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황제 (4)
고금필의 눈이 떨렸다.
그는 자기 토사물에 처박힌 채 떨었다.
“…… 살려주십시오.”
고금필의 입에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뭐?”
강철은 들었지만, 못 들은 척 귀를 기울였다.
“제발…… 제 딸만큼은 살려주십시오.”
그 말에 강철은 차갑게 웃었다.
“누가 죽인데?”
“…… 차라리 제가 여기서 뛰어내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제발 제 딸 만큼은…… 제발…….”
고금필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에서 나온 뜨거운 액체가 입에서 나왔던 뜨거운, 반쯤 뭉개진 고체 덩어리가 섞인 액체 위로 흘러내렸다.
강철은 손을 치웠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음기를 싹 빼고, 차갑게 얼어붙은 눈으로 고금필을 내려다보며, 강철은 말했다.
“자기 딸은 소중하다 이건가?”
고금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딸이 소중한 줄 알았으면, 남의 딸들도 소중한 줄 알았어야지.”
고금필은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사적으로 원한을 사는 경우,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내게 이득이 되는 경우 그리고 선을 넘는 경우. 이 세 경우 중 둘 이상이 충족되면, 난 사람을 죽여.”
“……”
“당신은 선을 넘었어. 정치하겠다는 사람이,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됐지.”
고금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목숨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자신의 죽음으로 딸의 치부가 숨겨질 수만 있다면, 그는 충분히 죽을 수 있었다.
그만큼 그는 가족을 사랑했다.
“하지만 나하고 사적인 원한 관계까지는 형성하지 않았어. 내가 이야기하는 사적인 원한이란 건…… 뭐랄까 이런 식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은원이랑은 좀 거리가 멀단 말이지. 뭐랄까…… 다시는 나와 영원히 동지가 될 수 없을 만큼 사이가 악화돼야 한다고 해야 하려나?”
고금필의 생각을 모두 읽고 있었기에, 강철은 태연하게 자기 살인 철학을 떠들며 그의 마음을 흔들어 댔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쪽이 죽는 게, 그쪽이 살아 있는 것보다 내게 더 이득이 된다는 보장도 없어.”
강철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리곤 연기를 허공에 내뿜은 후, 고금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난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을 멈출 생각도 없고.”
“제, 제발…… 제발 우리 주희만큼은…… 제발…….”
“고주희 양이 소중한 만큼, 유아영 양과 홍민아 양도 소중히 여겼어야지. 안 그래?”
강철은 폰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블러핑이었다.
실제로 그는 아무런 기능도 작동시키지 않았다.
단지, 액정을 손으로 몇 차례 가볍게 두드리고 쓰다듬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고금필의 멘탈을 터뜨리기엔 딱 그 정도 행동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습니까? 네? 제가…… 제가 뭘 어떻게 해야 주희를 살려주시겠습니까? 네? 제발…… 제발…… 씨발 제발 좀 말씀좀 해 주세요…… 강 실장님 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시잖아요…… 원하시는 게 있으실 거잖아요…….”
고금필은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토사물에 대가리를 처박은 채 강철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가지고 협박하는 게 마음이 영 좋지는 않구만.’
돈과 지위에 눈이 멀어 양심을 내려놓고 기꺼이 삼우그룹의 전용 똥닦개가 된 대기자의 마음은, 자식의 안위 앞에서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던 그였지만, 자기 자식 문제 앞에선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강철은 묘한 심적 불편함을 느꼈다.
‘아버지로서, 공감 같은 걸 하는 건가?’
그러나 그 불편함이 강철에게 방해가 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이전에 비해 약간의 불편함만이 생겼을 뿐, 그것은 마치 목에 걸린 가래와도 같은 수준의, 신경은 쓰이지만, 크게 문제되진 않는 그런 정도의 문제였다.
그 이상으로 그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진 않았다.
“역으로 물어보지. 뭘 해줄 수 있지?”
강철의 물음에 고금필은 고개를 들었다.
토사물이 묻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강철은 말했다.
“우리 고 상무님이, 이 나를 위해 뭘 해주실 수 있느냐, 이 말이야.”
“그, 그게…….”
“삼우그룹 똥 닦아 오면서, 똥 묻은 휴지 많이 가지고 있지?”
강철의 말뜻을 고금필은 곧장 알아들었다.
“……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유아영하고 홍민아의 동영상 파일 깔끔하게,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지워.”
“아, 알겠습니다.”
고금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입고 있던 옷으로 대충 얼굴과 손에 묻은 토사물을 닦아낸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강철이 보는 앞에서 동영상 파일을 모두 영구 삭제했다.
“그, 그런데…… 이, 이 복사본이……”
“알아,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이 영상 복구하거나 하면…… 알지?”
고금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똥 묻은 휴지 잘 정리해서 보기 좋게 만들어 오라고. 기한은 이틀 줄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6.
본래 이영민이 하던 일은, 김대영의 성적 유흥을 위한 여자를 골라 공급하는 일이었다.
여자의 출신 성분부터, 사회적 관계, 건강 상태 등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분명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바쁘거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하으아암-!”
문제는, 최근 여야 대표들이 쌍으로 상대 당이 삼우그룹으로부터 돈을 받아먹었다고 폭로하고, 그로 인해 청문회까지 열린 후, 삼우그룹 내에서 진짜 제대로 된 총수 일가 보좌를 담당하던 상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구치소로 들어가 버리면서, 그들이 하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다 이영민에게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어후…… 미치겠네.”
