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70화 (170/175)

170 주총 (1)

1.

“어떻게 하실 거죠?”

8월 7일 일요일 저녁 6시 30분.

가야호텔 레스토랑 VIP룸.

김도은의 물음에 강철은 티슈로 입을 닦은 후, 물을 한 잔 마시고 말했다.

“계획대로, 부결시킬 겁니다.”

강철의 말에 김도은은 불안함 가득한 얼굴로, 웃지도 못한 채,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김 사장님은 예정대로 반대표를 던지시면 됩니다.”

“지금 이미 판세는 다 분석이 됐어요. 2% 차로 합병안은 가결될 거라고.”

김도은의 말대로였다.

내일, 8월 8일 월요일에 있을 삼우리조트 주총, 8월 10일 수요일에 있을 삼우건설 주총 그리고 8월 12일 금요일에 있을 삼우상사 주총에서, 이들 3개사와 ㈜아스가르드의 합병안은 가까스로 통과가 될 예정이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말이다.

“변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변수요? 어떤 변수요? 갑자기, 아버지가 마음을 바꿔서, 합병안을 부결시키는 변수요?”

김도은은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녀 나름대로 내부적으로 정보를 모으면서도, 그녀는 사실상 이번 합병 부결 건을 강철에게 전적으로 위임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철은 그저 계획을 짜고 있다는 말만 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삼우리조트 주총을 하루 앞둔 날까지, 강철은 구체적인 부결 계획을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김도은을 불안하게 했다.

‘내가 진짜 믿고 반대표를 던져도 될까?’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순간, 김도은은 김대영과 김태준 두 사람과 전면전을 치르게 될 터였다.

김대영 입장에선 배은망덕한 딸이고, 김태준 입장에선 의리 없는 여동생이다.

두 사람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터였고, 만약 합병안이 가결이라도 될 경우, 김도은은 순수하게 자기 명의로 쥐고 있는 삼우그룹 계열사 주식과 몇 가지 현금성 자산 및 부동산을 빼고는 모든 것을 잃게 될 터였다.

‘이런……’

그리고 그런 그녀의 불안과 그로 인한 이탈 가능성을 관심법을 통해 읽고 있던 강철은, 그녀를 안심시킬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미쓰토모.”

강철의 입에서 미쓰토모란 단어가 나오자 김도은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미쓰토모가 주총에 참석할 겁니다.”

“미, 미쓰토모가요?”

강철은 그녀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명함은, 강철이 맹우균에게서 받은, 미쓰토모의 자산관리인 마츠모토 사토시의 것이었다.

“마츠모토 다로 씨의 조카 마츠모토 사토시. 그 사람이 미쓰토모의 자산관리인입니다.”

“마츠모토? 혹시?”

“네, 맞습니다. 마츠모토상사입니다.”

마츠모토상사는 예전보단 못하지만 여전히 삼우그룹에게는 중요한 사업 파트너였다.

일본에서 건너오는 주요 소재의 대부분이 마츠모토상사를 통하기 때문이었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통되는 주요 완제품의 물류 또한 마츠모토상사가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츠모토상사가 우리 대주주였다고?’

단순한 사업 파트너인줄로만 알았던 마츠모토상사가 실제론 삼우그룹의 주요 대주주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 김도은은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충격보다는, 건설과 리조트, 상사 그리고 심지어 가야호텔에 이르기까지, 삼우그룹의 주요 관계사에 대해 25%의 지배력을 가진 미쓰토모가, 배당도 받지 않은 채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던 그 회사가 주총에 참석한다는 것이 김도은에겐 더 중요했다.

“어떻게 접촉하셨죠?”

“말씀드렸잖습니까. 계획을 짜고 있었다고.”

“…… 미쓰토모의 의견은?”

“우리와 같습니다.”

강철의 말에 김도은은 한결 표정이 밝아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우리 뜻대로 이뤄질 겁니다.”

강철은 그렇게 말하며 김도은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었다.

자기 잔이 반쯤 차오르자, 이번엔 김도은이 와인 병을 강철로부터 건네받아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주총을 위하여.”

“위하여.”

두 사람은 잔을 가볍게 부딪쳤고, 청아한 소리가 룸에 울려 퍼졌다.

‘근데…… 합병이 무산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와인을 마시며, 김도은은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까지야 합병 무산에만 모든 것을 걸고 달려왔는데…….’

미쓰토모가 참석해 반대표를 행사한다는 것은, 곧 강철이 그들과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김도은은 생각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가야호텔 지분만큼은 내가 어떻게든 미쓰토모에게 받아내야 해.’

삼우그룹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애초에 강철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김도은은 과대망상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삼우그룹 전체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반평생 몸담았고, 사업을 진두지휘했으며, 사실상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가야호텔을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거기에 운이 좋으면 몇 개 관계사를 덤으로 받는 거고.

‘주총에 참석하는 사람, 그 사람과 이야기를 잘 나누면 되겠지.’

김도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재밌겠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던 강철은, 내일 주총장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마찬가지로 잔을 내려놓았다.

2.

일요일 밤 9시.

이태원동 김대영 자택 별채 서재.

