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맹우균 (4)
7.
맹우균은 강철에게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철은 그에게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애쓰진 않았다.
관심법이 알려주길, 맹우균의 생각이 상당히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려고 한다면, 역효과만 날 게 뻔했다.
그랬기에 강철은 맹우균을 남양주 자택에다 태워다준 후,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구만.’
강철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누웠다.
그리곤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를 길게 내뿜은 후, 흩어지는 잿빛 구름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맹우균은 내면이 굉장히 복잡해. 한편으론 자신을 엿먹인 김영식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마츠모토 다로의 유언 때문에 고뇌하고 있어.’
마츠모토 다로는 맹우균에게 미쓰토모의 나머지 지분을 몰아주면서, 유언을 남겼다.
그것은 잊으라는 것이었다.
‘잊는다라…….’
강철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철은 자신의 원수를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회귀하자마자 자신을 괴롭혔던, 그리고 회귀한 그 시점에도 괴롭히고 있던 고현수의 귀를 물어뜯었고, 학창 시절 없는 집 아이들을 대놓고 차별했던 담임을 구타했다.
이전 생에 자신을 배신하고 죽인 오길동을 찾아가 똑같이 산 채로 썰어 죽였다.
그리고 김명길과는 달리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고, 자신을 사지로 끌고 간 현봉태를 죽이고 그를 배후에서 조종했던, 경찰 언더커버 요원 선병호를 처치했다.
그 외에도 강철은,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거나 혹은 자신에게 원한을 사거나 한 사람에게는, 마땅한 보복을 가했다.
‘당연히 안 되지.’
그리고 사실, 그건 맹우균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단지 맹우균은 힘이 없었을 뿐, 만약 그에게 힘이 있었다면 김영식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원수가 죽어버리고, 그 자식에게 대신해서 복수를 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맹우균의 내면이 복잡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원수인 김영식은 죽었다.
더 이상 그가 김영식 본인에게 보복할 방법은 없다.
부관참시를 하기엔, 무덤을 파도 이젠 흙만 나올 터였다.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 아프간하운드에게 ‘영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 말고는, 김영식 본인에게 할 만한 마땅한 보복은 없었다.
그렇다고 남은 자식인 김대영이나 삼우그룹 그 자체에 보복하기에는, 맹우균이 그들에게까진 심각할 정도의 복수심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적당히 자극했던 건데.’
강철이 맹우균은 삼우그룹 박물관에 이끌고 간 것은, 그런 그의 마음에 분노를 부채질하기 위함이었다.
삼우그룹 박물관에는, 그리고 인터넷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공식 자료에서는, 맹우균의 존재가 없었다.
맹우균은 그저 굿프렌드그룹의 창업자이자 명예회장일 뿐이었다.
그것은 삼우그룹의 역사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삼우종합물산 창립은 전적으로 김영식이 한 것으로 돼 있었다.
아마 역사도, 그렇게 기억할 터였다.
그것을 강철은 맹우균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당신이 이대로 떠난다면, 결국 역사에서 당신은, 당신이 삼우그룹에 끼친 영향과 무관하게, 삼우그룹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맹우균은, 어느 정도 그런 메시지를 잘 수용해서, 꽤나 분노하긴 했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가 더 필요했다.
그랬기에 강철은, 삼우그룹이 앞으로 거대해지면, 그 누구도 견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면, 이 나라에 남을 미래 세대에게 불행이 닥칠 거라는, 다소 감상적이고 비논리적인 소리를 맹우균에게 했다.
맹우균이 그 소리 자체에 확 흔들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강철을 ‘낭만 있는 젊은 친구’ 정도로 생각하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맹우균의 결단인데…….’
그 부분까지는 강철이 어찌할 수 없었다.
이미 강철은 던질 건 다 던진 상황이었다.
이제는, 관심법으로 읽어도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맹우균의 내면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그 정리된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길 바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만약에…… 맹 회장이 결단을 해서 반대표를 행사한다면, 그러면 김도은이 찬성표를 행사해도 합병 결의는 부결이 돼.’
강철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불가항력적인 일이 이런 곳에서 발생하는구나.’
8.
“다행히 호흡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열이 높은 만큼, 당분간은 입원 치료를 하며 케어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8월 3일 수요일.
삼우 4개 관계사 합병을 위한 1차 주총 격인 삼우리조트 주총이 5일 남은 날 오후 7시.
강철은 우신종합병원 VIP실에서, 침대에 누운 채 곤히 잠든 엄민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약혼녀 박정연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엄민식의 주치의가 간호사들과 함께 있었다.
“수고했습니다.”
강철은 엄민식의 병을 진단해준 의사에게 그렇게 말하며 나가라 손짓했다.
의료진은 곧 입원실에서 퇴실했고, 방 안에는 자고 있는 엄민식과 강철, 박정연 셋만이 남게 됐다.
“다행이다. 그치?”
“그렇네.”
“나도 어릴 때 감기에 많이 시달렸다고 하더라구. 다들 한 번씩 겪는 걸까?”
“흐음…… 그럴지도?”
“혹시 민식이 옆에서 담배 피우고 그런 건 아니지?”
박정연의 물음에 강철은 강하게 부정했다.
“절대.”
“그렇지?”
