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67화 (167/175)

167 맹우균 (2)

3.

2016년 4월 30일 토요일 오후 2시.

강철은 남양주 외곽 맹우균의 자택에 방문했다.

맹우균은 뒷마당 화원에서 반려견 아프간하운드 ‘영식이’와 함께 꽃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회장님, 저 왔습니다.”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맹우균에게 다가갔다.

“응? 어허허. 그래. 맞아. 온다고 했었지. 허허허. 내 정신 좀 봐.”

맹우균은 마치 깜빡했다는 사람처럼 능청을 떨며 강철을 자신의 흔들의자 옆 흔들의자로 안내했다.

‘흐음…….’

그러나 관심법으로 그의 모든 생각을 읽고 있던 강철이었기에, 그는 그가 결코 진짜로 깜빡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은거기인 혹은 은둔고수가 아니라는 건가?’

강철은 흔들의자에 앉았다.

“삼우그룹 때문에 나에게 조언을 받으러 온 거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네. 안타깝게도 말이야.”

강철이 자리에 앉자마자 맹우균은 그렇게 말했다.

만약 강철에게 관심법이 없어서, 그가 자기가 할 말을 미리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하던 것을 읽지 못했다면, 상당히 당황했을 정도로 빠르게 들어온 직구였다.

그러나 강철은 몇 초 이르게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가를 감지했고, 그 몇 초 사이에 빠르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혹시 독심술 같은 거 배우셨습니까?”

강철은 능청스럽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프간하운드 ‘영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식이는 강철을 한 차례 힐끔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꽃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삼우그룹과 마찰이 있었다는 것, 삼우그룹 김대영이가 김태준이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합병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네. 그리고 자네가 삼우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승계 작업을 방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하며 맹우균은 슬쩍 강철을 바라봤다.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맹우균을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친구, 웃기는. 그러다 정들어.”

“정은 이미 든 거 아닙니까, 회장님?”

“허허허. 말이나 못 하면…… 아무튼, 만약 내게 도움을 얻으러 왔다면, 난 도와줄 게 없네. 조언을 구하러 왔다면, 이 말 한마디는 해줄 수 있지.”

맹우균은 다시 시선을 꽃밭으로 돌렸다.

“김대영이는 무시하고, 김태준이하고나 잘 지내. 그 아이는 김대영이랑은 다르게 경우를 아는 아이니까.”

맹우균은 강철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이제 와서 이 늙은 몸으로 무얼 어찌할 거란 말인가? 괜히 세상일에 끼어들지 말고, 조용히 떠나야지.’

재계의 큰형님 취급을 받는 김대영조차도 그에게는 까마득한 후배였다.

“김대영이는 말이야. 그 애비인 김영식이가 어릴 때, 정말 한창 어릴 때, 자기 수발들던 종년을 덮치는 바람에 태어난 애야. 일종의 사생아라는 말이지. 뭐, 김영식이가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식으로 자식으로 입적시키긴 했지만.”

맹우균은 김대영의 출신성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 형제들, 특히나 나중에 정실부인한테 태어난 동생들한테는 출신성분이 고약한 놈이라며 형제 취급도 못 받았던 놈이야. 그래서 나이를 처먹고도 그때의 기억이 몹쓸 흔적을 남긴 거고.”

명백히, 김대영이 강철을 지칭하여 ‘출신성분이 고약한 천둥벌거숭이’, ‘근본 없는 놈’이라고 뒤에서 부르고 다닌 것에 대한, 일종의 변호였다.

“원래 김대영이는 1942년에 태어난 거라고 돼 있었어. 실제론 1934년에 태어났는데 말이야.”

“……”

“지 애비 김영식이가 정실부인 자식으로 입적시킬 때, 1942년이라고 해놓았던 걸, 나중에 지가 회장이 되고 나서 바꿨어. 1934년생으로.”

맹우균은 강철을 바라봤다.

“여러모로 불쌍한 놈이야. 자격지심도 많고, 자기혐오도 있는 인간이지.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김대영이 그 인간 칠순이었는데, 그때도 여전히 자기혐오가 남아 있던 인간이었어.”

맹우균은 강철이 김대영에게 품고 있는 분노나 원한을 잊길 바라고 있었다.

“자네가 이해하게. 자네도 사회적으로 많은 고통과 차별을 받아 왔겠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에 그 모든 것을 이겨내지 않았나? 김대영이는 지금 자네 나이 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배다른 동생을 형이라 부르면서 굽신거렸어.”

떠나는 세대로서, 그는 이제 곧 세상을 이끌 김태준과 그보다 더 먼 미래에 세상을 이끌 강철이 서로 손을 잡길 바라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건데…….’

솔직히 이 부분에서 강철은 살짝 당황했다.

그는 맹우균이 김영식에게 원한이 있고, 삼우그룹에 대한 미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약혼식 날 처음 만났을 때, 미쓰토모에 관해 그가 생각하고 있던 걸 읽었을 때, 강철은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지금 그는 강철과 김태준의 화해를, 더 나아가 강철과 김대영의 화해를 바라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더 밀어붙이진 말자. 전략을 생각해야겠어.’

맹우균의 마음속에 빼앗긴 자기 재산에 대한, 빼앗긴 재계 서열 1위 대기업에 대한 미련과 그것을 앗아간 김영식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온갖 불법적인 방식으로 물려받은 김대영에 대한, 그것을 또 온갖 편법을 동원해 물려받을 김태준에 대한 분노가 있을 거라고 강철은 생각했다.

