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김도은 (3)
5.
김도은은 강철과 한소영의 관계를 알지는 못했다.
엄민식이 사실 엄태욱의 아들이 아닌, 강철의 아들이란 것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두 사람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이건 꼭 김도은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재계 인사 대부분이 강철과 한소영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죽으면서 자기 아들의 후견인으로 친족도 아닌, 이제 겨우 20대에 접어든 남자를 지정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비자금 관리인 아니야?』
강철과 한소영의 관계에 관해서 재계에서는 크게 2가지 의견이 존재했다.
둘 중 하나는 강철이 비자금 관리인이라는 것이었다.
실상 재계에서 총수가 친족보다도 더 신뢰하는 게 비자금 관리인인 경우가 반쯤 보편적인 만큼, 사실 그 의견이 가장 합리적인 의견이었고, 대부분 수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박태화가 대표적으로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애인 사이 같은데?』
두 번째는 단순히 강철이 비자금 관리인을 넘어서 한소영의 애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는 합리적 근거는 없었다.
그저 젊은 남자와 40대에 접어든 완숙한 여성이 함께 있다는 그림만 보고 그렇게 추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추측에는 강철에 대한 기본적인 무시가 깔려 있었다.
『중졸 고아가 비자금을 관리해? 그것보단 차라리 걔가 한소영 노리갯감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나?』
김도은은 둘 중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강철과 한소영의 관계가 어떤지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이 있는 건 강철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진짜 사랑하는 사이였나 보네?’
김도은은 내적 고민이 상당했다.
상실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대놓고 아버지 및 오빠와 대립하는 강철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와 동맹을 맺긴 했지만, 이제는 그 동맹 관계로 인한 번뇌가 그녀를 괴롭게 했다.
자기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어쨌건 카리스마를 가지고 삼우그룹을 지배해온 아버지를 배신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큰 도전이자 또 다른 두려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달랠 겸, 동시에 강철과의 동맹을 죽은 한소영과의 동맹으로 격상시킬 겸, 그리하여 내적 번뇌를 어느 정도 이겨낼 상징적인 행위를 할 겸, 한소영의 무덤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강철이 무덤 앞에 무릎 꿇고서 묘비에 입을 맞추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그녀는 확신했다.
강철과 한소영은 단순히 재벌 총수와 비자금 관리인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둘 사이에는 분명한 사랑의 끈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그녀는 부러워했다.
삼우그룹과 대립해서, 천하의 김대영을 엿 먹일 정도로 능력 있는 젊은 남자와 말년에 사랑을 한 한소영을.
자신에게는 그저 불확실한, 완전히 믿기 어려운 전략적 동맹일 뿐인 남자와 완전하고도 확실한 관계를 맺고 있던 한소영을.
아무 걱정 없이,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자식의 미래를 맡기고 편히 잠든 한소영을.
김도은은 부러워했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부러움 이상의 감정을 그녀는 가지지 않았고, 그랬기에 강철에 대한 그녀의 인식도 크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한소영이 부러울 뿐이었다.
‘되게 생각이 복잡한 여자야.’
그 모든 김도은의 내적 사고를 관심법을 통해 확인한 강철은, 가만히 한소영의 묘지를 바라보는 김도은을 쳐다보기만 했다.
김도은은 여전히 시선을 한소영의 묘지에 둔 채 강철에게 말했다.
“원래 이번 달부터 삼우상사랑 삼우건설, 삼우리조트 그리고 ㈜아스가르드의 합병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었어요.”
한소영에 대한 추모를 끝내고, 그녀는 곧장 강철에게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왕 여기서 만난 거, 빨리 할 말은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강철은 가만히, 담배를 태우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시겠지만, 삼우상사와 삼우건설, 삼우리조트는 삼우그룹 핵심인 삼우전자와 그 관계사의 지분을 쥔 핵심 계열사에요. 그들을 먼저 하나로 뭉치고, 그다음에 ㈜아스가르드와 합병함으로써 아버지는 오빠에게 아주 무난하게 삼우그룹 전체 지배권을 주려고 한 거고요.”
원래라면 그녀의 말대로 2015년 상반기부터 삼우그룹 주력 계열사 간의 합병이 시작돼야 했다.
먼저 삼우상사와 삼우건설이 합병되고, 그다음에 삼우리조트가 합병되며, 마지막으로 ㈜아스가르드가 합병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삼우그룹은 ㈜삼우산업이라는, 종합상사와 건설, 엔터테인먼트 등이 망라된 괴이한 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지주사로 전환이 돼야 했다.
그 과정에서 로비가 있었고, 해외 벌처펀드의 공격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합병은 성사됐다.
그 합병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김태준이었다.
로비를 받은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많은 삼우그룹 비자금 관리인들이 구속됐으며 김태준도 구치소 생활을 하긴 했지만, 1년도 채 안 되는 구치소 생활을 제외하면, 김태준이 지불한 대가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차기본 이 부회장이랑 구 사장 그리고 삼우생명 박 회장이 다 구속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아, 구속영장 법원에서 발부해 줬습니까?”
“뉴스 안 보시나 봐요? 젊은 분이, 스마트폰만 켜면 바로 뉴스가 나오는 시대에?”
“폰을 꺼 둬서 말입니다.”
