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66화 (166/175)

166 맹우균 (1)

1.

“회장님, 저 왔습니다.”

“허허허. 자네, 약혼녀보다 나를 더 자주 보는 건 아니겠지?”

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오후 3시.

강철은 남양주 외곽에 자리한 맹우균의 단독 저택에 방문했다.

거실로 그가 들어서며 인사하자 맹우균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반겼다.

“뭐, 박 상무하고는 결혼하고 나면 매일 볼 사이인데 지금은 좀 덜 봐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강철의 말에 맹우균은 크게 한바탕 웃었다.

“허허허! 그래, 암. 앞으로 80년, 길면 90년 이상 매일 얼굴 마주할 사람보단 이제 오늘내일하는 영감하고 더 만나 두는 것도 좋겠구만. 흐허허허!”

“제가 찾아뵐 때마다 점점 더 회장님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것 같은데, 오늘내일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까지도 검어지신 것 같습니다?”

“염색한 걸세. 허허.”

맹우균은 강철에게 소파에 앉으라 손짓했다.

강철은 소파에 앉으며 들고 온 산삼주를 테이블에 올렸다.

“백년근입니다. 특별히 백두산에서 구해온 겁니다.”

“허허허, 뭘 이런 걸 다.”

“항상 찾아뵙고 조언을 구할 때마다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회장님께서 소개해준 베트남 쪽 업자 덕분에 그쪽에 우리 공장을 짓는 절차가 간소화됐습니다. 회장님께서 욕심이 없으셔서 이 정도였지, 조금만 욕심이 있으셨다면 아예 제가 차를 한 대 새로 뽑아드렸을 겁니다.”

“허허허. 뭘로? 골덴바움으로?”

“그보다 윗 단계인 롤스바겐도 가능합니다.”

“허허허! 이 친구. 허허허!”

11월 11일 약혼식 이후, 강철은 진짜로 맹우균을 찾아 직접 남양주 자택을 방문했다.

맹우균은 처음엔 그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한 일회성 방문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결혼과 처가 식구에 관한 예의에 대해 조언을 구했을 때,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 정도나 해 주었다.

하지만 첫 방문 후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강철의 두 번째 방문이 이루어졌고, 두 번째 방문 이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세 번째 방문이 이뤄졌으며, 세 번째 방문 이후 사흘이 지났을 때 네 번째 방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방문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강철의 질문은 결혼과 같은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부터 인사나 투자와 같은 기업 경영에 관한 영역으로 확장됐다.

심지어 다섯 번째 방문 때는 베트남에 인맥까지 소개받아 갔을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강철은 여섯 번째 방문을 한 것이었다.

불과 1개월이 살짝 넘는, 대략 40일 정도 되는 시간 동안 6번이나 방문한 것이었다.

사실상 1주일에 1회꼴로 방문한 셈이었다.

처음에 맹우균은 즐거워했다.

늙은 나이에, 아프간하운드 한 마리와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 한 사람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방문하는 출장 가정부 셋을 제외하면 늘 혼자였기에, 그는 이 어린, 증손자뻘 청년과의 만남을 즐겼다.

그러나 마냥 즐거움에 빠져 있지만은 않았다.

“지금처럼만 하게. 여당이 지리멸렬하고 있다지만, 역사가 있고 전통이 있는 뿌리 깊은 정당이니 만큼, 그쪽에다가도 신경을 쓰고 또 야당이 지금 기세가 올랐고 김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만큼, 거기에다가도 성의를 보이고. 지금 자네가 하는 게 정석적인 방법이야.”

“감사합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이 늙은이가 너무 잡아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성탄전야 아닌가? 허허허. 자네 약혼녀한테 내 한 소리 듣게 생겼구먼.”

“아닙니다. 언제 박 상무하고도 함께 오겠습니다. 회장님께서 괜찮으시다면.”

“허허허. 언제든 환영일세. 그때 오면 저기 뒷산에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거기까지 산책이나 가서 절밥이나 같이 얻어먹자고.”

“네,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허허허. 기대는 그 절에 주지한테나 해야 하는 거고.”

오후 5시.

약 2시간 동안 강철과 곧 다가올 총선과 그 이후 정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맹우균은 강철을 돌려보냈다.

강철은 맹우균에게 차에 올라타 춭발하는 그 순간까지 예의를 갖추었다.

추운 날씨에 대문 앞까지 나와 강철을 배웅해준 맹우균은, 그의 차가 고개를 넘어 사라지자 얼굴 가득 피어났던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채 도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거실 벽난로 앞 흔들의자에 앉아 벽난로 속 불을 바라보는 아프간하운드 ‘영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행비서에게 물었다.

“그래, 알아봤고?”

“네, 회장님. 분부하신 대로 여러 경로를 통해 교차검증을 하느라 어제서야 최종 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수행비서는 맹우균에게 두터운 서류 뭉치를 건넸다.

“그건 일단 저기 탁자에 두고. 핵심을 좀 구두로 전해줬으면 좋겠어.”

“네.”

수행비서는 서류를 근처 원탁 위에 올려놓은 후, 구두로 맹우균에게 강철에 관한 조사 보고의 핵심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일단 고아 출신에 92년생인 건 확실합니다.”

강철이 진짜 고아고, 2015년 현재 세는 나이로 24세에 불과한 92년생이라는 점, 학교에서 동급생의 귀를 물어뜯고 담임교사를 폭행한 후 퇴학 처분됐다는 점, 고아원에서 탈출한 후 강동구 길동에서 건달들과 어울렸다는 점 등등, 제법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한소영 회장과의 인연은, 아마 강 실장이 대산그룹에서 조민석을 도와 일을 하던 와중에 생긴 듯 보입니다.”

