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56화 (156/175)

156 황제 (1)

1.

황제.

그것은 김대영을 칭하는, 한국 진보 진영의 멸칭이었다.

그의 경영 스타일이나, 한국 사회 전반을 장악한 영향력 그리고 사고방식 등을 취합했을 때, 황제라는 단어 말고는 그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진보 진영 그리고 일부 보수 진영의 의견이었다.

분명 그것은 멸칭이었다.

그랬기에 감히 공식석상에서 그를 두고 황제라 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김대영은 그 호칭을 좋아했다.

비록 대외적으로는 김대영이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삼우그룹 공보팀에서 발표하긴 했지만, 심적으로 그는 그 별명을 좋아했다.

그랬기에 최근 그를 두고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그의 권위는 물론 마음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황제라드만 거기는 천민이었누 ㅋㅋㅋㅋㅋ]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은, 자신의 권위와 함께 황제라는 칭호도 조롱거리가 됐다는 것이었다.

“주간지에서 사면복권을 비판하려고 표지에다가 아버지를 황제처럼 그려 넣었을 때, 표지 디자인까지도 직접 손댔을 만큼 그 별명을 좋아하셨던 분이에요.”

5월 12일 화요일 오후 12시 30분.

가야호텔 레스토랑 VIP라운지에서 강철은 김도은으로부터 김대영의 근황에 관해 전해 듣고 있었다.

“뭐, 일신그룹도 하고 있겠지만, 한국 진보 언론이라는 사람들도 다 우리들 후원금 받는 사람들이고 하니까, 도리어 한 번씩 잊혀질 만하면 그 별명을 꺼내라고 지침을 하달할 정도였어요. 덕분에 지금 구치소에 있는 구대준 사장이 진보 언론 편집실하고 밥을 많이도 먹었죠.”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먹었다.

“어으. 시원하다.”

오늘 아침 귀국한 강철은, 지난 며칠간 러시아에서 기름진 러시아식 음식만 먹었던 터라, 일부러 김도은에게 한식을 부탁해두었다.

“맛이 좋죠?”

무례한 모습이긴 했지만, 김도은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정말 속이 뻥 뚫렸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강철에게, 맛을 물어보며 대화 흐름을 그의 상태에 맞춰 주기까지 했다.

‘러시아 대통령하고 만났다고?’

한국의 기업인이 강대국 정상과 만나는 것, 더군다나 독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씩 강대국 정상이 방한하거나, 아니면 한국 대통령이 강대국에 순방을 갈 때 단체로 우르르 가서 만나는 경우는 왕왕 있었지만, 독대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심지어 김대영조차도 딱 한 번, 중국에 스마트폰 제조공장을 세울 때 당시 주석이었던 후진타오와 10분가량 독대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강철은, 심지어 총수 신분이 아님에도,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독대했다.

‘보통 사람은 확실히 아니야. 어쩌면…… 삼우전자는 몰라도 적어도 주력 계열사 절반 이상은 내게 가져다줄 수도 있어.’

그 정보를, 강철은 은밀하게 김도은만 전해 받을 수 있게끔, 흘렸다.

그 과정에서 박태화까지 관련 정보를 듣게 되긴 했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삼우그룹은 취약해. 아버지가 저렇게 두문불출하시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오빠의 권위를 격하시킬 수 있어.’

김도은의 머릿속에는 그저 삼우그룹에서 자신의 지분을 지키고,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이외에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손쉽게 강철의 플레이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만 있었어도 호텔이랑 관광 관련 계열사는 다 얻었을 거란 걸 알았다면,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런 김도은의 내면을 읽으며 강철은 그렇게 생각했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그리고 이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치워내고는 김도은에게 물었다.

“김대영 회장이 계속 저렇게 은둔할 것 같습니까?”

그 물음에 김도은은 잠시 강철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 정도로 무른 사람이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움직이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그 생각은 강철에게 고스란히 읽혔다.

“제가 그간 봐온 아버지는…… 한 번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하시는 분이세요. 그걸 잘 알기 때문에, 6공화국 출범 이후 대통령 중에 아버지에게 감히 상처를 준 대통령은 아무도 없었던 거고요.”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영은 유달리 정치권에서 성역처럼 여겨졌다.

당장 재계 서열 2위인 현성그룹과 3위인 태성그룹 그리고 그 외 다른 10대, 20대 재벌 기업 총수들이 툭하면 정치인들에게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는 상황에서, 김대영만 유난했다.

사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에게 공개적으로, 사전 협의 없이 덤빈 정치인은, 그리고 어떻게든, 크든 작든 상처를 준 정치인은, 공개처형 수준으로 망신을 당한 후 사회적으로 매장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김대영 회장이 곧 저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저를 칠지 그 전략을 짜고 있다고 봐도 좋은 겁니까?”

강철의 물음에 김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오늘 보자고 한 거예요. 혹시나 그쪽에 어떤 약점이 있는가 미리 알아두려고요.”

“약점이라……”

강철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김도은을 바라봤다.

“우리 동맹은 의리나 인간적 정에 의한 게 아닌, 철저히 상호이익을 위한 연합입니다. 지금이야 김도은 사장이 저와 손을 잡는 게 유리하다 생각해서 이렇게 함께하지만, 언제 그 연합이 깨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인데, 제가 함부로 제 약점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김도은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너무 못 믿으시네요?”

“원래 의심이 많으면 실수가 적어지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의심이 많으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마저도 놓칠 수 있어요.”

