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세 친구 (3)
5.
11월 11일 수요일 오후 4시.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까, 천천히 가자.”
뒷좌석에 앉은 맹우균의 말에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는 곧 남양주 대저택에서 출발했고, 이내 서울로 가는 도로에 접어들었다.
맹우균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맹우균은 차가 서울 시내에 진입했을 때, 품에서 조그만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세 명의 젊은 청년이 바닷가에서 웃통을 벗은 채 환히 웃고 있는 흑백 사진이었다.
‘다 떠나고…… 이젠 나만 남았구나.’
마음속에 오랜 세월 쌓인 원한도, 슬픔도, 우정도, 이젠 세월과 함께 모두 바스러졌다.
이제 남은 건 빛바랜 흑백사진과 친구가 남긴 유산뿐이었다.
‘내가 이제 와 그것으로 무엇을 어찌하리?’
맹우균은 그렇게 생각하며 사진을 도로 품속에 집어넣고 눈을 감았다.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잠시 후, 맹우균은 가야호텔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자 그는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어? 맹 회장님!”
그가 차에서 내리자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그를 부르며 달려왔다.
그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맹우균에게 인사하곤 자기를 소개했다.
“저 성명수입니다. 안국그룹에.”
그 말에 맹우균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와 악수하곤 말했다.
“허허허. 누군가 했더니만 성 부회장이었구만. 아니지 이젠 회장인가?”
“하하. 네. 작년에 회장으로 정식 취임했습니다.”
“자네도 약혼식에?”
“네. 혹시 회장님도?”
“허허허. 태화가 아주 30대 그룹 총수는 다 부른 모양이야.”
맹우균의 말마따나, 지금 그에게 인사하는 재계 서열 29위의 안국그룹 회장뿐 아니라, 30대 재벌그룹의 총수급 인사들의 것으로 보이는 차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식 혼사 문제다 보니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자, 이러지 말고 들어갑시다. 식사 안 하셨죠?”
그렇게 맹우균은 안국그룹 성 회장과 함께 호텔 연회장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연회장 입구에선 박태화와 강철이 나란히 서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고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박태화는 맹우균을 발견하곤 직접 다가와 인사하며 손을 잡았다.
맹우균은 껄껄 웃으며 박태화와 인사를 나눴다.
“그간 잘 지냈나?”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박태화는 강철에게 맹우균을 소개했다.
“인사해. 굿프렌드그룹 명예회장이시고 나한테는 양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강철은 맹우균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일신그룹 경영지원실장 강철입니다.”
맹우균은 강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문득, 맹우균은 강철의 얼굴에 얼마 전 죽은 오랜 친구, 마츠모토 다로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걸 느꼈다.
‘다로…….’
죽은 친구 생각은 곧 그 친구와의 인연으로 그리고 그 친구와 연관된, 흑백 사진으로만 남은 세 친구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반목과 후회로 이어졌다.
‘이제와서 내가 미쓰토모로 뭘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그 상념은 지난달 죽은 마츠모토 다로가 맹우균에게 넘긴 미쓰토모로 이어졌다.
‘부질없는 짓이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모두 살아 있을 때, 화해를 했어야 했는데.’
그랬기에 맹우균은 강철과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성 회장과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머리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만큼, 그는 강철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했고, 또 강철이 묘한 눈빛으로 그를 계속해서 주시한 것 또한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내 차례가 오고 있겠구만.’
그저 맹우균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성 회장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약혼식이 시작되길 기다릴 뿐이었다.
6.
약혼식은 30대 재벌 총수 및 그것에 준하는 인사들과 여야 지도부 및 전·현직 유력 정치인이 참석한 와중에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 자리에서 강철과 박정연은 박태화가 직접 작성한 약혼 맹약을 준수하겠다 선서했으며, 참석한 모든 하객이 그 증인이 됐다.
“결혼은 언제 하는 겁니까?”
“1년 뒤 이맘때 할 예정입니다.”
“그때는 우리 모두 서로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삼우그룹 부회장 김태준도 그 증인 중 하나였다.
약혼식이 끝나고, 모두가 편안하게 식사와 술을 즐기는 자리에서, 김태준은 강철에게 그렇게 말했다.
‘왜 우리가 싸워야 할까? 아버지도, 강 실장도? 싸울 이유가 없고, 싸워서 서로 얻는 것도 없잖아?’
그것이 김태준의 마음이었다.
적어도 김태준은 김대영과는 달리 강철과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도 너무 하셨지만, 이 친구도 참 너무해. 그냥 적당히 노인이 고집을 부리고 하면 숙여주고 어르고 달랠 줄도 알아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강철에게 마냥 유화적인 것도 아니었다.
‘태화 형님이 잘 컨트롤 할 수 있겠지?’
그런 김태준의 본심을 읽었기에,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렇게 될 겁니다.”
물론 그 의미는, 김태준이 원하는 그런 의미와는 좀 많이 다르긴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한 거죠?”
강철이 김태준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이번엔 김도은이 강철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냥 내년에 결혼식 때에는 서로 편하게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어머, 사장님.”
오늘 약혼식의 또 다른 주인공, 박정연이 김도은을 찾아왔다.
