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74화 (174/175)

174 구조조정

1.

2016년 10월 20일.

삼우그룹 회장 김대영이 사망했다.

역사적인 거인의 죽음은 곧 온 신문 지면을 덮었고, 그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뭐, 말년이 추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분 덕에 한국 전자 산업이 여기까지 온 거니까.”

“솔직히 그 양반 없었으면 이 나라가 여기까지 왔겠어요?”

“사람이 항상 좋은 면만 있을 순 없잖아요?”

시민들은 그의 추한 말년을 기억하면서도, 대체로 그가 한국 경제에 끼친 좋은 영향력을 언급하며, 그를 추모해주었다.

삼우그룹에선 조용히 가족장 형태로 치르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랬기에 대규모 조문객이 찾아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결국 저번에 제가 말한 대로 여기서 보게 되네요.”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10시.

점점 사람들이 많이 들어차기 시작하는 장례식장에 강철은 개인 자격으로 조문을 왔다.

그는 김대영의 영정사진을 향해 두 차례 절한 후, 김태준과 김도은에게 맞절한 뒤 식당에서 김태준과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편안하게 가셨습니다. 환히 웃으시면서요. 아마 마지막에 좋은 꿈을 꾸셨나 봐요.”

김태준은 강철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강철이 김태준의 잔을 채우려 하자 김태준은 사양했다.

김태준은 엄연히 강철에겐 어른이었던 만큼, 강철은 강요하지 않고, 자기 잔만 털어냈다.

“사람은 죽을 때, 뇌에서 굉장히 강한 호르몬이 분출된다고 해요. 그리고 영원히 이어지는 꿈을 꾸게 된다고 하고요.”

갑작스럽게 죽음 직전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김태준을 강철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마 아버지는…… 죽기 직전 꾸는 영원한 마지막 꿈에서…… 굉장히 좋은 걸 보신 것 같아요.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김태준은 마른안주 하나를 집어 먹었다.

“그렇게 본다면, 아버지는 천국에 가신 거라고 봐도 되는 거겠죠. 죽는 상황에서조차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런 꿈을 꾸신 거니까. 그리고 그 꿈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이미 끝난 일이겠지만, 아버지에겐 영원한 꿈일 테니까.”

“정말로 천국에 가셨을 수도 있잖습니까?”

강철의 물음에 김태준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 실장님은 그런 걸 믿습니까?”

“요즘 민식이가 유치원 친구 따라 교회를 나가는데, 저한테 천국에 대해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천국이라…….”

김태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천국이 진짜 있다고 쳐도…… 과연 아버지가…… 거기에…….”

그는 말을 잇질 못했다.

“부회장님.”

그때, 수행원 하나가 김태준을 불렀다.

또 다른 조문객 행렬의 등장 때문이었다.

“아이고, 저는 가볼게요.”

“네, 수고하십시오.”

여당 원내대표와 그를 따르는 국회의원들의 조문 행렬을 맞이하는 김태준을 보며 강철은 생각했다.

‘천국이라…….’

강철은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런 건가, 다들 감상적으로 변해 있어. 김태준도, 김도은도.’

그렇게 강철은 조용히 밥을 먹고는, 자신에게 인사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인사나 건네곤 장례식장을 떠났다.

2.

김대영은 죽으면서 20조 정도의 가치를 지닌 재산을 김태준과 김도은에게 상속했다.

두 사람은 특별한 법적 분쟁 없이 5:5로 김대영의 재산을 상속받았고, 각자에게 부과된 상속세 5조 원은 분할하여 납부하기로 결정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20조 규모의 상속을 받았다는 것보다도, 김대영 사후 삼우그룹이 3개로 계열분리 된다는 것이었다.

“삼우전자그룹은 삼우전자를 지주사로 해서 독자적으로 분리되는 겁니다. 이제 총수 일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회사가 되는 거죠.”

“삼우전자그룹은 본래 미쓰토모가 대주주였는데, 최근에 미쓰토모가 지분을 전량 몰타에 있는 에우로파 인베스트먼트에 매각하면서 대주주가 유럽계 투자사가 돼 버린 건데……”

“일단 에우로파 인베스트먼트에서는 대표자 명의로 삼우전자에 대한 일체의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다만, 주총 등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에는 상당히 큰 영향을 발휘하겠죠.”

“김도은 사장은 가야호텔을 중심으로 해서 삼우리조트, 삼우백화점 및 그 관련 계열사를 다 챙겨서 따로 가야호텔그룹을 만들어 독립할 거로 보입니다.”

“김태준 부회장이 이제 나머지를 다 가져가는 건데, 이렇게 되면 재계 지각 변동은 불가피한 것 아니겠습니까?”

방송에선 경제 분석가들이 삼우그룹의 3분할 이후를 예측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김태준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야 뭐 평이한 수준으로 알려졌고, 김도은 사장은 상당히 우수한 수준이라고 하니까, 두 그룹 자체에는 큰 문제는 안 생길 겁니다.”

