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장부 (1)
1.
2007년 연말.
20년 동안 삼우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세 명의 고위 인사가 양심선언을 하며 삼우그룹 비자금 사태가 발생했다.
그들은 자신이 업무 중 보았던 로비 행태와 비자금 조성 방법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폭로했고, 검찰에서도 같은 진술을 이어갔지만, 결국 몸통인 김대영과 김태준, 김도은은 제대로 된 처벌은커녕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
그저 애꿎은 계열사 사장들 몇 명이 재판대에 섰고, 모두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는 것으로 그렇게 삼우그룹 비자금 사태는 끝났다.
양심선언을 했던 세 명의 고위 인사 중 삼우그룹 총수 일가의 사생활까지 폭로했던 사람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1년간 감옥에 들어갔고, 나머지 둘은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잊혀졌다.
그때 그들의 양심선언이 결과적으로 삼우그룹 총수 일가에 아무런 법적 타격을 주지 못했던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삼우그룹이 쌓아 온 권력층과의 인적 네트워크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특히나 대선 정국에 여야 후보 중 지지율이 5%도 안 나오던 몇몇 후보들을 제외한 모두가 그 폭로를 외면했기에 일차적으로 사건은 뭉개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의 양심선언에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진술과 정황은 있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감히 용감하게 삼우그룹 총수 일가를 칠 간 큰 검사나 판사는 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폭로는, 그저 삼우그룹 총수 일가에 도덕적 불명예만 안긴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야…… 이 양반도 돈을 이만큼이나 받았어? 81년부터?”
그리고 2014년 12월 7일 일요일 밤 11시 45분.
그때 그 삼인방이 제시하지 못한 물증의 결정판을, 강철은 확보해서 즐겁게 읽고 있었다.
“아주 디테일하고 심도 깊게 투자를 하셨네.”
강철이 김대영을 도발한 것은, 그의 입에서 망언이 튀어나오게 하려 함도 있었지만,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보다 내면을 쉽게 들여다보기 위함도 있었다.
덕분에 강철은 김대영의 입에서 망언이 나오게 하는 데도 성공했고, 그의 머릿속에서 그의 생명줄과도 마찬가지인 장부의 위치가 나오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김대영이 분노하여 이천 아스가르드 레이싱 트랙으로 가서 달리는 사이, 강철은 이태원동에 자리한 그의 집으로 향했고, 그곳 별채 서재에서 아주 스무스하게 장부를 꺼내올 수 있었다.
금고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고, 은신으로 존재 자체를 숨겼던 만큼, 보안 알람도 없었고 CCTV에 잡히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은밀하게 그곳을 떠나온 강철은, 집으로 오자마자 장부를 읽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야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분들이 모두 다 김대영한테 예전부터 후원받던 사람들이네? 심지어 이 양반은 대학원생 때부터.’
삼우그룹은 강철과 적대하게 됐다.
적어도 김대영이 살아있는 동안엔, 화해는 힘들어졌다.
그리고 삼우그룹이 작정하고 힘을 쓰면, 아무리 강철이라도,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가 있다.
그것을 알았기에, 강철이 선택한 방법은 끊임없이 삼우그룹을 흔드는 것이었다.
‘이 양반은 최근에 우리 돈을 안 받기 시작했는데, 보니까 최근에 삼우에서 돈을 더 줬네.’
강철은 장부를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분석하며, 따로 명단을 작성했다.
그 명단에 적힌 인사들은, 곧 있을 개각 때 장관이나 검찰총장, 국세청장 등으로 올라갈 사람들과 현 야권 유력 대권 주자들 그리고 그 측근들이었다.
‘야당 대권 주자들로는 여당하고 딜을 해보고, 나머지 예비 장관들은 야당하고 딜을 해 봐야지.’
그 외, 현직 장관들이나 여야에서 준원로급으로 대우받는 중진 의원들은 모두가 언론 공개 대상이었다.
‘특히 이 사람, 이 사람은 예전에 비자금 사태 때 특검을 했던 양반이니까, 아주 언론에서 물어뜯기 좋겠지.’
그렇게 공격 좌표를 설정한 후, 강철은 장부를 덮었다.
그리곤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오늘 날씨 참 좋네.’
맑은 하늘에 점차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 빛이 퍼지며, 시원시원한 푸른색 대기를 조성했다.
강철은 그것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언젠간…… 죽이고 싶은 놈 다 죽여도 아무 문제 없을 만큼 권력을 가질 수 있을까?’
김대영이 만약 삼우그룹 회장이 아니라 어디 중견기업 회장이었다면, 벌써 죽어서 하남 대마농장의 거름이 됐을 터였다.
그러나 김대영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대통령도 그에게 함부로 못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외교적으로 어떤 치적을 이루고 싶을 때, 특히 국제 행사를 국내에 유치하고 싶을 때, 김대영이 지닌 국제적 영향력은 정말 귀중한 자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대영은 그런 국제적 영향력과 막대한 비자금을 바탕으로 사실상 한국에서 제왕적 자리에 앉아 군림하며 다스리고 있었다.
‘러시아 해외정보국 부국장을 종처럼 부리는 거로는 부족하려나?’
세계 멸망은 막았다.
멸망하지 않을, 계속해서 이어질 인류 역사에서, 이제 강철이 할 일은 권력을 키우고 그 키운 권력을 엄민식에게 잘 물려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당장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넘겨야 했다.
‘삼우그룹만 정리하고 나면…… 나머진 어렵지 않지.’
태성그룹 박태화는 강철에게 호감을 품고 있으며, 그를 사위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다.
현성그룹 총수 일가는 강철과 크게 접점도 없었고, 김대영처럼 쓸데없이 그를 낮춰 보지도 않고 있다.