김도은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한소영의 묘로 돌리고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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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 사람이 합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자예요. 근데 그 셋이 전부 구속이 돼 버렸으니, 합병 작업은 당분간 미뤄질 거예요.”
김도은은 구체적인 프로세스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그런 식으로 삼우그룹 3세 승계가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과 그 과정에서 삼우생명 회장 박학기, 차세대기획본부 본부장 이도근, 부본부장 구대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긴 상속 대상은 김태준이지 김도은이 아니니까.’
김도은이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모르는 것이 이상할 건 없었다.
오히려 알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었다.
“다행히 우린 시간을 벌었어요. 언제 그게 재개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겠죠.”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우그룹 정관계 로비 재판이, 결과적으론 늘 그랬듯, 면죄부를 주는 형식으로 끝나겠지만, 그 과정이 분명 1년 이상은 걸릴 것인 만큼, 김도은 말대로 시간은 번 셈이었다.
‘만약 시간이 더 끌린다면, 예정대로 2017년에 김대영이 죽어서 그대로 삼우그룹이 공중분해 되는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김대영이 제대로 된 상속 작업을 하지 않고 죽어버리면, 김태준은 결과적으로 ㈜아스가르드만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삼우전자와 그 관계사는 사실상 김씨 일가의 손에서 독립해 별도의 회사가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떻게든 손을 쓰겠지. 삼우그룹에 기술자가 그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닐 거니까.’
물론, 김대영이나 김태준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인 만큼, 그럴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삼우그룹 공중분해라.’
삼우그룹을 공중분해 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면 간단했다.
그냥 역사대로 이루어졌을, 상사와 건설, 리조트 그리고 ㈜아스가르드의 합병만 막으면 됐다.
‘근데 그게 어렵단 말이지.’
하지만 삼우그룹은 그 합병의 성사를 위해, 연기금 수장은 물론 심지어 대통령과 그 비선실세에게까지 광범위한 로비를 펼쳤다.
비록 현재 대통령이 다른 사람이라곤 하지만, 정치인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은 만큼, 어떻게든 삼우그룹은 로비를 펼쳐서 자신의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다.
‘단순히 삼우그룹 공중분해만을 위해 그들이 쓰는 자금보다 더 많은 자금을 로비에 쓰는 건 비효율적이지.’
그리고 강철은 그들의 로비를 방해하기 위한 역로비를 펼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김도은이 삼우상사와 건설 그리고 리조트에 대해 들고 있는 지분이 현재 3% 정도 돼. 각각.’
대신 강철은, 합병 과정에 개입해, 어떤 식으로든 합병을 무산시킬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마땅한 방법이 안 떠오른단 말이지.’
그러나 딱히 방법은 없었다.
‘내 기억으론 적어도 10%의 반대표가 더 있어야 이게 통과가 막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걸 도대체 어디서 구한다고?’
일신그룹과 거목그룹은 구조조정 중이다.
그리고 그 구조조정이 끝나면, 천천히 합병을 할 예정이다.
그렇기에 동원 가능한 비자금이 그리 많지가 않다.
‘러시아 쪽에 뿌리는 돈을 줄일 수도 없고.’
하지만, 분명 방법은 있을 터였다.
‘정 안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김대영을 암살하면 되겠지.’
문득 강철은 아직 자신이 찾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찾을 필요가 없는, 미래의 초능력자 한 사람을 떠올렸다.
‘도끼의 심즉살 능력이 있으면 참 여러모로 편할 텐데 말이야.’
경상도 작두와 함께 멸망한 한반도 남부를 양분한 초능력자, 전라도 도끼.
그가 지닌 초능력은 심즉살이었다.
심즉살.
즉, 마음만 먹으면, 상대방은 그대로 죽는다는 것이다.
물론, 비슷한 수준의 초능력자에게는 잘 통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낮은 수준의 초능력자들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무조건적으로 효력이 발동하는 초능력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그 심즉살로 죽은 사람은 사인이 심장마비가 된다는 거지.’
심장마비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토대로, 오길동은 그 심즉살이 일종의 염동력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건 강철도 마찬가지였다.
‘심즉살만 있다면, 김대영이 갑자기 죽어도 심장마비로 사인이 밝혀질 거라서, 내가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건데 말이야.’
김대영을 암살할 방법은 많았다.
꼭 강철이 직접 때려죽이지 않더라도, 약물을 과다하게 투여한다거나, 부국광처럼 투신자살로 위장한다거나 방법은 많았다.
단지, 그런 식으로, 누가 봐도 인위적인 느낌이 나게끔 살인을 저지르면, 무조건 강철이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푸틴보다 더 죽이기 어려운 게…… 김대영이 푸틴보다 더 높은 건지, 아니면 그냥 여기가 한국이라서 그런 건지…….’
일단 강철은 도끼에 대한 상념을 접어두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건, 도끼가 멸망 전 호남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살았다는 것이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을, 도끼 색출 작업을 하기엔, 강철의 삶은 너무나도 바빴다.
“김 사장님이 삼우그룹을 먹으려면, 일단 김태준 부회장이 삼우그룹을 못 먹는 그림이 연출돼야겠죠.”
“그렇죠.”
“시간이 일단 어느 정도 있으니까, 천천히 고민해봅시다.”
김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무 천천히 고민하진 마세요. 아버지는 우리 생각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일을 추진하는 분이시니까요.”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김대영 회장보단 더 빨리 고민하고 움직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김도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