“이제 단독으로 재계 서열 2위로 단숨에 우뚝 솟은 삼우전자그룹은, 오히려 이제 오너리스크의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더 성장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대체로 사람들은 김태준의 삼우그룹은 무난할 것으로, 김도은의 가야호텔그룹은 성장할 것으로 그리고 독립 삼우전자그룹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삼우그룹의 3분할에 쏠려 있는 사이, 강철은 조용히 2년 전부터 진행해온 일신그룹과 거목그룹 합병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거신그룹은 거목그룹의 클 거와 일신그룹의 믿을 신을 합친 이름으로, 큰 믿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고객과 국민 그리고 주주 여러분께 큰 믿음을 드릴 것이며, 믿음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11월 4일 금요일, 종로구 거목그룹 본사와 중구 일신그룹 본사에서 동시에 양사의 합병에 관한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강철이 고의로 언론의 시선을 삼우그룹에 더 집중되게 조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재계 서열 12위와 15위의 대기업 집단이 합치는데 마냥 기자회견 없이 넘어갈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서로 겹치던 영역이 하나가 되면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고, 겹치지 않던 영역이 한 그룹에 묶이면서 상호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

기자들은 거목그룹과 일신그룹에서 발표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복사 붙여넣기 수준으로 해서 보도했다.

삼우그룹이라는, 재계 서열 1위 기업의 3분할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었던 까닭에, 거목과 일신의 합병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덕분에 거목그룹과 일신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종적으로 합병 승인을 한 11월 7일 월요일자로 거신그룹이란 이름의, 단일 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 전부터 거목과 일신이 합자회사를 만들어 그곳으로 자산과 인력을 천천히 이동시켜두었던 만큼, 합병 이후에 흔히 발생하는 혼선은 최소화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거신그룹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나와 우리 민식이의 지배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는 거지.”

거신그룹의 탄생은, 단순히 두 대기업 집단의 합병과 재계 서열 9위의 새로운 기업 집단이 나타났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그것의 진짜 의미는, 거목그룹에 대한 강철의 장악력과 일신그룹에 대한 강철의 장악력 및 엄민식의 지분율이 합쳐지면서,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공고한 지배권력이 확립됐다는 데에 있었다.

“한보성이는 그냥 평범한 주요 주주 중 하나가 됐을 뿐이야. 국민연금의 절반 수준 밖에 안 되는 지분을 가졌으니, 뭐 배당금 나오면 배당금으로 땅이나 사라지.”

그렇게 말하며, 강철은 치와와 ‘길동이’와 놀고 있는 엄민식에게 말했다.

“민식이 너, 나중에 삼촌이 해준 거 싹 잊고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

그 말에 엄민식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민식은 치와와 ‘길동이’와 함께 놀며 까르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 네가 뭘 알겠니.”

그리고 강철은 그런 엄민식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3.

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정오.

“신랑 강철은 신부 박정연을 죽기만큼 사랑하고, 배신하지 않으며, 자기 목숨보다 더 아낄 것을 다짐합니까?”

“네!”

“신부 박정연은 신랑 강철을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 자존심을 챙겨주고, 영원히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까?”

“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구출 이후 꼭 3년 만에, 강철은 박정연과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맹세는 이곳에 오늘 모인 모든 하객과 저기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가 증거할 겁니다.”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인 야당 김 대표의 주례로 치러진 결혼식에는, 평일임에도 정재계 인사 및 연예계 인사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자, 우리 두 젊은이들이 퇴장할 때, 모두 두 사람의 영원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원하며 큰 박수를 주시길 바랍니다.”

간결한 주례사 끝에,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퇴장했다.

그 순간, 전통적인 결혼식 음악이 아닌, 달달하고 감미로운, 사랑에 관한 팝송이 흘러나오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짝짝짝짝-!]

“축하해요!”

“축하해 정연아!”

“잘 살아야 해!”

“나도 연하 소개 시켜 주라!”

박정연 측 하객들은 박정연에게 그렇게 환호하며 축하해주었다.

[짝짝짝짝-!]

“실장님, 우리 형수님한테는 절대 내한테 했듯이 하면 안 됩니데이!”

“축하합니다!”

“이젠 좀 부드러워지세요!”

강철 측 하객들은 강철에게 그렇게 농담을 던지며 환호하고 축하해주었다.

“자, 신랑신부, 사진 찍겠습니다. 신랑, 신부한테 뜨겁게 키스해주세요.”

퇴장 행렬의 끝에서 사진촬영이 있었다.

사진기사는 강철에게 박정연에게 키스할 것을 주문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만큼, 박정연은 굉장히 수줍어하고 있었다.

“실장님, 뭐하십니까!”

“키스해! 키스해!”

“우오오오!”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키스해라는 구호가 튀어나왔다.

강철은 활짝 웃으며, 그대로 박정연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에게 깊게 키스했다.

“오오오옹-!”

“와아아아-!”

“멋지다! 강 실장!”

비교적 젊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두 사람은 진한 키스를 나누며 웨딩마치의 절정에서 그렇게 훌륭한 사진을 남겼다.

“허허허. 요즘 젊은 친구들이란…….”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 아닙니까.”

“그래…… 한 번뿐이어야지.”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최 사장?”

“어이쿠,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황 의원.”

나이 든 하객들은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으시겠습니다, 박 회장님.”

하객 중 하나로 참석한 김태준이 박태화에게 다가가 그렇게 물었다.

“응? 어…… 물론 좋지. 아주 좋아. 어디 가서 저런 사윗감을 구하겠나? 허허허. 아들 하나를 더 얻은 기분이야. 허허허허허.”

박태화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박태화는, 주변 눈치를 살피며, 눈을 비비는 척, 눈물을 훔쳤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게요!”

그렇게, 강철은 박정연과 함께 모든 하객에게 행복하게 살 것을 선언하며, 결혼식은 화려한 피날레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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