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황제 (3)
“여보세요.”
[…… 오랜만이네요?]
“그렇네.”
관심법은 대면하는 사람의 마음만을 읽을 수 있다.
비대면 상태에선 관심법은 아무런 효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강철은 유아영의 첫 마디에서 그녀가 왜 전화했는가 그 이유를 대강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건가?”
[…… 귀신이네요. 여전히.]
“목소리가 떨리고 있잖아.”
유아영의 목소리는 심히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구토할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언제 시간 괜찮아요?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1시간 뒤에 청담동에 그 카페에서 보자고.”
[…… 네, 알겠어요.]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계속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뒷정리 잘하고, 계속해서 요주의 인사들 관리 잘하라고. 특히 조민석하고 부산이랑 목포에 늙은이들 말이야.”
그 말에 김명길은 허리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네, 마 걱정마이소. 제가 단디 챙기겠십니다.”
그렇게 강철은 대마 농장을 나와 차를 타고 청담동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 2층, 유아영과 가끔 커피를 마셨던 자리에 앉아 홀로 바닐라 라뗴를 마시며 가만히 그녀를 기다렸다.
“벌써 와 있었네요?”
바닐라 라뗴를 세 모금 정도 마셨을 때, 유아영이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가만히 강철의 맞은편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강철은 가만히 그런 유아영의 눈을 직시하며 관심법을 발동해 그녀의 내면을 읽었다.
그리고 그녀가 점차 눈시울을 붉혀갈 때쯤, 강철은 입을 열었다.
“삼우그룹한테 협박을 받고 있으시구만.”
그 말에 유아영은 결국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엎드려서 한참을 소리죽여 흐느꼈다.
강철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영민 전무라…… 김대영이 채홍사 아닌가?’
유아영은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그녀가 최근에 사귀기 시작한 애인과의, 마약을 곁들인 광란의 정사 장면이 담긴, 포르노 수준의 영상을 가지고서, 삼우그룹 이영민 전무가 직접 그녀를 찾아와 협박했다.
협박의 내용은 단순했다.
강철과 엮인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그의 치부가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오라.
만약 우리 요구를 거절할 시, 이 영상은 유포될 것이다.
상당히 무식하면서도, 직관적이며, 두려운 협박이었다.
‘고도의 전략 전술이 없어. 그냥 무식하게 돈과 힘, 공포로 밀어붙이는 수준이야.’
김도은 말대로 삼우그룹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그리고 직선적으로 공세를 펼쳐오고 있었다.
박용수가 그랬고, 이젠 유아영이 그랬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민한 전술적 행동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량전을 하자는 건가?’
유아영은 마약 중독자가 아니다.
그녀는 마약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광란의 정사 장면은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삼우그룹 측에서 그녀에게 강제로 약을 투여하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의 그녀를 영상으로 찍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도은이 그랬지, 상처받았다고. 하지만 중요한 전략가들이 전부 몸이 묶인 상태라 제대로 된 전략전술을 구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여전히 흐느끼는 유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협박을 당하면서도 날 찾아왔다는 건 굉장히 높이 살 수 있는 요소야.”
유아영이 강철을 찾은 것은, 삼우그룹의 협박에 굴복해 강철의 약 점을 잡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유아영은 강철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삼우그룹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를 찾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점을 강철은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의리인가? 아니면 나에게 지닌 공포가 삼우그룹이라는 존재에게 품은 공포보다 더 큰 건가?’
그 부분까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거기는 거의 무의식 영역에 가까운 것이었던 만큼, 아직 강철의 관심법 능력으론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는 강철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지, 그를 배신하거나 삼우그룹과 협력을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과거를 끄집어내는 게 참 기분이 좋지 않아.’
강철은 커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곤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200m 정도 떨어진 모텔 야외 주차장에서, 카페 방향을 바라보는 세단 하나가 보였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카메라를 든 채 강철이 있는 방향을 연신 찍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자기가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나 강철은 상식적인 인간이 아니다.
“걱정하지 말고, 일단 집에 가서 푹 쉬고 있어. 그리고…… 혹시 조민석이 누군가와 무슨 작당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
그 말에 유아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은 그런 유아영을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천천히 모텔 주차장으로 다가갔다.
카페에서 약간 우회해서 갔기에, 주차장 차량 내부에 있던 무궁일보 기자들은 강철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직도 둘이 대화하고 있냐?”
“남자가 안 보이는데요?”
“똥싸러 갔나?”
“글쎄요?”
“에효. 이게 무슨 꼴이냐. 씨벌, 조또 대단한 거 취재하는 것도 아니고.”
“덕분에 선배님은 차 한 대 새로 뽑으셨잖아요.”
무궁일보 논설주간 고금필의 명령을 수행하는 두 기자는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가만히 카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후임자는 고성능 카메라로 연신 창가에 앉은 유아영을 찍고 있었고, 조수석에 앉은 선임자는 망원경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야. 썅년 우는 모습도 예쁘다.”
“가서 고백이라도 하시죠?”
“고백이고 나발이고 썅 그날 그냥 해버릴 걸 그랬어.”
“그랬다간 고 상무님한테 죽기 직전까지 맞았겠죠?”