강철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고, 박정연은 김도은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강철의 대화 목표도 김도은이 아니었던 만큼, 강철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목표물의 위치와 현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그는 그가 홀로 가만히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는 그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맹 회장님.”
강철의 인사에 식사를 끝마치고, 과일과 함께 물을 마시던 맹우균이 그를 바라봤다.
“허허. 젊은 사람들 틈에 가질 않고.”
“한국 경제인 역사의 산증인이신 맹 회장님을, 명성만 듣다가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좋은 이야기라도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왔습니다.”
“허허허. 좋은 이야기는 무슨…… 그저 난 늙은이에 불과해요. 경영이나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차라리 나보다 더 젊은 친구들이 더 잘해줄 텐데?”
“그래도 살아오신 세월에서 나오는 힘과 지혜가 있잖습니까?”
“허허허.”
맹우균은 기분이 좋아졌다.
강철은 관심법을 맹우균에게 집중해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삼우그룹 창업자인 고 김영식 회장도 맹 회장님께 경영을 배웠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게도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순간 맹우균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다시 표정을 펴고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지.”
하지만 덕분에, 강철은 자신이 알고 싶었던 정보를 확실하게 얻어낼 수 있었다.
‘여기 있었네. 내게 진짜 필요한 사람이.’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맹우균에게 말했다.
“식이 끝나고,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강철의 물음에 맹우균은 처음엔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강철의 눈빛을 보고 그가 진심이란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늙은이에게 바쁜 젊은이가 시간을 쓰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은 들지만, 찾아오겠다면 말리진 않겠네.”
“곧 찾아뵙겠습니다.”
강철은 진심을 담아 그렇게 이야기했다.
맹우균은 그런 강철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또 자신의 친구, 마츠모토 다로를 떠올리며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느껴야만 했다.
7.
1919년 3월 2일, 역사적인 3.1운동이 시작된 바로 다음 날, 맹우균은 김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1938년 3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자기보다 1살 어린 고향 후배 김영식과 함께 일본으로 넘어갔다.
유학을 간 것도 아니고, 사업차 간 것도 아닌, 단순히 일본에 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두 남자가 의기투합해 혈혈단신으로 현해탄을 건넌 것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맹우균은 김영식과 함께 일본인이 운영하던 잡화점에서 일했는데, 거기서 잡화점 주인의 아들이자 맹우균과 동갑내기이며, 생일까지 똑같은 마츠모토 다로를 만나게 됐다.
이후 세 친구는 동네에서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늘 함께 붙어 다녔다.
여자를 만나러 술집에 갈 때도 함께 갔고, 술집에서 야쿠자와 시비가 붙어 싸울 때도 함께 싸웠으며, 도쿄 대공습 때도 함께 숨었다.
그들의 우정은, 일제 패망과 조선 해방 이후에도 쭉 이어졌다.
특히, 1955년, 맹우균과 김영식이 함께 사업을 시작할 때, 미군정 시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큰돈을 벌게 된 마츠모토 다로가 투자를 해주면서, 세 사람의 우정은 사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삼우종합물산.
맹우균과 김영식 그리고 마츠모토 다로 세 사람의 우정을 의미하는, 삼우(三友)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사업은 시작됐다.
사업은 순탄했다.
삼우종합물산은 쭉쭉 성장했고, 경제개발을 기치로 내건 3공화국의 지원 아래 마침내 1971년, 삼우종합물산은 삼우상사와 삼우건설, 삼우리조트, 가야호텔 4개사를 거느린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삼우종합물산이 4개로 찢어지면서, 상장 절차를 밟았는데, 맹우균의 지분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김영식의 배신이었다.
맹우균은 김영식을 신뢰했고, 그랬기에 자기 지분에 관한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김영식은 그러한 맹우균의 믿음을 배신했고, 그랬기에 고작 25%에 불과해야 할 김영식의 지분은 맹우균이 본래 가져야 할 35%까지 흡수하여 60%에 이르렀다.
맹우균은 분노했다.
분노하긴 마츠모토 다로도 마찬가지였다.
맹우균은 김영식에게 복수를 원했다.
하지만 마츠모토 다로는 복수가 아닌 화해를 원했다.
분노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화해를 원했던 마츠모토 다로는 김영식을 압박했다.
사정은 김영식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3공화국 실세는 거의 모두가 김영식의 편이었고, 맹우균은 그저 월급쟁이 사장일 뿐이었다.
하지만 마츠모토 다로가 자신의 회사인 마츠모토상사와 삼우그룹 사이의 모든 거래를 끊어버리겠다고 나오자, 결국 김영식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맹우균에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지분을 주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그걸 위해 마츠모토상사와 등지기도 싫었던 김영식은 결국 타협안을 냈다.
그 타협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미쓰토모였다.
김영식은 자신이 맹우균으로부터 갈취한 지분 35%를 미쓰토모에 액면가로 넘겼다.
마츠모토 다로는 미쓰토모를 3분할 해 자신과 맹우균, 김영식이 나눠 가지게 했다.
그리고 마츠모토 다로는 그때 분명히 말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지분은 남은 둘에게 가고, 둘 중 한 사람이 또 죽으면,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모든 지분이 갈 걸세. 그리고 나는 그 전에 우리가 화해를 했으면 좋겠네.』
그러나 화해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