그러나 전제부터 틀렸기에, 준비해온 전략은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시간은 있어. 본격적인 합병 작업은 7월부터 시작될 거니까.’

김도은에게 들었고, 김태준과 함께 결혼식장에서 잠시 만났을 때 관심법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삼우그룹 4개사-삼우건설, 삼우상사, 삼우리조트, ㈜아스가르드의 합병은 7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그때까진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새겨듣겠습니다.”

그 이후로 강철은 삼우그룹 이야기가 아닌, 일신그룹과 거목그룹에 관한 이야기만 조금 더 맹우균과 나눈 후 그의 집을 떠났다.

‘분노와 미련이 없으면 도대체 뭐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 강철은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야만 했다.

4.

5월 1일 일요일 저녁 8시.

이태원동 자택 별채 서재에서 김대영은 김태준과 함께 구대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삼우리조트와 삼우건설의 합병 비율은 3:1, 삼우건설과 삼우상사의 합병 비율도 3:1을 맞췄습니다.”

구대준의 말에 김태준은 무심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만 했다.

질문은 김대영에게서 나왔다.

“그러면 리조트하고 상사 비율이 9:1이라는 거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김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삼우상사와 아스가르드의 합병 비율은 5:1로 맞췄습니다.”

그 말에 김대영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구대준에게 말했다.

“제일 중요한 게 아스가르드인데 그거를 비율을 상사하고 겨우 그렇게 맞추면 곤란하지. 내가 분명히 7:1을 맞추라고 했을 텐데?”

“일단 주주들 반발도 분명히 있을 거고, 무엇보다도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는 바람에 그 정도 리스크를 감당할 용기가 다들 없어 보였습니다. 3:1로 맞추라는 걸 겨우 5;1로 늘린 겁니다, 회장님.”

단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삼우리조트의 주식 45주, 삼우건설의 주식 15주가 ㈜아스가르드의 주식 1주와 대등한 가치로 설정됐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4개사가 삼우산업으로 합병돼 지주사가 될 경우, 김 부회장님의 지분이 25%가 됩니다. 거기에 회장님 지분까지 합치면 40%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대준은 최대한 김대영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김대영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6:1도 불안한데 5:1은 좀 너무 많이 불안해.”

구대준은 난감한 표정으로 김태준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은 김태준은 김대영을 보고선 말했다.

“우호지분에 차명으로 어떻게 당기면 과반은 안정적으로 확보가 가능합니다, 아버지.”

김태준이 그렇게 말하자, 김대영은 일단 자기 고집을 살짝 꺾긴 했다.

“복지부 장관하고, 국민연금 사장하고 다시 한번 더 만나서 협상을 해. 5:1보다 더 높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럼에도 협상의 여지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구대준에게 새로운 지침을 하달했다.

구대준은 일단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대영의 물러나란 손짓에 구대준은 서재에서 물러났다.

구대준이 나가자 김태준이 김대영에게 말했다.

“5:1도 솔직히 좀 눈치가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김대영은 한심하단 표정으로 김태준을 바라봤다.

“눈앞에 먹이가 있으면, 맹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그거를 사냥해. 사자가 초원에서 먹이를 잡을 때 누구 눈치를 보든?”

“벌써 지라시가 퍼진 모양입니다. 합병 비율로 장난질할 거라는 지라시가.”

“지라시는 무시해. 언제는 뭐 안 퍼졌는 줄 알아?”

“그래서 지금 라미아라고 미국 벌처펀드 하나가 건설이랑 상사, 리조트 지분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김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가 부실기업이야? 왜 그 시체 쫓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것들이 우리 지분을 매입하는 거야?”

“뭐, 합병 과정에서 방해 공작을 펼쳐서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 같습니다. 예전에 태성그룹이 한 번 겪은 일이잖습니까.”

“아니…… 태화가 그때 당한 건 경영권을 빼앗으려던 거였고, 이거는 이야기가 다르잖아. 부실기업도 아닌 회사 지분을 사면, 뭐 우리 경영권이 그것들한테 넘어가? 태준이 네가 아스가르드만 꽉 쥐고 있어도 안 넘어갈 거 아니야.”

김태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미국에다가 한 번 알아봐. 라미아인지 그 라디오인지 그 하이에나들이 왜 우리를 건드는 건지.”

“네, 알겠습니다.”

김대영은 입술을 살짝 떨기 시작했다.

‘천둥벌거숭이 놈 하나도 골치가 아픈데, 무슨 코쟁이 놈들까지 끼어들고 있어.’

그는 두 가지 이유로 분노했다.

하나는, 부실기업이나 쫓아다니며 하이에나처럼 행동하는 벌처펀드가 건실한 삼우그룹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지분 매입이 명백하게 승계를 위한 합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고얀 놈들 아버지하고 내가 어떻게 만든 그룹인데…… 너희들 장난질에 공중분해 되게 할 그럴 회사가 아니야. 나를 무시하고 그룹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김대영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계획한 일은, 항상 성공했다.

외환위기 때 몇 개의 사업체가 날아가긴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였지, 그의 실패는 아니었다.

적어도 김대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마지막 작품이 될 거야. 이 마지막 예술 행위에, 누가 방해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김대영은 점차 자신의 생명이 고갈되고 있음을, 삶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라스트 댄스가 될 이 합병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이었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이 김대영이를, 삼우를.’

총기를 잃어가는 그의 눈동자에서 희미하지만 강렬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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