거기다 현성그룹은 사업 자체가 자동차와 중공업 위주라 사업적으로도 부딪힐 일은 없었다.
‘박정연이하고 좀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하나?’
권력의 확대를 위한 행보.
그것을 고민하며, 그렇게 강철은 말없이 담배 연기를 뻑뻑 내뿜었다.
2.
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성탄절을 하루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너는 절대로 우리들 속에 끼어들 수가 없어!]
[돈 많은 상놈이 아무리 족보를 사고, 향안에 이름을 올리려고 해도, 상놈은 상놈이야. 뿌리부터가 노비인 것들이 어떻게 양반이 된다는 거야!]
[그게…… 삼우그룹을 이끌어오신 김대영 회장님의 진심이십니까?]
[이건 진심이 아니라 진실이야! 세상의 이치고, 역사의 법칙이야!]
최종적으로 강철의 목소리는 음성변조 처리가 된, 짧은 녹음 파일 하나가 와이튜브에 공개됐다.
그것을 공개한 건, 놀랍게도 태극일보였다.
태극일보에서는 그것을 공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보수도 진보도, 좌파도 우파도, 여당도 야당도, 서로 대립되는 모든 집단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런 구시대적 계급 의식에 동의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 문구가 나오기까지는, 엄청나게 구린 과정이 있었지만, 대중에게 그 과정까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삼우그룹 회장 김대영이 굉장히 구시대적인 계급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와 김대영 대박이네 ㅋㅋㅋㅋ>
<양반 상놈 따지지만 상놈 여자 손에는 찍 쌌쥬 ㅋㅋㅋㅋ>
<ㄹㅇㅋㅋ만 쳐라>
<판사님 저는 이 글을 보지 못했습니닼ㅋㅋㅋㅋ>
대번에 인터넷에서 김대영은 또 조롱거리가 됐다.
법적으로야 처벌할 근거가 없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었지만 사회적 지탄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
[좀 많이 충격적이네요. 그래도 대기업 회장이신데 그런 생각을 해오고 있으셨다는 게……]
[요즘 인터넷에 보면 수저계급론이라는 게 나오고 있는데 약간 그거를 본인이 스스로 인정해주신 게 아닌가……]
[애플망고가 삼우전자보다 잘 나가는 이유가 최고 경영자의 이런 인식 차이 때문이 아닌가……]
무궁일보와 그 종편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이 이를 다루었다.
지상파 뉴스에서는 직접 시민 인터뷰까지 했고, 당연히 시민 인터뷰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단순히 인터뷰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든 여론조사 업체에서 여론조사를 돌렸을 때, 국민의 90%가 김대영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적절하다고 답한 비율은 2%밖엔 되지 않았고, 나머지 8%는 무응답 혹은 모름이었다.
삼우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는 연말에 계속해서 급락을 거듭했다.
실적보다는 오너 리스크에 따른 하락이었고, 덕분에 그런 정치적·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이슈에 크게 반응하지 않던 삼우그룹 주주들도 뿔이 났다.
[삼우전자-삼우산업 소액주주협의회가 오늘 발족한 가운데 첫 결의안으로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삼우그룹의 오너 리스크 해소 필요성과……]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삼우전자-삼우산업 소액주주협의회라는 시민단체가 발족했고, 이들은 삼우그룹에 정식으로 오너 리스크 해소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삼우그룹에는 올해가 아마 삼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안 좋은 일만 연이어 일어난 거죠.]
어느 종편 패널의 평가대로, 그렇게 2014년은 삼우그룹에 악재만 가득 남긴 채, 지나갔고, 2015년 새해가 떠올랐다.
“올해 자네가 몇 살이지?”
2015년 1월 1일 목요일 정오.
강철은 박태화와 함께 여의도에 자리한 중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박태화가 자기 단골집이라며 끌고 온 곳에서, 의외로 그는 박정연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왔다.
그리고 그 이유를, 관심법으로 이미 간파한 강철은 다소 여유로운 자세로 짬뽕을 먹으며 박태화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자 자네가 92년생이고 정연이가 89년생이니까, 3살 차이…… 정연이가 올해……”
“스물일곱입니다. 저는 스물넷이고.”
“아. 맞네. 허허허. 이거 나이가 드니까 숫자 계산이 잘 안 되는구만. 허허허.”
거짓말이었다.
이미 박태화는 박정연과 강철의 나이를 모두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물은 이유는, 강철이 박정연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보려는 얄팍한 술책이었다.
그리고 강철은 그냥 그 술책에 어울려주었다.
어쨌건 든든한 파트너니까.
“정연이도 슬슬 결혼을 해야 할 텐데 말이야.”
물론 그 말에는 아직 어울려줄 생각은 없었다.
강철은 그저 말없이 짬뽕만 흡입할 뿐이었다.
강철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박태화는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가만히 강철을 바라보며, 오늘 그와 만나 하려던 이야기의 본론을 곧장 끄집어냈다.
“자네 이제 여기서 그만 김 회장하고 화해하는 게 어떤가?”
박태화는 김대영과의 화해를 강철에게 권했다.
“자네가 대단한 친구인 건 맞지만, 김대영 회장이 작정하고 소모전을 각오하면, 결국 자네가 밀리게 돼 있어.”
강철은 가만히 물을 마시며 박태화의 눈을 바라봤다.
박태화는 진심으로 강철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것을 관심법과 그의 눈빛을 통해 확인한 강철은 물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박태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박태화는 귀를 기울였다.
“김대영 회장이 우리 박 회장님의 반 만큼이라도 현대적인 사고를 하는 분이셨다면, 제가 이렇게 싸울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 말에 박태화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강철 회귀