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60화 (160/175)

160 황제 (5)

7.

2015년 5월 21일 목요일.

삼우그룹 차세대기획본부 총무실 의전총괄국장 이영민 전무가 서초동 본사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경찰과 삼우그룹 보안팀이 조사했지만, 그의 방에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과 사망 직전 회장과 통화하였다는 점 그리고 최근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스트레스로 인한 우발적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의심할 만한 것이 없었다.

타살 흔적도 없었고,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도 없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이영민의 죽음을 자살 이외의 다른 그 무언가로 규정할 수 없었다.

그의 장례식은 삼우그룹 회사장으로 치러졌고, 와병 중인 김대영 회장을 대신해 부회장 김태준이 계열사 사장들과 함께 공동으로 상주 역할을 맡아 주었다.

별다른 가족도 없었던 만큼, 그리고 그가 삼우그룹에 그간 보여준 충성이 분명히 있었던 만큼, 총수 일가로서는 당연한 예우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특히 최근 사기가 많이 저하된 차세대기획본부 소속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그리고 총수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불태우길 바랐다.

“일단 당분간은 이도근 본부장과 구대준 부본부장 그리고 박학기 전 본부장의 출소에 힘을 쏟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5월 24일 일요일 저녁 6시 30분.

이태원동 김대영 자택 별채 서재.

침울한 표정으로 흔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김대영에게 김태준은 그렇게 권고했다.

“이영민 전무가 그렇게 가버리는 바람에, 지금 전체적으로 직원들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일단 일신그룹에 강철 실장을 처분하는 건 후일로 미루고, 당장엔 사기부터 북돋을 필요가 있습니다.”

차분한 어조로 후계자가 그렇게 말하니, 김대영은 거기에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김대영에겐 반박할 힘도 없었다.

‘한준영이가 갑자기 실종됐고, 이영민이는 갑자기 자살을 했어.’

김대영이 힘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이유는, 이영민의 죽음이 슬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품질 좋은 여자를 잘 판별해서 가져다주던 충신이 죽은 것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둘 다 그 천둥벌거숭이하고 연루가 되고 나서 그렇게 됐어.’

김대영은, 지금, 6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5공 청문회 때도, IMF발 외환위기 때도, 07년 삼우 비자금 폭로 사건 때도 그리고 최근 일련의 불명예스러운 추문이 발생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김대영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러고 보니, 한소영이 죽기 전 갑자기 엄근식과 엄태욱이 죽는 일도 있었다.

‘근식이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어버리더니…… 태욱이는 또 자살을…… 그러고 보니 태욱이도 그때 투신자살이었지?’

김대영은 그 모든 죽음에 강철이 연루돼 있을 거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사라진 장부가 갑자기 정치권에서 등장하질 않나…… 중요한 대목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죽질 않나…….’

김대영은 근원적인 공포, 즉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아들인 김태준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아버지도 결국 사람이셨어.’

김태준은 김대영이 이영민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생각했다.

‘말수는 별로 없었지만, 그만큼 충실하게 아버지를 도와드렸으니까.’

김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김대영에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다면, 일단 당분간 제가 차기본 지휘하면서 구속된 사람들 빼 오는 일에 집중해보겠습니다.”

그 말에 김대영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집안 경비를…… 지금보다 한 2배, 3배 더 강화해.”

그 말에 김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태준은 곧 밖으로 나갔고, 김대영은 홀로 남았다.

혼자가 된 김대영은 자신에게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에 잠시 압도당하다가, 이내 자신이 압도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삐익-!]

그는 곧장 벨을 눌렀다.

그러자 10초가 지나지 않아 집사가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집사를 향해 김대영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술 한 병하고, 안마해줄 여자애 둘 가져와.”

8.

삼우그룹이 한발 물러났다는 것은, 금방 드러났다.

강철이 여기저기 심어둔 눈과 귀는, 강철에 대항해 일을 꾸미던 자들이 모두 잠적하거나 숨죽이게 됐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오빠가 당분간 차기본을 지휘하게 됐어요. 이영민 전무 자살로 뒤숭숭해진 회사 분위기를 수습하고, 구속된 임원들 빼내는 일에 당분간 집중하기로 했다네요.”

5월 27일 수요일 오후 2시.

가야호텔 사장실에서 강철은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김도은으로부터 내부자 정보를 전해 듣고 있었다.

“오빠는 일단 직원들 사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을 위한 성과급입니까?”

“그런 셈이죠.”

하루 전날, 삼우그룹에서는 전 직원에게 월급의 50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오는 6월 말 일괄 지급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 정도로 지금 그룹 직원들의 분위기가 처져 있어요.”

“고위직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이사는 본사 사옥에서 자살하니 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김도은은 가만히 강철을 바라봤다.

강철은 그녀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곧장 알아차렸다.

“참 묘한 타이밍이죠? 이영민 전무가 자살한 타이밍이?”

강철은 거기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도은은 말을 이었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우발적 자살…… 제가 아는 이영민 전무는 스트레스받는다고 자살할 그럴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영민 전무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었어요. 아마 강 실장님을 날려버리기 위한 계획이었겠죠.”