박정연은 그렇게 말하며, 가만히 잠든 엄민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열기가 남아 있긴 했지만, 병원에 실려 올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좋아진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한남동 집으로 내가 들어가야 할 것 같아.”
강철의 말에 박정연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민식이네 집?”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기가 민식이 후견인이니까.”
“민식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진, 잘 케어해줘야겠지.”
“그러면 우리 신혼집도 거기가 되는 건가?”
“그건…….”
강철은 그 부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편하긴 거기가 편하긴 해. 가정부들도 다 있고, 관리인도 있고,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 집하고 멀지도 않고.”
박정연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강철의 잠원동 펜트하우스를 저격했다.
“잠원동 아파트는 좀 별루야. 너무 높아. 한 번씩 숨이 막힐 때가 있다니까?”
그 말에 강철은 피식 웃었다.
“거기가 무슨 에베레스트야? 숨이 막히게?”
강철이 미소를 짓자, 박정연의 표정도 확 밝아졌다.
“그래. 이렇게 웃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강철은, 이젠 박정연에겐 관심법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관심법이 없음에도, 그녀가 자신의 심각해진 모습을 싫어한다는 것과, 어떻게든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강철은 가만히 박정연을 안아주었다.
“고마워. 데이트하다가 이렇게 갑자기 병원에 오게 됐는데도, 불평 한마디 안 해줘서.”
“에이. 내가 애야? 이런 것 때문에 불평하게?”
강철은 가만히 박정연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우웅…… 응? 엄마?”
그때, 엄민식이 잠시 잠에서 깼다.
강철이 그를 등진 채 박정연을 안고 있었고, 박정연은 엄민식을 바라보며 강철을 안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엄민식은 박정연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아직 비몽사몽 간에 엄민식은 박정연을 죽은 한소영과 겹쳐보며 그녀를 엄마라 불렀다.
“몸은 좀 어떻니?”
강철은 엄민식이 깨자마자 그에게 몸을 돌렸다.
“삼촌?”
“그래. 철이 삼촌이야. 괜찮니, 민식아?”
엄민식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박정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엄마?”
그러다가 엄민식은 다시 스르륵 잠들었다.
“애가 자다가 잠시 깼나 보다. 우리 나가 있자.”
“아니야. 그냥 조용히 있자. 조금만 더 있다가, 같이 나가자.”
강철의 말에 박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민식이한테 엄마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박정연의 말에 강철은 살짝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 신혼집이 지금 민식이네 집이 된다면, 어쨌건 자기는 아빠 노릇을 하게 되는 거고 나는 엄마 노릇을 하게 되는 거잖아? 집안에 어른이 우리 둘뿐이니까.”
“음…… 그렇지.”
“할 수 있을까?”
거기에 강철이 뭐라 말해야 할지를 몰라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일신그룹 경영지원실 직원 하나가 병실문을 노크하더니 살짝 문을 열곤 강철에게 말했다.
“실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현재 옆에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손님?”
강철은 순간 관심법을 발동했다.
그리고 그는 직원의 뇌를 읽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맹 회장이?’
방문자는 맹우균이었다.
“잠시만. 나 다녀올게.”
“응? 어, 알았어.”
강철은 곧장 병실을 나서서 응접실로 향했다.
“회장님. 어떻게 여기까지?”
응접실에는 맹우균이 자신의 수행비서와 함께 앉아 있었다.
“허허허. 자네 얼굴 보려고 해도 전화도 안 받고, 내 직접 물어보니 여기 있다길래 왔네.”
그제야 강철은 자기 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민식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에 황급히 달려오느라,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하나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민식이가 갑자기 아파서.”
“허허허. 이렇게 늙은이를 찾아온 걸 보면 그래도 다행히 별문제는 없나 보구만.”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맹우균은 강철에게 맞은 편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강철은 곧장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네는 참 신기한 사람 같아. 사람 마음을 읽는 힘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맹우균은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이미 그의 마음을 읽고 있던 강철은,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을 확인하곤, 상당히 놀라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져와.”
맹우균은 그런 강철을 보며, 수행비서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라 명령했다.
곧 수행비서는 서류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맹우균은 그것을 펼쳐서 강철 앞에 내밀며 말했다.
“미쓰토모 소유권일세.”
“회, 회장님…….”
“저번에도 말했겠지만…… 난 너무 늙었어. 이제 인생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퇴장해야 할 나이야. 이 나이에 세상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건, 노인이 할 일이 아니야. 주책맞은 짓이지.”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미래는 젊은 자네가 책임질 일일세. 내가 할 일은 아니야. 그러니…… 자네가 이제부터 미쓰토모 소유자가 돼서, 자네가 내게 했던 말대로,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져주게.”
이미 모든 필요 서류는 다 구비된 상태였다.
강철은 그저, 맹우균의 수행비서가 건넨 볼펜으로 서명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그 마음. 그 마음에 난 내 인생의 마지막 투자를 하는 걸세. 그러니까…….”
맹우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위공시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만약 그렇다면, 난 죽어서도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돼 자네의 인생을 괴롭게 할 테니까.”
농담인 듯,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하며 맹우균은 강철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려준 후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병원에는 오래 있기가 싫더라고. 다음에 우리 집에서 봅세.”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