“마지막으로 다 점검했지?”

김대영의 물음에 김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다 점검했습니다.”

“몇 프로 차이로 가결이 된다고?”

“5%입니다.”

“5%…… 도은이가…… 배신할 경우에는?”

“그래도 2% 차로 가결됩니다.”

“도은이도 알고는 있고? 그거?”

“뭐, 만약 배신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정도 분석은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정도 분석을 했다면 배신할 리가 없겠죠.”

“아니야…… 모르는 일이야. 사람이…… 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어. 이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야.”

“뭐…… 아버지나 제가 도은이한테 섭섭하게 해준 건 없잖습니까?”

김대영은 김태준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곤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김태준에게 물었다.

“정말로…… 호텔하고 리조트를 도은이한테 떼줄 생각이야?”

“뭐, 어차피 삼우산업으로 합병되고 난 다음엔 리조트가 가지고 있던 지분이 다 섞이니까, 그 상태에서 물적분할 해서 리조트만 딱 떼면 아무 문제 없잖습니까?”

“내가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도은이도 아버지 딸 아닙니까. 뭔가를 가져가는 게 있어야죠. 그리고 호텔이랑 관광 이쪽은 도은이가 사실 전문가 아닙니까?”

김대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걱정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김태준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태준이 너는…… 옛날부터 참 애가 욕심이 없었어.”

“아닙니다. 저 돈 욕심 많았습니다.”

“그거야 어릴 때니까 그랬던 거고. 항상 너는 도은이한테 많이 양보하고, 친구들한테 양보하고, 머슴들한테도 양보하고 그랬어.”

“뭐, 양보해도 제가 가진 게 줄어들진 않으니까요.”

천하태평 한 김태준의 말에 김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욕심을 가져. 그래도 네가 이제 내 뒤를 이어서 회장이 될 건데, 욕심이 있어야지.”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저에게 내려온 그룹을 더 크게 키우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래야지. 아무튼, 합병 이후에 무조건 너는 대통령하고, 야당에 김 대표하고 차례로 만나서 잘 그 이야기해 둬야 해. 안 그러면, 나중에 정권 바뀌고 네가 또 고생할 수가 있어.”

“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김대영은, 걱정을 거둘 수가 없었다.

욕심 없는 아들, 혹시 모를 변수 그리고 합병 이후에 발생할 정치적 위기까지.

‘김 대표가 돈을 안 먹는 인간이라 참 어렵네, 어려워. 부산에다 공장이라도 지어주든가 해야지.’

3.

8월 8일 월요일 오후 1시.

여의도 삼우리조트 본사 사옥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제일 많은 사람은 시위대였고, 그 다음은 주주들이었으며, 그 다음이 기자들이었다.

“불법 승계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주주 이익 해치는 합병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1,500명 규모의 시위대가 길 건너편에서 도로 한 차선을 막고서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주주들은 속속들이 삼우리조트 본사 대회의실로 올라갔다.

“응?”

“어?”

삼우그룹 전현직 임원과 대놓고 합병 반대를 외치며 반대파를 규합해 반대파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반대파의 선봉 라미아 측 대리인 그리고 그 외 국민연금 측 대리인부터 소액주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기자들의 시선을 확 끄는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강철?”

수행원과 함께 차에서 내린 남자는 강철이었다.

“강 실장님도 주총에 참석하시는 겁니까?”

“삼우리조트 지분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이전까진 가만히 주주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기자들은 일제히 강철에게 몰려들어 질문을 던졌다.

대놓고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강철이 김대영과 굉장히 불편한 사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삼우그룹 총수 일가 입장에선 굉장히 중요한 이번 주총에 강철이 참석했다는 것은, 기자들에겐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마디만 해주시죠!”

기자들의 물음에 강철은 한마디만 던졌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부회장님! 부회장님!”

강철의 등장은 주총장에 앉아 있던 김태준에게도 전달됐다.

“뭐?”

김태준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사람이 왜?”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주총장으로 강철이 들어섰다.

“강철?”

“일신그룹이 왜?”

“일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게 있던가?”

당황하는 건 다른 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반대파로 참석한 라미아 측 대리인도, 사실상 찬성할 거라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지만 자기들만 중립이라 주장하는 국민연금 대리인도, 그리고 김도은마저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강철을 바라봤다.

강철은 자신을 향한 그런 당혹감 가득한 시선을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잠시 주총장 내부를 둘러보다가 이내 김도은의 곁에 가서 앉았다.

“무슨 짓이에요?”

김도은의 물음에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주가 주총에 참석한 게 뭐 문제가 됩니까?”

김도은은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 특히 김태준 쪽을 바라봤다.

김태준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김도은과 강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김도은은 강철에게 물었다.

“강 실장님이 지분을 취득한 게 있어요?”

강철은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수행원으로부터 받은 서류 가방을 열어 그 안에서 소유권을 비롯한 몇 가지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김도은은 그 서류에 찍힌 도장과 표지에 적힌 글자를 보고는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쓰토모?’

김도은은 강철을 바라봤다.

강철은 그런 김도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쓰토모 관리인은 마츠모토 사토시지만, 소유주는 접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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