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맹우균 (3)
5.
2016년 7월 4일 월요일, 삼우그룹에서 공식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4개 관계사의 합병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글로벌 경제에서 삼우그룹의 생존과 국가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종합건설과 종합상사 그리고 관광리조트 및 문화 산업의 통합이 필요하며, 이러한 통합을 통해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는 삼우경제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삼우그룹에서는 자신들이 추진하는 합병이 전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구조 변화 대응 및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 강조하며, 그것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지금처럼 나뉘어있는 것보단 하나로 합쳐지면서 보다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하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응, 러시아의 성장으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변화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한국이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선 민간 부문에서의 효율성 제고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합병……”
TV에선 경제 전문가들이 패널로 나와 삼우그룹의 합병을 옹호하며,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 큰 해악을 끼치는 일이라는 소리를 해댔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행위일 뿐입니다. 건설회사랑 무역회사를 합치는 게 어떻게 경쟁력 제고고 효율성 강화입니까?”
비판의 목소리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보단 옹호의 목소리가 더 컸다.
이 부분에 대해선 강철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애초에 언론을 후원해주며 오피니언 리더를 조종하는 재벌 집단 자체가 이번 합병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김 회장도 잃기 싫은 거지. 어휴. 그러게 회사 규모가 좀 더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나처럼 말이야, 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했어야지.”
박태화조차도 삼우그룹 합병에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판국이었기에, 강철 홀로 그것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당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당장에 민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긴 어렵지.”
정치권도 관망세였다.
총선 패배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여당은, 내부 권력 투쟁이 발생했고, 그로 말미암아 이 이슈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작은 정부와 자유 시장이 모토인 야당도 민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이유로 함부로 나서길 꺼렸다.
“물론, 여의도에 삼우그룹 직원들이 한 바퀴 순회를 돌긴 했는데, 그거랑 무관하게 일단 우린 관망세야.”
“어련하시겠습니다.”
정치권이 침묵하고, 언론이 일제히 삼우그룹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이, 미국 벌처 펀드인 라미아가 공개적으로 삼우건설과 삼우상사, 삼우리조트의 지분을 매입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 합병은 말이 안 됩니다. 합병 비율이 이게 말이 됩니까? 삼우는 합병 비율 산정 방식을 주주에게 설명해줘야 할 겁니다.”
라미아의 반대 이유는 합병 비율이었다.
“삼우건설과 삼우상사의 매출 및 자본금, 이익 차이는 기껏해야 1.6배 정도입니다. 삼우리조트와 삼우상사의 차이도 기껏해야 3배 정도고 말입니다. 그런데, 삼우건설과 상사가 3:1, 리조트와 상사가 9:1인 게 말이 됩니까?”
라미아를 중심으로 소액주주가 모이며 반대그룹이 만들어졌다.
김대영은 또 김대영대로 차명 지분과 우호 지분을 모조리 끌어들였다.
그렇게 7월 말이 됐을 무렵, 삼우그룹을 두고 총수 일가와 해외 벌처 펀드 간의 치열한 투쟁 구도가 완벽하게 성립이 됐고, 이제 세간은 다가오는 8월 둘째 주간에 있을 4개사의 주총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6.
7월 30일 토요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2층 짜리 건물로 강철은 맹우균과 함께 들어섰다.
“크흠.”
맹우균은 건물 간판을 본 순간부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 계쏙해서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친구가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나를 놀리려는 건가? 아니면 모르고? 아니, 약혼녀를 내버려 두고 토요일에 나랑 같이 오자는 곳이 왜 여기지? 고의건, 그게 아니건 이해가 안 가는데 말이야.’
속마음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말년에 얻은, 손자 같은 말동무가 갑자기 토요일에 함께 서울 구경이나 하자고 했을 때, 맹우균은 의아해하면서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하필 왜?’
그리고 강철은 맹우균을 이끌고 직접, 이곳 종로구 삼우그룹 박물관까지 차를 몰고 왔다.
“크흠.”
삼우그룹 박물관의 구조는, 일반적인 박물관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구도가 아닌, 현재에서 과거로 역행하는 구도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기준 10년 전부터 창립 시점까지 역으로 올라가며 보는 구조인데, 이는 현재의 삼우그룹은 원래부터 거대하진 않았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겠다는 의도라고 박물관 측에선 밝혔다.
그렇기에 강철과 맹우균은 2005년 시점의 삼우그룹 역사부터 역으로 1년에서 2년 단위로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크흠.’
맹우균의 헛기침은 어느 순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됐다.
대신 그는 속으로 계속해서 불만과 분노를 표하며 말없이 강철을 따라 삼우그룹의 역사를 역순으로 바라보았다.
그 과정에서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삼우전자의 모태가 되는 삼우전기공학이 설립된 1974년이었고, 다른 하나는 삼우건설과 상사, 리조트가 동시에 설립된 1971년 그리고 삼우그룹 그 자체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삼우종합물산이 설립된 1955년이었다.
특히, 삼우종합물산이 설립된, 사실상 박물관 투어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1955년 부분에서, 맹우균은 굉장히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회한에 잠긴 것 같기도 하고, 추억에 빠진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무려 30분을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1956년 촬영한 삼우종합물산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로는 말일세. 나보고 수양딸을 하나 들여서 영식이의 아들과 결혼시키는 것을 고려해보라고 했어.”
