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63화 (163/175)

163 세 친구 (1)

1.

2015년 여름은 조용히 지나갔다.

2014년 4월이 강철의 개입으로 조용히 지나갔듯, 2015년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삼우산업의 탄생을 위한 4개사의 합병으로 인해 시끄러웠을 계절이 조용히, 메르스로 인한 약간의 소동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나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었다.

막후에선,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회장님.”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삼우그룹은 김태준이 주축이 돼 차세대기획본부가 총력전을 펼친 결과, 7월 3일 금요일, 이도근 차세대기획본부장과 구대준 부본부장 그리고 박학기 삼우생명 회장이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들은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한날한시에 이태원동에 자리한 김대영의 저택 별채로 가서, 그 앞에 무릎 꿇고 복귀 인사를 올렸다.

“요즘 구치소가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다면서?”

“네, 전부 회장님 덕입니다.”

“내가 예전에 한번 가보니까 시설이 너무 낙후돼서, 이 재소자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내가 특별히 대통령한테 이야기해서 개선 좀 하라고 했지. 어차피 당신도 들어갈 곳이니까, 미리 좀 개선해두는 게 좋을 거라고 말이야.”

김대영은 그들을 치하하며, 그들과 김태준을 모두 앉혀놓고 특별지시를 하달했다.

“일단 당분간은, 그러니까 한 석 달 정도는 몸 사리면서 준비 작업만 하고 있어. 본격적인 합병 작업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실시하도록 해. 그리고 총선 전에 해버리면 이게 정치 이슈가 될 수 있으니까, 가급적 정식 합병 절차는 총선 이후에 밟아 버리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차명으로 된 지분들, 그것도 합병 전후로 태준이한테 넘겨. 내 것도, 태준이 것도 그리고…… 도은이 것도.”

“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기술자들이 돌아옴에 따라, 김대영의 상속 작업은 본격화됐다.

“저기…… 아버지.”

“응?”

“일신에 강철 실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으음…… 그 출신성분 고약한 천둥벌거숭이는…… 일단 합병 이후에 처분하든가 해야지. 괘씸한 인간이지만…… 일단 우선순위라는 게 있으니까. 응?”

“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아버지.”

그에 따라 강철의 처분에 관한 일은 뒤로 미뤄졌다.

그것은, 일단 삼우그룹 3세 상속 절차라는, 가문의 중대사에 최우선적으로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했기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또 다른 변수가 생겨버린 까닭도 있었다.

“태화 걔는…… 도무지 머릿속을 내가 들여다볼 수가 없어. 무슨 정신머리로 그딴 출신성분 고약한 놈한테 그…… 자기 딸을 준다는 거야? 아니, 멀쩡한 아들 냅두고 딸한테 회사 물려준다는 것도 웃긴데 그런 딸을 그런 근본 없는 천둥벌거숭이랑 약혼을 시켜?”

태성그룹이 강철과 한 식구가 돼 버린 것.

그것이 당장에 삼우그룹이 강철과 싸우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이유가 됐다.

물론, 김대영이 태성그룹을 두려워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가문 중대사를 앞두고 괜히 태성그룹과 한판 붙을 수도 있는 짓은 피하고자 하는 게 그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다른 변수가 내부에도 또 하나가 있었다.

7월 4일 토요일, 김대영은 그 변수를 처리하고자, 김도은을 야밤에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통보했다.

“네가 들고 있는 건설, 상사, 리조트 쪽 차명 지분, 그거 전부 태준이한테 넘겨.”

일방적 통보에, 김도은은 익히 예상은 했지만, 굉장히 서운함을 느꼈다.

“…… 그거 다 넘기면……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죠?”

“태준이가 회장이 되고 나면, 너한테 호텔하고 리조트 부문은 따로 떼 줄 거야.”

“리조트를 건설, 상사랑 합치고 또 아스가르드하고도 합칠 건데, 어떻게요?”

“합병한 다음에, 태준이가 회장이 되면, 리조트 부문만 따로 분할하면 되잖아.”

“…… 오빠가 해 줄까요?”

“내가 갈 때는 가더라도 태준이한테는 단단히 신신당부해 둘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오빠가 과연 아버지 말을 듣겠어요? 돌아가시고 난 뒤에?”

김도은은 섭섭함을 가득 담아 김대영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김대영의 화를 자극했다.

“너는 이 애비가 하는 말에 고분고분 순종이나 할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예은이도 너처럼 그렇게 따박따박 어른 말에 말대꾸하고 대들고, 그렇게 하고 있어? 어!”

그런 김대영의 반응에 결국 김도은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내가 네가 가지고 있는 호텔 지분까지 다 내놓으라는 게 아니잖아.”

그렇게 김대영은, 김도은에게 확실하게 못을 박아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대영의 생각일 뿐이었다.

2.

7월 5일 일요일 저녁 7시 30분.

가야호텔 사장실.

“데이트하러 가야 하는데, 내가 시간을 너무 뺏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김도은의 말에 강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차피 박 상무가 지금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이라서 나중에 서울역에 마중만 나가면 됩니다.”

“어머, 이제 곧 약혼할 건데 아직도 박 상무라고 불러요?”

“당연히 사석에선 그렇게 안 부르고, 어쨌건 이런 공적인 자리에선 공식적인 직함을 붙여서 부르는 편입니다. 박 상무도 저를 그렇게 부를 겁니다.”

