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회귀-152화 (152/175)

152 김도은 (1)

1.

김도은.

2015년 올해 세는 나이로 47세가 된 그녀는 강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실제 역사에서, 김대영 사후 가야호텔이나 겨우 지키던 사람이었다.

오빠보다 나은 동생이라는 평가가 있긴 했지만, 김대영의 사고방식이 고지식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김태준이 김도은보다 정치질에 능숙해서 그랬던 건지, 결과적으로 그녀는 오빠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작년 한소영의 장례식장에서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에도 강철은 그녀에게 별다른 주목을 하진 않았다.

김태준의 뒤에서 묵묵히 수행하는 듯한 역할만 하던 그녀의 모습에서, 강철은 그 어떠한 주목할 점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김도은이 강철에게 연락이 온 건 사흘 전이었다.

그녀는 강철에게 만나자는 제의를 했고, 강철은 순순히 그에 응했다.

피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까지 들었다.

자신이 그저 언론 보도와 책 그리고 지라시를 통해서만 접했던 김도은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가 하는 호기심은 분명 있었다.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김도은은 상당히 예의 바르게 강철에게 말했다.

소위, 예쁘게 말한다는 것의 표본인 것만 같은 그녀의 화법에 많은 사람이 그녀에 대한 첫인상을 좋게 정하곤 했다.

그러나 강철은 달랐다.

‘양의 탈을 쓴 이리 혹은 가시를 품은 장미.’

사근사근하고, 예의 바른 그녀의 화법 뒤에는, 불타는 욕망과 탐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만약 강철이 작년 한소영의 장례식장에서 김태준에게 신경을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그때부터 그녀에게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을 정도로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욕망과 탐심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김태준을 능가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 한을 품고 있구만.’

강철은 가만히 김도은의 내면을 읽으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그녀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네, 간단하게 챙겨 먹고 왔습니다.”

강철의 대답에 김도은은 싱긋 웃으며 와인 잔을 들었다.

“우리처럼 바쁘게 사는 사람이, 간단하게 먹으면 안 되지만, 또 간단하게 먹게 되죠, 그쵸? 그래도 우리 강 실장님은 젊은 분이셔서 아무래도 나이 많은 저 같은 사람보단 회복력이 좋을 테니까. 아…… 부러워라.”

그녀가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강철의 젊음을 부러워하는 부분에선 아예 마음의 소리와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가 일치했을 정도였다.

“젊음이 그런 부분에선 좋지만, 또 다른 부분에선 안 좋기도 합니다. 가령, 구시대적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분들이 일단 한 수 아래로 보고 시작한다거나 처음 보는데 말을 놔 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강철이 가리키는, ‘구시대적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분’은 분명 김대영이었다.

김도은도 그가 언급한 사람의 대표격인 인물이 자기 아버지 김대영임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겉으로나 속으로나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죠? 그래서 저도 종종 흠칫해요.”

그것 또한 진심이었다.

‘재미있는 사람이네?’

강철은 김도은에게 흥미를 느꼈다.

내면에 품은 엄청난 크기의 욕망과 탐심을 겉으로 드러나는 말투로 가리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거짓을 말하고 있진 않았다.

적어도, 강철과 만나서 몇 마디 나눈 대화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말을 시작한 거니까.’

강철은 계속해서 김도은의 내면에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는 사이 김도은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최근에 아버지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건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아버지랑 닮았다고들 하세요. 외모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강 실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에이, 아버지랑 만나신 적도 있으시면서 모르시기는.”

“외모는 좀 닮은 것 같지만, 성격은 글쎄요…….”

“아버지는 소유욕이 강하세요. 덕분에 자기 형제들을 모두 물리치고, 삼우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키셨죠. 그리고 70년대에 함께 그룹을 이끌었던 다른 형제들을 모두 기록말살형에 처하셨고요.”

삼우그룹의 기록말살.

그것은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였다.

여러 계열사가 형제들에 의해 운영됐고, 일부 계열사는 김대영의 형제들이 시스템의 기초를 만들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김대영이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에 회장에 등극하면서 모두 지워졌다.

과거의 신문기사에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역사가들이 복원해두긴 했지만, 적어도 삼우그룹의 공식적인 출판물이나 기록에선 김대영을 제외한 모두의 이름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형제들이 한 일까지도 모두가 김대영이 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것이 김대영의 소유욕이었다.

“기록만 빼앗으신 게 아니었어요. 할아버지의 유산 중에 지분을 제외한 일반 부동산이나 현금성 자산까지도 모두 아버지가 형제들로부터 빼앗았으니까요.”

덕분에 김대영의 형제와 그 자식들, 즉 김태준과 김도은의 사촌들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저도 소유욕이 강하긴 하지만, 사실 아버지만큼은 아니죠. 전 단지…… 호텔에 대한 저의 상속권만이라도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거짓이었다.

