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김대영
1.
삼우그룹의 순환출자는, 최종적으로 총수 일가가 가장 적은 지분으로 삼우전자에 대한 가장 많은 지배권을 행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실질적으로 삼우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한 삼우전자 지분은 김대영의 3%와 김태준의 0.6%, 김도은의 0.5%로 해서 총 4.1% 정도였다.
하지만 순환출자 덕분에 총수 일가는 총 18.2%에 달하는 지배력을 챙길 수 있었고, 거기에 확보한 우호지분과 정치 권력과의 좋은 관계에 힘입어 전체를 통제할 수 있었다.
강철이 행한 것은, 그러한 삼우전자에 대한 총수 일가의 통제권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김씨 일가 입장에서도 거절할 순 없었겠지. 어차피 누구 하나 압도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될 상황에서, 순환출자 구조에서 중요한 고리를 담당하는 관계사의 지분을 25%씩 가지고 있는 외부인의 눈치를 보기보단, 차라리 계열 분리가 나은 거지.”
8월 25일과 27일에 강철이 김도은, 김태준과 맺은 각서는 9월 19일에 지분이 교환되기 시작하여, 10월 6일에 완벽하게 각서대로 지분이 이동함에 따라 그 효력을 다했다.
“앞으로 재계는 많이 변할 거야. 김도은 사장을 중심으로 한 가야호텔그룹과 김태준 사장을 중심으로 한, 가야호텔그룹 및 삼우전자그룹을 제외한 삼우그룹이 분리되겠지.”
아직까지는 김대영이 살아 있었고, 그의 지분이 분할되지 않았던 만큼, 삼우그룹은 애매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대영이 죽고 나면, 그 통일성도 깨질 터였다.
“삼우전자는 벌써 자기가 완전히 가져온 거 아니야?”
10월 7일 금요일 저녁 7시.
송파구 신천동 시그니엘호텔 프라이빗 라운지.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고층 건물에서, 강철은 박정연과 함께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트 와중에도 강철은 비즈니스 이야기를 했고, 박정연도 그게 싫지만은 않은 듯 경청하고 있었다.
“삼우전자?”
강철은 피식 웃었다.
“완전히 가져왔지.”
“그럼 삼우전자는 이제 어떻게 처분할 거야?”
박정연의 관심사는, 박태화와 똑같았다.
아니, 꼭 박정연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미쓰토모의 실소유주가 강철임이 드러난 이상, 대한민국에서 시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가 주목하는 주제이기도 했다.
“일단 미쓰토모가 들고 있는 지분을 전부 다 에우로파 인베스트먼트에 매각해야지.”
“에우로파? 아…… 에우로파.”
“그리고 우리 조반니 그라치아니 씨는 아마 삼우전자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그러니까 총수 없는 회사로 남겨두실 거고.”
박정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우전자를 그냥 내버려 두겠다고?”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니 왜?”
“태성전자도 전문경영인 체제잖아? 그런 거랑 같은 거지.”
태성전자의 전문경영인 체제는, 실질적인 경영은 고용된 임원들에게 맡기면서도 박태화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해 내부 권력 구조를 다루는 형식이었다.
“진짜 그렇게 하려고?”
박정연의 물음에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삼우전자는…… 어떻게 보면 이제 국민기업이야. 삼우전자와 그 관계사만 분리해도, 이미 재계 서열 2위잖아.”
“그렇긴 한데…….”
“그런 기업을 내가 함부로 지배하고 컨트롤했다가, 자칫 경영에 문제라도 생길 경우, 그래서 회사가 무너지기라도 할 경우, 이 나라도 무너지게 돼.”
강철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셨다.
“난 도의적으로건, 법적으로건, 국가 경제 붕괴에 대한 책임은 지기 싫어.”
거목그룹과 일신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강철은 경영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비자금으로 경영이 수월하도록 정치질이나 했을 뿐, 구체적으로 기업의 미래에 대한 설계나 투자에 관한 결정은 모두 전문경영인들에게 일임했다.
“한국 재벌들은 말이야. 그런 게 문제야. 능력이 애매해도, 단지 총수 일가란 이유만으로 회사의 모든 것을 책임진단 말이지. 근데 그거 알아?”
강철은 가만히 박정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벌들, 평소에는 무제한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딱 지분만큼만 유한책임을 지려 한다는 거.”
박정연은 피식 웃었다.
“어머, 나도 재벌인데?”
“대신 누나는 무능하지 않잖아.”
“뭐야, 오빠 이야기하는 거야, 그럼?”
강철은 피식 웃었다.
“장학재단 이사로 조용히 사는 분을 내가 왜 저격하고 있겠어? 그냥 대체로 내가 봐온 걸 보면 그렇단 거지.”
강철은 칵테일을 쭉 들이켰다.
“세상은 변해야 해. 이미 변했고, 앞으로도 변하겠지.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2.
이전까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김대영은 건강을 이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가짜 입원을 즐겨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진짜였다.
삼우그룹 합병이 최종적으로 무산되자 김대영은 그대로 집에서 쓰러졌고, 삼우병원 VIP실에 입원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 2개월 가까이 돼 가는 상황에서도, 그는 깨어나지 못한 채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10월 9일 일요일 오후 2시.
가야호텔 사장실에서 김도은은 강철에게 그렇게 말했다.
