하하하. 그래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복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자, 들어가시죠.”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축의금을 내고자 신랑 측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강철은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
강철은 눈을 의심했다.
‘신부…… 강솔?’
강철은 일단 축의금을 내고 결혼식장에 들어가 앉았다.
잠시 후, 결혼식이 시작됐고, 신랑신부가 들어왔으며, 주례사가 있었고, 퇴장이 있었다.
그리고 사진촬영이 있었다.
그 모든 과정 동안 강철은 신부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모든 촬영이 끝나고, 신랑신부 폐백까지 끝난 후, 그들이 식당에 찾아왔을 때, 그리고 자기 자리까지 찾아왔을 때, 신부에게 말했다.
“오랜만이다, 솔아.”
강철의 말에 신부 강솔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강 이사장님, 우리 며느리하고 아시는 사입니까?”
“나야, 철이 오빠. 기억 안 나?”
강솔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강철에게 말했다.
“철이 오빠야? 혹시, 사랑의 집 철이 오빠야가?”
“기억하는구나.”
“와! 이게 무슨 일이고?”
“그러게. 하하하.”
“오빠야 와 이래 폭삭 늙었노? 못 알아봤다 아이가.”
“너는 사투리가 더 심해진 것 같네.”
“부산에 계속 살았으니까. 와. 이 뭐고?”
강솔은 활짝 웃으며 강철의 손을 마주 잡았다.
강철은 강솔의 손을 잡고 그녀와 눈을 맞추며 활짝 웃었다.
‘솔이 너도 행복하게 사는구나. 됐어. 그럼 된 거야.’
강솔의 밝은 모습에, 훌륭한 신랑과 시아버지를 둔 모습에, 그녀의 행복한 모습에 강철은 만족을 느꼈다.
‘그래. 이럼 다 된 거야.’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