“참고해두겠습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가 강 실장님한테 듣고 싶은 건 구체적으로 어떤 약점이 있느냐 하는 게 아니에요. 약점 잡힐 만한 게, 그러니까, 삼우그룹이 전력을 다해 정보수집을 하면 증거가 나올 만한 약점이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 여부만 알고 싶은 거예요.”

이미 관심법으로 들어서 아는 이야기였다.

조금 전의 말은, 단지 김도은이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느냐 하는 궁금증에서 꺼낸 말에 불과했다.

그녀가,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강철도 잘 알고 있었다.

“증거가 잡힐 만한 약점이라…….”

없는 건 아니었다.

최대한 관리를 해오긴 했지만, 강철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증거를 없앨 순 없었다.

삼우그룹이 작정하고 찾아낸다면,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찾아낼 수가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있습니다.”

강철의 말에 김도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미리 검찰하고 국세청 그리고 청와대 쪽에 작업을 쳐 놓으세요. 지연전이라도 할 수 있게.”

“지연전이라…….”

“지난번에 국보법으로 엮으려던 건, 아버지가 여유로울 때 적을 제압하는 전술의 전형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여유가 없으세요. 분노하셨고, 상처받으셨죠. 아마 시작부터 공권력을 동원해 강 실장님을 공격할 거예요. 증거가 수집되는 즉시 말이에요.”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하겠습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 진심이 전해졌던 걸까?

김도은은 활짝 웃으며 강철에게 말했다.

“대단한 정신력이시네요? 삼우그룹이 공권력을 동원해 총공세를 펼칠 거란 예고를 듣고도 태평한 걸 보면.”

강철도 마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려워 떤다고 해서, 싸움이 비껴가진 않잖습니까?”

김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닮고 싶네요. 그런 정신력은.”

강철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요…… 김 사장님도 만만찮은 분이신데…….”

김도은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거기에 대해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2.

5월 12일 화요일 밤 11시 30분.

역삼동 Y모텔 609호.

잔뜩 달아오른 두 여자가 알몸 상태로 연리지처럼 엉킨 채 서로의 체액을 탐닉하고 있었다.

침대는 이미 두 여자의 몸에서 흐른 체액으로 축축해져 있었고, 바닥에는 급하게 벗어 던진 옷가지들과 마른 체액으로 뒤범벅이 된 성인용품이 가득했다.

“이야…… 걸레 같은 년들…… 벌써 몇 시간 째냐?”

“한 3시간은 된 것 같은데요?”

“대단하다, 씨벌, 존나 대단해. 남자였으면 이제 서지도 않았을 건데…… 여자들이라 그런가?”

“뽕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아무리 뽕이라도 그렇지 인마.”

“아니, 왜 그 남자도 뽕 맞으면 8시간 동안 할 수 있다던데요?”

“맞아 봤냐? 어? 맞아 봤어? 위키 꺼 이 색갸.”

두 여자의 서로를 향한 탐닉과 서로의 절정에 대한 쟁탈전은, 두 남성에 의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씨벌년들, 지침만 아니었어도 개같이 따먹는 건데.”

남자 중 선임자가 그렇게 말하며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렸다.

그것을 힐끔 바라본 후임자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새끼가 내숭은…… 너도 씨벌 꼴리잖아.”

“퇴근을 못 해서 그런가 쥐조또 안 꼴리네요.”

“지랄하네. 아이고, 씨벌, 이거 끝나고 어디 안마방이라도 갔다가 집에 가든가 해야지 원.”

“형수님한테 빼달라고 하면 되지 뭔 안마방입니까.”

“새꺄, 가족끼리 그런 부탁 하는 거 아니야 인마. 근친상간도 몰라?”

그렇게 두 사람은 30분을 더 동영상을 찍고서야, 카메라를 껐다.

“저기 주사하고 약봉투 카메라에 담았지?”

“시작하자마자 담았죠.”

“녹화할 때 음소거 상태였고?”

“당연하죠.”

“됐다. 씨벌, 퇴근하자.”

“이거 상무님한테 안 전해줘도 됩니까?”

“새꺄, 상무님도 지금 시간이면 주무시지, 인마.”

그 순간, 선임자의 폰이 울렸다.

“형수님이세요?”

“씨벌, 상무님이네.”

선임자는 후임자에게 조용하라 한 후, 전화를 받았다.

“네, 상무님. 네, 촬영 끝내고 지금 퇴장하려고 합니다. 아직도 붙어서 뒹굴고 있습니다. 네? 지금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선임자는 전화를 끊었다.

“뭐라고 하세요?”

“회사로 들어오란다. 거기 있다고.”

“하아…….”

후임자는 한숨을 내쉬곤 밖으로 나갔다.

선임자는 아쉬운 마음으로, 아직도 뒤엉킨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서로를 탐닉하는 두 여자를 바라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방을 나섰다.

침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조그만 원형 테이블 위에는 주사기 2개와 조그만 약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신분증이 2개 또 놓여 있었다.

하나는 운전면허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민등록증이었다.

운전면허증의 주인은, 현재 아래에 깔린 여자였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의 주인은 위에 올라탄 여자였다.

운전면허증은 여자가 96년생이라는 것과 1종 보통을 땄다는 것 강동구 고덕동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이 홍민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있는 주민등록증은 여자가 89년생이라는 것과 송파구 잠실동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이 유아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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