“아니던데…… 저번에 여성경제인 간담회 때 우리 철이, 우리 철이 거리던데?”

그 말에 강철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분명 평소에 그가 짓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정한 행복에서 나오는 미소였다.

그것을 파악한 김도은은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젊음이란…….’

그녀도 한때, 저런 미소를 짓는 남자와 함께 마주 보며 미소를 짓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4년 전 불의의 사고로 죽었고, 지금 그녀에게 남은 건 주름을 가리기 위한 보톡스와 짙은 화장 그리고 늘어나는 근심뿐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그녀는 머릿속에 찾아든 슬픈 상념을 떨쳐내고자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화제를 돌렸다.

“어제 아버지를 만났어요.”

“무슨 언질이 있었습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건설, 상사, 리조트 차명 지분을…… 전부 오빠한테 넘기라고 하네요. 합병 이후에.”

“흐음…….”

“나중에 오빠가 알아서 잘 챙겨줄 거라면서. 제가 아직도…… 그런 구두 약속을 믿는 순진한 아이로 보이시는 걸까요?”

사실, 그녀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실제로 김대영이 말한 대로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그 외 몇 가지 관광과 문화 쪽 사업체를 김태준에게 받아낼 수 있다.

김대영은 그녀를 순진한 아이로 보는 게 아니라, 그녀를 향한 김태준의 형제애를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적어도 김태준의 형제애라는 측면에선, 틀리지 않았다.

‘뭐,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걸 말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김도은이 김대영에게 불만을 품고, 김태준을 믿지 못하는 게 자신에게 더 유리했다.

“만약 사장님이 그 명령을 거역할 경우, 불이익이 생깁니까?”

“당장 여기서 짐을 빼게 되겠죠?”

그러면서 김도은은 사장실을 쭉 훑어봤다.

강철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사장실을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김대영 회장이 가야호텔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버지와 오빠의 지분을 합치면 39.2%에요. 거기다 우호지분까지 감안하면, 결국 제 11.38%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겠죠.”

지분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강철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미쓰토모라는 일본 기업이 가야호텔 지분을 25%나 보유하고 있던데, 혹시 아십니까?”

“미쓰토모요?”

“가야호텔뿐만이 아니라 건설, 상사, 리조트에도 25%씩 지분을 가지고 있던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강철은 삼우그룹의 지분 구성을 지난 몇 달간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현재 김대영이 합병을 추진하는 3개사-삼우건설, 삼우상사, 삼우리조트와 가야호텔에 미쓰토모라는 일본 기업이 25%씩 지분을 가지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김대영에 버금가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총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이 미지의 일본 기업을, 강철은 추적해 보았다.

하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주소를 추적해도 나오는 건 일본 도쿄 분쿄구의 어느 가정집일 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가정집 주인에 관해 조사를 해 보았지만, 집주인은 그저 평범한 일본 부동산 부호에 불과했다.

세입자를 조사해 봐도, 그저 미쓰토모에서 장기임대하고 있다는 것만 나올 뿐이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혹시나 하고 김도은에게 묻는 것이었다.

“혹시 김대영 회장이 차명으로 굴리는 회사 아닙니까?”

강철 본인이 그런 식으로 거목그룹을 지배하고 있기에, 당연히 그런 종류라 생각했다.

‘응?’

그러나, 김도은이 말을 하기 전, 강철은 그녀의 생각을 읽고는 당황했다.

“글쎄요…… 그건 아버지도 모르는 회사라…….”

그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김대영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총수가 직접 운용하는 페이퍼컴퍼니면…….’

삼우그룹 총수 일가가 모르는, 4개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25%씩 들고 있는 외국 기업.

주총에 참석한 역사도 없고, 경영에 일절 관여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배당금도 늘 반환하는 존재.

‘도대체 뭐지?’

어쩌면, 정식 후계자가 아니라 김도은이 모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김태준은 알고 있으려나?’

어차피 김태준과는 올 11월에 한 번 얼굴을 볼 터였다.

오는 11월 11일 수요일 저녁 7시.

강철은 박정연과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구태여 평일을 잡은 건, 11월 11일이 박정연이 강철에게 본격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날이기 때문이라나?

중요한 건, 그때 정재계 인사가 총출동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강철은 2차로 김태준과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김태준에게도 넌지시 물어야겠어.’

미쓰토모.

강철은 그 존재가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한자로 석 삼(三)에 벗 우(友)를 쓰는 회사야. 미쓰토모, 한국식으로 읽으면 삼우.’

누가 봐도 삼우그룹과 관련된 회사다.

강철은 그렇게 확신했다.

‘근데 내 기억엔, 삼우산업이 만들어질 때 외국계 회사가 난리 치거나 개입한 건 벌처펀드 라미아였지 미쓰토모가 아니었거든.’

일단, 풀리지 않는 의문은 젖혀두고, 강철은 김도은에게 당부했다.

“일단…… 당분간은 김대영 회장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십시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을 개시하면 되는 겁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이란 게…… 합병 절차 개시인가요?”

“그렇습니다.”

김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어차피…… 그때가 아니면 제게 기회는 다시 안 올 테니까…… 한번 최선을 다해 저항해 봐야겠죠. 그때까지는…… 일단 참아 보고요.”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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