“상무님도 존나게 꼴리셨을……”
그 순간,
[펑-!]
조수석 유리창이 깨지며 주먹 하나가 날아들었다.
주먹은 곧장 선임자의 턱을 후려쳤고, 선임자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헉-!”
후임자는 화들짝 놀라며 조수석을 바라봤다.
깨진 유리 틈으로 주먹은 빠져나갔다.
그리고 강철이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이, 무궁일보 기자님들, 나하고 이야기 좀 합시다.”
5.
5월 18일 월요일 밤 11시 59분.
고금필은 술에 반쯤 취한 채 무궁일보 사옥으로 복귀했다.
그는 부축해주려는 보안요원의 손길을 뿌리치곤,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 사무실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5월 19일 화요일 오전 12시 02분 쯤, 그는 자기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궁일보 고금필 논설주간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 후보로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 모양이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자기 업무용 책상 의자에 앉자마자, 고금필의 귀로 한 남자의 시니컬한 음성이 날아들어와 꽂혔다.
고금필은 순간 오금이 저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반쯤 올라온 취기가 싹 날아갔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몸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고금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음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손님 접객용 소파.
그곳에서, 강철이 미소를 지으며 고금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워커홀릭이라는 소문도 사실인 모양이고 말이지.”
“…… 우리 강 실장님이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을까? 요?”
“말을 하려면 온전히 해. 존댓말이건 반말이건 말이야. 까? 다음에 요? 가 붙는 건 어느 나라 문법이야?”
고금필은 머리를 굴렸다.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그런 고금필에게 강철은 말했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던 우리 고대 운동권 선봉대장 고금필 씨는 어디 가고, 삼우그룹 똥이나 닦아주는 권력에 미친 늙은이만 이렇게 남아 계신 걸까? 응?”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고금필에게 다가갔다.
고금필은 그런 강철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슬금슬금 움직여 펜을 잡았다.
그리곤 언제든지 펜으로 강철을 찌를 수 있게 대비한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어쩐 일로 오셨어?”
강철은 고금필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곤 그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어쩐 일로 왔긴? 당신이 똥 닦아 주는 일 관련해서 알아보려고 왔지.”
“누가 누구 똥을 닦아 준다고 그래? 다들 성인이잖아. 각자 싼 똥은 각자가 알아서 잘 닦고 있어.”
“그래? 그럼 뭐, 우리 김대영 회장은 변실금이라도 걸리셨나 보네. 이렇게 무궁일보 논설주간이 친히 닦아주는 걸 보면.”
[지이이잉-!]
그 순간, 강철의 폰이 진동하며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강철은 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고금필은 벌떡 일어나며 강철의 목에 볼펜을 찔러 넣었다.
[콰득-!]
그러나 볼펜은 강철의 목과 부딪히자마자 힘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뻑-!]
강철은 고금필을 쳐다보지도 않고, 왼쪽 손등으로 고금필의 왼쪽 광대를 툭 쳤다.
[쿵-!]
“크헉-!”
가볍게 친 수준이었지만, 고금필은 붕 날아가 벽에 처박힌 후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쿨럭-! 쿨럭-!”
고금필은 몇 차례 기침하더니,
“우웨엑-!”
이내 반쯤 소화된 것들을 도로 토해내고 말았다.
“솜씨가 제법인 걸 보니, 학창 시절에 볼펜 따먹기 좀 하셨나 봐? 왜 그 있잖아? 그 영화에서 나오던 그거. 응? 그 세대 아닌가?”
강철은 바닥에 누워 토하는 고금필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러더니 그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쭈그려 앉고는 폰 화면을 돌려 그에게 보여 주었다.
“……!”
화면을 본 순간, 고금필의 눈은 떨리기 시작했다.
“어때, 죽이지? 리얼하지?”
화면 속 배경은, 가로등 하나 겨우 있는 어두운 장소였다.
어디인지 추론조차 하기 힘든, 굉장히 외딴곳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는데, 문제는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렌터카로 보이는 SUV가 한 대 있었고, 그 안에선 한 쌍의 남녀가 운전석에서 서로 엉킨 채 열심히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정체였다.
“야당 국회의원 아들과 무궁일보 대기자의 딸이 카섹스를 즐기다. 어때, 내 기사 제목 뽑는 능력이?”
“이, 이…… 이…… 이 개자식이!”
고금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강철의 손이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쿵-!]
강철은 그대로 그의 면상을 바닥에 널브러진 토사물에 처박았다.
“남한테 죽창 겨눴으면, 자기도 죽창 맞을 수 있다. 뭐 이런 생각은 안 하고 사시나?”
“크으윽-!”
“나한테 감시자 붙여 뒀으면, 자기 주위 사람한테도 감시자가 붙을 거다, 뭐 그런 생각 안 해 봤어?”
“이…… 이…… 이……!”
“아, 뭐 물론 내가 운이 더 좋긴 했지. 나도 이건 예상 못 했거든. 단지, 아버지한테는 친구들하고 여행 간다고 거짓말하고 남자친구하고 강원도 쪽으로 놀러 가는 줄로만 알았지.”
강철은 씩 웃었다.
“이거 폰허니에 한번 올려볼까? 반응이 참 궁금하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