“대산이라…… 걔들이 전국구 깡패들 다 통제하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깡패 출신이라는 건데…… 도대체 한소영이는 뭐가 그리도 마음에 들어서 저 친구를 자기 아들의 후견인으로 삼았을까? 남편하고 시애비가 죽었다곤 해도, 자기 오빠도 있고 했는데 말이야.”

“거기까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만, 국정원 쪽 소스에 의하면 한소영 회장의 비자금 관리하는 총책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비자금 총책?”

“네. 아마 그래서 믿고 맡긴 게 아닌가 그렇게 다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소영 비자금이 해외에 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원래 미국에 있었는데 지금은 몰타에 있습니다.”

“허허. 젊은 친구가 아주 단단하게 숨겨놓고 떠났구먼.”

그 이후로도 수행비서는 강철에 관해 알아낸 정보를 쭉 읊었다.

그 정보 중에는, 강철이 러시아 정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CIA와 미국대사관에서 나온 정보부터 박태화의 비자금까지 관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국정원발 지라시까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까지, 삼우그룹과 상당히 심각한 수준까지 관계가 악화됐다고 합니다.”

수행비서의 입에서 삼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맹우균의 눈이 빛났다.

“삼우?”

“정확하게는 김대영 회장과 굉장히 사이가 나빴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대면한 자리에서 고성이 오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강철과 김대영의 싸움에 대해, 수행비서가 수집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있었고, 그 다툼에서 일시적으로 강철이 우위에 선 상태라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맹우균에게 전달이 됐다.

‘삼우그룹하고 싸우고 있다…….’

맹우균의 머릿속에, 강철이 자신을 찾아오는 진짜 이유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니야. 미쓰토모를 알 리가 없어. 그건 오로지 나와 다로 그리고 김영식이 그 인간만 알고 있던 거야. 심지어 김대영이도 모르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맹우균은 그 가능성을 치워두었다.

“수고했어.”

그리고 구두 보고를 끝마친 수행비서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후, 가만히 아프간하운드 ‘영식이’와 함께 불을 바라보며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있겠지만, 미쓰토모는 아닐 거야. 분명히 아닐 거야.’

당연한 생각이었다.

미쓰토모는 어디까지나 맹우균과 마츠모토 다로, 김영식 이 셋만 아는 존재였다.

‘담당 변호사까지 포함해서 둘. 이 세상에 살아남은 자 중 미쓰토모를 아는 사람은 둘 뿐이야. 한국으로 한정하면 나 하나뿐이고.’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맹우균은 또 쓸쓸함을 느꼈다.

‘어쩌면 유일하게 내가 알고 지낸 사람 중 나보다 늦게 죽을 사람인데, 너무 의심하는 건가?’

그는 가만히 아프간하운드 ‘영식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복잡해진 뇌를 비워내기 시작했다.

2.

2015년 을미년이 지나가고,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아왔다.

“저녁 있는 삶을 국민 여러분께 드리겠다는 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해 주당 노동시간 40시간의 확립을 위한 노동 개혁에 정부의 총력을 쏟아부어 국민 여러분께 저녁 있는 삶을 드리겠습니다.”

지지율이 20%대 초반에서 보합세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임기 말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은 정국 전환과 다가오는 총선에서 여당의 안정적 승리를 위해 주 40시간 노동이라는, 임기 말 정권이 추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노동 개혁 아젠다를 연초부터 들고 나왔다.

물론 반응은 차가웠다.

“취지는 좋은데, 할 거였으면 정권 초부터 하든가 이제 와서……”

“선거 다가오니까 발등에 불 떨어진 거지”

“주당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고정되면, 자연히 초과수당이나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건데 여기에 대한 보완책을 과연 올해 안에 다 마련할 수 있을까…… 진정성이 의심됩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당연한 반응은 4월까지 이어졌다.

[어제 치러진 총선에서 최종적으로 제1야당이 154석을, 여당이 132석을 얻으면서……]

[무소속 6석 중 4석이 야당에서 공천에 불복하여 탈당한 후 당선된 사람들인 만큼, 실질적으로 야당의 의석수는 158석……]

[김 대표의 대권가도에 청신호가 들어온 가운데 사위의 마약 투여가 걸림돌이 될 우려가 제기되는……]

2016년 4월 13일 수요일 치러진 제20대 총선에서 여당은 예상대로 과반에 못 미치는 132석의 의석을 얻으며 참패했고, 제1야당은 과반이 넘는 154석을 얻으며 승리했다.

제2야당이자 범여권으로 분류되던 진보 야당은 여당에 실망한 사람들의 표를 얻어 8석을 챙기긴 했지만,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데에는 실패했다.

무소속 당선인 6명 중 4명이 제1야당 출신이었던 만큼, 실질적으로 제1야당은 158석을 먹은 셈이었다.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레임덕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측근의 부패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 대표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 대표는 명실상부 야권의 유일무이한 대권주자가 됐으며, 사위의 마약 투여 사건은 그런 그의 대권가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렇게 4월은 정치적으로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사건이 많았다.

언론에선, 마치 누군가가 고의로 사주라도 한 듯, 정치 기사만 미친 듯이 쏟아냈다.

그러는 사이, 재계에선 은밀하게, 사람들이 모르게, 그들만의 투쟁과 작전이 치열하게 물밑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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