방금 한 말은 거짓이었다.

김도은은 김대영보다 소유욕이 더 강했다.

그녀는 가야호텔만 지키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기회만 된다면, 김태준에게 갈 것들까지도 모조리 가지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녀는 강철이 그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 젊은 분들은 중언부언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들었어요. 핵심만 짧게, 세줄 요약이라고 하죠?”

강철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도은도 씩 웃었다.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절 좀 도와주세요.”

“허허…… 가야호텔 총괄사장님을 일개 실장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비즈니스 쪽 이야기라면 저보단 차라리 전광석 회장님과 이야기를 하시는 게……”

“첫인상과는 다르게 내숭이 상당하시네요?”

다 알고 있는 사이에 헛소리하지 말란 마음의 소리를 그녀는 그렇게 발화했다.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일신그룹과 거목그룹이 모두 강 실장님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야 대표도 회장이 아니라 강 실장님과 대화를 하는 거고요.”

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절 좀 도와주세요.”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제가 삼우그룹 회장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허허허……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농담 같으세요?”

농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그녀는 강철에게 자신이 삼우그룹을 장악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인 건 알겠는데…….’

사실 그녀는 진짜 조급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김태준이 가야호텔을 건들거나 하진 않았어. 김대영이 죽고 나서, 삼우그룹의 주인이 된 다음 도리어 가야호텔을 계열 분리해서 김도은에게 독립적 경영권을 줬지.’

김태준이 실제 어떤 사람인가는, 아직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잠시 마주친 것으로는, 사람의 전부를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실제 역사에서 김태준은 김도은에게 가야호텔과 거기에 딸린 면세점 그리고 그 외 관광과 관련된 사업을 모두 통 크게 떼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상당한 수완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가야호텔그룹을 재계 서열 21위까지 끌어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미래를 알지는 못하니까.’

그러나 그런 미래를 당장에는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김도은은 마음이 급했다.

자기 아버지의 형제들이 아버지에 의해 기록말살형에 처해지고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까지 모조리 빼앗긴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될 거라는 공포가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김대영이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진 이때에, 그 위기를 만든 장본인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공포에 이성이 짓눌린 상태가 아니었다면 분명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김 사장님이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곘습니다.”

강철은 더는 웃지 않았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김도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김대영 회장의 위기는 다 제가 만든 겁니다. 이건 김대영 회장도 알고 있고, 김태준 부회장도 알고 있으며, 여야 대표들도 알고 있습니다.”

김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고 있죠.”

“그러면 이게 김대영 회장에겐 반역으로 보일 수도 있단 것도 알고 계시겠습니다?”

김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어차피 저는 김대영 회장의 적입니다. 하지만 김 사장님은 적이 아니에요. 만약 일이 틀어지면, 김 사장님은 아버지와 싸워야 합니다. 그때, 그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김도은은 잠시의 텀도 두지 않고 마치 준비한 것처럼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각오를 했으니까, 오늘 이렇게 보자고 한 거겠죠?”

그리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바보 같기는.’

강철은 속으로 그녀를 비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호텔과 관광 산업 몇 개를 얻어서 독립할 건데, 괜히 나서서 모든 것을 잃을 리스크를 스스로 만드는 모습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하긴, 미래를 모르면 누구나 이렇게 판단하겠지.’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쭉 들이켰다.

“좋습니다. 뭐,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는 모르겠지만, 도와드릴 수 있는 만큼 도와드리겠습니다.”

강철의 말에 김도은의 표정이 밝아졌다.

김도은은 강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철은 미소를 지으며 그 손을 맞잡아주었다.

“잘 부탁해요.”

그러면서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강철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어떤 유혹의 손짓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현재 품고 있는 불안의 표출이자, 자기가 잡은 이 손이 지푸라기가 아니길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내가 지푸라기는 아니지만…… 뭐랄까…… 꽃길이 있는데 그걸 버리고 일부러 가시밭길로 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김도은의 선택에 대해 강철은 그렇게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대기업 총수가 될 건데…….’

김도은의 원조 요청은 삼우그룹 전체에 대한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상실에 대한 공포로 인한 것이었다.

‘흐음…… 남편과의 사별이 아마 상실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시킨 모양이네?’

그리고 강철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관심법의 능력으로, 그녀의 의식의 맨틀을 부수고 외핵 부근까지 진입함으로써 그녀가 지닌 공포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불쌍하구만.’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강철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그녀에게 알려준다거나, 그녀의 공포를 달래줄 생각은 없었다.

‘보자…… 이대로 가면 올해 아니면 늦어도 내년에는 희대의 막장 인수합병이 이루어질 건데…….’

삼우그룹과 적대하게 된 이때에, 김도은과의 동맹이 과연 자신의 적을 약화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것에 대해서나 강철은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강철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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