“앙상하게, 진짜 살가죽이 뼈에 붙은 수준으로까지 마르셨어요. 난 정말 태어나서 아버지가 그런 모습 처음이에요.”
김도은은 상당히 슬퍼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김 사장님한테 굉장히 두려운 분이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철의 말에 김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하지만 두려워하신 만큼, 또 사랑하기도 하신 모양이네요.”
“사랑이라…… 그렇다기보다는 뭐랄까…… 허망해서 말이에요. 그렇게 정력적이고 열정적이던 분이, 돌아가실 때가 되니 저렇게 초라해질 수도 있는 거구나…… 나도 저렇게 되는 걸까? 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이었다.
김도은은 분명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긴 했다.
다만, 부친에 대한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컸을 뿐이었다.
그리고 두려워하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던 사람이 초라하게 말라 죽어가는 모습에 묘한 세계관의 균열이 생긴 것이었다.
“김 회장께서 돌아가시면, 20조 정도의 재산이 분할 상속될 겁니다.”
“그렇겠죠?”
“단순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김 사장님이 내야 할 상속세가 5조는 되는 건데…… 현금은 무사하십니까?”
“뭐…… 분할 납부라는 것도 있고, 불필요한 자산 현금화하면 또 마련할 수 있고.”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부분은 이제 더 이상 그가 걱정할 부분은 아니었다.
“잘하실 겁니다. 김 사장님은.”
“잘해야죠.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삼우그룹의 일부가, 분리돼 저한테 왔는데, 제 대에서 사라지면 부끄럽잖아요?”
김도은은 강철을 향해 역으로 말했다.
“강 실장님도 잘하셔야 할 거예요. 선대 재벌 총수들이 잘 이끌었던 기업, 강 실장님이 맡고 무너지면, 전문경영인들이 전부 입지가 좁아질 거니까요.”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잘될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김도은의 물음에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민식이랑 놀아주기로 해서 말입니다.”
“좋은 후견인이네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게, 저에게 주어진 권한에 대한 마땅한 의무 아니겠습니까?”
강철은 그렇게 사무실을 나섰다.
‘의무라…… 후견인으로서의 의무일까? 아니면…… 어쩌면…….’
강철과 엄민식의 관계, 더 나아가 강철과 죽은 한소영의 관계에 대한 김도은의 상념은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녀에겐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단, 일단 당면한 가야호텔그룹의 계열분리 이후에 관한 구상을 짜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3.
김대영은 분명 결함이 많은 인물이었다.
어릴 적 사생아로 자라며 실질적으론 동생인 사람들을 형으로 모시고, 자신을 극도로 증오하던 여인을 어머니로 모시며, 친모의 기일조차 기념하지 못했던 기억은 그에게 혈통에 대한 집착과 동시에 이복형제와 그 일가에 대한 가혹한 조치를 취하게끔 만들었다.
덕분에 그는 조카를 자살하게 만들고, 유흥업에 종사하게 했으며, 범죄자가 되게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그 어떠한 책임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이 받은 치욕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성욕도 대단해서, 80이 다 될 때까지도 2주에 1회꼴로 여자를 불러 매춘을 즐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생길 경우, 가차 없이 낙태를 시켰고, 아이를 낳겠다는 여자가 있으면 납치를 해서라도 애를 떼 버렸다.
그 모든 것은 혈통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듣던, 종년의 아들이라는 멸칭은 그를 근본, 혈통, 출신성분을 따지는 구시대적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국 경제에 대한 그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전자 산업 부분에서 그의 업적은 독보적인 수준이었으며, 만약 그가 없었다면 삼우전자의 패스트팔로워인 태성전자도 없었을 정도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결함도 많지만, 또 역사에 미친 업적도 많은 사람.
그런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내 인생에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런 호적수일 겁니다.”
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밤 10시 45분.
삼우병원 VIP실.
강철은 김대영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눈을 뜬 김대영은 힘없는 얼굴로 강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너한테 너무하긴 했지만, 너도 나한테 너무했어.’
김대영은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저도 좀 너무했습니다.”
김대영의 눈이 떨렸다.
‘내 속마음이 들려?’
“네, 들립니다.”
‘어떻게?’
“그냥 뭐…… 초능력 같은 겁니다.”
‘그러니…… 전부 다 자네한테 당한 거지.’
김대영은 분명 웃고 있었다.
‘한 길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놈하고 싸우니, 이게 싸움이 성립이 안 되는 거였지.’
김대영은 한 차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떠 강철을 바라봤다.
‘자네와 나의 싸움은, 자네와 나의 선에서 끝내야 해. 태준이나 도은이한테는…… 그 애들 대에까지는 이어지면 안 돼.’
“걱정 마십시오. 두 분하고는 원만한 비즈니스 파트너쉽을 맺고 있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하네. 나도 그렇게까지 자네를 고약하게 대하는 게 아니었는데…….’
“뭐,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 가시는 길은 제가 지켜드리면서, 화해하니까, 된 거 아닙니까?”
김대영은 눈을 감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대로, 김대영은 즐겁게 웃는 얼굴로, 숨을 거두었다.
‘결국 사람은 죽을 때 모든 것을 두고 가는 것을…….’
김대영의 죽음을 지켜준 것은, 김태준도 아니었고 김도은도 아니었으며, 그를 수행하던 차세대기획본부 직원들도 아닌, 그의 말년에 그의 모든 것을 처참하게 무너뜨린 강철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강철이었기에, 김대영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