김도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강철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 실장님이 어떻게 하신 건가요?”

그녀는 속마음을 숨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가 품고 있는 의심을 그대로 강철에게 뱉어냈다.

강철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헛웃음은 김도은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이건 너무 나간 상상인가 보네요?”

김도은은 강철의 헛웃음을 황당해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긴…… 아무도 침입한 사람이 없는 자기 사무실에서 뛰어내린 거니까…… 강 실장이 무슨 최면을 걸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며 김도은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 차례 숙였다.

“미안해요. 좀 무례했죠?”

“꽤 무례했지만, 또 제 능력을 그렇게 과대평가해주시니 고맙기도 합니다.”

강철은 그렇게 말한 후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삼우그룹 내에서 김 사장님이 음으로 양으로 챙겨 놓은 지분 규모가 어느 정도입니까?”

김도은은 강철이 자기 발언에 문제 삼지 않음에 안도하며 그 질문에 대답했다.

“공식적인 규모야 뭐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혀졌으니 잘 아실 거고, 뒤에서 차명으로 챙겨둔 것까지 합하면 8% 정도에요.”

“8%라…….”

“각 계열사별 평균이 그렇단 거예요. 호텔은 음으로나 양으로나 다 합치면 11%가 조금 넘고, 전자는 0.5% 정도에 건설이랑 상사는 각각 8.5% 9.23%에요. 그 외 나머지 자잘한 계열사랑 금융 관계사까지 얼추 그 정도 규모구요.”

“김태준 부회장은 어느 정도입니까?”

“저랑 비슷해요.”

“그럼 김대영 회장은?”

“정확한 건 아버지랑 박학기 회장 그리고 이도근 부회장이랑 구대준 사장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추론해두신 건 있을 거 아닙니까?”

“대략 평균적으로 20%가 조금 넘는 거로 잡히더군요.”

“20%라…….”

“중요한 건 수치가 아니에요. 제가 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순환출자에서 핵심을 담당하는 고리고리마다 알짜배기만 챙겨두신 거라서, 질적으로 달라요. 아버지의 20%는.”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더럽고 복잡한 순환출자를 자랑했던 거목그룹보다 더 더럽고 복잡한 순환출자를 자랑하는 게 삼우그룹이다.

만약 지금 당장 김대영이 죽어버리면, 그 누구도 삼우그룹을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묶어둘 수 없을 정도로, 삼우그룹의 순환출자는 오로지 단 한 사람, 김대영만을 위해 구축돼 있었다.

‘그러니 건설이랑 상사, 리조트 그리고 아스가르드를 합친 거지.’

상처받고 분노한 황제의 무식한 공세는 야전사령관인 이영민의 죽음으로 무산됐다.

당분간 황제는 숨죽이고 있을 것이며, 그 밑에서 황위를 계승 중인 황태자의 지휘하에 삼우그룹은 직원의 사기를 북돋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자들이 모두 풀려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합병 작업을 시작하겠지.’

강철이 해야 할 일은, 그 합병 작업을 막는 것이었다.

‘김태준이 김대영의 뜻을 이어받아 나에게 적대할지, 아니면 김대영의 원한은 김대영의 것으로 남겨두고 자기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할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관심법이 가르쳐주는 것은, 그 사람의 현재 마음 상태와 과거의 기억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 미래에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을지에 대한 것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불확실한 미래의 선의를 기대하기보단, 확실한 파괴가 더 효과적이지.’

그렇기에 강철은, 최대한 삼우그룹의 합병을 무산시킬 생각이었다.

‘김도은에게 삼우그룹 회장 자리를 줄 수는 없어. 그건 불가능해.’

삼우그룹 후계자로 김태준을 축출하고 김도은을 앉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삼우그룹의 지분을 탈취해 김도은을 회장으로 옹립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하기엔 삼우그룹은 그 규모나 순환출자 고리의 복잡성이 엄청났다.

하지만 파괴하는 건 가능했다.

해체해서, 주요 산업별로 나눠 먹게 하는 건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합병만 막으면, 사실상 삼우그룹은 삼우전자와 그 관계사, 삼우산업을 이루는 4개 계열사와 그 관계사 그리고 가야호텔과 그 관계사 및 금융관계사로 4분할이 돼.’

그렇게 된다면, 김도은의 역량에 따라 가야호텔에 +α로 몇 개를 더 챙길 순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강철은 자신의 최대 숙적이자 국내 한정 최강의 숙적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곤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게 될 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나 마땅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건데…….’

다행히,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그 여유를 강철은 최대한 삼우그룹 합병 무산 방안 구상에 쏟을 생각이었다.

‘내게 적대적인 재벌을 남겨두면 곤란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창 자라나는, 2011년생 엄민식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문명 세계 종말의 위험이 사라진 지금, 강철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엄민식이 커서 무사히 거목과 일신의 권좌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자금 자신에 적대적인 존재를 모두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강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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