맹우균은 여전히 시선을 사진에 둔 채, 그때까지 자신의 곁을 지키고 서 있던 강철에게 말했다.
“지분을 들고 독립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두 사람이 사돈이 돼 한 식구가 되는 게, 그래서 삼우그룹이 계속해서 하나로 유지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이야.”
마츠모토 다로는 그 말을 무려 1954년, 삼우종합물산 창업 1년 전, 즉 아직 사업이 구상 단계이던 시절에 했다.
“다로는 나와 영식이의 힘에 자신의 자본력이 더해지면, 삼우가 무조건 큰 기업으로, 재벌로 성장할 거라고 확신했던 거야. 그러니, 회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벌써 그런 소리를 했지.”
마츠모토 다로는 만약 두 사람이 사돈이 돼 두 집안이 하나가 된다면, 자신은 모든 지분을 2세에게 넘겨주고 빠지겠다고까지 말했다.
“다로는 조선인이었던 우리를 일본인이었던 자기 친구들보다 더 좋아했고, 진정한 친구로 여겨줬어. 그러니, 사업가답지 않은 그런 소리를 했던 거겠지.”
맹우균은 시선을 강철에게 돌렸다.
“다로는 알고 있던 거야. 권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그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미쓰토모가 바로 그러한 수단이었다.
마츠모토 다로의 목표는 김영식의 욕심으로 틀어진 세 사람의 우정이 다시 봉합되고, 예전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지분과 자본을 무기로 김영식을 압박했고, 삼우그룹 3대 계열사의 지분을 35%씩 가진 페이퍼컴퍼니 미쓰토모를 만들었다.
“다로는 미쓰토모의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았어. 영식이가 죽고 나서도, 다로는 내게 그것을 행사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어. 그저 영식이가 죽고 나서 나더러 영식이를 용서하고, 미쓰토모 지분을 전부 소각해버리자고 했지. 그냥 시장에 내놔 버리자고 말이야.”
맹우균은 발걸음을 옮겼다.
강철도 말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삼우그룹 박물관을 나와서, 맹우균은 근처의 카페 테라스에 앉았다.
강철은 직접 자신이 마실 아메리카노와 맹우균이 마실 석류에이드를 사 왔다.
맹우균은 석류에이드를 한 모금 빨대로 빨아 마신 후,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도 그렇고, 다른 재벌 총수들도 그렇고, 다로 같은 친구가 없어. 다들, 자기가 가진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고, 그 자체의 강화만이 인생의 전부지. 그거로 뭔가를 하겠다는 목적이 없어.”
강철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가만히 맹우균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격장지계였나?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왜 데리고 온 건가?”
“제가 부탁하기에 이곳만큼 적절한 장소는 없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부탁? 무슨 부탁?”
“이미 예상하고 계시기 때문에, 미쓰토모 이야기도 하신 것 아닙니까?”
“역시…… 알고 있었구먼.”
“어쩌다 알게 됐습니다.”
“허허허. 내가 차에서 자다가 잠꼬대라도 한 겐가? 허허허.”
맹우균은 석류에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강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쓰토모 주주권을 행사해달라는 게지?”
“네. 합병에 반대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반대를 하고 싶은 겐가?”
맹우균은 묻고 있었다.
네 목적이 무엇이냐고.
“삼우가 먹고 싶은 겐가?”
혹시 권력 그 자체가 네 목적이 아니냐고.
그 물음에 강철은 대답했다.
“아이들을 위해서입니다.”
의외의 대답에 맹우균은 순간 당황했다.
“현재 삼우그룹은 그 아래 4개 재벌그룹의 자산총액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덩치가 커진 상태입니다.”
맹우균은 가만히 강철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현재 성장세로 볼 때, 삼우그룹은 10년 내로 자기 아래 9개 재벌그룹 전체 자산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로 성장할 것입니다. 즉, 견제할 수 있는 상대가 없는 명실상부한 절대자가 된다는 겁니다.”
강철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한국 정부는 삼우그룹이 반쯤 장악해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다른 재벌이 삼우그룹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는 통제할 수 없다지만, 10년만 지나면 그마저도 사라질 겁니다. 나머지 재벌들은 그저 삼우그룹의 제후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 겁니다.”
강철은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켰다.
“그렇게 되면, 저야 당연히 무사하진 못할 겁니다. 이미 삼우그룹과 상당히 격하게 싸운 상황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까짓거 저는 러시아로 도망가면 그만입니다. 거기까진 삼우그룹의 영향이 끼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후, 이내 발언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 나라에 남아 있을 아이들은 저처럼 도망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저를 날려버리고, 회장님의 정당한 몫까지 빼앗아버린 그 힘이, 과연 아이들을 위해 쓰이겠습니까?”
강철의 말이 끝나자, 맹우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가만히 강철을 바라보다가, 석류에이드를 쭉 들이켜고는 가만히 삼우그룹 박물관을 바라보기만 했다.
“날씨가 참 덥구만.”
그저, 그렇게 엉뚱한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