거기다 분노한 김대영이 강철을 족치기 위한 모든 수단을 찾아내라는 특별 지침까지 하달하는 바람에, 이영민은 졸지에 평소 그가 하던 업무량의 10배는 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당연히 그의 피로는 누적돼 갔고, 그러면서 몇 가지 빈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구멍이 생기면, 그는 또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바삐 뛰었고, 또 피로가 누적됐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로 또 일을 처리하다 보면, 다시 구멍이 생겼고, 또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과로하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고, 또 그 상태로 일을 하면 구멍이 생기는,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 속에서 이영민은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전무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하지만 그는 하품할 시간도 없었다.
“어, 그래.”
5월 21일 목요일 오후 2시.
피곤하고 나른해진 상태로, 이영민은 전화기를 들었다.
“네, 회장님.”
수화기 너머에서, 김대영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영민을 채근하고 있었다.
“대산그룹하고 연관된 인물들하고는 계속해서 컨택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강서구에 사채업자 백두산 씨하고 또 그 강철한테 귀 물어 뜯겼다는 동창까지 다 컨택 중에 있습니다.”
컨택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김대영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그에게 채찍질했다.
“……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습니다.”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김대영의 히스테리까지 받아내면서, 이영민은 점차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김대영 앞에선 내색할 수 없었다.
“오늘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고서, 이영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의자에 등을 파묻고, 목 받침대에 목을 기댔다.
얼굴을 천장으로 향한 채 그렇게 그는 아주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곧, 과중한 업무, 밀린 일이 그의 머릿속을 휘저었고, 그는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커피 한잔하면서 하시지, 그래?”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책상 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올려두었다.
이영민은 순간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 강 실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수 배달해준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이영민을 바라보았다.
“피곤해 보이시네?”
“…… 어, 어떻게…….”
“당신한테는 휴식이 필요한 거 같아. 다행히 부모님은 6년 전에 4개월 텀을 두고 돌아가셨고, 결혼도 안 해서 가족도 따로 없으니까, 쉬고자 한다면 얼마든 푹 쉴 수 있겠어.”
이영민은 곧장 골프채를 빼 들었다.
“당신 뭐야?”
골프채를 든 이영민을 바라보며 강철은 씩 웃었다.
“그 골프채로…… 뭘 어떻게 하려고?”
강철의 질문은, 동시에 이영민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거로 진짜 뭘 어쩌지?’
그가 그렇게 당황스러워하는 사이 강철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강철은 부드럽게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그의 손에서 골프채를 낚아챘다.
그리곤 그의 팔을 잡아 뒤로 꺾어 들어갔다.
“허억-!”
순식간에 강철에게 제압당한 이영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몇 층이지?”
강철의 물음에 이영민은 대답할 수 없었다.
“36층이지?”
대답은 강철이 대신했다.
강철은 그대로 이영민을 들었다.
그리곤 창가로 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강한 바람이 순간 불어닥쳐 왔다.
“삼우그룹 사옥 건설, 삼우건설에서 담당했지?”
“뭐, 뭐 하려는 거야! 이거 안 내려놔!”
“보통 이런 고층 빌딩을 지을 땐 말이야. 일신건설이나 거목건설에선 창문이 이렇게 활짝 열리지 않게 구조적으로 처리를 해 둬.”
“이거 내려놔, 이 새끼야!”
발버둥 치며 내려오려는 이영민을 꽉 잡고서, 강철은 그에게 말했다.
“만약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그땐 꼭 일신그룹이나 거목그룹에서 일했으면 좋겠네. 그래야 이렇게 회사에서 자살하는 거로 인생이 끝나진 않을 거니까.”
“이, 이거 놔! 이거 놔 이 새끼야! 마, 말로 하자고! 말로! 말로! 말로!”
“선을 넘었고,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한테 이득이니까. 이만 여기서 끝내자고. 이 추한 인생을 말이야. 지옥에선, 똥닦개 노릇은 하지 말길 기원하지.”
그 말을 끝으로, 강철은 이영민을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쿠웅-!]
이영민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으며 강철은 피식 웃었다.
그는 그대로 이영민의 자리로 가, 책상 중간 서랍을 열었다.
그리곤 거기 있던 폰과 USB를 챙겨 들고선, 그대로 은신을 펼쳐서 모습을 감췄다.
“전무님이 떨어지셨어! 빨리! 빨리 로비로 내려가 봐!”
“보안팀! 빨리 건물 차단하고, 폴리스라인 둘러!”
강철이 사라지고 나서 30초 후, 이영민의 사무실로 들어온 직원들은 열린 창문을 통해 아래로 떨어진 이영민의 시체를 확인하곤 조치를 취했다.
빠르게 보안 요원들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시체를 덮고, 주변에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다.
그러나, 이영민의 시체 사진은 이미 수많은 사람에게 찍혀 SNS에 올라간 상태였다.
그리고, 미처 삼우그룹이 보도 통제를 하기도 전에, 태극일보에서 속보로 이영민의 투신자살 소식을 내보내면서, 결국, 그의 죽음은 그날 메인 뉴스의 헤드라인을 당당하게 장식하고 말았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